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격몽요결

이이 (李珥, 율곡)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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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학자 율곡 이이가 1577년에 쓴 책입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뜻을 세우고, 몸가짐을 바로 하고, 부모를 모시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알도록 썼습니다. 뒤에는 집안 제사를 지내는 예법을 간추려 붙였습니다.

—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중요한 비결
율곡 이이에게 묻기
책 앞에 붙인 글(서문)
율곡 이이에게 묻기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배우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배움이란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께 하면 된다. 신하는 충성하고, 부부는 서로 지킬 몫을 가려 지키면 된다. 형제는 서로 아끼고,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면 된다. 친구끼리는 믿음을 지키면 된다. 모두 날마다 움직이고 쉬는 사이에, 일마다 알맞게 하면 될 뿐이다. 마음을 신비한 데로 달려 보내고 신기한 효과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배우지 않은 사람은 마음 밭이 잡초로 막혀 있다. 아는 것도 어둡고 흐릿하다. 그래서 반드시 책을 읽고 를 따져 마땅히 갈 길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나아가는 길이 바르고 행동이 알맞게 된다. 요즘 사람들은 배움이 날마다의 생활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높고 멀어서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그래서 남에게 미루고 스스로 포기한 채 편히 여긴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내가 해산이라는 곳의 남쪽에 자리 잡고 살 때였다. 배우는 사람 한두 명이 찾아와 배움을 물었다. 나는 스승이 되기가 부끄러웠다. 걱정도 되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갈 방향을 모를 수 있다. 굳은 뜻도 없이 흐릿하게 도움만 청할 수도 있다. 그러면 서로 보탬이 없고 오히려 남의 비웃음만 살 것이다. 그래서 짧게 책 한 권을 썼다. 마음을 세우고, 몸가짐을 다잡고, 부모를 모시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대강 적었다. 이름은 『격몽요결』이라 했다. 배우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마음을 씻고 발 디딜 곳을 세우기를 바란다. 그래서 바로 오늘부터 공부에 힘쓰게 하려는 것이다. 나 또한 오랫동안 옛 버릇에 젖어 있던 나를 깨우치고 돌아보려는 것이다. 정축년(1577) , 덕수 이씨 이이가 쓴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제1장 — 뜻을 세우는 일
율곡 이이에게 묻기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반드시 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나는 안 돼」 하며 물러서거나 핑계 대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보통 사람과 성인은 타고난 성품이 같다. 물론 타고난 에는 맑고 흐림, 순수하고 섞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참으로 알고 실천해서 옛날에 물든 나쁜 버릇을 버린다고 해 보자. 그리고 처음 타고난 성품을 되찾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털끝만큼도 보태지 않아도 온갖 착함이 다 갖춰진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라고 어찌 성인이 되겠다고 다짐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맹자는 사람의 성품이 착하다고 말하면서, 꼭 을 들어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요임금,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 맹자가 어찌 우리를 속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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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스스로 힘을 내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사람의 성품은 본래 착하다. 옛날과 지금,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성인은 무엇 때문에 홀로 성인이 되었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홀로 보통 사람이 되었을까? 참으로 뜻이 서지 않고, 아는 것이 밝지 않고, 행동이 꾸준하지 않기 때문이다. 뜻을 세우고, 앎을 밝히고, 행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다. 어찌 다른 데서 찾겠는가?” 은 이렇게 말했다.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된다.” 나도 안연이 순임금을 본받으려 한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사람의 얼굴은 못생긴 것을 예쁘게 바꿀 수 없습니다. 힘은 약한 것을 세게 바꿀 수 없습니다. 키는 작은 것을 크게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정해진 몫이라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과 뜻만은 바꿀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을 슬기로움으로, 못남을 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은 텅 비어 있고 맑게 깨어 있어서, 타고난 기운에 묶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어짊보다 귀한 것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괴로워서 어질고 슬기롭게 되지 않고, 하늘이 준 성품을 망가뜨리겠습니까? 사람이 이런 뜻을 지키고 굳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에 거의 가까워질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보통 사람들은 뜻을 세웠다고 말하면서도 바로 공부에 힘쓰지 않습니다. 머뭇거리며 나중을 기다립니다. 말로만 뜻을 세웠을 뿐, 실제로는 배움을 향한 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뜻이 참으로 배움에 있다고 해 봅시다. 어짊을 행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어서, 하려고 하면 바로 됩니다. 어찌 남에게 구하고, 어찌 뒷날을 기다리겠습니까? 뜻을 세우는 것이 귀한 까닭이 있습니다. 바로 공부를 시작해서, 혹시 못 따라갈까 걱정하듯 생각마다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시 뜻이 참되고 굳지 못해서 흐지부지 세월만 보낸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평생이 다 가도록 무엇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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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 옛 버릇을 고치는 일
율곡 이이에게 묻기
사람이 배움에 뜻을 두어도 씩씩하게 나아가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옛 버릇이 앞을 가로막고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옛 버릇들을 다음에 적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이것들을 아프도록 끊어 내지 않으면, 끝내 배움을 할 터전이 없을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첫째는 마음과 뜻을 게으르게 하고 몸가짐을 흐트러뜨리는 버릇입니다. 편히 쉬는 것만 생각하고, 묶이는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둘째는 늘 움직일 생각만 하고 차분히 있지 못하는 버릇입니다. 이리저리 드나들며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셋째는 남과 같아지기를 좋아하고 달라지기를 싫어하는 버릇입니다. 세상 에 빠져,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가다듬으려 하면 남과 어긋날까 겁냅니다. 넷째는 글솜씨로 세상에 이름을 얻으려는 버릇입니다. 옛 책의 구절을 베껴 겉만 화려하게 꾸밉니다. 다섯째는 글씨 솜씨에 빠지고, 와 술로 날을 보내는 버릇입니다. 한가롭게 지내면서 스스로 멋있고 고상하다고 여깁니다. 여섯째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모아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버릇입니다. 하루 종일 배불리 먹고, 다투어 이기는 일만 합니다. 일곱째는 부자와 높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버릇입니다. 가난하고 낮은 처지를 싫어하고 얕봅니다. 거친 옷과 소박한 밥을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여덟째는 즐기고 좋아하는 욕심을 멈추지 못하는 버릇입니다. 끊지도 누르지도 못합니다. 돈과 이익, 음악과 을 사탕수수처럼 달게 여깁니다. 버릇이 마음을 해치는 것은 대개 이렇습니다. 나머지는 다 적기 어렵습니다. 이런 버릇은 뜻을 굳지 못하게 하고, 행동을 성실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 한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게 합니다. 아침에 후회하고도 저녁에 또 그렇게 하게 합니다. 반드시 씩씩한 뜻을 크게 일으켜야 합니다. 칼 한 번으로 뿌리를 시원하게 잘라 내듯 해야 합니다. 마음 밭을 깨끗이 씻어 털끝만큼의 뿌리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깊이 돌아보는 공부를 더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옛날 물든 때가 조금도 없게 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배움에 나아가는 공부를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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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 몸가짐을 지키는 일
율곡 이이에게 묻기
배우는 사람은 참된 마음으로 도를 향해야 합니다. 세상의 잡다한 일로 뜻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배움의 바탕이 섭니다. 그래서 공자는 “정성과 믿음을 으뜸으로 삼아라”라고 하셨습니다. 는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사람이 정성스럽고 믿음직하지 않으면 모든 일에 알맹이가 없다. 나쁜 일은 하기 쉽고 착한 일은 하기 어렵다. 그래서 반드시 이것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정성과 믿음을 으뜸으로 삼고 씩씩하게 공부해야 이루는 것이 있습니다. 는 「참된 마음 밭과 괴로움을 이겨 내는 공부」라고 했습니다. 이 두 마디가 모든 것을 다 담고 있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늘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야 합니다. 옷과 갓은 바르게 하고, 얼굴빛은 점잖게 해야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바르게 앉아야 합니다. 걸음은 차분하게, 말은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가볍게 하거나 대충 넘겨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몸과 마음을 다잡는 데는 「아홉 가지 몸가짐()」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배움에 나아가 슬기를 키우는 데는 「아홉 가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아홉 가지 몸가짐은 이렇습니다. 첫째, 발은 무겁게 합니다. 가볍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만 어른 앞으로 걸어갈 때는 이 규칙에 매이지 않습니다. 둘째, 손은 공손하게 합니다. 손을 함부로 늘어뜨리지 않습니다. 일이 없으면 두 손을 단정히 모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셋째, 눈은 바르게 합니다. 눈동자를 차분히 하고 바르게 봅니다. 흘겨보거나 곁눈질하지 않습니다. 넷째, 입은 다뭅니다. 말하거나 먹고 마실 때가 아니면 입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섯째, 목소리는 조용하게 합니다. 숨과 기운을 가다듬어 트림이나 기침 같은 잡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여섯째, 머리는 곧게 합니다. 머리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세웁니다. 기울이거나 돌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일곱째, 숨은 고르게 합니다. 코로 쉬는 숨을 고르게 하여 소리가 나지 않게 합니다. 여덟째, 서 있을 때는 덕스럽게 합니다. 가운데 서서 기울지 않아, 점잖고 덕 있는 모습을 지닙니다. 아홉째, 얼굴빛은 씩씩하게 합니다. 얼굴빛을 가다듬어 게으르거나 거만한 기색이 없게 합니다. 아홉 가지 생각은 이렇습니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합니다. 가려진 것 없이 보면 밝아서 못 보는 것이 없습니다. 둘째, 들을 때는 똑똑히 들을 것을 생각합니다. 막힌 것 없이 들으면 못 듣는 것이 없습니다. 셋째, 얼굴빛은 부드럽게 할 것을 생각합니다. 얼굴을 하고 편안하게 하여 화난 기색이 없게 합니다. 넷째, 몸가짐은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합니다. 온몸의 움직임과 모습을 바르고 점잖게 합니다. 다섯째, 말은 정성스럽게 할 것을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도 정성스럽고 믿음직하게 합니다. 여섯째, 일은 조심스럽게 할 것을 생각합니다. 일 한 가지도 공경하고 조심해서 합니다. 일곱째,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볼 것을 생각합니다. 마음에 의심이 생기면 먼저 깨달은 사람에게 가서 자세히 묻습니다. 모르는 채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여덟째, 화가 날 때는 뒤에 올 어려움을 생각합니다. 화가 나면 반드시 누르고, 이치로 자신을 이겨 냅니다. 아홉째, 얻을 것이 보이면 옳은지를 생각합니다. 돈이나 물건 앞에서는 옳음과 이익을 분명히 가립니다. 옳은 것일 때만 가집니다. 늘 이 아홉 가지 몸가짐과 아홉 가지 생각을 마음에 두고 몸을 다잡아야 합니다. 잠시라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또 이것을 앉는 자리 옆에 써 붙여 두고 때때로 보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 이 네 가지가 몸을 닦는 요점입니다. 무엇이 예이고 무엇이 예가 아닌지는 처음 배우는 사람이 가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치를 따져 밝혀야 합니다. 다만 이미 아는 것부터 힘써 행하면, 얻는 것이 절반은 넘을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배움은 날마다 생활하며 일하는 사이에 있습니다. 평소 지낼 때 공손하고, 일할 때 조심스럽고, 사람을 대할 때 정성스럽다면, 그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려는 것일 뿐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옷은 화려하고 비싸게 입지 말아야 합니다. 추위만 막으면 됩니다. 음식은 달고 맛있는 것만 찾지 말아야 합니다. 배고픔만 면하면 됩니다. 사는 곳은 편하고 즐거운 것만 찾지 말아야 합니다. 병이 나지 않을 만하면 됩니다. 하지만 배움의 열매, 바른 마음가짐, 점잖은 몸가짐은 다릅니다. 날마다 힘쓰고 또 힘써야 합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나를 이기는 공부는 날마다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늘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반드시 내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색을 좋아하는가? 이익을 좋아하는가? 이름 날리기를 좋아하는가? 을 좋아하는가? 편하고 한가한 것을 좋아하는가? 잔치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가? 보물과 를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모두 아프도록 끊어야 합니다. 싹과 뿌리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옳은 이치에 있게 됩니다. 그러면 더 이길 「나」가 없어집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은 마음가짐에 가장 해롭습니다. 일이 없으면 바르게 앉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말을 골라 짧고 무겁게 해야 합니다. 말할 때가 된 뒤에 말하면, 말이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이 짧은 사람은 도에 가깝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옛 훌륭한 임금들이 정한 에 맞는 옷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않아야 합니다. 그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임금들의 덕스러운 행동이 아니면 감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평생 마음에 새겨 지켜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배우는 사람은 한결같이 도를 향해야 합니다. 바깥 것에 끌려다녀서는 안 됩니다. 바깥 것 가운데 바르지 않은 것은 아예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바둑, 장기, 같은 놀이를 벌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눈길도 주지 말고 슬그머니 물러나야 합니다. 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자리를 만나면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마을의 큰 모임이 있거나 어른이 억지로 붙잡아 피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자리에 있더라도 모습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맑게 해야 합니다. 바르지 않은 소리와 어지러운 모습이 나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잔치에서 술을 마실 때는 많이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즐겁게 어울릴 만큼에서 멈춰야 합니다. 음식은 알맞게 먹어야 합니다. 입이 원하는 대로 먹다가 몸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말하고 웃는 것은 짧고 무겁게 해야 합니다. 시끄럽게 떠들어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움직이고 멈추는 것은 차분해야 합니다. 거칠고 하게 굴어 점잖은 모습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일이 있을 때는 이치에 맞게 처리해야 합니다. 책을 읽을 때는 정성을 다해 이치를 따져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밖에는 바르게 앉아 마음을 거두어야 합니다. 고요해서 어지러운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서 멍하니 흐려지는 실수가 없게 해야 합니다. 「으로 마음속을 곧게 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어두운 곳에 있을 때도 밝은 곳에 있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도 여럿이 함께 있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이 마음을 맑은 하늘의 밝은 해처럼 만들어, 누구나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옳지 않은 일 하나를 하고 죄 없는 사람 하나를 죽여서 온 세상을 얻을 수 있다 해도, 결코 하지 않겠다. 이런 생각을 늘 가슴에 지녀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경을 지켜 뿌리를 세우고, 이치를 따져 착함을 밝히고, 힘써 행해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평생 해야 할 일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생각에 나쁨이 없다」,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 이 두 구절만으로도 평생 써도 다함이 없습니다. 벽에 걸어 두고 잠깐이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날마다 자주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했나?」, 「배움이 나아가지 않았나?」, 「행동에 힘쓰지 않았나?」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 힘써야 합니다. 부지런히 애써 게으르지 말고,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제4장 — 책 읽는 일
율곡 이이에게 묻기
배우는 사람은 늘 이 마음을 지켜 바깥 것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치를 따지고 착함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마땅히 갈 길이 눈앞에 또렷이 보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에 들어가는 데는 이치를 따지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이치를 따지는 데는 책 읽기가 가장 먼저입니다. 이 마음 쓴 발자취와, 본받고 조심해야 할 착함과 나쁨이 모두 책에 있기 때문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책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반듯하게 앉아야 합니다. 책을 공손히 대해야 합니다.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뜻을 다해, 꼼꼼히 생각하고 푹 젖어 들어야 합니다. 푹 젖어 든다는 것은 익숙하게 읽고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뜻을 깊이 알아야 하고, 구절마다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입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몸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놀게 됩니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먼저 『』을 읽어야 합니다.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고,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가 있습니다. 스승을 높이고 벗과 친하게 지내는 도리도 있습니다. 하나하나 자세히 맛보고 힘써 행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과 『대학혹문』을 읽습니다. 이치를 따지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나를 닦고, 남을 다스리는 도리를 하나하나 참되게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를 읽습니다. 어짊을 찾고, 나를 위해 배우고, 마음의 뿌리를 기르는 공부를 하나하나 꼼꼼히 생각하고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를 읽습니다. 옳음과 이익을 분명히 가리고, 사람의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지키는 가르침을 하나하나 밝게 살피고 넓혀 가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을 읽습니다. 성품과 감정의 덕, 그것을 끝까지 넓혀 가는 공부를 배웁니다. 하늘땅이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라는 신비로움도 배웁니다. 하나하나 깊이 파고들어 얻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을 읽습니다. 마음과 감정이 바른지 그른지, 착함은 칭찬하고 나쁨은 경계하는 뜻을 하나하나 깊이 찾아 느끼고 스스로를 깨우쳐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을 읽습니다. 하늘의 이치에 맞게 알맞은 마디와 모양을 갖춘 예절을 배웁니다. 예식의 규칙과 정해진 크기·횟수도 배웁니다. 하나하나 따져 보아 굳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을 읽습니다. 옛날 이 세상을 다스린 큰 법을 하나하나 요점을 잡고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을 읽습니다. 좋고 나쁜 일, 살고 망하는 일,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 줄고 늘어나는 일의 를 하나하나 살피고 맛보고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다음에는 『』를 읽습니다. 성인은 착함을 권하고 나쁨을 벌했습니다. 칭찬하고 깎아내리고, 누르고 높였습니다. 그 뜻을 말 속에 살짝 숨겨 두었습니다. 그 숨은 말과 깊은 뜻을 하나하나 꼼꼼히 연구하여 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앞의 다섯 책과 다섯 (오서·오경)을 돌려 가며 익숙하게 읽어야 합니다. 쉬지 않고 깨달아서 옳은 이치가 날마다 밝아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 학자들이 지은 책도 틈틈이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어류』 같은 책과 의 여러 글입니다. 그래서 옳은 이치가 늘 마음에 스며 잠시도 끊기지 않게 해야 합니다. 힘이 남으면 역사책도 읽어야 합니다. 옛날과 지금의 일을 두루 알고 세상일의 변화를 깨달아, 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나 바르지 않은 가르침이나 잡스러운 책은 잠시라도 펼쳐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책을 읽을 때는 한 권을 익숙하게 읽어야 합니다. 뜻을 다 깨닫고 막힘없이 통한 뒤에야 다른 책으로 바꿔야 합니다. 많이 읽으려고 욕심내서 바쁘게 이것저것 훑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제5장 — 부모를 섬기는 일
율곡 이이에게 묻기
사람은 누구나 부모께 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런데 효도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경』에 이런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셨네. 그 은혜를 갚으려 해도 넓은 하늘처럼 끝이 없네.」 자식이 태어날 때 목숨과 피와 살은 모두 부모가 주신 것입니다. 숨 쉬는 기운도 부모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남겨 주신 기운입니다. 그래서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느라 얼마나 애쓰셨나」라고 노래했습니다. 부모의 은혜가 어떻습니까? 어찌 감히 내 몸을 내 것이라 여겨 부모께 효도를 다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늘 이 마음을 지닌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우러날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부모를 섬기는 사람은 일 하나, 행동 하나도 제멋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여쭈어 허락을 받은 뒤에 해야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자세히 말씀드려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신 뒤에 해야 합니다. 끝내 허락하지 않으셔도 바로 내 뜻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날마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합니다.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띠를 맵니다. 그리고 부모님 주무시는 방에 갑니다. 부드러운 얼굴과 따뜻한 목소리로 춥지 않으신지, 덥지 않으신지, 잘 주무셨는지 여쭙니다. 저녁에는 잠자리를 펴 드리고, 따뜻한지 서늘한지 살핍니다. 낮에 곁에 있을 때는 늘 기쁜 얼굴과 부드러운 낯빛으로 공손히 대답합니다. 곁에서 모실 때는 정성을 다합니다. 나가고 들어올 때는 반드시 절하고 말씀드립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받기만 하고, 자기 힘으로 부모를 모시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심히 세월만 보내다가는 끝내 정성껏 모실 때가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몸소 집안일을 맡아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의 몫을 다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굳이 맡기지 않으시면, 집안일을 맡지 못하더라도 곁에서 돕습니다. 힘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부모의 입맛에 맞춰 드려야 합니다. 마음속에 늘 부모를 모실 뜻을 둔다면, 맛있는 음식도 반드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연이라는 사람은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 몸에 제대로 된 옷 한 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감탄하여 눈물이 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보통 집안의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사랑이 공경보다 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드시 옛 버릇을 깨끗이 씻고 부모를 정성껏 높여야 합니다. 부모가 앉거나 눕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앉거나 눕지 않습니다. 부모가 손님을 맞는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자기 손님을 맞지 않습니다.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는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부모의 뜻이 옳은 도리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먼저 그 마음을 헤아려 따라야 합니다. 털끝만큼도 어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도리를 해치는 일이라면 말씀드려야 합니다. 부드러운 기운과 기쁜 얼굴, 따뜻한 목소리로 거듭 말씀드립니다. 반드시 들어주시고 따르시게 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부모가 아프시면 마음으로 걱정하고 얼굴빛도 어둡게 합니다. 다른 일은 미루고 오직 의원에게 묻고 약을 짓는 데 힘씁니다. 병이 나으면 다시 평소대로 돌아갑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날마다 생활하면서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아야 비로소 효도라 할 수 있습니다. 몸가짐을 조심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고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모두 부모를 잊은 것입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부모를 모실 날이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은 정성과 힘을 다해야 합니다. 시간이 모자랄까 두려워하듯 해야 합니다. 옛 시에 「옛사람은 부모를 모시는 하루를 가장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날을 아낀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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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 장례를 치르는 법
율곡 이이에게 묻기
는 한결같이 주자의 『』를 따라야 합니다. 의심스럽고 분명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예법을 아는 선생님이나 어른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예법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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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의 을 부를 때(), 세상에서는 흔히 어릴 때 부르던 이름을 부릅니다. 이것은 예법이 아닙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라면 이름을 불러도 됩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은 이름을 부르면 안 됩니다. 살아 계실 때 부르던 호칭을 따라야 합니다. 여자는 더욱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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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가 됩니다. 제사 때 읽는 글()은 모두 남편이 아내에게 아뢰는 예법을 따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부모가 막 돌아가시면 아내와 , 며느리와 딸은 모두 머리를 풉니다. 남자는 머리를 풀고, 윗옷 왼쪽 자락을 허리띠에 끼워 올리고, 맨발을 합니다. 시신을 옷으로 싸는 이 끝나면, 남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습니다. 여자는 머리를 땋아 묶습니다. 다른 집의 대를 이으러 간 아들과 이미 시집간 딸은 머리를 풀거나 맨발을 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갓만 벗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시신이 평상에 있고 아직 를 차리기 전에는, 남녀가 시신 곁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때는 남쪽을 윗자리로 삼습니다. 시신의 머리가 있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빈소를 차린 뒤에는 여자는 전처럼 대청 위에 자리를 잡고 남쪽을 윗자리로 합니다. 남자는 아래에 자리를 잡고 북쪽을 윗자리로 합니다. 빈소가 있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가 떠날 때는 다시 남쪽을 윗자리로 삼습니다. 관이 있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때에 따라 자리를 바꾸는 데는 저마다 예법의 뜻이 있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예법을 모릅니다. 온 사람이 위로의 말을 해도 일어나지 않고 엎드려 있기만 합니다. 이것은 예법이 아닙니다. 조문객이 에 절하고 물러나면, 상주는 자기 자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조문객을 향해 두 번 절하고 소리 내어 울어야 합니다. 조문객도 맞절을 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과 머리띠·허리띠는 아프거나 일을 할 때가 아니면 벗지 않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가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부모의 장례에는 상복을 입는 날()에 비로소 죽을 먹습니다. 때 없이 울던 것을 그치는 날()에 비로소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국은 먹지 않고 나물과 과일도 먹지 않습니다. 첫 해 제사()를 지낸 뒤에야 나물과 과일, 국을 먹을 수 있습니다. 예법 책의 규칙이 이렇습니다. 병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이것을 따라야 합니다. 가끔 예법보다 지나쳐서 3년 동안 죽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된 효성이 남달라 억지로 하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다면, 지나쳐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효성이 모자란데 억지로 예법을 넘으려 한다면 다릅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부모를 속이는 일입니다. 꼭 조심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요즘 예법을 안다는 집안에서는 대부분 장사를 지낸 뒤 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옵니다(반혼). 이것은 참으로 바른 예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겉모양만 흉내 내다 보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사는 풍속()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반혼한 뒤에는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 아내, 자식과 함께 지냅니다. 예법의 울타리가 크게 무너졌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사람은 스스로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하나하나 예법을 따라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면, 예법대로 반혼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옛 풍속대로 무덤 곁에서 지내는 것이 옳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부모의 장례에서 상복을 입기 전에는 우는 소리가 입에서 끊이지 않게 합니다. 기운이 다하면 집안의 들이 대신 울게 합니다. 장사 지내기 전에는 우는 때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슬픔이 밀려오면 웁니다. 졸곡 뒤에는 아침저녁 두 번만 웁니다. 예법 책의 대강은 이렇습니다. 하지만 효자의 정성이 지극하다면, 우는 데 어찌 정해진 횟수가 있겠습니까? 장례는 슬픔은 모자라고 예법만 넘치는 것보다, 예법은 모자라도 슬픔이 넘치는 것이 낫습니다. 장례란 슬픔과 공경을 다하는 것일 뿐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정성을 다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부모의 장례에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게 된다.” 돌아가신 분을 보내는 일은 부모를 섬기는 일 가운데 가장 큰 일입니다. 이때 정성을 쓰지 않으면 어디에 쓰겠습니까? 옛날 은 장례를 잘 치렀습니다. 사흘 동안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석 달 동안 느슨해지지 않았습니다. 한 해 동안 슬퍼했고, 3년 동안 걱정했습니다. 이것이 장례를 치르는 본보기입니다. 효성과 정성이 지극한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못 미치는 사람은 애써서 따르면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장례에서 정성과 효성이 모자라 예법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탕은 좋은데 배우지 못한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그는 예법을 지키는 것만 효도인 줄 압니다.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바른길을 잃는 일인 줄은 모릅니다. 그래서 너무 슬퍼하다 몸이 상해 야위고 병이 납니다. 그래도 형편에 맞게 바꿔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끝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몸을 너무 상하게 하여 목숨을 해치는 것을 는 라고 했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상복을 입어야 하는 친척이 돌아가셨을 때, 다른 곳에서 소식을 들으면 자리를 마련하고 웁니다. 로 달려간다면 그 집에 도착해서 상복을 입습니다. 달려가지 못한다면 나흘째에 상복을 입습니다. 자최라는 상복을 입는 사이라면, 상복을 입기 전 사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자리를 마련해 모여서 웁니다. 자최에서 대공으로 한 단계 낮아진 사람도 이렇게 합니다. 가 깊은 스승과 벗이 있습니다. 상복을 입는 사이는 아니지만 정이 두터운 친척도 있습니다. 서로 알고 지내며 아주 가까웠던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날, 길이 멀어 가 보지 못하면 자리를 마련하고 웁니다. 스승은 정과 의리의 깊이에 따라 다르게 합니다. 상복 없이 마음으로 3년 동안 상을 치르기도 합니다(심상). 한 해, 아홉 달, 다섯 달, 석 달로 하기도 합니다. 벗은 아무리 가까워도 석 달을 넘기지 않습니다. 스승을 위해 3년이나 한 해 동안 상을 치르려는데 상가에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아침저녁으로 자리를 마련하고 울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우는 일은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멈춥니다. (율곡이 붙인 주: 정이 아주 깊은 사람은 이 날짜에 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상복을 입는 상을 당한 사람은 달마다 에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 상복을 입고 모여서 웁니다. 스승과 벗은 상복을 입지 않아도 이렇게 합니다. 정해진 달 수가 다 차면, 다음 달 초하루에 자리를 마련합니다. 상복을 입고 모여서 운 뒤 상복을 벗습니다. 그 사이에 슬픔이 북받치면 울어도 좋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대공 이상의 상복을 입는 상에는, 장사 지내기 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다니지 않습니다. 남의 집에 조문하러 가지도 않습니다. 늘 장례를 치르고 예법을 공부하는 것을 일로 삼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제7장 — 제사를 지내는 법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제사는 『가례』에 따라야 합니다. 반드시 을 세워 조상의 신주를 모십니다. 제사에 쓸 밭(제전)을 두고, 제사 그릇을 갖춥니다. 그리고 집안의 맏이()가 이를 맡아 이끕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사당을 맡은 사람은 날마다 아침에 대문 안에서 사당을 뵙고 두 번 절합니다. 맡은 사람이 아니어도 그를 따라 함께 뵙는 것은 괜찮습니다. 밖에 나가거나 들어올 때는 반드시 사당에 알려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물난리나 불이 나거나 도둑이 들면, 먼저 사당부터 구합니다. 신주와 조상이 남긴 책을 옮기고, 다음에 제사 그릇을 옮깁니다. 그런 뒤에 집안 재물을 챙깁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설날, 동지, 초하루, 보름에는 사당에 뵙는 예(참례)를 올립니다. 명절에는 그 철에 나는 음식을 올립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철 제사(시제)에는 나흘 산재, 사흘 치재를 합니다. 돌아가신 날 제사(기제)에는 이틀 산재, 하루 치재를 합니다. 참례에는 하루 동안 몸을 깨끗이 하고 묵습니다. 산재란 상가에 조문하지 않고, 병문안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냄새가 강한 채소를 먹지 않습니다. 술은 마시되 정신이 흐려질 만큼 마시지 않습니다. 궂고 더러운 일에는 모두 끼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궂고 더러운 것을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해 보지 않습니다. 치재란 음악을 듣지 않고 밖에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제사 받으실 분을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분이 계시던 곳, 그분의 웃음과 말씀을 생각합니다. 그분이 즐기시던 것과 좋아하시던 음식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제사 때 그분 모습이 보이는 듯하고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정성이 지극해져 께서 제사를 받으십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제사는 사랑하고 공경하는 정성을 다하는 것이 으뜸일 뿐입니다. 가난하면 집안 형편에 맞춰 합니다. 병이 있으면 몸의 힘을 헤아려 합니다. 돈과 몸의 힘이 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예법의 차례대로 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묘제)와 돌아가신 날의 제사(기제)를 세상에서는 돌아가며 맡아 지냅니다. 이것은 예가 아닙니다. 묘제는 돌아가며 지내도 모두 무덤에서 지내니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기제를 신주에 지내지 않고 종이에 쓴 신주()에 지내는 것은 아주 죄송한 일입니다. 돌아가며 지내는 것을 피할 수 없더라도, 반드시 제사 음식을 갖추어 집 사당에서 지내야 그나마 괜찮습니다. 장례와 제사, 이 두 예법은 자식이 정성을 다하는 자리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는 더 모실 수 없습니다. 장례에 예법을 다하지 않고 제사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평생의 슬픔을 맡길 곳도, 풀 때도 없을 것입니다. 자식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증자는 “돌아가실 때를 정성껏 하고 먼 조상을 기리면, 백성의 덕이 두터워진다”고 했습니다. 자식이라면 깊이 생각해야 할 말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옛 시대의 생각이에요
요즘 세상은 대부분 예법을 몰라서 제사 지내는 방식이 집집마다 다릅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이것을 예법으로 하나로 바로잡지 않으면, 끝내 어지럽고 질서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풍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 예법을 뽑아 뒤에 붙이고, 그림과 풀이도 만들었습니다. 자세히 살피고 본받아 행해야 합니다. 아버지나 형이 원하지 않으시면, 정성껏 사정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제8장 — 집안에서 지내는 법
율곡 이이에게 묻기
집안에서 지낼 때는 예법을 조심히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자식, 집안 사람들을 앞장서서 이끌어야 합니다. 저마다 할 일을 나누어 맡기고, 해낸 결과를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돈 쓰는 규칙을 정해, 들어오는 것을 헤아려 써야 합니다. 집안에 있고 없는 것에 맞추어야 합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옷과 밥, 좋은 일과 궂은 일의 비용을 대 줍니다. 모두 정해진 등급과 정도가 있어, 고르지 않음이 없게 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돈은 줄이고, 스럽고 화려한 것은 막아야 합니다. 늘 조금씩 남겨 두어 뜻밖의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어른이 되는 의식(관례)과 혼인 의식(혼례)은 『가례』에 따라야 합니다. 대충 세상 풍속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형제는 부모가 남겨 주신 몸을 함께 받았습니다. 그러니 나와 한 몸과 같습니다. 형제를 볼 때는 너와 나의 틈이 없어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 입는 것이 있든 없든 모두 함께 나눠야 합니다. 형은 굶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는 추위에 떠는데 형은 따뜻하다고 해 봅시다. 그것은 한 몸에서 팔다리 한쪽은 병들고 한쪽은 튼튼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이 형제끼리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형제가 착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정성을 쌓아 타일러야 합니다. 차근차근 도리로 깨우쳐 스스로 느끼고 깨닫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갑자기 화를 내거나 거슬리는 말을 해서 사이가 나빠져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요즘 학자들은 겉으로는 몸가짐을 점잖게 지키는 듯해도, 속으로는 성실함이 적습니다. 부부 사이의 잠자리에서 욕심을 함부로 부려 점잖음을 잃기 쉽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너무 가까워 버릇없이 굴지 않고 서로 공경하는 경우가 아주 드뭅니다. 이러면서 몸을 닦고 집안을 바로 세우려 한다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남편은 부드러우면서도 옳은 도리로 해야 합니다. 아내는 따르면서도 바른 도리로 받들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아야 집안일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전부터 서로 버릇없이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공경하려 하면 하기 어렵습니다. 아내와 서로 일깨워 옛 버릇을 버리고, 차츰 예법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내가 내 말과 몸가짐이 늘 바른 데서 나오는 것을 본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반드시 차츰 서로 믿고 따를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자식을 낳으면, 조금이라도 철이 들 무렵부터 착한 쪽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어릴 때 가르치지 않고 다 자라면, 잘못이 버릇이 되고 마음이 풀어져 가르치기 아주 어렵습니다. 가르치는 차례는 『소학』을 따라야 합니다. 한 집안에서 예법이 살아 행해진다고 해 봅시다. 그리고 책과 붓과 먹 말고 다른 잡스러운 놀이가 없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자녀들도 마음이 밖으로 달려가 배움을 저버릴 걱정이 없습니다. 형제의 자식도 내 자식과 같습니다. 사랑하고 가르치는 데 고르게 하나로 해야 합니다. 더 아끼고 덜 아끼는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집안의 은 내 수고를 대신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먼저 베풀고 은 나중에 보여야 그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임금이 백성을 대하는 것과 주인이 종을 대하는 것은 이치가 같습니다. 임금이 백성을 아끼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고,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합니다. 주인이 종을 아끼지 않으면 종이 흩어지고, 종이 흩어지면 집안이 망합니다. 형편상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종이 굶거나 추울까 늘 걱정해 옷과 밥을 대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리를 얻게 해야 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먼저 정성껏 가르치고 타일러 고치게 해야 합니다.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야 매를 듭니다. 그때도 주인의 매가 가르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미워해서가 아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을 고치고 얼굴빛을 바꿀 수 있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집안을 다스릴 때는 예법으로 안채와 바깥채를 구분해야 합니다. 종이라도 남녀가 섞여 지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 종은 심부름 시킬 일이 없으면 함부로 안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여자 종은 모두 정해진 남편이 있게 하여, 행실이 어지러워지지 않게 합니다. 행실이 어지러운 일을 그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내보내 따로 살게 합니다. 그래서 집안의 을 더럽히지 않게 합니다. 종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게 해야 합니다. 서로 다투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엄하게 막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집이 가난해 먹고살 길이 없다면, 어려움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도 겨우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큼만 해야 합니다. 재물을 쌓아 넉넉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하찮은 일들을 마음에 담아 두어서도 안 됩니다. 옛날 숨어 살던 사람들 가운데는 짚신을 삼아 먹고산 사람도 있었습니다. 땔나무를 하고 물고기를 잡아 살아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꽂아 두고 을 맨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 마음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처지에서도 편안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넉넉함과 아낌을 계산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마음 닦는 공부에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배우는 사람은 부귀를 가볍게 여기고 가난을 지키는 것을 마음가짐으로 삼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집이 가난하면 가난에 시달려 지켜야 할 것을 잃는 사람이 많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바로 이런 처지에서 힘을 써야 합니다. 옛사람은 “어려울 때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보고, 가난할 때는 그가 가지지 않는 것을 본다”고 했습니다. 공자는 “은 어려워지면 도리를 넘어선다”고 했습니다. 가난에 마음이 흔들려 옳은 일을 못 한다면 어찌 배운다고 하겠습니까? 사양하고, 받고, 가지고, 주는 때에는 반드시 그것이 옳은지 꼼꼼히 생각해야 합니다. 옳으면 가지고, 옳지 않으면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털끝만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친구 사이에는 서로 재물을 나누는 도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보내 주는 것은 다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어렵지 않은데 쌀이나 옷감을 보내오면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 밖에 아는 사람에게서는 까닭이 있는 선물만 받습니다. 까닭이 없으면 받지 않습니다. 까닭이 있는 선물이란 이런 것입니다. 장례에 보내는 돈, 길 떠날 때 주는 , 혼인을 돕는 것, 굶주림과 어려움을 돕는 것입니다. 아주 나쁜 사람이나, 마음속으로 천하고 나쁘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선물은 까닭이 있어도 받는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억지로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맹자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말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을 바라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옳음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중국에서는 고을 들에게 따로 받는 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급한 사정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원님에게는 따로 받는 봉급이 없습니다. 오직 의 곡식으로 날마다 쓰는 데 씁니다. 그러니 그것을 몰래 남에게 주면, 많든 적든 모두 죄가 되어 벌을 받습니다. 심하면 나랏돈을 훔친 죄(장죄)가 되고,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비가 원님의 선물을 받으면 곧 나라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다른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에서 금하는 것부터 물었다고 합니다.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어찌 금하는 것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원님의 선물은 대개 받기 어렵습니다. 관청 창고의 곡식을 몰래 주는 것이라면 받아서는 안 됩니다. 가깝고 먼 사이, 까닭의 있고 없음, 물건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그렇습니다. 다만 정이 두터운 원님이 자기 재물로 급한 처지를 도와준다면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제9장 — 사람을 대하는 법
율곡 이이에게 묻기
사람을 대할 때는 부드럽고 공손하게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두 배 넘게 많은 사람은 아버지처럼 모십니다. 열 살 넘게 많은 사람은 형처럼 모십니다. 다섯 살 넘게 많은 사람에게도 조금 더 공손히 합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학문을 믿고 스스로 잘난 체하는 일입니다. 기세를 앞세워 남을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친구를 고를 때는 반드시 이런 사람을 골라야 합니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바르고 엄하며 곧고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지내며 겸손하게 충고를 받아들여 내 단점을 고쳐 가야 합니다.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며, 알랑거리고 곧지 못한 사람은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마을 사람 가운데 착한 사람과는 반드시 가까이 지내며 정을 나누어야 합니다. 착하지 않은 마을 사람이라도 나쁜 말로 그 부끄러운 행동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를 대할 때 담담하게 하고, 서로 오가지 않으면 됩니다. 전부터 알던 사람이라면 만나서 안부만 묻고 다른 말은 나누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차츰 멀어져서, 원망하거나 화내는 데까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같은 소리는 서로 울리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습니다. 내가 배움에 뜻을 두면, 나는 반드시 배우는 를 찾을 것입니다. 배우는 선비도 반드시 나를 찾을 것입니다. 이름만 배운다고 하면서 집에 잡다한 손님이 많아 시끄럽게 날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가 즐기는 것이 배움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절하고 인사하는 예법은 미리 다 정해 둘 수 없습니다. 대체로 아버지의 가까운 벗에게는 절해야 합니다. 같은 동네에서 나보다 열다섯 살 넘게 많은 분에게는 절해야 합니다. 벼슬이 이면서 나보다 열 살 넘게 많은 분에게도 절해야 합니다. 같은 고을 사람으로 나보다 스무 살 넘게 많은 분에게도 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의 높고 낮음과 자세한 사정은 그때그때 형편에 맞춰야 합니다. 꼭 이 예만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늘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가슴에 지니면 됩니다. 『시경』에 “부드럽고 공손한 사람은 덕의 바탕이다”라고 했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서 나를 살펴야 합니다. 나에게 정말 그런 말을 들을 만한 행동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꾸짖고 잘못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잘못은 아주 작은데 상대가 덧붙여 부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이 지나쳐도, 나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잘못도 깎아 없애 털끝만큼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 본래 잘못이 없는데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라면, 그는 그저 함부로 말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과 어찌 참과 거짓을 다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 터무니없는 말은 바람이 귀를 스치고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나쁜 말을 들을 때,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 힘쓰게 됩니다. 그러니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잘못을 듣고 스스로 변명하며 시끄럽게 떠들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 자신을 잘못 없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잘못은 더 깊어지고 나쁜 말은 더 심해집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나쁜 말을 막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는 “스스로를 닦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더 가르쳐 달라고 하자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배우는 사람이 본받을 만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스승이나 어른을 모실 때는 옳은 이치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물어 배움을 밝혀야 합니다. 마을 어른을 모실 때는 조심하고 공손히 하며,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으시면 공손히 있는 그대로 대답해야 합니다. 벗과 함께 있을 때는 옳은 도리로 서로 갈고닦아야 합니다. 오직 글과 옳은 이치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상의 천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가 잘되고 못된 것, 원님이 어질고 어리석은 것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잘못과 나쁜 행동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있을 때는 묻는 대로 대답하되, 끝내 천하고 사사로운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점잖게 스스로를 다잡더라도 뽐내는 기색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오직 좋은 말로 이끌어 그들이 배움으로 향하게 해야 합니다. 어린 사람들과 있을 때는 효도, , 충성, 믿음을 정성껏 말해 착한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렇게 꾸준히 하면 마을 풍속을 차츰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늘 부드럽고 공손하고 로운 마음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만물을 돕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합니다. 남을 해치고 만물을 해치는 일은 한 가닥도 마음에 남겨서는 안 됩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 반드시 남과 만물을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은 먼저 이익을 탐하는 마음을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짊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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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는 선비는 나랏일, 예의로 찾아뵙는 일,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아니면 관청에 드나들지 말아야 합니다. 고을 원님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도 자주 찾아가 만나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친분도 없는 사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옳지 않은 부탁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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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 세상에 나가 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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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학자들은 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학문이 이루어지면 윗사람이 추천해 썼습니다. 벼슬은 남을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으로 사람을 뽑습니다. 하늘에 닿을 만한 학문과 남보다 뛰어난 행실이 있어도, 과거가 아니면 도를 펼 자리에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식을 가르치고 형은 아우를 북돋울 때, 과거 공부 말고는 다른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선비들의 버릇이 가벼워진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 선비들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집안의 계획 때문에 과거 공부를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실력을 갈고닦으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붙고 떨어지는 것은 하늘에 맡겨야 합니다. 욕심내어 조급하게 마음을 태우다가 뜻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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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과거 공부 때문에 학문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도 핑계일 뿐, 참된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옛사람들은 부모를 모시려고 몸소 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남의 일을 해 주고 을 받기도 했습니다. 쌀을 등에 지고 나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농사짓고 품 팔고 쌀을 나를 때는 몹시 바쁘고 고생스러웠을 것입니다. 언제 책을 읽었겠습니까? 그들은 부모를 위해 고생을 견뎌 자식의 몫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힘으로 글을 배웠습니다. 그래도 덕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요즘 선비들은 옛사람처럼 부모를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과거 공부 하나가 부모가 바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 공부를 피할 수 없다고 해 봅시다. 과거 공부는 과 다르지만, 이것도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일입니다. 농사짓고 품 팔고 쌀을 나르는 것보다 백 배도 넘게 편합니다. 게다가 남는 힘으로 성리학 책도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다만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붙고 떨어지는 일에 흔들립니다. 그래서 마음이 늘 조급하고 다투게 됩니다. 이것은 오히려 몸으로 고생하면서도 마음을 해치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그래서 옛 어진 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부가 방해받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뜻을 빼앗기는 것만 걱정하라.” 그 일을 하면서도 지킬 것을 잃지 않는다면, 과거 공부와 성리학은 함께 해도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말로는 과거 공부를 한다면서 실제로는 힘을 들이지 않습니다. 말로는 성리학을 한다면서 실제로는 손도 대지 않습니다. 과거 공부를 안 한다고 꾸짖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성리학에 뜻을 두어서 이런 작은 일에 붙들려 있을 수 없다.” 성리학을 안 한다고 꾸짖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과거 공부에 붙들려서 참된 공부에 힘쓸 수 없다.” 이렇게 양쪽 핑계를 다 대며 흐리멍덩하게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다 마침내 과거 공부도 성리학도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늙은 뒤에 후회한들 어찌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아,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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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벼슬하기 전에는 벼슬하는 것만 급하게 여깁니다. 벼슬을 얻은 뒤에는 그것을 잃을까 걱정합니다. 이렇게 빠져 묻혀서 본래 마음을 잃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도를 펴는 것을 으뜸으로 삼아야 합니다. 도를 펼 수 없다면 물러나는 것이 옳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봉급을 바라고 벼슬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조정의 중요한 자리를 사양하고 지방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굶주림과 추위만 면해야 합니다. 봉급을 바라는 벼슬이라도 깨끗하고 부지런하게 나랏일을 하며 맡은 일을 다해야 합니다. 일을 게을리하면서 밥만 축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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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예법을 간추린 글(제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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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그림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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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적힌 이름들) 증조할아버지·증조할머니,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어머니의 자리. 향 피우는 상, 가운데 문 세 곳. 을 놓는 판, 향로 놓는 탁자, 술 주전자, 잔과 받침, 술 탁자, 향 피우는 상. 서쪽 계단, 동쪽 계단. 수건과 수건걸이, 대야와 대야 받침. 여러 고모, 큰어머니·작은어머니들, 여러 손위 누이, 형의 아내들은 차례대로 사이사이에 선다. 아래도 같다. 여러 손아래 누이, 아우의 아내, 맏며느리, 여러 딸, 아들들의 아내, 맏손자며느리, 여러 손녀, 손자며느리들, 안에서 일을 돕는 사람들. 여러 큰아버지·작은아버지, 여러 형과 아우, 주인, , 맏아들, 여러 아들, 맏손자, 여러 손자, 밖에서 일을 돕는 사람들. (책을 엮은 사람의 메모) 「예고」의 「고」 자는 원본에도 「고」 자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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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지내는 철 제사 그림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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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적힌 이름들) 증조할아버지·증조할머니 자리와 그릇. 할아버지·할머니 자리와 모사 그릇. 향 피우는 상과 모사 그릇. 제사 고기를 받는 자리. 아버지·어머니 자리와 모사 그릇. 축문 판 탁자, 신주 함 탁자. 주부와 돕는 사람, 주인과 돕는 사람. 맑은 물(), 술, 제사 고기 받는 접시, 잔과 받침, 술 주전자 탁자, 선반. 서쪽 계단, 동쪽 계단, 수건, 수건걸이, 대야, 대야 받침. 차례대로 서는 것은 사당의 예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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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 제사 음식을 차리는 그림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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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힌 이름들) 아버지 자리와 어머니 자리에 저마다 이렇게 차린다. 초간장, 나물, 국, 잔과 받침, 밥, 숟가락·젓가락 접시. 떡, 생선, 구이(적), 고기, 국수. 탕 다섯 그릇. 김치, 젓갈, 간장, 익힌 나물, . 과일 다섯 접시. 돌아가신 날 제사와 무덤 제사에는 과일 세 가지와 탕 세 가지를 갖춘다. (책을 엮은 사람의 메모) 아버지 자리의 「포」는 원본에 「」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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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고 들어올 때의 예법(출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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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고 들어올 때는 반드시 사당에 알려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 나갈 때는 대문 안에 들어가 사당을 바라보며 인사하고 갑니다. 돌아와서도 그렇게 합니다. 하룻밤 자고 올 때는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합니다. 돌아와서도 그렇게 합니다. 열흘 넘게 먼 곳에 갈 때는 가운데 문을 열고 두 번 절합니다. 그리고 에 올라 향을 피우고 이렇게 아룁니다. 「아무개가 어디로 가게 되어 감히 아룁니다.」 다시 두 번 절하고 갑니다. 돌아와서도 그렇게 하되, 「아무개가 오늘 어디에서 돌아와 감히 뵙습니다」라고 아룁니다. 따로 사는 아들들은 가까운 곳에 나갈 때는 굳이 절하고 아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먼 곳에 갈 때는 반드시 사당에 가서 위와 같이 절하고 아뢰어야 합니다. 다만 가운데 문은 열지 않습니다. 주인 말고 다른 사람이 절하고 아뢸 때는 모두 가운데 문을 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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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의 동쪽 계단을 「조계」라고 합니다. 오직 제사를 맡은 주인만 이 계단으로 오르내립니다. 주인의 아내인 주부와 다른 사람들은 나이 많은 어른이라도 반드시 서쪽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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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 뵙는 예법(참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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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동지, 초하루, 보름에는 사당에 뵙는 예를 올립니다. 하루 전에 청소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그곳에서 잡니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나 사당 문을 엽니다. 향 피우는 상 앞에 띠풀 묶음과 모래 그릇(모사)을 놓습니다. 신위마다 음식을 차립니다. 포와 과일은 형편대로 하고, 떡을 차려도 좋습니다. 설날과 동지에는 음식 몇 가지를 더 차립니다. 동지에는 팥죽을 더합니다. 동지에 철 제사를 지낸다면 참례는 하지 않습니다. 주인과 모든 사람은 제사 옷을 갖추어 입습니다. 단령을 입거나 붉은 직령을 입어도 좋습니다. 문으로 들어가 자리에 섭니다. 주인은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은 뒤 올라가 신주 함을 엽니다. 함을 열 때는 반드시 먼저 엎드렸다 일어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등 남자 조상의 신주를 받들어 함 앞에 모십니다. 주부도 손을 씻고 닦은 뒤 올라갑니다. 할머니, 어머니 등 여자 조상의 신주를 받들어 그 동쪽에 모십니다. 곁들여 모시는 신주(부제)가 있으면 앞과 같이 나누어 모십니다. 곁들여 모시는 분이 이 낮으면, 맏아들과 맏며느리나 맏딸에게 나누어 모시게 합니다. 이것을 마치면 주부가 먼저 내려옵니다. 주인은 향 탁자 앞에 나아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한 뒤 조금 물러섭니다. 일을 돕는 사람 하나가 술 주전자를 들고 주인 오른쪽에 섭니다. 또 하나는 잔과 받침을 들고 주인 왼쪽에 섭니다. 주인이 꿇어앉으면 돕는 사람들도 모두 꿇어앉습니다. 주인이 주전자를 받아 잔에 술을 따르고 주전자를 돌려줍니다. 잔과 받침을 받아, 왼손으로 받침을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습니다. 그리고 모사 위에 붓습니다. 술을 모사 위에 쏟는 것입니다. 잔과 받침을 돕는 사람에게 건네면 그들은 모두 물러납니다. 주인은 엎드렸다 일어나 조금 물러나 두 번 절합니다. 이렇게 신을 모셔 내립니다(강신).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두 번 절해 신을 뵙습니다(참신). 주인이 올라가 술 주전자를 들고 신위마다 잔에 술을 따릅니다. 미리 신위마다 빈 잔을 놓아 두어야 합니다. 마치면 향 탁자 앞에 서서 두 번 절하고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두 번 절해 신을 보내 드리고 물러납니다. 『가례』를 보면, 보름에는 신주를 모셔 내지 않고 술도 놓지 않으며 차만 놓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풍속에는 차를 쓰는 예가 없습니다. 그러니 보름에는 신주를 모셔 내지 않고 함만 엽니다. 술을 붓지 않고 향만 피워 차이를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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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새 음식을 올리는 예법(천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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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속절)은 정월 대보름(1월 15일), 삼짇날(3월 3일), 단오(5월 5일), 유두(6월 15일)입니다. 칠석(7월 7일), 추석(8월 15일), 중양절(9월 9일), 도 명절입니다. 이때는 그 철 음식을 올립니다. 철 음식이란 약밥, 쑥떡,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즐기는 음식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떡과 과일 몇 가지를 갖춥니다. 예법은 초하루 참례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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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난 물건이 생기면 사당에 올립니다. 반드시 초하루, 보름, 명절에 함께 차려야 합니다. 밥을 지을 수 있는 곡식이라면 음식 몇 가지를 갖추어 함께 차립니다. 예법은 초하루 참례와 같습니다. 이때는 보름이라도 신주를 모셔 내고 술을 붓습니다. 물고기나 과일, 콩이나 밀처럼 밥을 지을 수 없는 것이라면 다릅니다. 새벽에 뵐 때 함을 열고 그것만 따로 올립니다. 그리고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합니다. 따로 올리는 물건은 얻는 대로 바로 올립니다. 굳이 초하루, 보름, 명절을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 난 물건은 사당에 올리기 전에 먼저 먹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고장에 있을 때는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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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아뢰는 예법(고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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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뢸 일이 있으면 아룁니다. 초하루 참례와 같이 합니다. 술을 올리고 두 번 절하기를 마치면, 주인은 향 탁자 남쪽에 섭니다. 축문을 읽는 사람()이 축문 판을 들고 주인 왼쪽에 섭니다. 꿇어앉아 다 읽은 뒤 일어납니다. 주인은 두 번 절하고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온 뒤, 신께 작별 인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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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아뢰는 축문은 증조, 할아버지, 아버지 3대를 함께 축문 판 하나에 씁니다. 자기를 부를 때는 그중 가장 높은 분(증조)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벼슬을 받은 것을 아뢸 때는 이렇게 씁니다. 「어느 해 어느 달 초하루 며칟날, 효성스러운 증손자 아무 벼슬 아무개가 감히 아룁니다. 증조할아버지 아무 벼슬 어른과 증조할머니 아무 칭호 아무 씨께 아룁니다. 할아버지 아무 벼슬 어른과 할머니 아무 칭호 아무 씨께 아룁니다. 아버지 아무 벼슬 어른과 어머니 아무 칭호 아무 씨께 아룁니다. 아무개는 아무 달 아무 날 은혜를 입어 아무 벼슬을 받았습니다. 조상의 가르침을 받들어 봉급과 자리를 얻었습니다. 조상의 덕이 남긴 복 덕분이니, 고맙고 그리운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삼가 술과 과일로 공손히 아룁니다.」 벼슬이 깎이거나 낮아진 것을 아뢸 때는 이렇게 씁니다. 「아무 벼슬로 낮아져 조상의 가르침을 떨어뜨렸으니, 두려워 몸 둘 곳이 없습니다.」 과거에 붙은 것을 아뢸 때는 이렇게 씁니다. 「은혜를 입어 아무 과 아무 등으로 붙어, 조상의 가르침을 받들어 벼슬길에 들게 되었습니다.」 생원이나 진사 시험에 붙은 것을 아뢸 때는 이렇게 씁니다. 「은혜를 입어 생원(또는 진사) 아무 등에 들어, 조상의 가르침을 받들어 나라의 학교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자손의 일이라도 주인이 아룁니다. 그때 축문에는 「곁에 있는 자식 아무개」 또는 「자식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라고 씁니다. 부르는 말은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바꿉니다. 아뢰기를 마치면 그 일의 가 두 계단 사이로 나아가 두 번 절합니다. 당사자가 절할 때 주인은 서쪽을 보고 서 있습니다. 그리고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신께 작별 인사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신주를 옮기거나 다시 모시거나 다른 곳으로 옮길 때는, 아뢰는 제사를 초하루 참례처럼 지냅니다. 사당 안의 물건을 바꾸어 놓거나 차리는 일도 있습니다. 비가 새는 곳을 잠깐 고치되 신주를 움직이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아뢰는 제사를 보름 참례처럼 지냅니다. 아뢰는 글은 그때그때 지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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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맏아들을 낳으면 한 달이 찼을 때 사당에 뵙게 합니다. 위의 예법과 같이 하되 축문은 쓰지 않습니다. 주인은 향 탁자 앞에 서서 이렇게 아룁니다. 「아무개의 아내 아무 씨가 아무 달 아무 날 아들을 낳아 이름을 아무개라 하였기에 감히 뵙게 합니다.」 아뢰기를 마치면 향 탁자의 동남쪽에서 서쪽을 보고 섭니다. 주부가 아이를 안고 나아가 두 계단 사이에 서서 두 번 절합니다. 주인은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와 신께 작별 인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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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지내는 제사의 예법(시제의)
율곡 이이에게 묻기
철 제사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에 지냅니다. 사흘 전에 사당에 아룁니다. 그날 사정이 있으면 날짜를 미루되 사흘을 넘기지 않습니다. 날짜를 미룬 까닭도 사당에 아룁니다. 『가례』를 따라 한 달 전에 철마다 가운데 달의 날을 점쳐 정하기도 합니다. 사정이 일정하지 않아 미리 정할 수도, 점칠 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가운데 달의 정일이나 해일 가운데 골라 정하고, 사흘 전에 사당에 아룁니다. 사당에 아뢰기 전에도 나흘 전부터 몸가짐을 조심해야(산재) 합니다. 사당에 아뢰는 예법은 이렇습니다. 주인과 모든 사람이 사당에 가서 북쪽을 보고 차례대로 섭니다. 초하루·보름 예법처럼 모두 두 번 절합니다. 주인이 올라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합니다. 축관이 축문을 들고 주인 왼쪽에 꿇어앉아 읽습니다. 「효성스러운 증손자 아무개는 아무 달 아무 날, 증조할아버지·할머니,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어머니께 철 제사를 올리려 하여 감히 아룁니다.」 주인이 두 번 절하고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모두 두 번 절하고 물러납니다. 이날부터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마음을 모읍니다(치재). 주인은 남자들을 이끌고 바깥에서, 주부는 여자들을 이끌고 안에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하루 전에 주인은 남자들과 일을 돕는 사람들을 이끌고 정침을 물로 닦고 씁니다. 의자와 탁자를 씻고 닦아 깨끗하게 하는 데 힘씁니다. 증조할아버지·할머니 자리는 대청 서북쪽 벽 아래에 남쪽을 보게 마련합니다. 할아버지는 서쪽, 할머니는 동쪽입니다. 저마다 의자 하나, 탁자 하나를 쓰되 붙여 놓습니다. 탁자가 작으면 두세 개를 붙여도 괜찮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어머니 자리는 차례대로 동쪽에 마련합니다. 모두 증조 자리와 같이 합니다. 대마다 따로 자리를 만들고 서로 붙이지 않습니다. 곁들여 모시는 분(부위)의 자리는 모두 동쪽 벽에 서쪽을 보게 하고, 북쪽을 윗자리로 합니다. 또는 양쪽 벽에 서로 마주 보게 하고, 높은 분이 서쪽에 있게 합니다. 아내 이하는 계단 아래에 자리를 마련합니다. 향 피우는 상은 대청 가운데에 놓고 향로와 을 올립니다. 향로는 서쪽, 향합은 동쪽입니다. 띠풀 묶음과 모래 그릇은 향 피우는 상 앞과 각 자리 앞에 놓습니다. 술 은 동쪽 계단 위에 놓습니다. 그 동쪽에 탁자를 따로 놓고 몇 가지를 올립니다. 술 주전자 하나, 술을 땅에 붓는 잔과 받침 하나, 제사 고기를 받는 접시 하나, 숟가락 하나, 수건 하나입니다. 서쪽 계단 위에 탁자를 놓고 축문 판을 올립니다. 세숫대야와 손 닦는 수건을 둘씩 동쪽 계단 아래 동쪽에 놓습니다. 그중 서쪽 것은 받침대가 있는 것으로 합니다. 받침대가 있는 것은 주인의 가족이 손을 씻는 곳입니다. 없는 것은 일을 돕는 사람들이 손을 씻는 곳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주부는 여자들을 이끌고 제사 그릇을 씻고 솥을 깨끗이 닦습니다. 그리고 제사 음식을 갖춥니다. 신위마다 과일 다섯 가지를 올립니다. 가난해서 다 마련하지 못하면 세 가지도 괜찮습니다. 한 접시(흔히 좌반이라 합니다), 익힌 나물 한 접시, 한 접시를 올립니다. 김치 한 접시, 간장 한 그릇, 초절임 나물 한 접시도 올립니다. 생선과 고기는 한 접시씩 올리는데, 싱싱한 날것을 써야 합니다. 떡 한 접시, 국수 한 그릇, 국 한 그릇, 밥 한 그릇, 탕 다섯 가지를 올립니다. 탕은 생선, 고기, 채소 등으로 형편에 따라 마련합니다. 가난해서 다 못 하면 세 가지만 써도 괜찮습니다. 구이(적)는 세 가지를 올립니다. 간, 고기, 물고기, 꿩 등을 쓰며 반드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사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먹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고양이, 개, 벌레, 쥐가 더럽히지 않게도 해야 합니다. 「신위마다」라고 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마다 한 자리씩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 상에 함께 모시기도 하는데, 이것은 편치 못한 일입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그 이튿날 제사 날에는 닭이 울 때 일어납니다. 주인과 모든 사람은 깨끗한 옷(새로 빤 직령)을 입고 제사 지내는 곳에 가서 손을 씻습니다. 과일 접시를 신위마다 탁자 남쪽 끝에 놓습니다. 그다음 포, 익힌 나물, 간장, 젓갈, 김치 접시를 그 북쪽에 놓습니다. 잔과 받침, 숟가락 접시, 초절임 나물은 탁자 북쪽 끝에 놓습니다. 잔과 받침은 가운데, 숟가락 접시는 서쪽, 초절임 나물은 동쪽입니다. 현주 병(현주는 맑은 물입니다)과 술병을 하나씩 시렁 위에 놓습니다. 현주는 서쪽, 술병은 동쪽입니다. 다 놓으면 주인과 모든 사람은 제사 옷을 갖추어 입습니다. 벼슬이 있는 사람은 사모, 단령, 품대를 갖춥니다. 벼슬이 없는 사람은 단령에 끈 띠를 맵니다. 부인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습니다. 모두 아주 곱고 좋은 옷을 입습니다. 사당 앞에 가서 차례대로 서고 나면, 주인은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아룁니다. “효성스러운 증손자 아무개는 이제 봄 가운데 달을 맞아(여름·가을·겨울에는 그 철을 씁니다) 제사를 올리려 합니다. 증조할아버지 아무 벼슬 어른, 증조할머니 아무 칭호 아무 씨께 올립니다. 할아버지 아무 벼슬 어른, 할머니 아무 칭호 아무 씨께 올립니다. 아버지 아무 벼슬 어른, 어머니 아무 칭호 아무 씨께 올립니다. 곁들여 모시는 분이 있으면 「아무 친척 아무 벼슬 어른, 아무 친척 아무 칭호 아무 씨를 함께 모시려 합니다」라고 합니다. 감히 신주를 모시고 정침으로 나아가 공손히 제사를 올리기를 청합니다.” 아뢰기를 마치면 신주 함을 받들어 일을 돕는 사람에게 들게 합니다. 주인은 앞에서 이끌고, 주부는 뒤를 따르고, 아들과 아우들이 차례로 그 뒤를 따릅니다. 정침에 이르면 서쪽 계단 위 탁자에 모셔 두고, 주인이 신주 함을 엽니다. 신주 함을 열고 신주를 받들 때는 엎드렸다 일어난 뒤에 받듭니다. 할아버지·아버지 등 남자 조상의 신주를 받들어 자리에 모십니다. 주부도 손을 씻고 닦은 뒤 올라가, 할머니·어머니 등 여자 조상의 신주를 그렇게 모십니다. 곁들여 모시는 분이 있으면 아들과 아우들이 받들어 자리에 모십니다. 마치면 모두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철 제사를 사당에서 지낸다면 신주를 받들어 옮기는 순서는 없습니다. 사당 안 신위마다 앞에 그릇과 음식을 위와 같이 차리기만 합니다. 먼저 신을 모셔 내리고(강신), 그다음 신께 인사합니다(참신). 주인과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두 번 절해 인사합니다. 나이 많은 어른이나 늙고 병들어 예법을 하기 어려운 사람은 인사를 마친 뒤 다른 곳에서 쉽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이제 신을 모셔 내립니다(강신). 주인이 올라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한 뒤 조금 물러섭니다. 일을 돕는 사람 하나가 술병을 열고 수건으로 병 주둥이를 닦습니다. 그리고 술을 주전자에 채웁니다. 한 사람은 동쪽 계단 위의 잔과 받침을 들고 주인 왼쪽에 섭니다. 한 사람은 술 주전자를 들고 주인 오른쪽에 섭니다. 주인이 꿇어앉으면 돕는 사람들도 꿇어앉아 잔과 받침을 드립니다. 주인이 받으면, 주전자를 든 사람도 꿇어앉아 잔에 술을 따릅니다. 주인은 왼손으로 받침을, 오른손으로 잔을 잡고 모사 위에 붓습니다(다 쏟아붓는 것입니다). 잔을 돕는 사람에게 주고, 엎드렸다 일어나 두 번 절합니다. 그리고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이제 일을 돕는 사람들이 음식을 올립니다. 주인이 올라가고 주부가 뒤따릅니다. 돕는 사람 하나는 쟁반에 생선과 고기를 받듭니다. 하나는 떡과 국수를, 하나는 국과 밥을 받들고 뒤따라 올라갑니다. 증조 자리 앞에 이르면 주인은 고기구이를 잔 서남쪽에 올립니다. 주부는 국수를 고기 서쪽에 올립니다. 주인은 생선구이를 잔 동남쪽에 올리고, 주부는 떡을 생선 동쪽에 올립니다. 주인은 국을 잔 동쪽에, 주부는 밥을 잔 서쪽에 올립니다. 모든 자리에 이렇게 합니다. 곁들여 모시는 분이 있으면 아들·아우들과 여자들이 나누어 차립니다. 아들과 아우들이 자리마다 탕을 올립니다. 모두 마치면 주인과 모든 사람이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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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첫 잔을 올립니다(). 주인이 올라가 증조 자리 앞으로 갑니다. 일을 돕는 사람 하나가 술 주전자를 들고 그 오른쪽에 섭니다(겨울에는 미리 술을 데워 둡니다). 주인은 증조할아버지의 잔과 받침을 받들고, 자리 앞에서 동쪽을 보고 섭니다. 돕는 사람이 서쪽을 보고 잔에 술을 따릅니다. 주인은 그것을 받들어 제자리에 올립니다. 다음에 증조할머니의 잔과 받침도 그렇게 받들고, 자리 앞에서 북쪽을 보고 섭니다. 돕는 사람 둘이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잔과 받침을 받들고 주인 양옆에 섭니다. 주인이 꿇어앉으면 돕는 사람들도 꿇어앉습니다. 주인은 증조할아버지의 잔을 받아 오른손으로 잡고, 모사 위에 술을 조금 기울여 붓습니다. 잔과 받침을 돕는 사람에게 주어 제자리에 올리게 합니다. 다음에 증조할머니의 잔도 그렇게 합니다. 엎드렸다 일어나 조금 물러섭니다. 돕는 사람이 간 구이(미리 화로에 구워 둔 것)를 올립니다. 형제 가운데 맏이 한 사람이 받들어 잔 남쪽에 올립니다. 축관이 축문 판을 들고 주인 왼쪽에 꿇어앉아 읽습니다.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효성스러운 증손자 아무 벼슬 아무개가 감히 아룁니다. 증조할아버지 아무 벼슬 어른, 증조할머니 아무 칭호 아무 씨께 아룁니다. 철이 바뀌어 봄 가운데 달이 되었습니다(여름·가을·겨울에는 그 철로 바꿉니다). 세월이 갈수록 그리움이 더해 오래 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감히 맑은 술과 여러 음식으로 삼가 한 해의 제사를 올립니다. (곁들여 모시는 분이 있으면 「아무 친척 아무 벼슬 어른, 아무 친척 아무 칭호 아무 씨를 함께 모십니다」라고 합니다.) 부디 받아 드십시오.” 다 읽으면 일어나고, 주인은 두 번 절하고 물러납니다. 다른 자리에도 차례로 나아가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 것을 처음과 같이 합니다. 곁들여 모시는 분이 있으면, 자리마다 축문 읽기를 마친 뒤에 합니다. 둘째·마지막 잔을 올리지 않는 형제와 아들들이 그 곁 자리에 차례로 나아갑니다. 예법대로 술을 올리되 축문은 읽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앞에서는 축관이 「효성스러운 손자 아무개가 감히 할아버지께 아룁니다」라고 합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효성스러운 아들 아무개가 감히 아버지께 아룁니다」라고 합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오래 사모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불승영모)」를 「은혜가 하늘처럼 끝이 없습니다(호천망극)」로 고쳐 씁니다. 마치면 모두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돕는 사람은 다른 그릇에 술과 간 구이를 거두고, 잔을 제자리에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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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둘째 잔을 올립니다(아헌). 주부가 올립니다. 여자 들이 고기구이를 받드는 것은 첫 잔 때와 같습니다. 다만 모사에 술을 붓지 않고 축문도 읽지 않습니다. 주부에게 사정이 있으면 숙부나 형제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분이 합니다. 아들·아우 집사들이 술 올리기를 마치면 술과 구이를 거두고 잔을 제자리에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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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잔을 올립니다(종헌). 형제 가운데 맏이나 맏아들, 또는 가까운 손님이 합니다. 아들과 아우들이 고기구이를 받드는 것은 둘째 잔 때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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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음식을 드시기를 권합니다(유식). 주인이 올라가 술 주전자를 들고 모든 자리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향 피우는 상 동남쪽에 섭니다. 주부가 올라가 숟가락을 밥 가운데 꽂되 손잡이가 서쪽을 향하게 합니다. 젓가락을 바르게 놓고 향 피우는 상 서남쪽에 섭니다. 모두 북쪽을 보고 두 번 절한 뒤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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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축관이 문을 닫습니다. 주인은 문 동쪽에서 서쪽을 보고 서고, 남자들은 그 뒤에 섭니다. 주부는 문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서고, 여자들은 그 뒤에 섭니다. 나이 많은 어른이 계시면 다른 곳에서 잠시 쉬게 합니다. 밥 한 끼 먹을 만한 시간이 지나면, 축관이 세 번 나직이 한숨 같은 소리를 내어 드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문을 엽니다. 주인과 모든 사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다른 곳에서 쉬던 어른들도 다시 자리에 나옵니다. 주인과 주부가 차를 올리는데, 끓인 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조상마다 할아버지 쪽과 할머니 쪽 자리 앞에 나누어 올립니다. 국을 거두고 물러납니다. 곁들여 모시는 분이 있으면 아들·아우들과 여자들이 나누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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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사 음식을 받습니다(수조). 돕는 사람이 향 피우는 상 앞에 자리를 마련합니다. 주인은 그 자리에 나아가 북쪽을 보고 섭니다. 축관이 증조할아버지 자리 앞에 가서 잔과 받침을 들고 주인 오른쪽으로 갑니다. 주인이 꿇어앉으면 축관도 꿇어앉습니다. 주인은 잔을 받아 술을 땅에 조금 붓고 맛봅니다. 맛본다는 것은 조금 마시는 것입니다. 축관은 숟가락과 접시를 듭니다. 미리 마련한 접시에 자리마다 밥을 조금씩 떠 담습니다. 그것을 들고 주인 왼쪽으로 가서, 주인에게 복을 비는 말을 전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축관에게 명하셨다. 효성스러운 손자 너에게 많은 복을 이어 주라고 하셨다. 효성스러운 손자 너에게 복이 오게 하셨다. 너로 하여금 하늘에서 을 받게 하고, 밭에서 농사가 잘되게 하셨다. 오래 살게 하고, 대대로 끊임없이 이어지게 하셨다.” 주인은 잔을 자리 앞에 놓고 엎드렸다 일어나 두 번 절합니다. 다시 꿇어앉아 밥을 받아 맛봅니다. 그리고 왼쪽 소매에 넣은 뒤 소매를 새끼손가락에 겁니다. 잔을 들어 술을 다 마십니다. 돕는 사람이 오른쪽에서 잔을 받아 주전자 옆에 놓습니다. 왼쪽에서 밥을 받아 역시 그렇게 놓습니다. 주인은 엎드렸다 일어나 동쪽 계단 위로 올라가 서쪽을 보고 섭니다. 축관은 서쪽 계단 위로 올라가 동쪽을 보고 서서, 예가 잘 이루어졌다고 알립니다(이성). 축관이 내려와 제자리에 서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두 번 절합니다. 주인은 절하지 않고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돕는 사람들이 올라가 모든 자리의 밥그릇 뚜껑을 덮고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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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을 보내 드립니다(사신). 주인과 모든 사람이 두 번 절합니다. 늙고 병들어 다른 곳에서 쉬던 사람들도, 제사 음식을 받은 뒤에 들어와 함께 신을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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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인과 주부가 올라가 저마다 신주를 받들어 함에 넣습니다. 신주를 함에 넣을 때는 모든 자리 앞에서 엎드렸다 일어납니다. 그리고 신주를 받들고 사당으로 돌아갑니다. 올 때의 예법과 같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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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사 음식을 거두어 보통 그릇에 옮겨 담습니다. 제사 그릇은 씻어서 넣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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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준). 음식을 나누어 친척과 친구 집에 보냅니다. 친척과 손님, 집안의 아들과 아우들을 모아 차례대로 앉습니다. 술과 안주를 서로 권하며 먹고 마신 뒤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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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할 때 남자가 두 번 절하면 여자는 네 번 절합니다. 이것을 협배라고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이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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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살펴보니, 주자는 집에 계실 때 땅의 신() 제사를 지냈습니다. 네 철과 한 해 끝에 모두 토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금 네 철 제사를 다 갖추어 하지는 못하더라도, 봄과 겨울 철 제사 때 따로 한 몫의 음식을 마련합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놓지 않습니다. 집 사당의 제사를 마친 뒤 토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알맞을 듯합니다. 신을 모셔 내리고, 인사하고, 음식을 올리고, 첫 잔을 올리는 것은 모두 집 사당의 예법과 같습니다. 그 축문은 이렇습니다.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아무 벼슬 아무개가 감히 땅의 신께 아룁니다. 이 봄 가운데 달을 맞아 한 해 농사일이 시작되려 합니다. 이때 제사를 올리니 감히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술과 안주는 보잘것없지만 정성을 바칩니다. 부디 신께서 굽어살피시어 이 집을 길이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받아 드십시오.” 겨울 제사에는 이렇게 고쳐 씁니다. “이 겨울 가운데 달을 맞아 한 해 농사일이 끝났음을 아룁니다.” 그 뒤는 모두 같습니다. 둘째 잔과 마지막 잔을 올립니다. 음식 권하기와 차 올리기는 하지 않습니다. 신을 보내 드린 뒤에 거둡니다. 토신 제사를 지내는 곳은 집 북쪽 뜰 안의 깨끗한 곳이 좋습니다. 땅을 쓸고 을 쌓아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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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의 예법(기제의)
율곡 이이에게 묻기
돌아가신 날 제사(기제)에는 이틀 동안 몸가짐을 조심하고 하루 동안 마음을 모읍니다. 제사 받으실 한 분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가례』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 가운데 한 분만 제사 지낸다고 했습니다. 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셔 제사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릇을 놓고 음식을 차리는 것은 철 제사와 같습니다. 다만 과일과 탕은 세 가지를 넘지 않게 하여 조금 차이를 두고 간소하게 합니다. 음식은 한 분 몫만 마련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시면 두 분 몫을 마련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그 이튿날 날이 밝을 무렵 일찍 일어나, 채소와 과일, 술과 음식을 차립니다. 철 제사와 같이 합니다. 날이 밝으면 주인과 모든 사람이 옷을 갈아입습니다. 부모의 제삿날이면 이렇게 입습니다. 벼슬이 있는 사람은 희고 검은 빛이 섞인 모자(고모)나 옅은 검은 삼베 모자(참포모)를 씁니다. 둘 다 끈을 늘어뜨린 것입니다. 을 입고, 흰 베로 싼 를 맵니다. 벼슬이 없는 사람은 희고 검은 빛이 섞인 갓이나 옅은 검은 갓을 씁니다. 옥색 단령을 입고 흰 띠를 맵니다. 신발은 모두 흰 가죽신을 신습니다. 여자는 희고 검은 빛이 섞인 덧옷(피)에 흰 저고리와 흰 치마를 입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 이상 조상의 제삿날이면 이렇게 입습니다. 벼슬이 있는 사람은 검은 비단 모자(오사모)를 쓰고 옥색 단령을 입고, 흰 베로 싼 각대를 맵니다. 벼슬이 없는 사람은 검은 갓을 쓰고 옥색 단령을 입고 흰 띠를 맵니다. 여자는 검은 덧옷에 흰 저고리와 옥색 치마를 입습니다. 의 제삿날이면 이렇게 입습니다. 벼슬이 있는 사람은 오사모를 쓰고 옥색 단령을 입고 검은 각대를 맵니다. 벼슬이 없는 사람은 검은 갓을 쓰고 옥색 단령을 입고 검은 띠를 맵니다. 여자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만 피합니다. (○ 「고」는 희고 검은 빛이 섞인 것입니다. 「참」은 옅은 푸르스름한 검은빛으로, 지금의 옥색입니다.) 사당에 가서 차례대로 서서 두 번 절합니다. 주인이 올라가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제사 받으실 분께 아룁니다. “오늘 아무 친척 아무 벼슬 어른(어머니나 여자 조상이면 「아무 친척 아무 칭호 아무 씨」라고 합니다)의 돌아가신 날을 맞았습니다. 감히 신주를 모시고 정침으로 나아가 공손히 그리운 마음을 펴고자 합니다.” 그리고 엎드렸다 일어납니다. 이제 신주 함을 열고 신주를 덮개와 받침째 받들어 모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시면 신주 함을 받들어 돕는 사람에게 줍니다.) 이것을 돕는 사람에게 건네고, 주인이 앞장서 이끕니다. 주부가 그 뒤를 따르고, 아들·아우들과 여자들이 차례로 뒤따릅니다. 정침에 이르면 신주를 받들어 자리에 모십니다. 신께 인사하고, 신을 모셔 내리고, 음식을 올리고, 첫 잔을 올리는 것은 철 제사와 같습니다. 다만 축문은 이렇게 읽습니다. “철이 바뀌어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부모를 함께 모실 때 아버지 제삿날이면 「아무 아버지의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머니 제삿날이면 「아무 어머니의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라고 합니다.) 먼 옛날을 그리워하며 이때를 맞으니, 오래 사모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모의 제삿날이면 「오래 사모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불승영모)」를 고쳐 씁니다. 「은혜가 하늘처럼 넓고 끝이 없습니다(호천망극)」로 씁니다. 곁가지 친척의 제삿날이면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슬프고 서글픈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부모의 제삿날이면 축문을 다 읽고 축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주인과 형제들이 소리 내어 울며 슬픔을 다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둘째 잔, 마지막 잔, 음식 권하기, 문 닫기, 문 열기, 차 올리기, 신 보내기를 합니다. 그리고 신주를 함에 넣어 사당으로 다시 모시고 음식을 거둡니다. 모두 철 제사와 같이 합니다. 다만 제사 음식을 받지(수조) 않고, 나누어 먹지(준)도 않습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이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고, 음악을 듣지 않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지냅니다. 부모의 제삿날에는 흰 갓에 흰 옷과 흰 띠를 합니다. 할아버지·할머니 이상의 제삿날에는 검은 갓에 흰 옷과 흰 띠를 합니다. 곁가지 친척의 제삿날에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만 피합니다. 저녁에는 바깥 에서 잡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의 예법(묘제의)
율곡 이이에게 묻기
무덤 제사는 세상 풍속에 따라 네 명절에 지냅니다. 설날, , 단오, 추석입니다. 이틀 동안 몸가짐을 조심하고, 하루 동안 마음을 모읍니다. 음식은 무덤마다 모신 분의 수에 맞추어 몫을 마련하되 돌아가신 날 제사와 같이 합니다. 그리고 땅의 신에게 올릴 한 몫을 따로 더 마련합니다. 그 이튿날 날이 밝으면 주인과 모든 사람은 검은 관을 쓰고 흰 옷을 입고 검은 띠를 맵니다. 일을 돕는 사람들을 이끌고 무덤에 가서 두 번 절하고 제사를 올립니다. 무덤 둘레 안팎을 세 바퀴 돌며 슬퍼하고 살핍니다. 풀과 가시나무가 있으면 칼과 도끼로 베어 내고 깎아 냅니다. 물을 뿌리고 쓸기를 마치면 제자리로 돌아와 두 번 절합니다. 또 무덤 왼쪽에 땅을 깎아 평평하게 하여, 땅의 신 제사 자리를 만듭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음식을 차리고, 신을 모셔 내리고, 인사하고, 첫 잔을 올립니다. 첫 잔을 올릴 때는 바로 숟가락을 밥 가운데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놓습니다. 집 사당의 제사와 같이 합니다. 다만 축문은 이렇게 읽습니다. “철이 바뀌어 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설날 축문입니다. 한식에는 「비와 이슬이 이미 내려 젖었습니다」라고 합니다. 단오에는 「풀과 나무가 이미 무성해졌습니다」라고 합니다. 추석에는 「흰 이슬이 이미 내렸습니다」라고 합니다.) 무덤을 우러러보고 쓸며 그리운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둘째 잔과 마지막 잔을 올립니다. 마지막 잔을 마친 뒤에는 국을 물리고 을 올립니다. 그다음 신을 보내 드리고 음식을 거둡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이어서 땅의 신(토신)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음식을 차리고, 신을 모셔 내리고, 인사하고, 첫 잔을 올리는 것은 위의 예법과 같습니다. 다만 축문은 이렇게 읽습니다. “아무 벼슬 아무개는 감히 땅의 신께 아룁니다. 아무개는 아무 친척 아무 벼슬 어른의 무덤에서 공손히 한 해의 제사를 올리려 합니다. 때마다 지켜 주시는 것은 참으로 신의 은혜 덕분입니다. 감히 술과 음식을 올려 공손히 제사를 드리니 받아 드십시오.” 둘째 잔과 마지막 잔을 올리고, 신을 보내 드린 뒤, 상을 거두고 물러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삼가 『가례』를 살펴보니, 무덤 제사는 3월에 날을 골라 지냅니다. 한 해에 한 번 지낼 뿐입니다. 지금 풍속에서는 네 명절마다 무덤 제사를 지냅니다. 풍속을 따라 정성을 두텁게 하는 것이니 괜찮습니다. 다만 무덤 제사를 네 철마다 지내면 집 사당 제사와 등급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도 편치 못한 듯합니다. 알맞게 한 예법을 찾는다면 이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한식과 추석 두 명절에는 음식을 넉넉히 갖추고 축문을 읽으며 땅의 신에게도 제사를 지냅니다. 한결같이 『가례』의 무덤 제사 예법을 따릅니다. 설날과 단오 두 명절에는 음식을 간단히 차리고 잔을 한 번만 올립니다. 축문도 없고 땅의 신 제사도 지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옛것을 헤아리면서 지금 형편에도 맞아 알맞을 듯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상복을 입고 있는 동안 지내는 제사의 예법
율곡 이이에게 묻기
3년 상을 치르는 동안에는, 옛 예법에 따르면 사당 제사를 그만둡니다. 그러나 주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사람은 상중에 거친 상복을 몸에서 벗지 않았다. 우는 소리가 입에서 끊이지 않았다. 나가고 들고, 지내고, 말하고, 먹는 것이 모두 평소와 아주 달랐다. 그래서 사당 제사를 그만두어도 돌아가신 분과 산 사람 모두에게 서운함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상중에 지내는 것이 옛사람과 다르다. 그런데 이 한 가지마저 그만둔다면 아마 편치 못한 일이 있을 것이다.” 주자의 말이 이러합니다. 그래서 장사 지내기 전에는 예법대로 제사를 그만둡니다. 뒤에는 네 철 명절 제사와 돌아가신 날 제사를 지냅니다. 무덤 제사도 마찬가지로 합니다. 상복이 가벼운 사람에게 지내게 합니다. 주자는 상중에 검은 상복()을 입고 사당에 새 음식을 올렸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세상에서 입는 상복을 묵쇠에 해당한다고 여겨 입고 다닙니다. 상복이 가벼운 사람이 없다면, 세상에서 입는 상복을 입고 제사와 새 음식 올리기를 해도 될 듯합니다. 다만 음식은 평소보다 줄이고, 잔은 한 번만 올립니다. 축문을 읽지 않고, 제사 음식을 받지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 해 상(기년)과 대공 상은 장사 지낸 뒤에는 평소처럼 제사를 지냅니다. 다만 제사 음식은 받지 않습니다. 장사 지내기 전에는 철 제사는 그만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날 제사와 무덤 제사는 대략 위의 예법처럼 지냅니다. 시마 상과 소공 상은 상복을 입기 전에 제사를 그만둡니다. 다섯 가지 상복 어느 것이든 상복을 입기 전에는 돌아가신 날 제사라도 지낼 수 없습니다. 상복을 입은 뒤에는 평소처럼 제사를 지내되, 제사 음식은 받지 않습니다. 상중의 철 제사는 검은 관, 흰 옷, 검은 띠를 하고 지내야 합니다.
율곡 이이에게 묻기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