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용담유사
최제우 (崔濟愚)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이 글을 읽기 전에
동학을 세운 수운 최제우가 1860년대 초에 한글로 지은 노래(가사)를 모은 책입니다. 한울님께 받았다는 도와 그 도를 닦는 마음가짐을 집안 식구와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지었습니다.
용담유사 쉽게읽기
쉽게 풀어 읽는 용담유사
가르침을 주는 노래(교훈가)
사랑하는 아이들아, 공손한 마음으로 이 글을 받아 읽어라. 너희도 의 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사람의 도리를 지키며 살았다. 이제 너희가 스무 살이 되었구나. 우리 집안은 대대로 이름난 집안이다. 너희가 탈 없이 잘 자란 모습을 보니 참 기쁜 일이로다. 큰 탈 없이 너희를 길렀으니 기쁘면서도 아쉽구나. 나도 태어나 지금까지 지낸 일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세상일은 지나고 보면 그뿐이고, 겪고 나면 고생이다. 그 가운데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가슴에 맺힌 생각을 한 번 웃고 털어 버렸다. 내 처지를 돌아보니 벌써 마흔이다. 세상 풍속을 둘러보니 그저 그렇고 그렇다. 아서라, 내 신세는 다른 길이 없구나. 구미산 용담을 다시 찾아가 무거운 다짐을 새로 했다. 아내와 마주 앉아 한숨 쉬며 말했다. “사내가 마흔 해를 하염없이 보냈으니 이제 어찌할 길이 없소. 호와 이름을 새로 짓고, 도를 깨치지 못하면 산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소. 그 뜻이 깊지 않소? 슬프다, 내 신세여.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재산은 못 늘려도 물려받은 일을 힘써 해 가난은 면했을 것이오. 그런데 큰 뜻이나 품은 듯 메마른 세상에서 혼자 한숨만 쉬었소. 그럭저럭 지내다 살림마저 다 없앴으니, 원망해도 소용없고 한탄해도 소용없소. 「아내는 남편을 따른다(여필종부)」는 말도 세상에 있지 않소? 당신도 어릴 때 잘 먹고 잘 입었다는 말을 멈추지 않으면 부부가 어찌 화목하겠소? 포대기 속 아기 앞에서 차마 할 말이오? 이 말 저 말 그만두고 차차 지내 봅시다. 한울님이 사람을 내셨으니 할 일도 주실 것이오. 죽고 사는 것은 한울님께 달렸으니 죽을 걱정은 왜 하오? 한울님은 살 길 없이 사람을 내지 않으시오. 우리는 무슨 팔자라서 이토록 험하고 고달픈가? 부자이고 귀한 사람도 예전엔 가난하고 낮았고, 가난하고 낮은 사람도 앞날엔 부귀해지오. 하늘의 는 돌고 돌아 가면 반드시 오오. 게다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착한 일을 쌓아 왔소. 자손에게 기쁜 일이 어찌 없겠소? 대대로 내려온 착한 마음을 지킵시다. 가난해도 편안히 도를 즐기며 몸을 닦고 집안을 바로 세워 봅시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헐뜯고 원망해도 못 들은 척합시다. 옳지 않은 나쁜 짓은 못 본 척합시다. 어린 자식을 타일러 모든 일을 가르치고 어진 일을 본받읍시다. 그렇게 집안을 잘 꾸려 가면 즐거운 일 아니오?” 그럭저럭 마음 놓고 일고여덟 달을 지냈다. 그러다 꿈인지 잠인지 끝없이 큰 도()를 받았다. 마음을 바로 하고 몸을 닦은 뒤 다시 생각했다. 우리 집안에 기쁜 일이 온 것인가? 좋은 운이 돌아온 것인가? 어찌 이리 고마운가? 지난날과 앞날을 살펴보아도 이런 일은 글에도 말에도 없다. 사람다운 이가 없어서 이런가? 유교와 불교가 수천 년 지나 운이 다해서 이런가? 돌고 도는 새 운수를 내가 어찌 받았을까?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내가 어찌 뽑혔을까? 이런 도를 받은 사람이 없었는데 어찌 내가 받았을까? 잠자다 얻었나, 꿈꾸다 받았나, 알 수가 없다. 사람을 골랐다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을까? 재주를 골랐다면 나보다 못한 재주가 있을까? 의심이 들지만 한울님이 정하셨으니 어쩔 수 없다. 사양하고 싶어도 어디 가서 사양할까? 묻고 싶어도 어디 가서 물을까? 말에도 글에도 없는 법을 어디 가서 본받을까? 말없이 생각하니 새로 지은 호와 같다. 어리석은 듯 앉아 있으니 새 이름과 꼭 맞는다. 어찌할 줄 모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한울님께 여쭈니 한울님이 말씀하셨다. “너도 사람이니 무엇을 알았겠느냐? 모든 사람이 하나로 돌아간다(동귀일체)는 것을 마흔 해 동안 어찌 알았겠느냐? 우습다, 자네라는 사람은. 온갖 일을 무슨 뜻으로 했느냐? 산에 들어간 그달부터 호와 이름을 고친 것은 무슨 뜻이냐? 입춘 글에 복을 빌지 않고, 큰 뜻이라도 품은 듯 「세상 사람들과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겠다(세간중인부동귀)」라고 자신 있게 지어 붙였다. 사람들이 비웃으며 바라볼 때 자네 마음이 어땠느냐? 그 배짱은 어디 두고 세상에 없던 큰 도를 받고서 자랑하느냐? 얼마나 우스운가? 많은 사람 가운데 재주를 가려 무엇 하며, 똑똑하다 둔하다 가려 무엇 하겠느냐? 세상 사람이 저렇다고 한숨 쉰들 무엇 하겠느냐? 사람됨이 남보다 못한 줄을 네가 어찌 알았느냐? 재주가 남보다 못한 줄을 네가 어찌 아느냐?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 이 세상이 생긴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좋은 운수를 둘러 두고 네가 배 속에 생길 때부터 정해 두었다. 어려서부터의 일을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만물의 이치를 밝히는 법과 세상일도 내 조화 속에서 시킨 것이다. 뛰어난 인물이라 불리는 사람은 많지 않겠느냐? 생각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무개는 재주는 있어도 덕이 없다. 물려받은 살림을 다 없애고 구미산 용담정에 들어앉아, 산 밖으로 안 나가겠다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고달픈 세상에 섞여 살려면 아첨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은 굶기면서 체면 지킨다고 가난을 즐긴다니 우습다.」 이 말 저 말 떠돌아도 내가 알지 네가 알겠느냐? 그런 생각 말고 마음을 바로 하여 도를 닦아라. 시킨 대로 차차 가르치면 끝없는 조화는 물론이다. 온 세상에 덕을 펼 것이니 도 닦는 차례는 그것뿐이다. 법을 정하고 글을 지어 가르치면, 도에 들어온 사람은 그날부터 가 된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바뀔 것이니(무위이화), 땅 위의 이 바로 너 아니냐?” 이 말씀을 듣고 나니 속으로 기뻐 자신감이 생겼다. 그날부터 아내와 주고받는 말이 기쁘고 즐거운 말뿐이었다. “당신 들어 보오. 내 몸이 이렇게 되었소. 젊어서 하던 장난이 미친 듯 취한 듯했지만, 헛말 같던 말이 이제 옳게 되었소. 사내로 나서 장난도 하고 헛말도 하는 것 아니오? 당신 마음은 어떻소?” 아내 모습을 보시오. 대답은 않고 무릎을 안고 입맛을 다시며 「세상」 소리만 서너 마디 꺼낸다. 천장만 쳐다보며 말한다. “꿈인가 잠인가. 허허, 세상. 허허, 세상. 다 같은 세상 사람인데 우리 복이 이런 것인가? 한울님도, 한울님도. 이렇게 될 신세에 어찌 그리 고생을 시키셨나요? 오늘에야 말하지만, 미친 듯한 저 양반을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지요.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누구에게 말해요? 집에 오면 큰소리치며 말했지요. 「이 사람아, 이 사람아, 무엇이 고생인가? 내 팔자가 좋아지면 기쁨을 벗 삼아 고생이 즐거움이 될 것이네. 잔말 말고 따라오게. 나는 헛되이 늙어 갈 사람이 아니네.」 나는 어이가 없어 얼굴만 빤히 보며 속으로 한숨지었지요. 그런데 지내 온 것을 보면 다른 까닭이 아니었네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았고, 처자식을 대하는 마음이 지극했어요. 한울님 은덕으로 좋은 운수가 돌아올 줄 나도 알았네요.” 한 번 웃고 털어 버리니 기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럭저럭 지내다 닫힌 문을 활짝 열었다. 찾아오는 사람을 가르치니 감당 못 할 만큼 많았다. 어진 사람들이 모여 한울님의 덕을 밝히고 또 밝혔다. 운과 덕이 크게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저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해 근거 없는 말을 지어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리를 어찌 그렇게 지어냈을까? 온 마을에 헛소문이 떠돌았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아. 내 운수가 좋아지면 네 운수가 딱해진다고 어찌 그렇게 생각하느냐? 딱하다, 경주 마을이여. 사람다운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어진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이 왜 떠돌겠는가? 마을 풍속은 그만두고 우리 집안 운수가 딱하다. 알지도 못하면서 흉한 말을 남보다 갑절이나 한다. 가까운 친척들이 무슨 일로 원수처럼 대하는가? 부모를 죽인 원한이라도 있었던가? 은혜도 원한도 없던 사람까지 휩쓸려 원수가 되었다. 나쁜 짓을 부추기는 일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죄가 없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나도 세상 사람인데 죽을 죄도 없이 모함을 받는가? 새 운수가 아니라면, 죄가 없다 한들 피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 집안은 이름난 집안이 아닌가? 아서라, 내 운수를 믿지만 감당하기도 어렵구나. 남의 눈과 귀를 생각하면, 이대로 있으면 세상과 원님을 깔보는 것 같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끝없이 큰 내 도는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운수 있는 사람이 차근차근 받아서 차근차근 가르칠 것이다. 나 없어도 잘될 것이다. 짐을 꾸려 먼 길을 떠나려 한다. 도를 닦는 사람마다 정성을 드리고 또 드린다. 하지만 아직 덜 자란 너희를 어찌 두고 가겠느냐? 잊을 길이 없어 여러 말로 달래 본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내 처지가 되어 헤아려 보아라. 그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루아침에 헤어지게 되었구나. 먼 길을 가다 보니 생각나는 것은 너희다. 낯선 곳에 외로이 앉아 있으면 문득 생각난다. 너희가 도 닦는 모습이 귀에 쟁쟁하고 눈에 선하다. 어떤 때는 너희가 법도를 어기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고 귀에 들리는 듯하다. 아마 너희는 일마다 법도를 어기고 있을 것이다. 밝고 밝은 이 운수는 원한다고 이렇게 되겠느냐? 바란다고 이렇게 되겠느냐? 아서라, 너희 모습은 안 봐도 보는 듯하다. 부모와 자식은 친하다(부자유친)지만 운수까지 같겠느냐? 형제가 한 핏줄이라지만 운수까지 같겠느냐? 너희도 사람이면 남이 도 닦는 법을 보았을 텐데 어찌 그리 무심하냐? 생각 없는 녀석들아, 남을 본받아 정성껏 공경하고 바른 마음으로 도를 닦아라. 아무튼 내가 이렇게 떠나게 되었다. 한울님 은덕이야 있지만,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법은 둘이다. 하나는 정성이고, 하나는 사람이다. 부모의 가르침을 안 듣고 빈둥대면 짐승과 다를 것 없고 제멋대로 사는 것이다. 우습다, 너희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구나. 부자와 형제 사이라도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정성 있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분명하니, 마음먹고 본받으면 정성과 공경이 어찌 없겠느냐? 안타깝다, 너희가 뛰어난 어진 이가 되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구실을 못 하고 도덕에 못 미치면, 스스로 지은 잘못이라도 나는 한이 될 것이다. 운수는 좋지만, 닦아야 도덕이다. 너희가 무슨 팔자로 애쓰지도 않고 얻겠느냐? 생각 없는 녀석들아, 나를 믿고 그러느냐? 나는 아예 믿지 말고 한울님을 믿어라. 네 몸에 한울님을 모셨는데, 가까운 데서 찾지 않고 먼 데서 찾으려 하느냐? 내가 바라는 것도 한울님만 오롯이 믿는 것이다. 글 모르는 너희는 책은 덮어 두고 도 닦는 데만 힘써도 그것도 도덕이다. 글이든 도덕이든 어찌 헛일이 되겠느냐? 을 정성껏 외우면 만 권 책이 무슨 소용이냐? 마음공부라 했으니 그 뜻을 잊지 마라. 어질고 바른 사람이 될 것이니 도를 이루는 데 못 미치겠느냐? 이렇게 쉬운 도를 스스로 버리겠느냐? 안타깝다, 어찌 그리 무심하냐? 한숨 쉬기도 괴롭다. 요임금, 순임금 같은 성인도 못난 자식을 두었으니 한탄할 것은 없다. 그래도 마음이 답답하다. 막자니 감당하기 어렵고 놔두자니 안타깝다. 애써 지은 이 글을 한 구절씩 잘 살펴라. 헛된 마음 없이 내 가르침을 잘 받아라. 다시 만날 때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면 즐거운 것은 물론이고 우리 집안의 큰 운수다. 이 글을 보고 뉘우쳐서 나를 보듯 도를 닦아라. 부디 이 글을 보고 남들처럼 도를 닦아라. 너희가 게으르다 뒷날 잘못되면 나를 원망하겠지. 이 글을 전했는데 보람이 없으면 너희 신세도 딱해지고, 내 말도 헛말이 되니 부끄러운 일이다. 너희도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라.
“땅 위에 사는 이 바로 너란다.” 이 말씀을 듣고 나니 혼자서도 기쁘고 뿌듯했다. 그래서 그날부터
아내와 주고받는 말이 기쁘고 즐거운 말뿐이었다. “당신 들어 보오. 내 몸이 이렇게 되었소. 젊어서 하던 장난이 미친 듯 취한 듯했지만, 헛말 같던 말이 이제 옳게 되었소. 사내로 나서 장난도 하고 헛말도 하는 것 아니오? 당신 마음은 어떻소?” 아내 모습을 보시오. 대답은 않고 무릎을 안고 입맛을 다시며 「세상」 소리만 서너 마디 꺼낸다. 천장만 쳐다보며 말한다. “꿈인가 잠인가. 허허, 세상. 허허, 세상. 다 같은 세상 사람인데 우리 복이 이런 것인가? 도, 한울님도. 이렇게 될 신세에 어찌 그리 고생을 시키셨나요? 오늘에야 말하지만, 미친 듯한 저 양반을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지요.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누구에게 말해요? 집에 오면 큰소리치며 말했지요. 「이 사람아, 이 사람아, 무엇이 고생인가? 내 팔자가 좋아지면 기쁨을 벗 삼아 고생이 즐거움이 될 것이네. 잔말 말고 따라오게. 나는 헛되이 늙어 갈 사람이 아니네.」 나는 어이가 없어 얼굴만 빤히 보며 속으로 한숨지었지요. 그런데 지내 온 것을 보면 다른 까닭이 아니었네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았고, 을 대하는 마음이 지극했어요. 한울님 은덕으로 좋은 가 돌아올 줄 나도 알았네요.” 한 번 웃고 털어 버리니 기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럭저럭 지내다 닫힌 문을 활짝 열었다. 찾아오는 사람을 가르치니 감당 못 할 만큼 많았다. 어진 사람들이 모여 한울님의 덕을 밝히고 또 밝혔다. 운과 덕이 크게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저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해 근거 없는 말을 지어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리를 어찌 그렇게 지어냈을까? 온 마을에 헛소문이 떠돌았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아. 내 운수가 좋아지면 네 운수가 딱해진다고 어찌 그렇게 생각하느냐? 딱하다, 경주 마을이여. 사람다운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어진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이 왜 떠돌겠는가? 마을 풍속은 그만두고 우리 집안 운수가 딱하다. 알지도 못하면서 흉한 말을 남보다 갑절이나 한다. 가까운 친척들이 무슨 일로 원수처럼 대하는가? 부모를 죽인 원한이라도 있었던가? 은혜도 원한도 없던 사람까지 휩쓸려 원수가 되었다. 나쁜 짓을 부추기는 일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죄가 없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나도 세상 사람인데 죽을 죄도 없이 모함을 받는가? 새 운수가 아니라면, 죄가 없다 한들 피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 집안은 이름난 집안이 아닌가? 아서라, 내 운수를 믿지만 감당하기도 어렵구나. 남의 눈과 귀를 생각하면, 이대로 있으면 세상과 원님을 깔보는 것 같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끝없이 큰 내 도는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운수 있는 사람이 차근차근 받아서 차근차근 가르칠 것이다. 나 없어도 잘될 것이다. 짐을 꾸려 먼 길을 떠나려 한다. 도를 닦는 사람마다 정성을 드리고 또 드린다. 하지만 아직 덜 자란 너희를 어찌 두고 가겠느냐? 잊을 길이 없어 여러 말로 달래 본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내 처지가 되어 헤아려 보아라. 그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루아침에 헤어지게 되었구나. 먼 길을 가다 보니 생각나는 것은 너희다. 낯선 곳에 외로이 앉아 있으면 문득 생각난다. 너희가 도 닦는 모습이 귀에 쟁쟁하고 눈에 선하다. 어떤 때는 너희가 법도를 어기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고 귀에 들리는 듯하다. 아마 너희는 일마다 법도를 어기고 있을 것이다. 밝고 밝은 이 운수는 원한다고 이렇게 되겠느냐? 바란다고 이렇게 되겠느냐? 아서라, 너희 모습은 안 봐도 보는 듯하다. 부모와 자식은 친하다(부자유친)지만 운수까지 같겠느냐? 형제가 한 핏줄이라지만 운수까지 같겠느냐? 너희도 사람이면 남이 도 닦는 법을 보았을 텐데 어찌 그리 무심하냐? 생각 없는 녀석들아, 남을 본받아 정성껏 공경하고 바른 마음으로 도를 닦아라. 아무튼 내가 이렇게 떠나게 되었다. 한울님 은덕이야 있지만,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법은 둘이다. 하나는 정성이고, 하나는 사람이다. 부모의 가르침을 안 듣고 빈둥대면 짐승과 다를 것 없고 제멋대로 사는 것이다. 우습다, 너희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구나. 부자와 형제 사이라도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정성 있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분명하니, 마음먹고 본받으면 정성과 공경이 어찌 없겠느냐? 안타깝다, 너희가 뛰어난 어진 이가 되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구실을 못 하고 도덕에 못 미치면, 스스로 지은 잘못이라도 나는 한이 될 것이다. 운수는 좋지만, 닦아야 도덕이다. 너희가 무슨 팔자로 애쓰지도 않고 얻겠느냐? 생각 없는 녀석들아, 나를 믿고 그러느냐? 나는 아예 믿지 말고 한울님을 믿어라. 네 몸에 한울님을 모셨는데, 가까운 데서 찾지 않고 먼 데서 찾으려 하느냐? 내가 바라는 것도 한울님만 오롯이 믿는 것이다. 글 모르는 너희는 책은 덮어 두고 도 닦는 데만 힘써도 그것도 도덕이다. 글이든 도덕이든 어찌 헛일이 되겠느냐? 을 정성껏 외우면 만 권 책이 무슨 소용이냐? 마음공부라 했으니 그 뜻을 잊지 마라. 어질고 바른 사람이 될 것이니 도를 이루는 데 못 미치겠느냐? 이렇게 쉬운 도를 스스로 버리겠느냐? 안타깝다, 어찌 그리 무심하냐? 한숨 쉬기도 괴롭다. 요임금, 순임금 같은 성인도 못난 자식을 두었으니 한탄할 것은 없다. 그래도 마음이 답답하다. 막자니 감당하기 어렵고 놔두자니 안타깝다. 애써 지은 이 글을 한 구절씩 잘 살펴라. 헛된 마음 없이 내 가르침을 잘 받아라. 다시 만날 때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면 즐거운 것은 물론이고 우리 집안의 큰 운수다. 이 글을 보고 뉘우쳐서 나를 보듯 도를 닦아라. 부디 이 글을 보고 남들처럼 도를 닦아라. 너희가 게으르다 뒷날 잘못되면 나를 원망하겠지. 이 글을 전했는데 보람이 없으면 너희 신세도 딱해지고, 내 말도 헛말이 되니 부끄러운 일이다. 너희도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라.
사랑하는 아이들아, 공손한 마음으로 이 글을 받아 읽어라.
너희도 의 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삼강을 바른 법으로 삼고, 을 지키며 자랐다.
사람의 도리를 지키며 살았다.
이제 너희가 스무 살이 되었구나. 우리 집안은 대대로 이름난 집안이다.
너희가 탈 없이 잘 자란 모습을 보니 참 기쁜 일이로다.
큰 탈 없이 너희를 길렀으니 기쁘면서도 아쉽구나. 나도 태어나 지금까지 지낸 일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세상일은 지나고 보면 그뿐이고, 겪고 나면 고생이다. 그 가운데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가슴에 맺힌 생각을 한 번 웃고 털어 버렸다. 내 처지를 돌아보니 벌써 마흔이다. 세상 풍속을 둘러보니 그저 그렇고 그렇다. 아서라, 내 신세는 다른 길이 없구나. 을 다시 찾아가 무거운 다짐을 새로 했다. 아내와 마주 앉아 한숨 쉬며 말했다. “사내가 마흔 해를 하염없이 보냈으니 이제 어찌할 길이 없소. 와 이름을 새로 짓고, 도를 깨치지 못하면 산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소. 그 뜻이 깊지 않소?
슬프다, 내 신세여.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재산은 못 늘려도 물려받은 일을 힘써 해 가난은 면했을 것이오. 그런데 큰 뜻이나 품은 듯 메마른 세상에서 혼자 한숨만 쉬었소. 그럭저럭 지내다 살림마저 다 없앴으니, 원망해도 소용없고 한탄해도 소용없소. 「아내는 남편을 따른다()」는 말도 세상에 있지 않소? 당신도 어릴 때 잘 먹고 잘 입었다는 말을 멈추지 않으면 부부가 어찌 화목하겠소? 포대기 속 아기 앞에서 차마 할 말이오? 이 말 저 말 그만두고 차차 지내 봅시다. 이 사람을 내셨으니 할 일도 주실 것이오. 죽고 사는 것은 한울님께 달렸으니 죽을 걱정은 왜 하오? 한울님은 살 길 없이 사람을 내지 않으시오. 우리는 무슨 팔자라서 이토록 험하고 고달픈가? 부자이고 귀한 사람도 예전엔 가난하고 낮았고, 가난하고 낮은 사람도 앞날엔 부귀해지오. 하늘의 는 돌고 돌아 가면 반드시 오오.
게다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착한 일을 쌓아 왔소. 자손에게 기쁜 일이 어찌 없겠소? 대대로 내려온 착한 마음을 지킵시다. 가난해도 편안히 도를 즐기며 몸을 닦고 집안을 바로 세워 봅시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헐뜯고 원망해도 못 들은 척합시다. 옳지 않은 나쁜 짓은 못 본 척합시다. 어린 자식을 타일러 모든 일을 가르치고 어진 일을 본받읍시다. 그렇게 집안을 잘 꾸려 가면 즐거운 일 아니오?”
그럭저럭 마음 놓고 일고여덟 달을 지냈다. 그러다 꿈인지 잠인지 끝없이 큰 도()를 받았다. 마음을 바로 하고 몸을 닦은 뒤 다시 생각했다. 우리 집안에 기쁜 일이 온 것인가? 좋은 운이 돌아온 것인가? 어찌 이리 고마운가? 지난날과 앞날을 살펴보아도 이런 일은 글에도 말에도 없다. 사람다운 이가 없어서 이런가? 유교와 불교가 수천 년 지나 운이 다해서 이런가? 돌고 도는 새 를 내가 어찌 받았을까?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내가 어찌 뽑혔을까? 이런 도를 받은 사람이 없었는데 어찌 내가 받았을까? 잠자다 얻었나, 꿈꾸다 받았나, 알 수가 없다. 사람을 골랐다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을까? 재주를 골랐다면 나보다 못한 재주가 있을까? 의심이 들지만 이 정하셨으니 어쩔 수 없다. 사양하고 싶어도 어디 가서 사양할까? 묻고 싶어도 어디 가서 물을까? 말에도 글에도 없는 법을 어디 가서 본받을까? 말없이 생각하니 새로 지은 와 같다. 어리석은 듯 앉아 있으니 새 이름과 꼭 맞는다.
어찌할 줄 모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께 여쭈니 한울님이 말씀하셨다. “너도 사람이니 무엇을 알았겠느냐? 모든 사람이 하나로 돌아간다(동귀일체)는 것을 마흔 해 동안 어찌 알았겠느냐? 우습다, 자네라는 사람은. 온갖 일을 무슨 뜻으로 했느냐? 산에 들어간 그달부터 호와 이름을 고친 것은 무슨 뜻이냐? 입춘 글에 복을 빌지 않고, 큰 뜻이라도 품은 듯 「세상 사람들과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겠다(세간중인부동귀)」라고 자신 있게 지어 붙였다. 사람들이 비웃으며 바라볼 때 자네 마음이 어땠느냐? 그 배짱은 어디 두고 세상에 없던 큰 도를 받고서 자랑하느냐? 얼마나 우스운가? 많은 사람 가운데 재주를 가려 무엇 하며, 똑똑하다 둔하다 가려 무엇 하겠느냐? 세상 사람이 저렇다고 한숨 쉰들 무엇 하겠느냐? 사람됨이 남보다 못한 줄을 네가 어찌 알았느냐? 재주가 남보다 못한 줄을 네가 어찌 아느냐?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 이 세상이 생긴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좋은 를 둘러 두고 네가 배 속에 생길 때부터 정해 두었다. 어려서부터의 일을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만물의 이치를 밝히는 법과 세상일도 내 속에서 시킨 것이다. 뛰어난 인물이라 불리는 사람은 많지 않겠느냐? 생각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무개는 재주는 있어도 덕이 없다. 물려받은 살림을 다 없애고 구미산 용담정에 들어앉아, 산 밖으로 안 나가겠다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고달픈 세상에 섞여 살려면 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은 굶기면서 체면 지킨다고 가난을 즐긴다니 우습다.」 이 말 저 말 떠돌아도 내가 알지 네가 알겠느냐? 그런 생각 말고 마음을 바로 하여 도를 닦아라. 시킨 대로 차차 가르치면 끝없는 조화는 물론이다. 온 세상에 덕을 펼 것이니 도 닦는 차례는 그것뿐이다. 법을 정하고 글을 지어 가르치면, 도에 들어온 사람은 그날부터 가 된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바뀔 것이니(무위이화), 땅 위의 이 바로 너 아니냐?”
이 말씀을 듣고 나니 속으로 기뻐 자신감이 생겼다. 그날부터 아내와 주고받는 말이 기쁘고 즐거운 말뿐이었다. “당신 들어 보오. 내 몸이 이렇게 되었소. 젊어서 하던 장난이 미친 듯 취한 듯했지만, 헛말 같던 말이 이제 옳게 되었소. 사내로 나서 장난도 하고 헛말도 하는 것 아니오? 당신 마음은 어떻소?” 아내 모습을 보시오. 대답은 않고 무릎을 안고 입맛을 다시며 「세상」 소리만 서너 마디 꺼낸다. 천장만 쳐다보며 말한다. “꿈인가 잠인가. 허허, 세상. 허허, 세상. 다 같은 세상 사람인데 우리 복이 이런 것인가? 도, 한울님도. 이렇게 될 신세에 어찌 그리 고생을 시키셨나요? 오늘에야 말하지만, 미친 듯한 저 양반을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지요.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누구에게 말해요? 집에 오면 큰소리치며 말했지요. 「이 사람아, 이 사람아, 무엇이 고생인가? 내 팔자가 좋아지면 기쁨을 벗 삼아 고생이 즐거움이 될 것이네. 잔말 말고 따라오게. 나는 헛되이 늙어 갈 사람이 아니네.」 나는 어이가 없어 얼굴만 빤히 보며 속으로 한숨지었지요. 그런데 지내 온 것을 보면 다른 까닭이 아니었네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았고, 을 대하는 마음이 지극했어요. 한울님 으로 좋은 가 돌아올 줄 나도 알았네요.” 한 번 웃고 털어 버리니 기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럭저럭 지내다 닫힌 문을 활짝 열었다. 찾아오는 사람을 가르치니 감당 못 할 만큼 많았다. 어진 사람들이 모여 한울님의 덕을 밝히고 또 밝혔다. 운과 덕이 크게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저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해 근거 없는 말을 지어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리를 어찌 그렇게 지어냈을까? 온 마을에 헛소문이 떠돌았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아. 내 운수가 좋아지면 네 운수가 딱해진다고 어찌 그렇게 생각하느냐? 딱하다, 경주 마을이여. 사람다운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어진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이 왜 떠돌겠는가? 마을 풍속은 그만두고 우리 집안 운수가 딱하다. 알지도 못하면서 흉한 말을 남보다 갑절이나 한다. 가까운 친척들이 무슨 일로 원수처럼 대하는가? 부모를 죽인 이라도 있었던가? 은혜도 원한도 없던 사람까지 휩쓸려 원수가 되었다. 나쁜 짓을 부추기는 일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죄가 없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나도 세상 사람인데 죽을 죄도 없이 을 받는가? 새 가 아니라면, 죄가 없다 한들 피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 집안은 이름난 집안이 아닌가? 아서라, 내 운수를 믿지만 감당하기도 어렵구나. 남의 눈과 귀를 생각하면, 이대로 있으면 세상과 을 깔보는 것 같다.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끝없이 큰 내 도는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있는 사람이 차근차근 받아서 차근차근 가르칠 것이다. 나 없어도 잘될 것이다. 짐을 꾸려 먼 길을 떠나려 한다. 도를 닦는 사람마다 정성을 드리고 또 드린다. 하지만 아직 덜 자란 너희를 어찌 두고 가겠느냐? 잊을 길이 없어 여러 말로 달래 본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내 처지가 되어 헤아려 보아라. 그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루아침에 헤어지게 되었구나.
먼 길을 가다 보니 생각나는 것은 너희다. 낯선 곳에 외로이 앉아 있으면 문득 생각난다. 너희가 도 닦는 모습이 귀에 쟁쟁하고 눈에 선하다. 어떤 때는 너희가 를 어기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고 귀에 들리는 듯하다. 아마 너희는 일마다 법도를 어기고 있을 것이다. 밝고 밝은 이 는 원한다고 이렇게 되겠느냐? 바란다고 이렇게 되겠느냐? 아서라, 너희 모습은 안 봐도 보는 듯하다. 부모와 자식은 친하다(부자유친)지만 운수까지 같겠느냐? 형제가 한 핏줄이라지만 운수까지 같겠느냐? 너희도 사람이면 남이 도 닦는 법을 보았을 텐데 어찌 그리 무심하냐? 생각 없는 녀석들아, 남을 본받아 정성껏 공경하고 바른 마음으로 도를 닦아라. 아무튼 내가 이렇게 떠나게 되었다. 은덕이야 있지만,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법은 둘이다. 하나는 정성이고, 하나는 사람이다. 부모의 가르침을 안 듣고 빈둥대면 짐승과 다를 것 없고 제멋대로 사는 것이다. 우습다, 너희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구나. 부자와 형제 사이라도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정성 있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분명하니, 마음먹고 본받으면 정성과 공경이 어찌 없겠느냐? 안타깝다, 너희가 뛰어난 어진 이가 되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구실을 못 하고 도덕에 못 미치면, 스스로 지은 잘못이라도 나는 한이 될 것이다. 운수는 좋지만, 닦아야 도덕이다. 너희가 무슨 팔자로 애쓰지도 않고 얻겠느냐? 생각 없는 녀석들아, 나를 믿고 그러느냐? 나는 아예 믿지 말고 한울님을 믿어라. 네 몸에 한울님을 모셨는데, 가까운 데서 찾지 않고 먼 데서 찾으려 하느냐? 내가 바라는 것도 한울님만 오롯이 믿는 것이다. 글 모르는 너희는 책은 덮어 두고 도 닦는 데만 힘써도 그것도 도덕이다. 글이든 도덕이든 어찌 헛일이 되겠느냐? 을 정성껏 외우면 만 권 책이 무슨 소용이냐? 마음공부라 했으니 그 뜻을 잊지 마라. 어질고 바른 사람이 될 것이니 도를 이루는 데 못 미치겠느냐? 이렇게 쉬운 도를 스스로 버리겠느냐? 안타깝다, 어찌 그리 무심하냐? 한숨 쉬기도 괴롭다. 요임금, 순임금 같은 성인도 못난 자식을 두었으니 한탄할 것은 없다. 그래도 마음이 답답하다. 막자니 감당하기 어렵고 놔두자니 안타깝다. 애써 지은 이 글을 한 구절씩 잘 살펴라. 헛된 마음 없이 내 가르침을 잘 받아라. 다시 만날 때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면 즐거운 것은 물론이고 우리 집안의 큰 운수다. 이 글을 보고 뉘우쳐서 나를 보듯 도를 닦아라. 부디 이 글을 보고 남들처럼 도를 닦아라. 너희가 게으르다 뒷날 잘못되면 나를 원망하겠지. 이 글을 전했는데 보람이 없으면 너희 신세도 딱해지고, 내 말도 헛말이 되니 부끄러운 일이다. 너희도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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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 읽는 용담유사
마음을 놓게 하는 노래(안심가)
어질고 착한 우리 집 여인들아, 이 글을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세상 모든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은 께 달렸다네. 더구나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신비롭고 뛰어나다네. 나도 한울님께 목숨과 복을 받아 태어났네. 어려서부터 지낸 일을 헤아려 보니 험한 일을 겹겹이 겪어 고생뿐이었네. 이것도 한울님이 정하신 것이니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런 줄 모르는 은 놀고먹는 귀한 집 젊은이를 부러워하며 말했네. “인가, 사람인가? 같은 하늘 아래 태어난 몸이 어찌 저리 다를까?” 하늘을 우러러 한숨짓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고, 들으니 눈물이 나네. 나도 말했네. “슬픈 마음 품지 말고 내 말 잠깐 들어 보오. 하늘에 계신다는 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가려 대하지 않으시네. 세상 모든 사람이 한울님께 목숨과 복을 받았네. 부자이고 귀한 사람은 높은 벼슬아치가, 가난하고 낮은 사람은 백성이 되었네. 우리도 가난한 사람으로 시골에서 자랐으니 놀고먹는 귀한 집 젊은이를 부러워한들 되겠소? 복은커녕 남의 입에 오를 일이 더 무섭소. 「갑자기 부자가 되고 귀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예부터 전해 오지 않소? 공자님이 말씀하신 「가난해도 편안히 도를 즐긴다(안빈낙도)」가 바로 우리 삶 아니오? 우리라고 고생 끝에 낙이 없겠소? 좋은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올까 더 무섭소. 한탄 말고 지내 봅시다.” 이럭저럭 지내다 보니 어느덧 마흔이네. 마흔 해 인생이 이것뿐인가? 어찌해 볼 수가 없네. , 우리 아버지. 구미산에 지은 정자는 나에게 주려고 지으셨던가? 어찌해 볼 길이 없네. 「한울님은 먹을 것 없이 사람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인가? 곰곰이 생각하니 이것도 한울님이 정하신 일이라네. 한울님이 정하셨으니 따르지 않으면 재앙을 받을까 무섭구나. 무정한 세월이 흘러 일고여덟 달이 지났다. 사월 초닷새, 꿈인가 잠인가, 하늘과 땅이 아득해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천지가 울렸다. 그때 집안사람들 모습을 보시오.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무슨 일로 이러는가? 아이고, 아이고, 사람들아. 약도 쓸 수 없단 말인가? 캄캄한 이 밤중에 누구에게 이 말을 할까?” 놀라 우는 아이들은 구석마다 끼어 있었다. 집안 여인들은 에 차림으로, 엎어지고 자빠지며 종종걸음을 쳤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마라. 하늘의 임금인 상제를 네가 어찌 알겠느냐?” 시골에 묻혀 살던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던가? 새 세상이 열리는 로 나라가 열리는 첫날, 온갖 가르침을 내려 주셨다. 이 세상 모든 나라를 뒤로하고 우리나라 운수를 먼저 챙기셨다. 놀라고 당황해 어쩌지 못하다가 정신이 들었다. 그럭저럭 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는데, “흰 종이를 펴라” 하고 이르셨다. 깜짝 놀라 흰 종이를 펴고 붓을 드니, 처음 보는 모양의 이 종이 위에 또렷했다. 나도 정신이 없어 처자식에게 물었다. “이것이 웬일인가? 저런 부적을 본 적 있나?” 자식이 말했다. “아버님, 이게 웬일이에요? 정신 차리세요. 「흰 종이를 펴고 붓을 드니 부적 모양이 있다」는 말씀은 정신이 흐려서 하신 말씀이에요.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우리 신세가 이게 웬일이에요? 아버님 모습 좀 보세요. 저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와 아들이 마주 앉아 손을 잡고 크게 울었다. 그때 한울님이 말씀하셨다. “생각 없는 사람들아, 의 죽지 않는 약을 아무나 볼 수 있겠느냐? 미련한 사람아, 네가 다시 그려라. 그릇에 넣어 태우고, 찬물 한 그릇을 떠다가 타서 마셔라.” 이 말씀을 듣고 서둘러 한 장 그려 물에 타 마셔 보니 소리도 냄새도 맛도 없었다. 그럭저럭 마신 부적이 수백 장이었다. 일고여덟 달이 지나니 마른 몸이 굵어지고 검던 얼굴이 희어졌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신선의 모습이 바로 나 아닌가?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늙지도 죽지도 않지 않겠는가? 황제였던 진시황도 여산에 묻혀 있다. 한나라 무제가 이슬을 받으려 세운 그릇(승로반)도 웃음거리가 되었다.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영원히 끝없이 가지 않겠는가? 좋구나, 좋구나. 금을 준들 바꾸겠느냐? 은을 준들 바꾸겠느냐? 진시황과 한 무제는 무엇이 없어서 죽었는가? 내가 그때 있었다면 죽지 않는 약을 손에 들고 마음껏 놀렸을 텐데, 늦게 태어나 한이로다.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그것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한 장 달라 두 장 달라 빈정댔다. “저렇게 되면 신선인가?” 속 좁은 사람들이 저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할 줄 어찌 알았던가?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이 부적은 나도 한울님이 시키셔서 그린 것인데, 짐승 같은 너희 몸에 죽지 않는 약이 닿겠느냐? 우습다, 우습다, 너희가 몰래 헐뜯는 것이 우습다. 죄 없는 사람은 나뿐이다. 부끄러울 것 없는 나를 네가 어찌 알겠느냐? 안타깝다, 안타깝다, 너희가 몰래 헐뜯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가 저렇다면, 머지않은 세월에도 돌림병을 바랄 마음은 없다. 뛰어 보고 죽어 보세. 고약한 그 사람은 할 말이 그리 없는지 이라 이름 붙여 온 동네에 떠들었다. “사악하고 요망한 저 사람이 서학에 빠졌구나.”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 말을 옳은 말로 여기고 부풀려 말했다. “용담에 이름난 사람이 나서 범도 되고 용도 되고, 서학에는 용하다.” 여기저기 쑥덕거리는 말을 다 하지 못하겠구나. 거룩한 우리 집 여인들아, 이 글을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이른바 서학 하는 사람 가운데 아무리 봐도 이름난 사람은 없다. 내가 어찌 내 도를 서학이라 이름 붙여 세상에 드러내려 했겠는가? 시골에 묻힌 사람으로서 나도 바라던 일이다. 한울님께 받은 재주로 모든 병을 낫게 하겠지만, 내 도가 드러나면 한울님이 주실 것이다. 주시기만 한다면 이름난 의원 이 다시 와도 내 약을 당하겠느냐? 오래도록 전해질 이름난 사람은 나뿐이다. 가련하다, 가련하다, 우리나라 운수가 가련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몇 해나 되었는가? 이백사십 년이 되지 않았는가? 온 세상에 도는 돌림병 운수는 다시 새 세상이 열린다는 것 아니겠는가? 태평한 세상이 다시 와서 나라와 백성이 모두 편안해지겠지만,
어질고 착한 우리 집 여인들아, 이 글을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세상 모든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은 께 달렸다네. 더구나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신비롭고 뛰어나다네. 나도 한울님께 목숨과 복을 받아 태어났네. 어려서부터 지낸 일을 헤아려 보니 험한 일을 겹겹이 겪어 고생뿐이었네. 이것도 한울님이 정하신 것이니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런 줄 모르는 은 놀고먹는 귀한 집 젊은이를 부러워하며 말했네. “인가, 사람인가? 같은 하늘 아래 태어난 몸이 어찌 저리 다를까?” 하늘을 우러러 한숨짓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고, 들으니 눈물이 나네. 나도 말했네. “슬픈 마음 품지 말고 내 말 잠깐 들어 보오. 하늘에 계신다는 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가려 대하지 않으시네. 세상 모든 사람이 한울님께 목숨과 복을 받았네. 부자이고 귀한 사람은 높은 벼슬아치가, 가난하고 낮은 사람은 백성이 되었네. 우리도 가난한 사람으로 시골에서 자랐으니 놀고먹는 귀한 집 젊은이를 부러워한들 되겠소? 복은커녕 남의 입에 오를 일이 더 무섭소. 「갑자기 부자가 되고 귀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예부터 전해 오지 않소? 공자님이 말씀하신 「가난해도 편안히 도를 즐긴다(안빈낙도)」가 바로 우리 삶 아니오? 우리라고 고생 끝에 낙이 없겠소? 좋은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올까 더 무섭소. 한탄 말고 지내 봅시다.” 이럭저럭 지내다 보니 어느덧 마흔이네. 마흔 해 인생이 이것뿐인가? 어찌해 볼 수가 없네. , 우리 아버지. 구미산에 지은 정자는 나에게 주려고 지으셨던가? 어찌해 볼 길이 없네. 「한울님은 먹을 것 없이 사람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인가? 곰곰이 생각하니 이것도 한울님이 정하신 일이라네. 한울님이 정하셨으니 따르지 않으면 재앙을 받을까 무섭구나. 무정한 세월이 흘러 일고여덟 달이 지났다. 사월 초닷새, 꿈인가 잠인가, 하늘과 땅이 아득해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천지가 울렸다. 그때 집안사람들 모습을 보시오.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무슨 일로 이러는가? 아이고, 아이고, 사람들아. 약도 쓸 수 없단 말인가? 캄캄한 이 밤중에 누구에게 이 말을 할까?” 놀라 우는 아이들은 구석마다 끼어 있었다. 집안 여인들은 에 차림으로, 엎어지고 자빠지며 종종걸음을 쳤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마라. 하늘의 임금인 상제를 네가 어찌 알겠느냐?” 시골에 묻혀 살던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던가? 새 세상이 열리는 로 나라가 열리는 첫날, 온갖 가르침을 내려 주셨다. 이 세상 모든 나라를 뒤로하고 우리나라 운수를 먼저 챙기셨다. 놀라고 당황해 어쩌지 못하다가 정신이 들었다. 그럭저럭 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는데, “흰 종이를 펴라” 하고 이르셨다. 깜짝 놀라 흰 종이를 펴고 붓을 드니, 처음 보는 모양의 이 종이 위에 또렷했다. 나도 정신이 없어 처자식에게 물었다. “이것이 웬일인가? 저런 부적을 본 적 있나?” 자식이 말했다. “아버님, 이게 웬일이에요? 정신 차리세요. 「흰 종이를 펴고 붓을 드니 부적 모양이 있다」는 말씀은 정신이 흐려서 하신 말씀이에요.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우리 신세가 이게 웬일이에요? 아버님 모습 좀 보세요. 저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와 아들이 마주 앉아 손을 잡고 크게 울었다. 그때 한울님이 말씀하셨다. “생각 없는 사람들아, 의 죽지 않는 약을 아무나 볼 수 있겠느냐? 미련한 사람아, 네가 다시 그려라. 그릇에 넣어 태우고, 찬물 한 그릇을 떠다가 타서 마셔라.” 이 말씀을 듣고 서둘러 한 장 그려 물에 타 마셔 보니 소리도 냄새도 맛도 없었다. 그럭저럭 마신 부적이 수백 장이었다. 일고여덟 달이 지나니 마른 몸이 굵어지고 검던 얼굴이 희어졌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신선의 모습이 바로 나 아닌가?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늙지도 죽지도 않지 않겠는가? 황제였던 진시황도 여산에 묻혀 있다. 한나라 무제가 이슬을 받으려 세운 그릇(승로반)도 웃음거리가 되었다.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영원히 끝없이 가지 않겠는가? 좋구나, 좋구나. 금을 준들 바꾸겠느냐? 은을 준들 바꾸겠느냐? 진시황과 한 무제는 무엇이 없어서 죽었는가? 내가 그때 있었다면 죽지 않는 약을 손에 들고 마음껏 놀렸을 텐데, 늦게 태어나 한이로다.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그것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한 장 달라 두 장 달라 빈정댔다. “저렇게 되면 신선인가?” 속 좁은 사람들이 저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할 줄 어찌 알았던가?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이 부적은 나도 한울님이 시키셔서 그린 것인데, 짐승 같은 너희 몸에 죽지 않는 약이 닿겠느냐? 우습다, 우습다, 너희가 몰래 헐뜯는 것이 우습다. 죄 없는 사람은 나뿐이다. 부끄러울 것 없는 나를 네가 어찌 알겠느냐? 안타깝다, 안타깝다, 너희가 몰래 헐뜯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가 저렇다면, 머지않은 세월에도 돌림병을 바랄 마음은 없다. 뛰어 보고 죽어 보세. 고약한 그 사람은 할 말이 그리 없는지 이라 이름 붙여 온 동네에 떠들었다. “사악하고 요망한 저 사람이 서학에 빠졌구나.”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 말을 옳은 말로 여기고 부풀려 말했다. “용담에 이름난 사람이 나서 범도 되고 용도 되고, 서학에는 용하다.” 여기저기 쑥덕거리는 말을 다 하지 못하겠구나. 거룩한 우리 집 여인들아, 이 글을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이른바 서학 하는 사람 가운데 아무리 봐도 이름난 사람은 없다. 내가 어찌 내 도를 서학이라 이름 붙여 세상에 드러내려 했겠는가? 시골에 묻힌 사람으로서 나도 바라던 일이다. 한울님께 받은 재주로 모든 병을 낫게 하겠지만, 내 도가 드러나면 한울님이 주실 것이다. 주시기만 한다면 이름난 의원 이 다시 와도 내 약을 당하겠느냐? 오래도록 전해질 이름난 사람은 나뿐이다. 가련하다, 가련하다, 우리나라 운수가 가련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몇 해나 되었는가? 이백사십 년이 되지 않았는가? 온 세상에 도는 돌림병 운수는 다시 새 세상이 열린다는 것 아니겠는가? 태평한 세상이 다시 와서 나라와 백성이 모두 편안해지겠지만,
어질고 착한 우리 집 여인들아, 이 글을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세상 모든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은 께 달렸다네. 더구나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신비롭고 뛰어나다네. 나도 한울님께 목숨과 복을 받아 태어났네. 어려서부터 지낸 일을 헤아려 보니 험한 일을 겹겹이 겪어 고생뿐이었네. 이것도 한울님이 정하신 것이니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런 줄 모르는 은 놀고먹는 귀한 집 젊은이를 부러워하며 말했네. “인가, 사람인가? 같은 하늘 아래 태어난 몸이 어찌 저리 다를까?” 하늘을 우러러 한숨짓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고, 들으니 눈물이 나네. 나도 말했네. “슬픈 마음 품지 말고 내 말 잠깐 들어 보오. 하늘에 계신다는 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가려 대하지 않으시네. 세상 모든 사람이 한울님께 목숨과 복을 받았네. 부자이고 귀한 사람은 높은 벼슬아치가, 가난하고 낮은 사람은 백성이 되었네. 우리도 가난한 사람으로 시골에서 자랐으니 놀고먹는 귀한 집 젊은이를 부러워한들 되겠소? 복은커녕 남의 입에 오를 일이 더 무섭소. 「갑자기 부자가 되고 귀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예부터 전해 오지 않소? 공자님이 말씀하신 「가난해도 편안히 도를 즐긴다()」가 바로 우리 삶 아니오? 우리라고 고생 끝에 낙이 없겠소? 좋은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올까 더 무섭소. 한탄 말고 지내 봅시다.” 이럭저럭 지내다 보니 어느덧 마흔이네. 마흔 해 인생이 이것뿐인가? 어찌해 볼 수가 없네. , 우리 아버지. 구미산에 지은 정자는 나에게 주려고 지으셨던가? 어찌해 볼 길이 없네. 「한울님은 먹을 것 없이 사람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인가? 곰곰이 생각하니 이것도 한울님이 정하신 일이라네. 한울님이 정하셨으니
따르지 않으면 재앙을 받을까 무섭구나. 무정한 세월이 흘러 일고여덟 달이 지났다. 사월 초닷새, 꿈인가 잠인가, 하늘과 땅이 아득해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천지가 울렸다. 그때 집안사람들 모습을 보시오.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무슨 일로 이러는가? 아이고, 아이고, 사람들아. 약도 쓸 수 없단 말인가? 캄캄한 이 밤중에 누구에게 이 말을 할까?” 놀라 우는 아이들은 구석마다 끼어 있었다. 집안 여인들은 에 차림으로, 엎어지고 자빠지며 종종걸음을 쳤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마라. 하늘의 임금인 를 네가 어찌 알겠느냐?” 시골에 묻혀 살던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던가? 새 세상이 열리는 로 나라가 열리는 첫날, 온갖 가르침을 내려 주셨다. 이 세상 모든 나라를 뒤로하고 우리나라 운수를 먼저 챙기셨다. 놀라고 당황해 어쩌지 못하다가 정신이 들었다. 그럭저럭 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는데, “흰 종이를 펴라” 하고 이르셨다. 깜짝 놀라 흰 종이를 펴고 붓을 드니, 처음 보는 모양의 이 종이 위에 또렷했다. 나도 정신이 없어 에게 물었다. “이것이 웬일인가? 저런 부적을 본 적 있나?” 자식이 말했다. “아버님, 이게 웬일이에요? 정신 차리세요. 「흰 종이를 펴고 붓을 드니 부적 모양이 있다」는 말씀은 정신이 흐려서 하신 말씀이에요.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우리 신세가 이게 웬일이에요? 아버님 모습 좀 보세요. 저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와 아들이 마주 앉아 손을 잡고 크게 울었다. 그때 이 말씀하셨다. “생각 없는 사람들아, 삼신산의 죽지 않는 약을 아무나 볼 수 있겠느냐? 미련한 사람아, 네가 다시 그려라. 그릇에 넣어 태우고, 찬물 한 그릇을 떠다가 타서 마셔라.” 이 말씀을 듣고 서둘러 한 장 그려 물에 타 마셔 보니 소리도 냄새도 맛도 없었다. 그럭저럭 마신 부적이 수백 장이었다. 일고여덟 달이 지나니 마른 몸이 굵어지고 검던 얼굴이 희어졌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의 모습이 바로 나 아닌가?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늙지도 죽지도 않지 않겠는가? 황제였던 진시황도 여산에 묻혀 있다. 한나라 무제가 이슬을 받으려 세운 그릇(승로반)도 웃음거리가 되었다.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영원히 끝없이 가지 않겠는가? 좋구나, 좋구나. 금을 준들 바꾸겠느냐? 은을 준들 바꾸겠느냐? 진시황과 한 무제는 무엇이 없어서 죽었는가? 내가 그때 있었다면 죽지 않는 약을 손에 들고 마음껏 놀렸을 텐데, 늦게 태어나 한이로다.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그것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한 장 달라 두 장 달라 빈정댔다. “저렇게 되면 신선인가?” 속 좁은 사람들이 저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할 줄 어찌 알았던가?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이 부적은 나도 한울님이 시키셔서 그린 것인데, 짐승 같은 너희 몸에 죽지 않는 약이 닿겠느냐? 우습다, 우습다, 너희가 몰래 헐뜯는 것이 우습다. 죄 없는 사람은 나뿐이다. 부끄러울 것 없는 나를 네가 어찌 알겠느냐? 안타깝다, 안타깝다, 너희가 몰래 헐뜯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가 저렇다면, 머지않은 세월에도 돌림병을 바랄 마음은 없다. 뛰어 보고 죽어 보세. 고약한 그 사람은 할 말이 그리 없는지 이라 이름 붙여 온 동네에 떠들었다. “사악하고 요망한 저 사람이 서학에 빠졌구나.”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 말을 옳은 말로 여기고 부풀려 말했다. “용담에 이름난 사람이 나서 범도 되고 용도 되고, 서학에는 용하다.” 여기저기 쑥덕거리는 말을 다 하지 못하겠구나. 거룩한 우리 집 여인들아, 이 글을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이른바 서학 하는 사람 가운데 아무리 봐도 이름난 사람은 없다. 내가 어찌 내 도를 서학이라 이름 붙여 세상에 드러내려 했겠는가? 시골에 묻힌 사람으로서 나도 바라던 일이다. 한울님께 받은 재주로 모든 병을 낫게 하겠지만, 내 도가 드러나면 한울님이 주실 것이다. 주시기만 한다면 이름난 의원 이 다시 와도 내 약을 당하겠느냐? 오래도록 전해질 이름난 사람은 나뿐이다. , 가련하다, 우리나라 운수가 가련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몇 해나 되었는가? 이백사십 년이 되지 않았는가? 온 세상에 도는 돌림병 운수는 다시 새 세상이 열린다는 것 아니겠는가? 태평한 세상이 다시 와서 나라와 백성이 모두 편안해지겠지만,
용담유사 쉽게읽기
쉽게 풀어 읽는 용담유사
용담을 노래함(용담가)
이곳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경주라는 고을이다. 성 이름은 월성이고, 냇물 이름은 문수다. 오랜 옛날 임금이 사는 도읍으로 천 년을 지냈다. 경주는 옛 서울이고, 한양은 새 서울이다. 우리나라가 생긴 뒤에 이런 도읍이 또 있었던가? 물의 기세도 좋고 산의 기운도 좋구나. 금오산은 남쪽 산이고, 구미산은 서쪽 산이다. 봉황대 높은 봉우리에는 봉황이 날아가고 빈 대만 남았다. 높은 탑은 월성을 지키듯 서 있다. 푸른 옥피리와 누런 옥피리는 짝을 이루어 지켜 있다. 천 년을 이어 온 신라는 그 이름을 지켜 내는구나.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이 경치 좋은 곳을 구경하시오. 동쪽 세 산에는 이 살 만하다. 서쪽에는 고을을 지키는 구미산이 있으니, 공자와 맹자 같은 덕이 어찌 없겠는가?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옛 도읍의 강산을 살펴보시오. 「인물은 땅의 기운을 받아 난다」고 하니 큰 인물이 나지 않겠는가? 더구나 구미산은 경주의 으뜸 산이다. 곤륜산 한 줄기는 중국으로 뻗어 갔다. 우리나라 구미산은 「작은 중국()」을 이루었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 강산을 지켜 대대로 물려주어야 하겠다. 기이하고 장하다, 구미산의 기운이여. 거룩한 가암 최씨 집안에 복과 덕을 내린 산이 아니겠는가? 구미산이 생긴 뒤에 우리 조상이 태어나셨다. 산의 덕인가, 물의 덕인가, 나라에 충성한 신하들이 났으니 장하다. , 가련하다, 우리 아버지가 가련하다. 구미산 용담의 좋은 자리에서 도덕과 글을 닦았다. 산의 덕, 물의 덕은 알지만 벼슬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는 못하셨다. 구미산 아래 정자 하나를 용담이라 이름 지었다. 벼슬 없는 시골 선비로 뒷세상에 전해진단 말인가? 가련하다, 가련하다, 우리 집안 가 가련하다. 나도 세상에 태어난 뒤로 부모께 죄를 짓지 않았는가? 불효를 면하지 못하니, 세월이 갈수록 원통하고 답답한 마음만 쌓인다. 때를 만나지 못한 사내로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세상일에 매달려 살다 보니 어느덧 마흔이 되었다. 마흔 해 인생이 이것뿐인가? 어찌할 수가 없다. 구미산 용담에 찾아오니 들리는 것은 흐르는 물소리다. 솟아 있는 것은 높은 산이다. 왼쪽 오른쪽의 산과 냇물을 둘러본다. 산과 물은 예전과 같고, 풀과 나무는 정을 머금은 듯하다. 불효한 내 마음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까마귀와 까치가 날아들어 놀리는 듯하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우거져 곧고 맑은 마음을 지키는 듯하다. 불효한 내 마음에 슬픔이 절로 난다. 가련하다, 우리 아버지. 남겨 두신 좋은 일이 어찌 없겠는가? 을 불러 달래며 이럭저럭 지냈다. 그러다 하늘의 은혜가 그지없어, 사월 초닷새가 되었다. 그 일을 글로 어찌 다 적고, 말로 어찌 다 하겠는가? 세상에 없던 큰 도를 꿈인 듯 생시인 듯 깨달았다. 장하다, 장하다, 내 운수가 장하구나. 이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이 열린 뒤 오만 년 동안 네가 처음이다. 나도 하늘과 땅이 열린 뒤로 애썼지만 이루지 못하다가 너를 만나 이루었다. 나도 이루고 너도 뜻을 얻었으니 너희 집안의 운수로다.” 이 말씀을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 기쁘고 뿌듯했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큰 도의 운수가 닥친 줄을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 장하다, 장하다, 내 운수가 장하구나. 구미산의 산과 물은 좋은 곳이다. 큰 도를 닦으니 오만 년의 운수로다. 만 대에 하나뿐인 사내로서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구미산과 물의 경치가 좋다. 빼어난 모양으로 생긴 산이 내 운수와 맞았다. 가지마다 잎마다 좋은 경치, 덕을 닦은 사람이 즐기는 곳이 바로 여기 아닌가? 이 세상의 이름난 곳으로 많은 골짜기와 봉우리, 기이한 바위와 돌이 있다. 산마다 이러하다. 세상에 사람이 많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을까?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참 좋구나. 구미산과 물의 풍경도 좋다. 아무리 좋다 해도 내가 아니면 이러하겠는가? 내가 아니면 이런 산수가 우리나라에 어찌 있겠는가? 내가 만약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해도, 이 아름다운 구미 용담은 다시 보기 어렵겠구나. 천만 년이 지나도록 잊지 말자고 다짐해도, 무심한 구미 용담이 평평한 땅이 될까 봐 안타깝구나.
이곳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경주라는 고을이다.
성은 월성이라 부르고, 냇물은 문수라 부른다.
아주 오랜 옛날, 임금이 사는 도읍으로 천 년을 지냈다.
경주는 옛 서울이고, 한양은 새 서울이다.
우리나라가 생긴 뒤로 임금이 살던 이런 도읍이 또 있었을까?
물줄기도 힘차고 산의 기운도 참 좋구나.
남쪽에는 금오산이 있고, 서쪽에는 구미산이 있다.
봉황대 높은 봉우리에서 봉황은 날아가 버리고 빈 터만 남았다.
높은 탑은 월성을 지키려는 듯 우뚝 서 있다.
천 년을 이어 온 신라는 그 이름을 지켜 내는구나.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이렇게 경치 좋은 곳을 구경하시오.
동쪽의 세 산에는 이 살 만하다.
서쪽에는 고을을 지키는 구미산이 있으니, 공자와 맹자 같은 덕이 어찌 없겠는가?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옛 도읍의 산과 강을 둘러보시오.
「큰 인물은 땅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다」고 하니, 이곳에서 큰 인물이 나지 않겠는가?
더구나 구미산은 경주를 지키는 으뜸 산이다.
에서 뻗은 한 줄기는 중국으로 이어져 갔다.
우리나라 구미산은 「작은 중국()」이라 할 만한 땅을 이루었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우리 산과 강을 지켜 대대로 물려주어야 하겠다. 구미산의 기운은 참으로 기이하고 장하구나.
구미산이 생긴 뒤에 우리 조상이 태어나셨다.
가엾다, 가엾다, 우리 아버지가 가엾다.
아버지는 구미산 용담의 좋은 자리에서 도덕과 글을 닦으셨다. 산과 물의 덕은 아셨지만, 벼슬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는 못하셨다.
구미산 아래 정자 하나에 용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벼슬 없는 시골 선비로만 뒷날에 이름이 전해진단 말인가?
가엾다, 가엾다, 우리 집안 가 가엾다.
나도 세상에 태어난 뒤로 부모님께 죄를 짓지 않았는가?
끝내 불효를 면하지 못하니, 해가 갈수록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만 쌓인다.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한 사내로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이런저런 세상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흔 살이 되었다.
구미산 용담에 찾아오니 들리는 것은 흐르는 물소리다.
솟아 있는 것은 높은 산이다. 왼쪽 오른쪽의 산과 냇물을 둘러본다.
불효한 내 마음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까마귀와 까치가 날아와 나를 놀리는 듯하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빽빽이 우거져 맑은 를 지키는 듯하다.
불효한 내 마음에 슬픔이 저절로 솟는다.
가엾은 우리 아버지께서 남기신 좋은 일이 어찌 없겠는가? 아내와 자식을 불러 달래며 그럭저럭 지냈다.
그 일을 글로 어찌 다 적고, 말로 어찌 다 하겠는가?
장하다, 장하다, 내 가 장하구나.
이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이 열린 뒤 오만 년 동안
네가 처음이다. 나도 하늘과 땅이 열린 뒤로
애쓰기만 하고 이루지 못하다가, 너를 만나 이루었다.
나도 이루고 너도 뜻을 얻었으니, 너희 집안의 로다.” 이 말씀을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 기쁘고 뿌듯했다.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 장하다, 장하다.
내 가 장하구나. 구미산의 산과 물은 좋은 곳이다.
끝없이 큰 도를 닦아 내니, 오만 년을 갈 로다.
내 신세가 좋구나. 구미산과 물의 경치가 좋다.
빼어난 모습으로 생긴 산이 내 와 꼭 맞았다.
가지마다 잎마다 좋은 경치이니, 가 즐기는 곳이 바로 여기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이름난 곳이라, 골짜기와 봉우리가 많고 바위와 돌이 기이하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을까?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참 좋구나. 구미산과 물의 풍경도 좋다.
아무리 좋다 해도 내가 아니면 이러하겠는가?
내가 없었다면 이런 산과 물이 우리나라에 어디 있었겠는가?
내가 만약 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해도
천만 년이 지나도록 잊지 말자고 다짐해도
무심한 구미 용담이 평평한 땅이 될까 봐 안타깝구나.
용담유사 쉽게읽기
쉽게 풀어 읽는 용담유사
곤륜산 한 줄기가 뻗은 조선의 금강산은 기이한 바위가 멋지고, 봉우리가 일만 이천이다. 팔도의 이름난 산을 젖혀 두고도 으뜸가는 경치다. 삼각산 아래 한양에 도읍한 지 사백 년이 지났다. 하원갑, 이 어지러운 세상에 자식 없는 부부가 있었다. 산신과 부처님께 빌다가, 두 늙은이가 마주 앉아 한숨 쉬며 말했다. “우리도 이 세상에 밝고 밝은 하늘땅의 를 남들처럼 타고났소. 그런데 기구한 우리 팔자에 자식 하나 없단 말이오? 우리 죽은 뒤는 그만두고라도, 부모님께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소? 아서라, 을 쌓아 자식을 빌어 대를 이은 사람을 듣기도 보기도 했소. 우리도 공덕이나 닦아 봅시다.” 재산을 다 들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께 바치고 정성껏 산신께 제사를 지냈다. 백 번 절하며 하늘을 우러러 밤낮으로 빌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지 않소? 공덕이나 닦아 봅시다. 그런데 예부터 전해 오는 말에 「인물은 땅의 기운을 받아 난다」고 했소. 좋은 땅에 가서 살아 봅시다.” 좋은 기운은 이름난 산 아래 있다고 하니, 팔도강산을 젖혀 두고 금강산에 들어가 좋은 터를 골랐다. 골짜기에 작은 초가집을 새 둥지처럼 지었다. 그럭저럭 지내다 아기를 가졌다. 어느덧 열 달이 되었다. 하루는 집 안에 안개가 짙게 끼었다. 내금강과 외금강이 두세 번 흔들릴 때, 갑자기 아기가 나오려 했다. 아들이 태어났으니 남다른 사내아이가 아니겠는가? 얼굴은 옥처럼 맑고 모습도 당당했다. 그럭저럭 대여섯 살이 되고, 여덟 살에 글공부를 시작했다. 많은 책을 막힘없이 알아내니 나면서부터 아는 재주 같았다. 열 살이 지나니 사광처럼 총명하고, 사람됨이 남다르고 재주도 뛰어났다. 늘 하는 걱정은 어지럽고 메마른 세상이었다. 임금과 신하가 제 몫을 못 하고, 부모와 자식도 제 도리를 못 하는 것을 밤낮으로 한숨지었다. 답답한 마음이 가득해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 아내와 자식, 먹고살 일마저 버려두고 팔도를 두루 다녔다. 인심과 풍속을 살펴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우습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는구나. 우리나라의 이상한 예언 책을 치켜들고 말했다. “지난 임진왜란 때는 「이재송송(살 길이 송송에 있다)」이라 했다. 가산·정주에서 홍경래가 일으킨 난리 때는 「이재가가(살 길이 가가에 있다)」라 했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이런 일을 거울삼아 살아갈 꾀를 세워 보세.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라 하여 헛되이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둘째 임금 호해가 나라를 망친 뒤에야 사람들이 「호」의 뜻을 알았다. 우리도 이 세상에 「」이라 하고 있네.” 벼슬을 팔아먹는 권세가도, 돈과 곡식을 쌓아 둔 부자도, 떠돌며 빌어먹는 사람조차 마음 한쪽은 궁궁에 가 있다. 소문에 들뜬 사람은 궁궁촌을 찾아가거나, 깊은 산속에 들거나, 서양에서 온 가르침인 서학에 들어간다. 저마다 제 마음대로 생각하며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고 말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며 어지럽게 하는 말이 날마다 그뿐이다. 아서라, 아서라, 팔도 구경은 그만두자. 고향에나 돌아가 여러 학자의 책을 외워 보자. 내 나이 열네 살이니 앞길이 만 리다. 아서라, 이 세상은 요임금, 순임금의 다스림으로도 바로잡을 수 없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으로도 바꿀 수 없다. 품은 생각을 한순간에 버리고 허위허위 오다가, 금강산 꼭대기에 잠깐 쉬다 문득 잠이 들었다. 꿈에 한 도사가 나타나 타일렀다. “깊고 깊은 산골짜기, 사람 자취도 없는 곳에서 어찌 잠을 자느냐? 몸을 닦고 집안을 돌보지 않고 세상을 떠돌기만 한단 말이냐? 어지럽고 메마른 세상 사람을 상대해 무엇 하겠느냐? 가련한 세상 사람들이 「이재궁궁」을 찾는 말을 비웃어 무엇 하겠느냐? 좋은 때를 못 만났다고 한탄하지 말고 세상 구경을 해 보아라. 「송송가가」는 알았지만 「이재궁궁」은 어찌 알겠느냐? 하늘의 운수가 둘러 있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 돌아올 때를 지켜보아라. 온 세상에 도는 돌림병 운수는 다시 새 세상이 열릴 조짐이다. 태평한 세상을 다시 정해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이 평안할 것이다. 한탄하는 마음 갖지 말고 차근차근 지내 보아라. 어지러운 하원갑 시절이 지나고 새로 시작하는 상원갑의 좋은 시절이 오면, 세상에 없던 큰 도가 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이 세상 많은 사람이 태평가와 를 부르는 것을 머지않아 볼 것이다. 이 세상의 큰 도가 끝없이 전해지지 않겠느냐? 의 뜻과 사람의 마음을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 한울님이 뜻을 두시면 짐승 같은 세상 사람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나는 이다. 지금 보고 나면 언제 다시 볼까? 너도 신선의 인연이 있으니 잊지 않고 찾아오지 않겠느냐?” 놀라 잠을 깨어 둘러보니, 도사는 온데간데없었다.
웃을 것이 무엇이냐? 좋은 때를 못 만났다고 한탄하지 마라.
세상 구경을 해 보아라. 옛 예언의 말 「」는 알았지만
옛 예언의 말 「」은 어찌 알겠느냐? 하늘의 가 둘러 있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서, 돌고 도는 때의 를 구경하여라.
온 세상에 도는 돌림병 는 다시 새 세상이 열리는 것 아니겠느냐?
태평한 세상을 다시 정해 나라와 백성이 편안할 것이니
한탄하는 마음 두지 말고 차근차근 지내거라.
어지러운 하원갑 시절이 지나가고, 새로 시작하는 상원갑의 좋은 시절이 오면
세상에 없던 끝없이 큰 도가 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수많은 백성이
태평한 세상을 즐기는 노래인 태평가와 를 부르는 것을 머지않아 볼 것이다.
이 세상의 큰 도가 끝없이 전해지지 않겠느냐?
하늘의 뜻과 사람의 마음을 네가 알겠느냐? 이 뜻을 두면
짐승 같은 세상 사람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나는 이다. 지금 보고 나면 언제 다시 볼까?
너도 의 인연이 있으니, 잊지 않고 찾아오겠느냐?
놀라 잠에서 깨어 둘러보니, 간 곳이 보이지 않았다.
꿈속에서 늙은이와 젊은이가 묻고 답한 노래(몽중노소문답가)
곤륜산 한 줄기가 뻗은 조선의 금강산은 기이한 바위가 멋지고, 봉우리가 일만 이천이다. 팔도의 이름난 산을 젖혀 두고도 으뜸가는 경치다. 삼각산 아래 한양에 도읍한 지 사백 년이 지났다. , 이 어지러운 세상에 자식 없는 부부가 있었다. 과 부처님께 빌다가, 두 늙은이가 마주 앉아 한숨 쉬며 말했다. “우리도 이 세상에 밝고 밝은 하늘땅의 를 남들처럼 타고났소. 그런데 기구한 우리 팔자에 자식 하나 없단 말이오? 우리 죽은 뒤는 그만두고라도, 부모님께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소? 아서라, 을 쌓아 자식을 빌어 대를 이은 사람을 듣기도 보기도 했소. 우리도 공덕이나 닦아 봅시다.” 재산을 다 들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께 바치고 정성껏 산신께 제사를 지냈다. 백 번 절하며 하늘을 우러러 밤낮으로 빌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지 않소? 공덕이나 닦아 봅시다. 그런데 예부터 전해 오는 말에 「인물은 땅의 기운을 받아 난다」고 했소. 좋은 땅에 가서 살아 봅시다.” 좋은 기운은 이름난 산 아래 있다고 하니, 팔도강산을 젖혀 두고
금강산에 들어가 좋은 터를 골랐다. 골짜기에 작은 초가집을 새 둥지처럼 지었다. 그럭저럭 지내다 아기를 가졌다. 어느덧 열 달이 되었다. 하루는 집 안에 안개가 짙게 끼었다. 내금강과 외금강이 두세 번 흔들릴 때, 갑자기 아기가 나오려 했다. 아들이 태어났으니 남다른 사내아이가 아니겠는가? 얼굴은 옥처럼 맑고 모습도 당당했다. 그럭저럭 대여섯 살이 되고, 여덟 살에 글공부를 시작했다. 많은 책을 막힘없이 알아내니 나면서부터 아는 재주 같았다. 열 살이 지나니 처럼 총명하고, 사람됨이 남다르고 재주도 뛰어났다. 늘 하는 걱정은 어지럽고 메마른 세상이었다. 임금과 신하가 제 몫을 못 하고, 부모와 자식도 제 도리를 못 하는 것을 밤낮으로 한숨지었다. 답답한 마음이 가득해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 아내와 자식, 먹고살 일마저 버려두고 팔도를 두루 다녔다. 인심과 풍속을 살펴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우습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는구나. 우리나라의 이상한 예언 책을 치켜들고 말했다. “지난 임진왜란 때는 「이재송송(살 길이 송송에 있다)」이라 했다. 가산·정주에서 홍경래가 일으킨 난리 때는 「이재가가(살 길이 가가에 있다)」라 했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이런 일을 거울삼아 살아갈 꾀를 세워 보세.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라 하여 헛되이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둘째 임금 호해가 나라를 망친 뒤에야 사람들이 「호」의 뜻을 알았다. 우리도 이 세상에 「」이라 하고 있네.” 벼슬을 팔아먹는 권세가도, 돈과 곡식을 쌓아 둔 부자도, 떠돌며 빌어먹는 사람조차 마음 한쪽은 궁궁에 가 있다. 소문에 들뜬 사람은 궁궁촌을 찾아가거나, 깊은 산속에 들거나, 서양에서 온 가르침인 서학에 들어간다. 저마다 제 마음대로 생각하며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고 말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며 어지럽게 하는 말이 날마다 그뿐이다. 아서라, 아서라, 팔도 구경은 그만두자. 고향에나 돌아가 여러 학자의 책을 외워 보자. 내 나이 열네 살이니 앞길이 만 리다. 아서라, 이 세상은 요임금, 순임금의 다스림으로도 바로잡을 수 없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으로도 바꿀 수 없다. 품은 생각을 한순간에 버리고 허위허위 오다가, 금강산 꼭대기에 잠깐 쉬다 문득 잠이 들었다. 꿈에 한 도사가 나타나 타일렀다. “깊고 깊은 산골짜기, 사람 자취도 없는 곳에서 어찌 잠을 자느냐? 몸을 닦고 집안을 돌보지 않고 세상을 떠돌기만 한단 말이냐? 어지럽고 메마른 세상 사람을 상대해 무엇 하겠느냐? 가련한 세상 사람들이 「이재궁궁」을 찾는 말을 비웃어 무엇 하겠느냐? 좋은 때를 못 만났다고 한탄하지 말고 세상 구경을 해 보아라. 「송송가가」는 알았지만 「이재궁궁」은 어찌 알겠느냐? 하늘의 가 둘러 있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 돌아올 때를 지켜보아라. 온 세상에 도는 돌림병 운수는 다시 새 세상이 열릴 조짐이다. 태평한 세상을 다시 정해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이 평안할 것이다. 한탄하는 마음 갖지 말고 차근차근 지내 보아라. 어지러운 하원갑 시절이 지나고 새로 시작하는 상원갑의 좋은 시절이 오면, 세상에 없던 큰 도가 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이 세상 많은 사람이 태평가와 를 부르는 것을 머지않아 볼 것이다. 이 세상의 큰 도가 끝없이 전해지지 않겠느냐? 의 뜻과 사람의 마음을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 한울님이 뜻을 두시면 짐승 같은 세상 사람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나는 이다. 지금 보고 나면 언제 다시 볼까? 너도 신선의 인연이 있으니 잊지 않고 찾아오지 않겠느냐?” 놀라 잠을 깨어 둘러보니, 도사는 온데간데없었다.
용담유사 쉽게읽기
쉽게 풀어 읽는 용담유사
도를 닦는 글(도수사)
넓은 하늘땅에 정처 없이 길을 떠나니 답답한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 지팡이를 벗 삼아 나그네 창가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문득 생각했다. 나도 이 세상에 하늘의 은혜가 그지없어, 세상에 없던 큰 도를 꿈인 듯 생시인 듯 받았다. 구미 용담 좋은 경치 속에서 가난해도 도를 즐기며 지냈다. 겨우 한 해 만에 여기저기서 어진 선비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니 즐겁지 않았던가? 좁은 생각으로 도와 법을 가르치다, 한 해 만에 갑자기 길을 나섰다. 서두르느라 여러 곳의 벗들에게 한마디 말도, 자세한 사정도 전하지 못했다. 수천 리 밖에 앉아 이제야 깨닫고 글을 짓는다. 천 리 밖 고향에 전해 주니, 어질고 어진 벗들은 매정한 나를 부디 탓하지 마시오. 정성과 공경을 지켜 차근차근 닦아 나가면 그것이 큰 도가 아니겠소? 때가, 때가 오면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지 않겠소? 어진 벗들이여, 어리석은 나를 잊지 말고 생각하시오. 옛 성인과 어진 이(성현)의 글을 살펴보았으니 도가 전해지는 뿌리(연원)를 알 것이오. 스승에서 스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연원이고, 가장 높은 것은 에 통달하는 것이오. 공자의 어진 도덕이 한 줄기로 전해졌지만, 삼천 제자 가운데 신통육예를 갖춘 이는 몇이었소? 일흔두 명이 도를 깨쳐 영원히 변함없이 전하려 했소. 그러나 천 년도 못 되어 이 법과 도를 어지럽혔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 어진 벗들이여, 예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본받아 순리대로 받으시오. 십 년을 공부해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면 빨리 이루었다고 하오. 그런데 끝없는 내 도는 삼 년 안에 못 이루면 헛말 아니오? 마음 급한 그대들은 사람 도리는 다하지 않고 하늘의 뜻만 바라오. 「갑자기 부귀를 얻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 예부터 전해 오지 않소?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 어찌 그리 조급하오? 사람 재주에는 높고 낮음이 있겠소. 그러나 내가 보기엔, 스스로 마음이 넓다는 어진 이와 군자(덕이 높은 사람)들이 세상을 한탄하며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는구려. 도에 들어온 생각 없는 사람들은 말만 듣고 들어와, 입으로만 주문을 외우고 도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오. 그러면서 너도나도 도를 깨쳤다고 나서니, 보잘것없는 저 사람은 어찌 저리 같잖은가? 어진 벗들은 자세히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윗사람이 미덥지 못하면 아랫사람이 의심하오. 윗사람이 공경하지 않으면 아랫사람도 거만해지오. 이런 일을 보아도 모든 책임은 윗사람에게 있지 않소? 그래도 몸을 닦고 집안을 돌보지 않고 어찌 도를 이루겠소? 도 안 지키면서 어찌 군자가 되겠소? 집안의 화목은 아내에게 달렸지만, 남편이 바르고 엄하면 아내가 왜 싫은 기색을 하겠소? 아내를 타이르기는커녕 남편도 이상하니 안타까운 일이오. 남편이 그러니 아내도 그럴 수밖에 없다니 어쩔 수 없지만, 어진 벗들은 차차 스스로를 살펴 마음 놓고 도를 지켜 주시오. 너희 때문에 내가 부끄럽게 되면, 제자인 자네들도 부끄럽지 않겠소? 보고만 있지 말고 정성껏 타일러 내 부끄러움을 씻어 주면 큰 덕 아니오? 스승이 되려면 오는 사람을 거절 말고 가르치기를 으뜸으로 해야 하니, 그 밖에 무엇을 바라겠소? 제자가 되려면 평생 변치 않겠다고 다짐한 뒤, 받은 가르침을 털끝만큼이라도 바꿀 수 있겠소? 뛰어난 사람이 많아도 나는 스승, 그들은 제자가 되었으니 우리 도의 집안(도문)이 크게 일어난 것 아니오? 옛 성현들의 제자들은 여러 책을 외워 도의 뿌리를 지키고, 공자의 도덕을 더욱 밝혀 오래 전해 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 나도 이 세상에 큰 도를 닦아 오는 사람을 가르치고, 를 전해 주었소.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무위이화)이 아니겠소? 어리석은 사람들은 잘난 척은 물론 저만 옳다고 우기니 무슨 일이오? 우리 도에 없는 법을 제멋대로 지어내니 그 법을 어디서 배워 왔소? 들어온 지 서너 달에 어찌 그리 빨리 이루오? 안타깝구나, 저 사람은. 밝은 는 누구에게나 밝은데 어떤 사람은 군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저러하오? 어짊, 옳음, 예의, 슬기,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둔한 저 생각으로 무엇을 알겠소? 하나하나 글로 적어 거울처럼 전해 주니 자세히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잘못된 행동은 남의 눈과 귀를 살펴 고치고, 마음을 바로 하고 몸을 닦아 남들처럼 도를 닦으시오. 세상 사람이 지킬 도리 가운데 믿을 「신」 자가 으뜸이오. 사내의 의로운 몸가짐이 믿음 없이 어찌 나오겠소? 삼강오륜의 밝은 법이 예 없이 어찌 나오겠소? 사내의 슬기로운 몸가짐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나오오. 우습다, 저 사람은 스스로를 버리는 줄 모르고 부끄러움 없이 장난하니 도를 어지럽히는 사람이오. 스승이 안 가르친 도법을 혼자 안다 하니 법을 어지럽히는 사람이오. 그런 사람이 무슨 낯으로 나를 보겠소? 내 가르침대로 안 하면 제 신세도 가련하고 도까지 더럽히니, 밤낮 걱정이 이것뿐이오. 한번 먹은 마음을 끝까지 잘 지키면, 그것으로 군자가 되지 않겠소? 한 글자 한 구절 꼼꼼히 살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도를 닦아 두면, 봄 삼월 좋은 시절에 다시 만나 볼까?
넓은 하늘땅에 정처 없이 길을 떠나니 답답한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 지팡이를 벗 삼아 나그네 창가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문득 생각했다. 나도 이 세상에 하늘의 은혜가 그지없어, 세상에 없던 큰 도를 꿈인 듯 생시인 듯 받았다. 구미 용담 좋은 경치 속에서 가난해도 도를 즐기며 지냈다. 겨우 한 해 만에 여기저기서 어진 선비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니 즐겁지 않았던가? 좁은 생각으로 도와 법을 가르치다, 한 해 만에 갑자기 길을 나섰다. 서두르느라 여러 곳의 벗들에게 한마디 말도, 자세한 사정도 전하지 못했다. 수천 리 밖에 앉아 이제야 깨닫고 글을 짓는다. 천 리 밖 고향에 전해 주니, 어질고 어진 벗들은 매정한 나를 부디 탓하지 마시오. 정성과 공경을 지켜 차근차근 닦아 나가면 그것이 큰 도가 아니겠소? 때가, 때가 오면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지 않겠소? 어진 벗들이여, 어리석은 나를 잊지 말고 생각하시오. 옛 성인과 어진 이(성현)의 글을 살펴보았으니 도가 전해지는 뿌리(연원)를 알 것이오. 스승에서 스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연원이고, 가장 높은 것은 에 통달하는 것이오. 공자의 어진 도덕이 한 줄기로 전해졌지만, 삼천 제자 가운데 신통육예를 갖춘 이는 몇이었소? 일흔두 명이 도를 깨쳐 영원히 변함없이 전하려 했소. 그러나 천 년도 못 되어 이 법과 도를 어지럽혔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 어진 벗들이여, 예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본받아 순리대로 받으시오. 십 년을 공부해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면 빨리 이루었다고 하오. 그런데 끝없는 내 도는 삼 년 안에 못 이루면 헛말 아니오? 마음 급한 그대들은 사람 도리는 다하지 않고 하늘의 뜻만 바라오. 「갑자기 부귀를 얻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 예부터 전해 오지 않소?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 어찌 그리 조급하오? 사람 재주에는 높고 낮음이 있겠소. 그러나 내가 보기엔, 스스로 마음이 넓다는 어진 이와 군자(덕이 높은 사람)들이 세상을 한탄하며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는구려. 도에 들어온 생각 없는 사람들은 말만 듣고 들어와, 입으로만 주문을 외우고 도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오. 그러면서 너도나도 도를 깨쳤다고 나서니, 보잘것없는 저 사람은 어찌 저리 같잖은가? 어진 벗들은 자세히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윗사람이 미덥지 못하면 아랫사람이 의심하오. 윗사람이 공경하지 않으면 아랫사람도 거만해지오. 이런 일을 보아도 모든 책임은 윗사람에게 있지 않소? 그래도 몸을 닦고 집안을 돌보지 않고 어찌 도를 이루겠소? 도 안 지키면서 어찌 군자가 되겠소? 집안의 화목은 아내에게 달렸지만, 남편이 바르고 엄하면 아내가 왜 싫은 기색을 하겠소? 아내를 타이르기는커녕 남편도 이상하니 안타까운 일이오. 남편이 그러니 아내도 그럴 수밖에 없다니 어쩔 수 없지만, 어진 벗들은 차차 스스로를 살펴 마음 놓고 도를 지켜 주시오. 너희 때문에 내가 부끄럽게 되면, 제자인 자네들도 부끄럽지 않겠소? 보고만 있지 말고 정성껏 타일러 내 부끄러움을 씻어 주면 큰 덕 아니오? 스승이 되려면 오는 사람을 거절 말고 가르치기를 으뜸으로 해야 하니, 그 밖에 무엇을 바라겠소? 제자가 되려면 평생 변치 않겠다고 다짐한 뒤, 받은 가르침을 털끝만큼이라도 바꿀 수 있겠소? 뛰어난 사람이 많아도 나는 스승, 그들은 제자가 되었으니 우리 도의 집안(도문)이 크게 일어난 것 아니오? 옛 성현들의 제자들은 여러 책을 외워 도의 뿌리를 지키고, 공자의 도덕을 더욱 밝혀 오래 전해 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 나도 이 세상에 큰 도를 닦아 오는 사람을 가르치고, 를 전해 주었소.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무위이화)이 아니겠소? 어리석은 사람들은 잘난 척은 물론 저만 옳다고 우기니 무슨 일이오? 우리 도에 없는 법을 제멋대로 지어내니 그 법을 어디서 배워 왔소? 들어온 지 서너 달에 어찌 그리 빨리 이루오? 안타깝구나, 저 사람은. 밝은 는 누구에게나 밝은데 어떤 사람은 군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저러하오? 어짊, 옳음, 예의, 슬기,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둔한 저 생각으로 무엇을 알겠소? 하나하나 글로 적어 거울처럼 전해 주니 자세히 보고 마음을 놓으시오. 잘못된 행동은 남의 눈과 귀를 살펴 고치고, 마음을 바로 하고 몸을 닦아 남들처럼 도를 닦으시오. 세상 사람이 지킬 도리 가운데 믿을 「신」 자가 으뜸이오. 사내의 의로운 몸가짐이 믿음 없이 어찌 나오겠소? 삼강오륜의 밝은 법이 예 없이 어찌 나오겠소? 사내의 슬기로운 몸가짐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나오오. 우습다, 저 사람은 스스로를 버리는 줄 모르고 부끄러움 없이 장난하니 도를 어지럽히는 사람이오. 스승이 안 가르친 도법을 혼자 안다 하니 법을 어지럽히는 사람이오. 그런 사람이 무슨 낯으로 나를 보겠소? 내 가르침대로 안 하면 제 신세도 가련하고 도까지 더럽히니, 밤낮 걱정이 이것뿐이오. 한번 먹은 마음을 끝까지 잘 지키면, 그것으로 군자가 되지 않겠소? 한 글자 한 구절 꼼꼼히 살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도를 닦아 두면, 봄 삼월 좋은 시절에 다시 만나 볼까?
용담유사 쉽게읽기
쉽게 풀어 읽는 용담유사
옛 시대의 생각이에요
한가로이 지내던 나그네가 팔도강산을 다 밟았다. 전라도 에서 한 해를 보내자니 무정한 세월에 할 일 없이 놀고먹는다. 넓은 하늘땅에서 지팡이 하나를 벗 삼아 기대 서서 세상 이치를 헤아린다. 할 일 없는 내 마음을 풀어놓을 곳이 하나도 없다. 노래 한 편을 지으며 새해를 맞아 보자. 무정한 세월이 어찌 이리 무정한가?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다(인간칠십고래희)」는 말이 예부터 전해 오지 않소? 무정한 세월을 헤아려 보니, 빛처럼 빠른 세상에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다. 일흔 해 살았다고 「드물다」 하는가?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고생 많던 나그네가 노래 한 편 지어 보세. 겪은 고생은 산과 물을 만나 풀고, 어린 자식과 고향 생각은 노래로 푼다. 이 글을 보고 웃지 말고 자세히 읽고 맛보아라.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 수많은 한글 노래 가운데 이런 노래가 또 있겠는가? 한 글자 한 구절 살펴보고 또렷이 외워, 봄 삼월 좋은 시절에 놀아 보고 먹어 보세. 강산 구경은 그만두고 인심과 풍속을 살펴보았다. 「부모와 자식은 친하고, 임금과 신하는 옳음이 있고, 남편과 아내는 구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는 차례가 있고, 친구 사이는 믿음이 있다」는 가르침은 있다. 그런데 인심과 풍속이 이상하다. 세상 구경 못 한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일이다. 고향의 인심과 풍속을 한탄해 집안 살림을 버려두고 정처 없이 떠났다. 방방곡곡 일마다 살펴보니 사람마다 낯이 설다. 인심과 하는 짓이 일마다 눈에 거슬리니 낯선 타향 아닌가? 무슨 좋은 풍속을 보겠다고 어진 벗과 하루아침에 헤어졌단 말인가? 산수 구경은 그만두고, 동짓달 섣달 눈바람 속에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다 한 번 웃고 털어 버리세.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세상 풍속을 모르거든 내가 사는 곳 풍속을 살펴보시오. 이것도 때의 라 어쩔 수 없구나. 세상을 두루 구경하지 않으면 인심과 풍속이 이런 줄 어찌 알겠는가? 온갖 일을 보고 나니 끝이 없다. 옛날과 지금을 보면, 이 다스린 태평한 때라도, 한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요임금, 순임금 같았겠는가? 바퀴 돌듯 돌아온 운수이니 누구를 원망하랴? 이런 세상이라도 어진 이와 군자는 있겠지만, 진흙 속 옥과 돌을 누가 가려내겠는가? 가난해도 도를 즐기지만 누가 이끌어 주겠는가? 때의 운수를 따져 보아도, 번성한 뒤에 쇠하고 쇠한 뒤에 번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쇠한 운이 끝에 이르면 번성하는 운이 온다. 그런데 어질고 착한 여러분은 모두 하나로 돌아갔는가(동귀일체)? 어렵구나, 어렵구나, 만나기도 어렵구나. 방방곡곡 찾아다니다 만나기만 한다면, 내가 품은 생각은 다른 것이 아니다. 서로 묻고 답하며 바른 이치를 밝히고 싶을 뿐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진흙과 숯불 속에 빠진 듯 괴롭지 않은가? 죽을 곳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아,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어찌할까? 세상 모든 생명이 나고 죽는 것은 께 달려 있지 않은가? 때 아닌 비바람에 한울님을 원망해도, 죽음 앞에서 찾는 것은 한울님 아닌가? 같은 성현들도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지 않았는가? 어지럽고 메마른 이 세상에 어찌 하늘의 뜻을 살피지 않는단 말인가? 억울하게 죽은 많은 사람도 한울님의 신비한 힘()으로 생겼는데, 은덕은커녕 뿌리조차 잊겠는가? 가련한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제 마음만 따르는가?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라. 어지럽고 메마른 이 세상에 뿌리가 한울님임을 잊지 마라. 임금께 공경하면 충신이 아니겠는가? 부모님께 공경하면 효자, 효부가 아니겠는가? 슬프다, 세상 사람들아, 자세히 보고 공경하시오. 나도 태어나 부모님을 일찍 여의지 않았던가? 부모님께 정성과 공경을 다하지 못했으니 죄를 지은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충신의 자손으로 시골에서 자라 임금과 신하 사이의 옳음을 몰랐으니 임금께도 죄를 지었다. 세월을 헛되이 보내다 보니 어느덧 마흔이다. 마흔 해 인생이 이것뿐인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원갑 경신년에 전해 오는 말이 있었다. 「요망한 서양 도적이 중국을 쳐들어가 을 높이 세우고, 이른바 도라는 것을 온 세상에 퍼뜨린다」고 한다. 우습기 짝이 없다. 예전에 들은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예의도, 사람 사이의 다섯 도리()도 버리고, 남녀노소 무리 지어 극성을 떨며 세월을 보낸다는 말이 보는 듯이 들린다. 그들은 까닭 없이 한울님께 밤낮으로 빈다. 「하늘의 천당에 나 죽거든 가게 해 주시오.」 우습다, 저 사람은 제 부모가 죽은 뒤에 신도 없다며 제사조차 지내지 않는다. 오륜을 벗어나 빨리 죽어 천당 가기만 바란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부모님의 넋은 없다면서 저에게만 어찌 넋이 있어 천당에 가겠다는가? 어리석은 소리는 하지 마라. 그 말 저 말 다 그만두고 한울님을 공경하면, 우리나라에 돌림병이 돌아도 죽을 걱정이 있겠느냐? 허무한 너희 풍속을 듣고 나니 기가 막히고, 보고 나니 한숨만 나온다. 나도 마흔 해를 하염없이 지냈지만 이제야 문득 생각한다. 때의 운수가 돌아온 것인가? 세상에 없던 큰 도를 처음 펼쳐 내니 이것도 때의 운수다. 날마다 먹는 음식에 정성과 공경을 지켜 한울님을 공경하면, 어려서부터 앓던 병도 약 없이 낫지 않겠는가? 온 집안이 걱정 없이 한 해 삼백육십 일을 지내니 한울님 은덕 아니냐? 차차 겪어 보니 때의 운수가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내가 하는 깨우침의 말을 자세히 살핀 뒤 잊지 말고 지키시오. 정성을 다해 공경하며 한울님만 생각하시오. 을 불러 타이르고 영원히 잊지 말라고 당부하시오. 우리나라에 해마다 도는 돌림병에 사람이 다치지 않겠는가? 나도 세상을 두루 돌아보다 어진 사람을 만나면 바뀌는 운수를 의논하겠다. 평생 뜻을 같이하겠다면 이 글을 주고 약속해 영원한 벗이 되어 보세. 어리석은 내 말을 잊지 말고 생각하시오. 어리석은 생각이라도 얻을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덕이 아니겠는가? 운수로 세상 이치를 헤아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다. 그래서 모자란 글이나마 지어 염치없이 전해 준다. 이 글을 보고 웃지 말고, 공경하여 가르침의 말씀으로 삼아라.
한가로이 지내던 나그네가 팔도강산을 다 밟았다. 전라도 에서 한 해를 보내자니 무정한 세월에 할 일 없이 놀고먹는다. 넓은 하늘땅에서 지팡이 하나를 벗 삼아 기대 서서 세상 이치를 헤아린다. 할 일 없는 내 마음을 풀어놓을 곳이 하나도 없다. 노래 한 편을 지으며 새해를 맞아 보자. 무정한 세월이 어찌 이리 무정한가?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다(인간칠십고래희)」는 말이 예부터 전해 오지 않소? 무정한 세월을 헤아려 보니, 빛처럼 빠른 세상에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다. 일흔 해 살았다고 「드물다」 하는가?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고생 많던 나그네가 노래 한 편 지어 보세. 겪은 고생은 산과 물을 만나 풀고, 어린 자식과 고향 생각은 노래로 푼다. 이 글을 보고 웃지 말고 자세히 읽고 맛보아라.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 수많은 한글 노래 가운데 이런 노래가 또 있겠는가? 한 글자 한 구절 살펴보고 또렷이 외워, 봄 삼월 좋은 시절에 놀아 보고 먹어 보세. 강산 구경은 그만두고 인심과 풍속을 살펴보았다. 「부모와 자식은 친하고, 임금과 신하는 옳음이 있고, 남편과 아내는 구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는 차례가 있고, 친구 사이는 믿음이 있다」는 가르침은 있다. 그런데 인심과 풍속이 이상하다. 세상 구경 못 한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일이다. 고향의 인심과 풍속을 한탄해 집안 살림을 버려두고 정처 없이 떠났다. 방방곡곡 일마다 살펴보니 사람마다 낯이 설다. 인심과 하는 짓이 일마다 눈에 거슬리니 낯선 타향 아닌가? 무슨 좋은 풍속을 보겠다고 어진 벗과 하루아침에 헤어졌단 말인가? 산수 구경은 그만두고, 동짓달 섣달 눈바람 속에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다 한 번 웃고 털어 버리세.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세상 풍속을 모르거든 내가 사는 곳 풍속을 살펴보시오. 이것도 때의 라 어쩔 수 없구나. 세상을 두루 구경하지 않으면 인심과 풍속이 이런 줄 어찌 알겠는가? 온갖 일을 보고 나니 끝이 없다. 옛날과 지금을 보면, 이 다스린 태평한 때라도, 한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요임금, 순임금 같았겠는가? 바퀴 돌듯 돌아온 운수이니 누구를 원망하랴? 이런 세상이라도 어진 이와 군자는 있겠지만, 진흙 속 옥과 돌을 누가 가려내겠는가? 가난해도 도를 즐기지만 누가 이끌어 주겠는가? 때의 운수를 따져 보아도, 번성한 뒤에 쇠하고 쇠한 뒤에 번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쇠한 운이 끝에 이르면 번성하는 운이 온다. 그런데 어질고 착한 여러분은 모두 하나로 돌아갔는가(동귀일체)? 어렵구나, 어렵구나, 만나기도 어렵구나. 방방곡곡 찾아다니다 만나기만 한다면, 내가 품은 생각은 다른 것이 아니다. 서로 묻고 답하며 바른 이치를 밝히고 싶을 뿐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진흙과 숯불 속에 빠진 듯 괴롭지 않은가? 죽을 곳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아,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어찌할까? 세상 모든 생명이 나고 죽는 것은 께 달려 있지 않은가? 때 아닌 비바람에 한울님을 원망해도, 죽음 앞에서 찾는 것은 한울님 아닌가? 같은 성현들도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지 않았는가? 어지럽고 메마른 이 세상에 어찌 하늘의 뜻을 살피지 않는단 말인가? 억울하게 죽은 많은 사람도 한울님의 신비한 힘(조화)으로 생겼는데, 은덕은커녕 뿌리조차 잊겠는가? 가련한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제 마음만 따르는가?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라. 어지럽고 메마른 이 세상에 뿌리가 한울님임을 잊지 마라. 임금께 공경하면 충신이 아니겠는가? 부모님께 공경하면 효자, 효부가 아니겠는가? 슬프다, 세상 사람들아, 자세히 보고 공경하시오. 나도 태어나 부모님을 일찍 여의지 않았던가? 부모님께 정성과 공경을 다하지 못했으니 죄를 지은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충신의 자손으로 시골에서 자라 임금과 신하 사이의 옳음을 몰랐으니 임금께도 죄를 지었다. 세월을 헛되이 보내다 보니 어느덧 마흔이다. 마흔 해 인생이 이것뿐인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에 전해 오는 말이 있었다. 「요망한 서양 도적이 중국을 쳐들어가 을 높이 세우고, 이른바 도라는 것을 온 세상에 퍼뜨린다」고 한다. 우습기 짝이 없다. 예전에 들은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예의도, 사람 사이의 다섯 도리()도 버리고, 남녀노소 무리 지어 극성을 떨며 세월을 보낸다는 말이 보는 듯이 들린다. 그들은 까닭 없이 한울님께 밤낮으로 빈다. 「하늘의 천당에 나 죽거든 가게 해 주시오.」 우습다, 저 사람은 제 부모가 죽은 뒤에 신도 없다며 제사조차 지내지 않는다. 오륜을 벗어나 빨리 죽어 천당 가기만 바란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부모님의 넋은 없다면서 저에게만 어찌 넋이 있어 천당에 가겠다는가? 어리석은 소리는 하지 마라. 그 말 저 말 다 그만두고 한울님을 공경하면, 우리나라에 돌림병이 돌아도 죽을 걱정이 있겠느냐? 허무한 너희 풍속을 듣고 나니 기가 막히고, 보고 나니 한숨만 나온다. 나도 마흔 해를 하염없이 지냈지만 이제야 문득 생각한다. 때의 운수가 돌아온 것인가? 세상에 없던 큰 도를 처음 펼쳐 내니 이것도 때의 운수다. 날마다 먹는 음식에 정성과 공경을 지켜 한울님을 공경하면, 어려서부터 앓던 병도 약 없이 낫지 않겠는가? 온 집안이 걱정 없이 한 해 삼백육십 일을 지내니 한울님 은덕 아니냐? 차차 겪어 보니 때의 운수가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여보시오, 세상 사람들아, 내가 하는 깨우침의 말을 자세히 살핀 뒤 잊지 말고 지키시오. 정성을 다해 공경하며 한울님만 생각하시오. 을 불러 타이르고 영원히 잊지 말라고 당부하시오. 우리나라에 해마다 도는 돌림병에 사람이 다치지 않겠는가? 나도 세상을 두루 돌아보다 어진 사람을 만나면 바뀌는 운수를 의논하겠다. 평생 뜻을 같이하겠다면 이 글을 주고 약속해 영원한 벗이 되어 보세. 어리석은 내 말을 잊지 말고 생각하시오. 어리석은 생각이라도 얻을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덕이 아니겠는가? 운수로 세상 이치를 헤아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다. 그래서 모자란 글이나마 지어 염치없이 전해 준다. 이 글을 보고 웃지 말고, 공경하여 가르침의 말씀으로 삼아라.
용담유사 쉽게읽기
쉽게 풀어 읽는 용담유사
하늘과 땅이 음과 양으로 나뉜 뒤 온갖 만물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어리석은 것은 짐승이고, 가장 신령한 것은 사람이다. 전해 오는 말에 「하늘의 뜻은 사람의 마음과 같다」고 한다. 『주역』에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귀신」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말하는 도는 「하늘의 덕을 밝혀 가장 착한 데 이르는 것」이 아닌가? 『중용』에서는 「하늘이 준 것은 성품이고, 성품을 따르는 것은 도이고, 도를 닦는 것은 가르침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정성(성)과 공경(경) 두 글자를 밝혀 놓았다. 우리나라의 어질다는 사람들을 도덕군자(도와 덕을 갖춘 훌륭한 사람)라 부르지만, 무지한 세상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아도 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무엇을 안다 하겠는가? 「하늘 위 님이 에 계시다」고 본 듯이 말하니, 이치에 안 맞고 얼마나 허무한가? 한나라의 귀신 모시는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 와 집집마다 모시는 것이 온통 귀신 이름뿐이다. 이런 생각을 구경하시오. 하늘땅도 귀신이고, 귀신도 음양이라는 것을 이렇게 몰랐다. 그러니 경전을 살펴 무엇 하며, 도와 덕을 몰랐으니 어진 이와 군자를 어찌 알겠는가? 지금 세상은 이렇지만 옛 은 이렇게 말했다. 「큰사람은 그 덕이 하늘땅과 하나가 되고, 그 밝음은 해와 달과 같고, 좋고 나쁜 일도 귀신과 같다.」 이렇게 밝혀 영원히 전하려 했다. 그런데 생각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말한다. 「지금은 늙은 하늘이라 신통한 힘(영험)도 없다. 몹쓸 사람은 부자로 살고 어진 사람은 가난하다.」 하는 말이 이것뿐이다. 공부 좀 했다 하면 집안과 재산을 보고 세상 흐름대로 말한다. 「아무개는 집안도 좋고 글솜씨도 그만하니 도덕군자가 분명하다.」 그러며 부끄러움도 없이 떠받든다. 우습다, 저 사람은. 집안이 무엇이기에 군자의 기준으로 삼고, 글솜씨가 무엇이기에 도덕의 기준으로 삼는가? 아서라, 너희를 보자니 욕이 되고, 말하자니 번거롭다. 나도 이 세상에 음양과 네 가지 기운으로 몸을 받았다. 마흔 해 동안 집안이나 겨우 지키며 가난한 선비로 지냈지만, 하늘의 이치야 모르겠느냐? 사람의 손발이 움직이는 것도 귀신이다. 착하고 나쁜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기운이다. 말하고 웃는 것도 신비한 힘(조화)이다. 그러나 한울님은 아주 공평해서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려 대하지 않으신다. 어지러운 이 세상을 어떻게 하나로 돌아가게 한다는 말인가? 요임금, 순임금 때에도 도척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하물며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의 가 왜 없겠는가? 공자가 도를 펼 때도 환퇴 같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나쁜 사람들의 음해를 피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여 어짊, 옳음, 예의, 슬기를 지킨다. 군자의 말씀을 본받아 정성과 공경을 지킨다. 옛 임금들의 법도를 어기지 않았으니 그것이 어찌 허물이 되겠는가? 세상에서 지켜야 할 밝은 법인 은 사람됨의 뿌리다. 그것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으니 어찌 허물이 되겠는가? 성현은 음란한 소리를 듣지 말고 나쁜 모습을 보지 말라고 가르쳤다. 어진 여러분은 이 말씀을 본받아 잊지 말자고 다짐하시오. 한결같이 지켜 나가면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이랬다저랬다 하면 하늘의 이치를 어기는 사람이다. 물욕에 마음을 빼앗기면 천한 사람이다. 헛말로 꾀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다. 속은 나쁘고 겉만 꾸미면 한울님을 속이는 사람이다. 누가 가려낼까? 이렇게 안 하면 한울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기는커녕,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이치를 따를 수 있겠는가? 세상의 수많은 나쁜 병이 약 없이 저절로 나았으니 참으로 신기하고 두려운 일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마음에서 물건 욕심을 없애면 잘못을 고치고 착해질 것이다. 그러니 정성과 공경을 못 지키겠는가? 하나하나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두어 구절 한글 노래를 들은 듯이 외워, 마음을 바르게 하고 도를 닦은 뒤 잊지 말고 생각하시오.
하늘과 땅이 음과 양으로 나뉜 뒤 온갖 만물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어리석은 것은 짐승이고, 가장 신령한 것은 사람이다. 전해 오는 말에 「하늘의 뜻은 사람의 마음과 같다」고 한다. 『주역』에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귀신」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말하는 도는 「하늘의 덕을 밝혀 가장 착한 데 이르는 것」이 아닌가? 『중용』에서는 「하늘이 준 것은 성품이고, 성품을 따르는 것은 도이고, 도를 닦는 것은 가르침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정성(성)과 공경(경) 두 글자를 밝혀 놓았다. 우리나라의 어질다는 사람들을 도덕군자(도와 덕을 갖춘 훌륭한 사람)라 부르지만, 무지한 세상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아도 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무엇을 안다 하겠는가? 「하늘 위 님이 에 계시다」고 본 듯이 말하니, 이치에 안 맞고 얼마나 허무한가? 한나라의 귀신 모시는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 와 집집마다 모시는 것이 온통 귀신 이름뿐이다. 이런 생각을 구경하시오. 하늘땅도 귀신이고, 귀신도 음양이라는 것을 이렇게 몰랐다. 그러니 경전을 살펴 무엇 하며, 도와 덕을 몰랐으니 어진 이와 군자를 어찌 알겠는가? 지금 세상은 이렇지만 옛 은 이렇게 말했다. 「큰사람은 그 덕이 하늘땅과 하나가 되고, 그 밝음은 해와 달과 같고, 좋고 나쁜 일도 귀신과 같다.」 이렇게 밝혀 영원히 전하려 했다. 그런데 생각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말한다. 「지금은 늙은 하늘이라 신통한 힘(영험)도 없다. 몹쓸 사람은 부자로 살고 어진 사람은 가난하다.」 하는 말이 이것뿐이다. 공부 좀 했다 하면 집안과 재산을 보고 세상 흐름대로 말한다. 「아무개는 집안도 좋고 글솜씨도 그만하니 도덕군자가 분명하다.」 그러며 부끄러움도 없이 떠받든다. 우습다, 저 사람은. 집안이 무엇이기에 군자의 기준으로 삼고, 글솜씨가 무엇이기에 도덕의 기준으로 삼는가? 아서라, 너희를 보자니 욕이 되고, 말하자니 번거롭다. 나도 이 세상에 음양과 네 가지 기운으로 몸을 받았다. 마흔 해 동안 집안이나 겨우 지키며 가난한 선비로 지냈지만, 하늘의 이치야 모르겠느냐? 사람의 손발이 움직이는 것도 귀신이다. 착하고 나쁜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기운이다. 말하고 웃는 것도 신비한 힘(조화)이다. 그러나 한울님은 아주 공평해서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려 대하지 않으신다. 어지러운 이 세상을 어떻게 하나로 돌아가게 한다는 말인가? 요임금, 순임금 때에도 도척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하물며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의 가 왜 없겠는가? 공자가 도를 펼 때도 환퇴 같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나쁜 사람들의 음해를 피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여 어짊, 옳음, 예의, 슬기를 지킨다. 군자의 말씀을 본받아 정성과 공경을 지킨다. 옛 임금들의 법도를 어기지 않았으니 그것이 어찌 허물이 되겠는가? 세상에서 지켜야 할 밝은 법인 은 사람됨의 뿌리다. 그것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으니 어찌 허물이 되겠는가? 성현은 음란한 소리를 듣지 말고 나쁜 모습을 보지 말라고 가르쳤다. 어진 여러분은 이 말씀을 본받아 잊지 말자고 다짐하시오. 한결같이 지켜 나가면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이랬다저랬다 하면 하늘의 이치를 어기는 사람이다. 물욕에 마음을 빼앗기면 천한 사람이다. 헛말로 꾀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다. 속은 나쁘고 겉만 꾸미면 한울님을 속이는 사람이다. 누가 가려낼까? 이렇게 안 하면 한울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기는커녕,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이치를 따를 수 있겠는가? 세상의 수많은 나쁜 병이 약 없이 저절로 나았으니 참으로 신기하고 두려운 일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마음에서 물건 욕심을 없애면 잘못을 고치고 착해질 것이다. 그러니 정성과 공경을 못 지키겠는가? 하나하나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두어 구절 한글 노래를 들은 듯이 외워, 마음을 바르게 하고 도를 닦은 뒤 잊지 말고 생각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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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 읽는 용담유사
빗대어 일깨우는 노래(흥비가)
『시경』에 이런 말이 있다. 「도끼 자루를 만들 때, 손에 쥔 도끼 자루를 보고 찍으니 그 본보기가 멀리 있지 않구나.」 내 앞에 보이는 것을 어길 일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도끼에 달린 것이 아니다. 눈앞의 일을 쉽게 여겨 깊이 헤아리지 않다 끝이 나쁘면 한이 되지 않겠는가? 세상일은 어려운 듯 쉽고 쉬운 듯 어렵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밝은 는 누구에게나 같은데 어떤 사람은 저렇고 어떤 사람은 이렇다. 의심 많고 이상한 그 사람은 「하늘은 높이 있어도 낮은 곳의 소리를 다 듣는다」는 글귀를 애써 떠올려 제멋대로 짐작한다. 생각하는 것이 이것뿐이다. 그래서 하는 짓이 한편으론 교활하고 한편으론 우습다. 은 높이 계셔도 「낮은 곳의 소리를 다 듣는다」는 말이 겁나서, 말은 안 해도 속마음을 속인다. 「이 운수가 어떨지 이름이나 걸어 보자.」 그러면서 친구들을 꾀어 반가운 척 대접한다. 아서라, 저 사람아. 네가 몰래 속여도 한울님이 모르시겠느냐? 그중 생각 없는 사람은 끼니 걱정하는 처지에 없는 것을 구해 와 배부르게 대접하며, 마음이 통한다고 말한다. “좋은 운수와 덕을 함께 맞은 우리 동덕들(함께 도를 닦는 벗들), 우리끼리는 서로 아끼고 마음도 통하지 않는가?” 묻지도 않은 말, 청하지도 않은 소리를 다 털어놓으니, 그 꼴이 어떻겠는가? 교활하고 간사한 저 사람은 좋은 듯이 듣고 앉아 속으로 말한다. 「내 복인가, 내 복인가, 열세 글자 주문이 내 복인가? 이렇게 좋은 운수가 왜 예전에는 없었을까?」 신통한 힘이 있는 좋은 말은 귀 밖으로 다 흘려버린다. 그 가운데 좋지 않은 일만 자기에게 이롭게 들어 모은다. 가슴에 가득 차면 마지못한 듯 떠나간다. 한여름 삼복더위 저녁에 소리를 내며 오는 짐승이 있다. 귀에 와서 하는 짓이 정이라도 있는 듯하다. 세상은 몰래 해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것은 알리고 오니 의심 없이 있다가 끝내 해를 입으니 까닭을 모르겠다. 이게 웬일인가, 이게 웬일인가? 먼저 우는 그 짐승은 해칠 마음이 있었다면 소리를 낼 리가 없다. 이게 웬일인가, 이게 웬일인가? 아무튼 한 번 살펴보자. 잠깐 기다려 보니 그놈이 한 짓이 분명하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 우리 사람은 생각이 없다. 저 건너 배나무에서 배가 어찌 떨어졌을까 이상히 여기던 참에, 까마귀가 날아가서 모든 의심이 풀렸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 우리 사람은 생각이 없다. 대낮에도 도둑이 나온다는 말을 잘 알면서도,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 우리 사람은 생각이 없다. 제 배만 채우고 떠나갔으니, 모기 같은 놈이 바로 너로구나. 그 가운데 어질고 밝은 사람은 내 말을 잠깐 들어 보시오. 한울님의 덕과 하나임을 알았으니,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알 것이오. 그러나 예부터 지금까지 스승에게서 스승으로 전해 준다 해도, 본래의 뿌리에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나하나 거울삼아 빗대고(비) 일깨우는(흥) 말로 견주었으니, 대충 보고 넘기지 말고 자세히 읽고 맛보아라. 일고여덟 살부터 글을 배워 글귀를 찾아 외운다. 나라의 벼슬 시험인 과거에 붙어 세상에 이름을 떨치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깊고 깊은 웅덩이에 온 마음으로 지은 글을 넣고 나니 허무하다. 하늘의 운수만 바라다가, 많은 사람 가운데 몇몇만 붙는다. 의 큰 풍악으로 사흘 동안 잔치하니 그 모습이 대단하다. 이 일 저 일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어 그만두자고 다짐한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때마다 다니다 끝내 마음을 접으면 그것도 운수 아닌가? 먼 곳에 가면 이롭고 안 가면 해가 된다기에 무작정 떠났다. 가다 생각하니 길은 멀어지고 집은 자꾸 생각나,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길에서 서성인다. 이롭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이 길을 가련만,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 발길을 돌렸다. 저 사람은 못났구나. 글 네 자를 밝혀내니 예부터 전해 온 모든 것이 분명해졌구나.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을 때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처음 먹은 마음이 혹시 잘못될까 걱정되어 마음을 굳게 다시 먹었다. 대여섯 길 쌓여 갈 때는 보니 재미있고, 하고 나니 뿌듯했다. 어서 하자, 빨리 하자 하며 그럭저럭 다 되어 갈 때, 이번에도 저번에도 마음이 차츰 풀어졌다. 조급해서 자꾸 들여다보다가 지루해져 그만두었다. 다른 날 다시 보니, 한 만 더했으면 아쉬움 없이 이룰 일이었다. 어찌해서 이루지 못했는가? 이런 일을 보면, 성공할 운은 멀어지고 조급함은 잠깐일 뿐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오. 아름드리 좋은 나무가 두어 자 썩었다고 해도 「훌륭한 목수는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민망하다. 목수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면 어찌하겠는가? 이 말 저 말 다 하자니 말도 많고 글도 많아, 조금씩 적어 두니 이렇고 또 이렇다. 이 글 저 글 보고, 끝없는 그 이치를 「그렇지 않은 듯 그러한 것()」으로 살펴보시오. 있는 그대로 말하고(부) 일깨우는(흥) 말로 견주어 보면, 글도 끝이 없고 말도 끝이 없다. 끝없이 살펴 끝없이 알면, 끝없는 이 울타리 안에 끝없는 내가 아니겠는가?
『시경』에 이런 말이 있다. 「도끼 자루를 만들 때, 손에 쥔 도끼 자루를 보고 찍으니 그 본보기가 멀리 있지 않구나.」 내 앞에 보이는 것을 어길 일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도끼에 달린 것이 아니다. 눈앞의 일을 쉽게 여겨 깊이 헤아리지 않다 끝이 나쁘면 한이 되지 않겠는가? 세상일은 어려운 듯 쉽고 쉬운 듯 어렵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밝은 는 누구에게나 같은데 어떤 사람은 저렇고 어떤 사람은 이렇다. 의심 많고 이상한 그 사람은 「하늘은 높이 있어도 낮은 곳의 소리를 다 듣는다」는 글귀를 애써 떠올려 제멋대로 짐작한다. 생각하는 것이 이것뿐이다. 그래서 하는 짓이 한편으론 교활하고 한편으론 우습다. 은 높이 계셔도 「낮은 곳의 소리를 다 듣는다」는 말이 겁나서, 말은 안 해도 속마음을 속인다. 「이 운수가 어떨지 이름이나 걸어 보자.」 그러면서 친구들을 꾀어 반가운 척 대접한다. 아서라, 저 사람아. 네가 몰래 속여도 한울님이 모르시겠느냐? 그중 생각 없는 사람은 끼니 걱정하는 처지에 없는 것을 구해 와 배부르게 대접하며, 마음이 통한다고 말한다. “좋은 운수와 덕을 함께 맞은 우리 동덕들(함께 도를 닦는 벗들), 우리끼리는 서로 아끼고 마음도 통하지 않는가?” 묻지도 않은 말, 청하지도 않은 소리를 다 털어놓으니, 그 꼴이 어떻겠는가? 교활하고 간사한 저 사람은 좋은 듯이 듣고 앉아 속으로 말한다. 「내 복인가, 내 복인가, 이 내 복인가? 이렇게 좋은 운수가 왜 예전에는 없었을까?」 신통한 힘이 있는 좋은 말은 귀 밖으로 다 흘려버린다. 그 가운데 좋지 않은 일만 자기에게 이롭게 들어 모은다. 가슴에 가득 차면 마지못한 듯 떠나간다. 한여름 삼복더위 저녁에 소리를 내며 오는 짐승이 있다. 귀에 와서 하는 짓이 정이라도 있는 듯하다. 세상은 몰래 해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것은 알리고 오니 의심 없이 있다가 끝내 해를 입으니 까닭을 모르겠다. 이게 웬일인가, 이게 웬일인가? 먼저 우는 그 짐승은 해칠 마음이 있었다면 소리를 낼 리가 없다. 이게 웬일인가, 이게 웬일인가? 아무튼 한 번 살펴보자. 잠깐 기다려 보니 그놈이 한 짓이 분명하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 우리 사람은 생각이 없다. 저 건너 배나무에서 배가 어찌 떨어졌을까 이상히 여기던 참에, 까마귀가 날아가서 모든 의심이 풀렸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 우리 사람은 생각이 없다. 대낮에도 도둑이 나온다는 말을 잘 알면서도,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 우리 사람은 생각이 없다. 제 배만 채우고 떠나갔으니, 모기 같은 놈이 바로 너로구나. 그 가운데 어질고 밝은 사람은 내 말을 잠깐 들어 보시오. 한울님의 덕과 하나임을 알았으니,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알 것이오. 그러나 예부터 지금까지 스승에게서 스승으로 전해 준다 해도, 본래의 뿌리에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나하나 거울삼아 빗대고(비) 일깨우는(흥) 말로 견주었으니, 대충 보고 넘기지 말고 자세히 읽고 맛보아라. 일고여덟 살부터 글을 배워 글귀를 찾아 외운다. 나라의 벼슬 시험인 과거에 붙어 세상에 이름을 떨치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깊고 깊은 웅덩이에 온 마음으로 지은 글을 넣고 나니 허무하다. 하늘의 운수만 바라다가, 많은 사람 가운데 몇몇만 붙는다. 의 큰 풍악으로 사흘 동안 잔치하니 그 모습이 대단하다. 이 일 저 일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어 그만두자고 다짐한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때마다 다니다 끝내 마음을 접으면 그것도 운수 아닌가? 먼 곳에 가면 이롭고 안 가면 해가 된다기에 무작정 떠났다. 가다 생각하니 길은 멀어지고 집은 자꾸 생각나,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길에서 서성인다. 이롭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이 길을 가련만,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 발길을 돌렸다. 저 사람은 못났구나. 글 네 자를 밝혀내니 예부터 전해 온 모든 것이 분명해졌구나.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을 때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처음 먹은 마음이 혹시 잘못될까 걱정되어 마음을 굳게 다시 먹었다. 대여섯 길 쌓여 갈 때는 보니 재미있고, 하고 나니 뿌듯했다. 어서 하자, 빨리 하자 하며 그럭저럭 다 되어 갈 때, 이번에도 저번에도 마음이 차츰 풀어졌다. 조급해서 자꾸 들여다보다가 지루해져 그만두었다. 다른 날 다시 보니, 한 만 더했으면 아쉬움 없이 이룰 일이었다. 어찌해서 이루지 못했는가? 이런 일을 보면, 성공할 운은 멀어지고 조급함은 잠깐일 뿐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오. 아름드리 좋은 나무가 두어 자 썩었다고 해도 「훌륭한 목수는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민망하다. 목수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면 어찌하겠는가? 이 말 저 말 다 하자니 말도 많고 글도 많아, 조금씩 적어 두니 이렇고 또 이렇다. 이 글 저 글 보고, 끝없는 그 이치를 「그렇지 않은 듯 그러한 것()」으로 살펴보시오. 있는 그대로 말하고(부) 일깨우는(흥) 말로 견주어 보면, 글도 끝이 없고 말도 끝이 없다. 끝없이 살펴 끝없이 알면, 끝없는 이 울타리 안에 끝없는 내가 아니겠는가?
(부) 검결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덧붙임) 칼 노래(검결). 때가 왔구나, 때가 왔구나, 바로 나의 때로다. 다시 오지 않을 때로다. 만 대에 하나뿐인 사내로서, 오만 년 만에 맞는 때로다. 잘 드는 칼을 쓰지 않고 무엇 하리. 춤출 때 입는 긴 소매 옷(무수)을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슬며시 들었다. 넓고 아득한 하늘땅에 홀몸으로 비스듬히 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때가 왔다, 때가 왔다」 불러낸다. 용천검 날랜 칼은 해와 달을 하고, 느릿느릿 날리는 장삼 소매는 온 우주를 덮었구나. 옛날의 이름난 장수는 어디 있는가? 사내 앞에 당할 장사가 없다. 좋구나, 좋구나, 내 신세가 좋구나.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