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열하일기
박지원 (朴趾源)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이 초등판은 『꼭 읽어야 할 고전 선집』에서 읽는 대목만 담았습니다 — 「호질」
이 글을 읽기 전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중국을 다녀오며 쓴 『열하일기』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호랑이가 겉으로만 점잖은 선비 북곽 선생을 꾸짖습니다. 연암은 이 글이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중국 사람의 글이라고 적고, 끝에 자기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호질 — 호랑이가 꾸짖다〕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호랑이는 슬기롭고 거룩하며, 글과 무예를 갖추었습니다. 자애롭고 효성스러우며, 지혜롭고 어집니다. 씩씩하고 용감하며, 굳세고 사납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맞설 짐승이 없습니다. 그런데 비비는 호랑이의 위를 먹습니다. 죽우도 호랑이를 먹고, 박도 호랑이를 먹습니다. 오색사자는 큰 나무가 선 산봉우리에서 호랑이를 먹습니다. 자백도 호랑이를 먹습니다. 족견은 날아다니며 호랑이와 표범을 먹습니다. 황요는 호랑이와 표범의 심장을 꺼내 먹습니다. 활은 뼈가 없어서 호랑이와 표범에게 통째로 삼켜집니다. 그런 다음 뱃속에서 그 간을 먹습니다. 추이는 호랑이를 만나면 찢어 먹습니다. 호랑이는 맹안을 만나면 눈을 감고 감히 쳐다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맹안이 아니라 호랑이를 무서워합니다. 호랑이의 위엄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호랑이는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신령스러워집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한 번 먹으면, 먹힌 사람의 혼령인 은 굴각이 됩니다. 굴각은 호랑이 겨드랑이에 붙어 있습니다. 호랑이를 부엌으로 이끌고 솥 손잡이를 핥습니다. 그러면 집주인이 배가 고파져 아내에게 밤에 밥을 지으라고 합니다. 호랑이는 또 사람을 먹습니다. 두 번째로 먹힌 사람의 창은 이올이 됩니다. 이올은 호랑이 뺨에 붙어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덫이나 함정, 기계 활인 쇠뇌가 있는지 살핍니다. 그리고 먼저 장치를 풀어 놓습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세 번째 먹으면, 창은 육혼이 됩니다. 육혼은 호랑이 턱에 붙어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친구들 이름을 자꾸 칭찬합니다. 호랑이가 창들에게 물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는데,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할까?” 굴각이 말했습니다. “제가 전에 점을 쳐 보았습니다. 뿔도 없고 깃털도 없는, 머리가 검은 짐승입니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띄엄띄엄 느릿느릿 걷습니다. 꼬리가 뒤통수에 달려 있고, 엉덩이를 가리지 못합니다.” 이올이 말했습니다. “동문에 '의'라는 먹이가 있습니다. 입에 온갖 약초를 머금고 있어서 살에서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서문에는 '무'라는 먹이가 있습니다. 온갖 신에게 잘 보이려고 날마다 목욕해서 깨끗합니다. 이 둘 가운데서 고기를 고르십시오.” 호랑이가 수염을 곤두세우고 얼굴빛을 바꾸며 말했습니다. “'의(醫)'는 '의(疑)', 곧 의심하는 자다. 자기도 의심스러운 것을 사람에게 시험해서 해마다 수만 명을 죽인다. '무(巫)'는 '무(誣)', 곧 속이는 자다. 신을 핑계로 백성을 홀려서 해마다 수만 명을 죽인다. 죽은 사람들의 분노가 뼈에 사무쳐 금잠이라는 독벌레가 되었다. 독이 있어서 먹을 수 없다.” 육혼이 말했습니다. “숲속에 고기가 있습니다. 어진 간과 의로운 쓸개를 가졌습니다. 충성을 품고 깨끗함을 지녔습니다. 음악을 머리에 이고 예절을 밟고 다닙니다. 입으로는 온갖 학자의 말을 외웁니다. 마음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꿰뚫습니다. 이름은 '덕이 큰 선비'입니다. 등이 두툼하고 몸이 살져서 다섯 가지 맛이 다 들어 있습니다.” 호랑이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침을 흘리며, 하늘을 보고 웃었습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어떠냐?” 창들이 앞다투어 호랑이에게 권했습니다. “음과 양이 번갈아 도는 것을 도라고 합니다. 선비는 이것을 꿰뚫고 있습니다. 오행이 서로 낳고 육기가 서로 퍼집니다. 선비는 이것을 이끕니다. 이보다 더 맛있는 먹이는 없습니다.” 그러자 호랑이가 얼굴빛을 확 바꾸며 언짢아했습니다. “음양은 한 기운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비는 그것을 둘로 나누었으니 그 고기는 잡스럽다. 오행은 저마다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처음부터 서로 낳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억지로 어미와 자식을 만들고, 짠맛과 신맛을 나누어 붙였다. 그러니 맛이 순수하지 않다. 육기는 저절로 돌아가서 누가 이끌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함부로 자기가 다스린다고 하며 제 공을 자랑한다. 그런 것을 먹으면 딱딱하고 걸려서 소화가 안 되지 않겠느냐?” 정나라 고을에 벼슬을 바라지 않는 선비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북곽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마흔 살에 손수 책 만 권을 바로잡았습니다. 아홉 경전의 뜻을 풀어서 다시 책 만 오천 권을 썼습니다. 천하의 임금인 천자는 그의 의로움을 칭찬했고, 여러 나라 임금인 제후들은 그의 이름을 우러렀습니다. 고을 동쪽에는 아름답고 일찍 남편을 잃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동리자였습니다. 천자는 남편을 잃고도 몸가짐을 굳게 지킨 그 절개를 칭찬했고, 제후들은 그 어짊을 우러렀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 둘레 몇 리를 떼어 '동리 과부의 마을'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동리자는 혼자 사는 절개를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다섯 있었는데, 저마다 성이 달랐습니다. 다섯 아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강 북쪽에서는 닭이 울고, 강 남쪽에서는 샛별이 떴다. 그런데 방 안에서 나는 소리가 어쩌면 저렇게 북곽 선생 목소리와 닮았을까?” 다섯 형제는 번갈아 문틈으로 엿보았습니다.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부탁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선생님의 덕을 우러러 왔습니다. 오늘 밤 선생님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북곽 선생은 옷깃을 여미고 단정히 앉아 시를 읊었습니다. “병풍에는 원앙새, 반딧불은 반짝반짝. 가마솥과 세발솥은 누구를 본떠 만들었나.” 이것은 ''의 방식입니다. 다섯 아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예법에는 과부의 집 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북곽 선생은 어진 분이다. 듣자니 정나라 성문이 무너져 여우가 굴을 팠다고 한다.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사람 모습으로 둔갑한다고 한다. 저것은 여우가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함께 꾀를 냈습니다. “여우의 갓을 얻으면 집이 큰 부자가 된다고 한다. 여우의 신을 얻으면 대낮에도 그림자를 감출 수 있다고 한다.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아양을 잘 떨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이 여우를 죽여서 나누어 갖지 않겠느냐?” 그래서 다섯 아들은 함께 둘러싸고 때렸습니다. 북곽 선생은 깜짝 놀라 달아났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두려워서 한쪽 다리를 목에 걸었습니다. 귀신처럼 춤추고 귀신처럼 웃으며 문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다 똥오줌이 가득한 들판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겨우 기어올라 머리를 내밀어 보니, 호랑이가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얼굴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했습니다. 코를 막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며 한숨지었습니다. “선비여, 냄새가 지독하구나!”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기어 나갔습니다. 세 번 절하고 무릎을 꿇은 뒤,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호랑이님의 덕은 참으로 지극하십니다! 큰사람은 그 변화를 본받습니다. 임금은 그 걸음을 배웁니다. 자식은 그 효도를 본받고, 장수는 그 위엄을 따릅니다. 이름은 신령한 용과 나란하여, 한 번은 바람을 한 번은 구름을 일으킵니다. 땅 위의 천한 신하가 감히 그 바람 아래에 엎드립니다.” 호랑이가 꾸짖었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라! 전에 듣기로 선비는 아첨꾼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너는 평소에 세상의 온갖 나쁜 이름을 모아 함부로 나에게 덮어씌웠다. 그러더니 이제 급하니까 내 앞에서 아첨을 하는구나. 누가 그 말을 믿겠느냐? 세상의 이치는 하나다. 호랑이가 정말 악하다면 사람의 본성도 악하다.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면 호랑이의 본성도 착하다. 너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은 인·의·예·지·신 다섯 가지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구나.
너는 남을 타이르고 권할 때 늘 네 가지 큰 도리를 말한다. 그런데 도시에는 코가 베이고 발꿈치가 잘리고, 얼굴에 먹물 글씨를 새긴 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다섯 가지 도리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먹물 바늘과 도끼와 톱을 날마다 쉴 틈 없이 써도 그 나쁜 짓을 막지 못한다. 그런데 호랑이 집안에는 이런 형벌이 없다. 이것만 보아도 호랑이의 본성이 사람보다 낫지 않으냐? 호랑이는 풀과 나무를 먹지 않는다. 벌레와 물고기도 먹지 않는다. 술처럼 정신을 어지럽히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작고 여린 것들은 차마 해치지 못한다. 산에 들어가서는 노루와 사슴을 사냥한다. 들에서는 말과 소를 잡는다. 먹는 일에 얽매이거나, 먹을 것 때문에 다툰 적이 없다. 호랑이의 길이 어찌 밝고 떳떳하지 않겠느냐? 호랑이가 노루와 사슴을 먹을 때는 너희가 호랑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과 소를 먹으면 사람들은 원수라고 한다. 노루와 사슴은 사람에게 베푼 것이 없고, 말과 소는 너희에게 공이 있어서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말과 소가 태워 주고 짐을 날라 준 수고를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을 따르는 정성도 생각하지 않는다. 날마다 잡아서 부엌을 채우고, 뿔과 갈기까지 남기지 않는다. 그러고도 다시 우리 노루와 사슴까지 빼앗는다. 그래서 우리는 산에서도 먹을 것이 모자라고 들에서도 양식이 떨어진다. 하늘이 공평하게 다스린다면, 너희는 잡아먹혀야 하겠느냐, 살려 두어야 하겠느냐? 제 것이 아닌데 가져가는 것을 도둑이라 한다. 목숨을 해치고 남을 다치게 하는 자를 도적이라 한다. 너희는 밤낮으로 허둥지둥 팔을 휘두르고 눈을 부라린다. 남의 것을 움켜쥐고 빼앗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심한 자는 돈을 형님이라고 부른다. 장수 자리를 얻으려고 아내를 죽이기까지 한다. 이러면 사람의 도리로는 더 따질 수도 없다. 너희는 또 메뚜기의 먹이를 빼앗고, 누에의 옷을 빼앗는다. 벌을 쫓아내고 꿀을 훔친다. 심한 자는 개미 알로 젓갈을 담가 조상 제사상에 올린다. 그 잔인하고 모진 짓이 누가 너희보다 심하겠느냐? 너희는 이치와 본성을 따지며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인다. 하늘이 정한 대로 보면 호랑이와 사람은 똑같이 만물 가운데 하나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은 어진 마음으로 보자. 호랑이와 메뚜기, 누에, 벌, 개미는 사람과 함께 길러진다. 그러니 서로 해쳐서는 안 된다. 착하고 나쁨을 가린다면, 벌과 개미의 집을 대놓고 터는 자는 하늘과 땅의 큰 도둑이 아니겠느냐? 메뚜기와 누에의 것을 거리낌 없이 훔치는 자는 어짊과 의로움의 큰 도적이 아니겠느냐? 호랑이는 표범을 먹은 적이 없다. 같은 무리는 차마 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노루와 사슴을 먹는 것은 사람이 먹는 것보다 적다. 호랑이가 말과 소를 먹는 것도 사람이 먹는 것보다 적다. 호랑이가 사람을 먹는 것도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보다 적다. 지난해 관중에 큰 가뭄이 들어 서로 잡아먹은 백성이 수만 명이었다. 몇 해 전 산동에 큰물이 나서 서로 잡아먹은 백성이 수만 명이었다. 그래도 에 서로 죽인 것에 비하겠느냐? 춘추 시대에는 덕을 세운다는 전쟁이 열일곱 번, 원수를 갚는다는 전쟁이 서른 번이었다. 피가 천 리를 흐르고, 시체가 백만이나 쓰러졌다. 그러나 호랑이 집안은 홍수와 가뭄을 모르니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원수도 은혜도 다 잊으니 남과 부딪치지 않는다. 타고난 운명을 알고 그대로 따르니, 무당과 의원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타고난 몸과 본성대로 사니, 세상의 이익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랑이는 슬기롭고 거룩하다. 호랑이 털의 얼룩무늬 한 점만 보아도 세상에 '문(文)'을 보여 줄 수 있다. 작은 무기 하나 빌리지 않고 발톱과 이빨만 믿는다. 그래서 세상에 무예를 빛낸다. 같은 제사 그릇은 세상에 효도를 널리 알린다. 하루에 한 번 사냥하면 까마귀, 솔개, 땅강아지, 개미가 남은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 그 어짊은 다 쓸 수도 없을 만큼 크다. 남을 헐뜯는 자는 먹지 않는다. 병든 사람과 몸이 불편한 사람은 먹지 않는다. 입은 사람도 먹지 않는다. 그 의로움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런데 너희가 먹는 방식은 어찌 어질다 하겠느냐! 덫과 함정으로도 모자라 그물, 통발, 투망, 주낙, 새그물, 어망까지 만든다. 처음 그물을 엮은 자가 세상에 재앙을 처음 퍼뜨린 자다. 또 비, 궤, 수, 창, 구, 삭, 단, 삭, 모 같은 온갖 창과 칼이 있다. 대포를 쏘면 그 소리가 중국의 높은 산 화악산을 무너뜨릴 듯하다. 불꽃이 하늘과 땅에 쏟아지니 벼락보다 무섭다. 그래도 모자라 또 무기를 만든다. 부드러운 붓털을 입으로 빨고 끈끈한 풀로 붙여 끝을 뾰족하게 만든다. 몸통은 대추씨만 하고 길이는 한 치도 안 된다. 오징어 먹물에 담갔다가 이리저리 찌르고 벤다. 굽은 것은 창 같고, 날 선 것은 칼 같다. 뾰족한 것은 짧은 칼 같고, 갈라진 것은 갈래창 같다. 곧은 것은 화살 같고, 휜 것은 활 같다. 이 무기가 한 번 움직이면 온갖 귀신이 밤에 운다. 서로 잡아먹는 잔인함이 누가 너희보다 심하겠느냐?” 북곽 선생은 자리에서 물러나 엎드렸습니다. 뒷걸음질 치며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렸습니다. “옛글에 '나쁜 사람이라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욕하면 하늘의 임금 상제를 섬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땅 위의 천한 신하가 감히 그 바람 아래에 엎드립니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지만 오래도록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너무 두렵고 떨려서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보니 동쪽 하늘이 밝아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이미 가 버린 뒤였습니다. 아침에 밭을 갈러 나온 농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째서 이렇게 이른 아침에 들판에서 절을 하십니까?” 북곽 선생이 말했습니다. “옛말에 '하늘이 높다지만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고, 땅이 두껍다지만 살금살금 걷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네.”
옛 시대의 생각이에요
연암이 말합니다. 이 글은 지은이 이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 요즘 중국 사람이 슬프고 분한 마음으로 쓴 글일 것입니다. 세상의 운수가 긴 밤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가 끼치는 재앙은 사나운 짐승보다 심합니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선비들은 글귀나 주워 모아 여우처럼 세상에 아첨합니다. 이들은 무덤을 파헤치는 선비이고, 승냥이와 이리도 먹지 않을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읽어 보면 이치에 어긋나는 말이 많습니다. 「거협」이나 「도척」과 뜻이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뜻있는 선비가 어찌 하루라도 중국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청나라가 세상을 다스린 지는 겨우 4대째입니다. 그런데도 임금들이 모두 글과 무예를 갖추고 오래 살았습니다. 평화로운 세월이 백 년이나 이어져 온 세상이 조용합니다. 이것은 한나라와 당나라 때에도 없던 일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지키고 북돋우려는 뜻을 보면, 아마 하늘이 보낸 관리일 것입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하늘이 일일이 일러 주는지 의심하여 성인에게 물었습니다. 성인은 하늘의 뜻을 정성껏 풀어 말했습니다.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행동과 일로 보여 준다.” 저는 일찍이 이 대목을 읽고 의문이 더 깊어졌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하늘이 행동과 일로 보여 준다고 합시다. 그런데 오랑캐가 중국을 바꾸어 놓은 것은 세상의 큰 치욕입니다. 백성들의 억울함과 괴로움은 어떻겠습니까? 향기로운 냄새와 비린내, 누린내는 저마다 그 덕을 닮습니다. 그러면 신들은 어떤 냄새를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자리에서 보면 중국과 오랑캐는 정말로 다릅니다. 하지만 하늘이 정한 대로 보면, 은나라의 모자와 주나라의 관은 저마다 그 시대의 제도를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청나라 사람의 붉은 모자만 의심하겠습니까? 그래서 ''는 말이 그 사이에 퍼졌습니다. 사람과 하늘이 서로 돕는다는 이치는 도리어 기운에 밀려났습니다. 옛 성인의 말씀에 비추어 맞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때마다 '하늘과 땅의 운수가 이렇다'고 말합니다. 아아, 이것이 어찌 정말 운수 때문이겠습니까? 아! 명나라 임금의 은혜는 이미 말라 버렸습니다. 중국 선비들은 스스로 머리를 깎은 지 백 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자나 깨나 가슴을 치며 명나라 왕실을 생각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중국을 차마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청나라가 자기를 위해 세운 꾀도 엉성합니다. 앞 시대의 오랑캐 임금들은 끝에 가서 중국을 흉내 내다가 약해졌습니다. 청나라는 이것을 거울로 삼아 쇠로 된 비석을 만들어 궁궐의 활터 건물인 전정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석 글을 보면, 자기들 옷과 모자를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늘 드러납니다. 그러면서도 힘이 세고 약한 것에만 매달리니 어리석습니다. 훌륭한 글과 뛰어난 무예로도 마지막 임금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옷과 모자 같은 작은 것으로 강해지려 하다니요? 옷과 모자가 정말 싸우기에 편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북쪽과 서쪽 오랑캐의 옷과 모자는 싸우기 좋은 옷이 아니겠습니까? 힘으로 서북쪽의 다른 오랑캐들이 도리어 중국의 옛 풍속을 따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세상에서 홀로 강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을 부끄러운 처지에 가두어 놓고 외칩니다. '잠시 부끄러움을 참고 나를 따라 강해져라.' 나는 그것이 강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시와 녹림의 무리처럼 꼭 눈썹을 붉게 칠하고 노란 두건을 써서 남과 달라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모자를 벗어 땅에 던지기만 해도, 청나라 황제는 앉은 채로 천하를 잃을 것입니다. 믿고 있던 힘으로는 도리어 망하지 않기에도 바쁠 것입니다. 그러니 비석을 묻어 뒷사람에게 가르침을 남긴 것이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이 글에는 본래 제목이 없었습니다. 이제 글 속에 나오는 '호질(호랑이가 꾸짖다)' 두 글자를 따서 제목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맑아지기(淸)를 기다립니다.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