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성학십도
이황 (李滉)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이 글을 읽기 전에
퇴계 이황이 예순여덟 살 때 젊은 임금 선조에게 올린 글과 열 장의 그림입니다. 임금이 성인이 되는 공부를 날마다 곁에 두고 보도록, 옛 학자들의 그림과 글을 골라 모으고 자기 풀이를 붙였습니다.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
성학십도를 그림과 함께 임금께 올리는 글
높은 벼슬인 판중추부사 자리에 있는 신하 이황이 두 번 절하고 글을 올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는 모양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옛날 라는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성인은 그것을 보고 『주역』의 기호인 괘와 효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도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도는 아주 넓고 넓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요? 옛 가르침은 천만 가지나 됩니다. 어느 길로 들어가야 할까요? 성인이 되는 배움에는 큰 실마리가 있습니다. 마음을 닦는 방법에도 가장 중요한 곳이 있습니다. 그것을 그림으로 걸어 밝히고, 글로 풀어 보여 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도로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바탕을 볼 수 있습니다. 뒷날의 어진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어서 이런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임금의 마음 하나에서 나라의 모든 일이 시작되고 모든 책임이 모입니다. 온갖 욕심과 나쁜 생각이 번갈아 그 마음을 파고듭니다. 한 번이라도 게으르고 소홀하면 제멋대로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히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의 거룩한 임금과 어진 왕들은 이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늘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하고 삼갔습니다. 날마다 그렇게 하면서도 아직 모자라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임금을 가르치는 스승의 자리를 두었습니다.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벼슬도 두었습니다. 앞에는 의, 뒤에는 승이라는 신하를 두었습니다. 왼쪽에는 보, 오른쪽에는 필이라는 신하를 두었습니다. 수레를 탈 때는 호위 군사의 규칙이 있었습니다. 조정에 서면 벼슬아치들이 지키는 법도가 있었습니다. 기대어 쉴 때는 깨우치는 노래로 바른말을 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는 곁에서 모시는 사람이 계하는 말을 했습니다. 일을 할 때는 악사와 역사 기록 관리가 이끌어 주었습니다. 한가할 때는 악공들이 시를 읊어 주었습니다. 쟁반과 세숫대야, 책상과 지팡이, 칼, 문과 창문에도 글을 새겼습니다. 눈이 가고 몸이 머무는 곳마다 깨우치는 글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지키고 몸을 다잡는 방법이 이렇게 빈틈없었습니다. 그래서 덕은 날로 새로워지고, 하는 일은 날로 넓어졌습니다. 작은 잘못도 없이 훌륭한 임금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뒷날의 임금들도 하늘의 명을 받아 임금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책임이 얼마나 무겁고 크겠습니까? 그런데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은 이처럼 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거룩하다고 뽐냅니다. 높은 신하들 위에서 거만하게 제멋대로 굽니다. 그러다 끝내 백성이 받들던 마음이 무너지고, 나라가 어지러워져 망하고 맙니다. 그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때 임금을 바른길로 이끌려는 신하들은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장구령은 『금감록』을 올렸습니다. 송경은 『무일도』를 바쳤습니다. 이덕유는 『단의육잠』을 바쳤습니다. 진덕수는 『빈풍칠월도』를 올렸습니다. 모두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깊은 마음이었습니다. 착한 일을 권하고 가르침을 드리려는 간절한 뜻이었습니다. 임금이라면 어찌 깊이 생각하고 공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주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여러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병이 들어 시골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풀과 나무와 함께 조용히 늙어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헛된 이름이 잘못 알려졌습니다. 임금께서 저를 이라는 무거운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놀랍고 두려웠지만 사양하고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미 분에 넘치는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 임금께 성인의 배움을 권하고 임금의 덕을 도와야 합니다. 요임금과 순임금 때처럼 나라가 잘되게 하는 일입니다.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한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 학문은 거칠고 엉성합니다. 말솜씨도 서툴고 어눌합니다. 게다가 병이 겹쳐 임금을 뵈러 가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겨울 추위가 온 뒤로는 아예 나가지 못했습니다. 제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걱정스럽고 두려워 몸 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엎드려 생각해 보니, 처음 올린 학문에 대한 글은 임금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뒤 궁궐에서 여러 번 드린 말씀도 임금의 밝은 생각을 돕지 못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제 정성으로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옛 어진 사람과 군자들이 남긴 그림과 글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인의 배움을 밝히고 마음 닦는 법을 깨쳐 그림과 풀이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로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바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들은 해와 별처럼 밝게 세상에 전해집니다. 그래서 감히 이것을 임금 곁에 올리려 합니다. 옛 임금들은 악공에게 시를 읊게 하고, 물건에 글을 새겼습니다. 그 뜻을 대신하려는 것입니다. 지난 성현의 힘을 빌려 앞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더욱 뛰어난 것을 골라 일곱 가지를 얻었습니다. 그중 「심통성정도」는 정씨의 그림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작은 그림 두 개를 덧붙였습니다. 나머지 세 가지는 그림은 제가 그렸습니다. 하지만 글과 뜻, 조목과 짜임은 모두 앞선 어진 사람들의 것입니다. 제가 새로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합하여 『성학십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림마다 아래에 제 얕은 생각도 외람되게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깨끗이 베껴 써서 올립니다. 다만 추위와 병 속에서 억지로 하느라 눈은 흐리고 손은 떨렸습니다. 그래서 글씨가 반듯하지 못합니다. 줄과 글자를 고르게 맞추는 것도 법식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 버리지 않으신다면, 이 책을 경연의 신하들에게 내려 주십시오. 자세히 의논해 틀린 곳을 고치고 채우게 해 주십시오. 그다음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바르게 다시 쓰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맡은 관청에 보내 병풍 하나를 만들게 해 주십시오. 그 병풍을 한가로이 쉬시는 곳에 펼쳐 두십시오. 아니면 작은 책 한 권으로 따로 만들어 늘 책상 위에 두십시오. 고개를 숙이거나 들거나 돌아볼 때마다 보고 살펴 스스로를 경계하십시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작은 충성을 바치려는 제 소원이 이보다 더 다행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 다 말씀드리지 못한 뜻이 있어 거듭 말씀드립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기자도 무왕에게 『홍범』을 풀어 줄 때 말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슬기라 한다. 슬기는 성인을 만든다." 마음은 가슴속에 있는데, 텅 비어 있고 아주 신령합니다. 이치는 그림과 글에 나타나 있는데, 아주 밝고 참됩니다. 텅 비고 신령한 마음으로 밝고 참된 이치를 찾으면 얻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서 얻고, 슬기로워져 성인이 되는 일을 오늘도 보여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신령해도 그것을 붙잡아 이끄는 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일이 눈앞에 닥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치가 밝고 참되어도 비추어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늘 눈으로 보면서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며 깊이 생각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공자도 말씀하셨습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배운다는 것은 그 일을 익혀 참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가르침에서는 마음에서 찾지 않으면 어두워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생각해서 깊은 뜻에 닿아야 합니다. 또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위태로워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배워서 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생각과 배움은 서로를 일깨우고 서로를 채워 줍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밝으신 임금께서는 이 이치를 깊이 살피십시오. 먼저 뜻을 세우십시오.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힘차게 일어나 두 가지 공부에 힘쓰십시오. 경을 지키는 것은 생각과 배움을 함께 하는 길입니다. 움직임과 고요함을 꿰뚫고, 안과 밖을 합하고, 드러난 것과 숨은 것을 하나로 만드는 길입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이 마음을 엄숙하고 고요하고 한결같게 지킵니다. 그리고 이 이치를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가려내며 끝까지 파고듭니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때에도 더욱 엄하고 공손하게 조심하고 두려워하십시오. 혼자만 아는 작은 생각에서는 더욱 꼼꼼하게 스스로를 살피십시오. 그림 하나를 생각할 때는 그 그림에만 마음을 모으십시오. 다른 그림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것처럼 하십시오. 일 하나를 익힐 때는 그 일에만 마음을 모으십시오. 다른 일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것처럼 하십시오.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하여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게 하십시오. 밤 기운이 맑을 때 실마리를 찾아 깊이 맛보십시오. 또 날마다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할 때 몸으로 겪으며 길러 가십시오. 처음에는 손이 묶인 듯 답답하고, 앞뒤가 안 맞는 듯 어려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괴롭고 즐겁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옛사람은 이것을 '크게 나아갈 조짐'이라 했습니다. 또 '좋은 소식의 실마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때문에 절대 낙담하지 마십시오. 더욱 자신을 믿고 더욱 힘쓰십시오. 참된 노력이 많이 쌓이고 힘쓴 지 오래되면, 마음과 이치가 저절로 서로 스며듭니다. 그러면 모르는 사이에 막힘없이 꿰뚫어 알게 됩니다. 익힘과 일도 서로 익숙해져 점점 편안하게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하나씩 따로 애썼지만, 이제는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 얻는 경지'입니다. 또 '살아 움직여 멈출 수 없는 효과'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힘써 자기 재주를 다하면 어떻게 될까요? 공자의 제자 안자처럼 마음이 어짊을 어기지 않게 되고, 그 안에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담깁니다. 공자의 제자 증자처럼 정성과 너그러움으로 한결같이 꿰뚫게 되고, 도를 전하는 책임이 그 몸에 놓입니다.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날마다의 생활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조화롭고 만물이 잘 자라는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덕스러운 행동이 사람 사이의 도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깊은 이치를 얻게 됩니다. 이 그림과 풀이는 겨우 열 장의 종이에 차례로 적은 것입니다. 생각하고 익히는 것도 평소 한가로이 지내는 곳에서 하는 공부일 뿐입니다. 하지만 도를 이루어 성인이 되는 요점이 여기에 다 있습니다. 근본을 바로잡아 나라를 잘 다스리는 뿌리도 여기에 다 있습니다. 임금께서 이것을 마음에 두고 뜻을 더해 주시기만 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해 주십시오. 가볍다고 소홀히 하거나, 번거롭다고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그러면 나라에도 아주 다행이고, 신하와 백성에게도 아주 다행일 것입니다. 시골 사람은 따뜻한 햇볕과 맛있는 미나리를 임금께 바치고 싶어 합니다. 저도 그런 정성을 누를 수 없어 엄하심을 무릅쓰고 이것을 바칩니다. 황송하고 두려워 숨을 죽이고 임금의 처분을 기다립니다.
太極圖
첫째 그림은 도이다. ○ 이것은 '이면서 태극'이라는 것이다. 속에서 그 바탕을 가리킨 것이다. 다만 음양과 섞이지 않는 쪽을 두고 말했을 뿐이다. 이것이 움직이면 양이 되고, 멈추면 음이 된다. 가운데 '중'은 그 바탕이다. 하나는 움직임의 뿌리이다. 하나는 멈춤의 뿌리이다. 다음은 물·불·나무·쇠·흙이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해서 이 다섯 가지를 낳는 것이다. 음은 멈추고 양은 움직이며, 물·불·나무·쇠·흙이 있다. 땅의 길이 이루어져 여자가 된다. 하늘의 길이 이루어져 남자가 된다. 그리하여 만물이 생겨난다. 이것은 무극과 음양, 이 틈 없이 묘하게 합해진 것이다. ○ '하늘은 남자, 땅은 여자'는 기운이 변해 생기는 쪽에서 말한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저마다 성품을 하나씩 가진다. 그래도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나의 태극이다. ○ '만물이 생겨난다'는 모양을 갖춰 생기는 쪽에서 말한 것이다. 만물도 저마다 성품을 하나씩 가진다. 그래도 만물은 모두 하나의 태극이다.
끝이 없으면서 가장 큰 뿌리, 그것이 태극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는다. 움직임이 끝까지 가면 멈춘다. 멈추어 음을 낳는다. 멈춤이 끝까지 가면 다시 움직인다.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추는 것이 서로의 뿌리가 된다. 음과 양으로 나뉘어 두 바탕이 선다.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해 물·불·나무·쇠·흙을 낳는다. 이 다섯 기운이 차례대로 퍼져 네 계절이 돌아간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다.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끝이 없는 무극이다. 오행이 생길 때 저마다 성품을 하나씩 가진다. 무극의 참된 이치와 음양·오행의 알맹이가 묘하게 합해 엉긴다. 하늘의 길이 이루어져 남자가 되고, 땅의 길이 이루어져 여자가 된다. 두 기운이 서로 느끼고 움직여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낳고 또 낳아 끝없이 변한다. 오직 사람만이 가장 빼어난 기운을 얻어 가장 신령하다. 몸이 생기고 나면 정신이 깨어나 알게 된다. 다섯 가지 성품이 바깥 일에 움직인다. 그러면 착함과 나쁨이 나뉘고 온갖 일이 생긴다. 은 알맞음, 바름, 어짊, 옳음으로 이것을 바로잡는다. 그리고 고요함을 으뜸으로 삼아 사람의 기준을 세운다. 그래서 성인은 하늘땅과 덕이 같다. 해와 달과 밝음이 같다. 네 계절과 차례가 같다. 과 좋고 나쁜 일이 같다. 군자는 이것을 닦으니 좋은 일이 생긴다. 소인은 이것을 거스르니 나쁜 일이 생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의 길을 세운 것은 음과 양이다. 땅의 길을 세운 것은 부드러움과 굳셈이다. 사람의 길을 세운 것은 어짊과 옳음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처음을 살피고 끝을 돌아보니, 죽고 사는 이치를 안다.' 위대하구나, 『』이여! 이것이 그 가장 깊은 뜻이로다.
가 말하였다. "『태극도설』은 먼저 음양이 변하는 뿌리를 말한다. 그다음 사람이 타고난 것으로 그것을 밝힌다. '오직 사람만이 빼어난 기운을 얻어 가장 신령하다'부터는 사람의 성품을 말한다. 그 성품은 순수하고 아주 착하다. 이것이 바로 태극이다. 몸이 생기고 정신이 깨어나는 것은 양이 움직이고 음이 멈추는 일이다. 다섯 성품이 움직이는 것은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해 오행의 성품을 낳는 일이다. 착함과 나쁨이 나뉘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생기는 모습과 같다. 온갖 일이 생기는 것은 만물이 생겨나는 모습과 같다. '성인이 알맞음·바름·어짊·옳음으로 바로잡고, 고요함을 으뜸으로 사람의 기준을 세웠다'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태극을 온전히 얻어 하늘땅과 틈 없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래서 뒤에서 하늘땅, 해와 달, 네 계절, 과 모두 같다고 했다." 또 말하였다. "성인은 애써 닦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사람이다. 거기까지 이르지 못해 애써 닦는 것이 군자가 잘되는 까닭이다. 그것을 모르고 거스르는 것이 소인이 잘못되는 까닭이다. 닦느냐 거스르느냐는 공경하느냐 제멋대로 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경하면 욕심이 줄고 가 밝아진다. 욕심을 줄이고 또 줄여 없는 데까지 이르면, 고요할 때는 마음이 텅 비고, 움직일 때는 곧아진다. 그렇게 해야 성인을 배울 수 있다."
○ 오른쪽은 염계 선생 주돈이가 직접 그린 그림과 풀이입니다. 평암 엽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그림은 『주역』의 풀이 글인 「계사」의 뜻을 넓혀 밝힌 것이다. 「계사」에는 '『주역』에 태극이 있고, 태극이 두 가지를 낳고, 두 가지가 네 가지를 낳는다'고 했다. 다만 『주역』은 라는 기호로 말했고, 이 그림은 만물이 생기는 일로 말했다." 주자는 "이것은 도리의 가장 큰 머리가 되는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백 대 동안 학문의 샘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 그림을 맨 앞에 두는 것은 『』이 이 글을 맨 앞에 둔 뜻과 같습니다. 성인을 배우는 사람은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공부에 힘써야 합니다. 그 공부가 열매를 맺는 날, 하나의 샘까지 거슬러 올라가 끝까지 닿게 됩니다. 이것이 '이치를 다 알고 성품을 다해 하늘의 뜻에 이르는 것'입니다. 또 '신묘한 것을 다 알고 변화를 깨달아 덕이 크게 되는 것'입니다.
西銘圖
둘째 그림은 도이다. 윗부분은 '이치는 하나지만 나뉨은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 나처럼 작은 존재가 그 사이에 섞여 살고 있다. 그래서 하늘땅에 가득한 기운이 내 몸이다. 하늘땅을 이끄는 이치가 내 성품이다. 우리 백성과 만물은 모두 형제와 같다. 이것은 이치가 모두 하나라서 함께 생겨나는 을 말한 것이다. 백성은 나와 한 배에서 난 형제요, 만물은 나의 벗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물의 나뉨이 달라서 넓혀 가며 베푸는 어짊을 말한 것이다. 훌륭한 임금은 우리 부모의 맏아들이다. 그 큰 신하는 맏아들의 집안일을 돕는 사람이다. 이것은 임금과 신하의 나뉨이 다른 것이다. 나이 많은 이를 공경하는 것은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는 길이다. 외롭고 약한 이를 아끼는 것은 아이를 아이로 돌보는 길이다. 이것은 어른과 아이의 나뉨이 다른 것이다. 성인은 하늘땅과 덕이 같은 사람이다. 어진 사람은 그 가운데 빼어난 사람이다. 이것은 성인과 어진 이의 나뉨이 다른 것이다. 세상에는 병들고 약한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 외로운 사람, 홀아비와 도 있다. 모두 나의 형제인데, 어려움에 빠져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귀하고 천한 나뉨은 다르지만, 이치는 하나로 돌아간다.
서명도 아래 그림이다. 아랫부분은 부모를 섬기는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는 길을 밝힌다. 때에 맞게 이것을 지키는 것은 자식이 부모의 뜻을 돕는 일이다. 즐거워하며 걱정하지 않는 것은 깨끗한 이다. 부모의 뜻을 어기는 것을 '덕을 거스른다'고 한다. 어짊을 해치는 것을 '해친다'고 한다. 나쁜 짓을 돕는 사람을 '못난 자식'이라고 한다. 타고난 몸을 바르게 쓰는 사람을 '부모를 꼭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도리를 다하는지, 못 하는지의 나뉨이다. 변화를 알면 부모의 일을 잘 이어 펼친다. 신묘한 이치를 다 알면 부모의 뜻을 잘 잇는다. 방 안 구석에서도 부끄럽지 않아야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다. 마음을 지키고 성품을 기르는 것이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 성인은 덕이 하늘땅과 같아서 도리를 다한다. 어진 이는 그 가운데 빼어난 사람이라 도리를 다하려고 애쓴다. 맛있는 술을 싫어한 것은 숭백의 아들 우임금이 부모를 모신 방법이다. 인재를 기른 것은 영 땅을 지키던 사람이 은혜를 널리 베푼 것이다. 수고를 멈추지 않고 부모를 기쁘게 한 것은 순임금이 이룬 일이다. 도망칠 곳이 없는데도 무서운 벌을 기다린 것은 의 공경이다. 받은 몸을 다치지 않게 지키다 돌아간 사람은 이다. 부모의 명령을 용감하게 따른 사람은 백기이다. 이것은 성인과 어진 이가 저마다 도리를 다한 것이다. 부자가 되고 귀해지는 복은 내 삶을 넉넉하게 하려는 것이다. 가난하고 천하고 걱정이 많은 것은 나를 단련해 다 자라게 하려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는 내가 따르며 섬기고, 죽으면 내가 편히 쉬리라. 도리를 다하는 것은 여기서 끝에 이른다.
하늘을 아버지라 하고 땅을 어머니라 한다. 나처럼 작은 것이 그 사이에 섞여 산다. 그러니 하늘땅에 가득한 기운이 내 몸이다. 하늘땅을 이끄는 이치가 내 성품이다. 백성은 나의 형제요, 만물은 나의 벗이다. 훌륭한 임금은 우리 부모의 맏아들이다. 큰 신하는 맏아들 집안일을 돕는 사람이다. 나이 많은 이를 공경하는 것은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는 길이다. 외롭고 약한 이를 아끼는 것은 아이를 아이로 돌보는 길이다. 성인은 하늘땅과 덕이 같은 사람이다. 어진 이는 그 가운데 빼어난 사람이다. 세상에는 병들고 약한 이, 몸이 불편한 이가 있다. 외로운 이, 와 과부도 있다. 모두 내 형제인데, 어려움에 빠져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이다. 때에 맞게 이것을 지키는 것은 자식이 부모 뜻을 돕는 일이다. 즐거워하며 걱정하지 않는 것은 깨끗한 효도이다. 부모 뜻을 어기면 '덕을 거스른다'고 한다. 어짊을 해치면 '해친다'고 한다. 나쁜 짓을 도우면 '못난 자식'이라고 한다. 타고난 몸을 바르게 써서 부모를 닮으면 '효자'라고 한다. 변화를 알면 부모의 일을 잘 이어 펼친다. 신묘한 이치를 다 알면 부모의 뜻을 잘 잇는다. 방 구석에서도 부끄럽지 않아야 욕되지 않는다. 마음을 지키고 성품을 기르는 것이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 맛있는 술을 싫어한 은 그렇게 부모를 모셨다. 인재를 기른 영 땅의 관리는 그렇게 은혜를 넓혔다. 수고를 멈추지 않고 부모를 기쁘게 한 것은 순임금이 이룬 일이다. 피할 곳 없이 무서운 벌을 기다린 것은 신생의 공경이다. 받은 몸을 온전히 지켜 돌아간 사람은 증삼이다. 명령을 용감히 따른 사람은 이다. 부자가 되고 귀해지는 복은 내 삶을 넉넉하게 하려는 것이다. 가난하고 천하고 걱정이 많은 것은 나를 단련해 다 자라게 하려는 것이다. 살아서는 따르며 섬기고, 죽어서는 편히 쉬리라.
주자가 말하였다. "는 『서명』이 '이치는 하나지만 나뉨은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고 보았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삼는다. 살아 있는 것 가운데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이 '이치는 하나'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과 동물이 태어날 때는 핏줄이 저마다 있다. 저마다 자기 부모를 부모로 모시고, 자기 자식을 자식으로 돌본다. 그러니 그 나뉨이 어찌 다르지 않겠는가? 하나로 묶이면서도 만 가지로 다르다. 그래서 온 세상이 한 집안이 되고 온 나라가 한 사람처럼 되어도 괜찮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자는 잘못에 빠지지 않는다. 만 가지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꿰뚫린다. 그래서 가깝고 먼 사이에 따라 마음이 다를 수 있다. 귀하고 천함에 따라 등급이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제 욕심에만 묶이지 않는다. 이것이 『서명』의 큰 뜻이다. 부모를 아끼는 두터운 마음을 넓혀, 나만 생각하지 않는 함을 넓혔다. 부모를 섬기는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는 길을 밝혔다. 어디서나 나뉨은 분명하면서도, 모두 하나의 이치를 넓혀 간 것이다." 또 말하였다. "『서명』의 앞부분은 바둑판과 같다. 뒷부분은 사람이 그 위에서 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
○ 귀산 양씨가 말하였다. "『서명』은 이치는 하나지만 나뉨은 다르다는 글이다. 이치가 하나임을 알기에 어짊을 베푼다. 나뉨이 다름을 알기에 옳음을 행한다. 도 이렇게 말했다. '부모를 아끼고 나서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나서 만물을 아낀다.' 나뉨이 다르니 베푸는 데 차이가 없을 수 없을 뿐이다." ○ 쌍봉 요씨가 말하였다. "『서명』의 앞 구절은 사람이 하늘땅의 자식임을 밝혔다. 뒤 구절은 사람이 하늘땅을 섬길 때, 자식이 부모를 섬기듯 해야 함을 말했다."
○ 오른쪽 글은 횡거 선생 장재가 지은 것입니다. 처음 이름은 '정완'이었는데, 정자가 '서명'으로 고쳤습니다. 그림은 임은 정씨가 만들었습니다. 성인의 학문은 어짊을 찾는 데 있습니다. 이 뜻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땅의 만물과 내가 한 몸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참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짊을 행하는 공부가 비로소 가깝고 맛있게 느껴집니다. 막연하고 넓기만 해서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되는 걱정도 없어집니다. 바깥 사물을 나 자신으로 잘못 아는 병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마음의 이 온전해집니다. 그래서 정자는 "서명의 뜻은 아주 완전하니, 바로 어짊의 바탕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이것을 다 넓혀 온전히 펼칠 때가 바로 성인이다"라고 했습니다.
小學圖
셋째 그림은 도이다. '입교'는 가르침을 세우는 것이다. 아기를 배었을 때와 기를 때의 가르침을 세운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가르치는 법을 세운다. 세 가지 덕목과 네 가지 공부의 가르침을 세운다.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는 가르침을 세운다. '명륜'은 사람 사이의 를 밝히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함을 밝힌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옳음을 밝힌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구별을 밝힌다. 어른과 아이 사이의 차례를 밝힌다. 친구 사이의 믿음을 밝힌다. '경신'은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요점을 밝힌다. 점잖은 몸가짐의 규칙을 밝힌다. 옷 입는 법을 밝힌다. 먹고 마실 때의 를 밝힌다. '계고'는 옛일을 살피는 것이다. 옛일로 가르침 세우기, 도리 밝히기, 몸가짐 조심하기를 밝힌다. '가언'은 좋은 말이다. 좋은 말로 이 세 가지를 넓힌다. '선행'은 착한 행동이다. 착한 행동으로 이 세 가지를 실천한다.
은 하늘이 늘 따르는 길이다. 는 사람 성품의 큰 줄기이다. 처음에는 모두 착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네 가지 착한 마음이 넉넉히 솟아나, 일을 만나면 드러난다. 부모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한다.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한다. 이것을 타고난 성품이라 한다. 억지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따를 뿐이다. 오직 성인의 성품은 넓고 넓어 하늘과 같다. 털끝만큼도 보태지 않아도 온갖 착함이 다 갖춰져 있다. 보통 사람들은 어리석고 어두워 욕심에 가려진다. 그래서 그 큰 줄기를 무너뜨린다. 스스로를 해치고 버리면서도 편히 여긴다. 성인은 이것을 슬퍼하여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두었다. 그 뿌리를 북돋우고 가지를 뻗게 하려는 것이다. 소학에서는 물 뿌리고 비질하며, 묻는 말에 대답하는 법을 배운다. 집에서는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손하게 한다. 그래서 행동이 어긋나지 않게 한다. 그러고도 힘이 남으면 시를 읊고 책을 읽는다. 노래하고 춤추어 생각이 넘치지 않게 한다. 이치를 깊이 알고 몸을 닦는 것이 이 배움의 큰 부분이다. 하늘의 밝은 뜻은 환히 빛나며,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 덕이 높아지고 하는 일이 넓어지면, 마침내 처음 마음으로 돌아간다. 옛날이라고 모자라지 않았고, 오늘이라고 남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고 성인은 떠났다. 책은 망가지고 가르침은 느슨해졌다. 어릴 때 바르게 기르지 못하니, 자랄수록 더 들뜨고 스러워진다. 마을에는 좋은 풍습이 없고, 세상에는 훌륭한 인재가 드물다. 이익과 욕심이 어지럽게 얽히고, 바르지 않은 말들이 시끄럽다. 다행히 이 타고난 성품은 하늘이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에 들은 것을 모아, 뒷사람들을 깨우치려 한다. 아아, 젊은이들이여! 이 책을 공손히 받들어라. 내 말은 늙은이의 헛소리가 아니다. 오직 성인의 가르침이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의 도를 가르치려 하십니다. 그런데 소학 책도 살펴보게 하시는 것은 왜입니까?" 주자가 대답했습니다. "배움에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가 되는 점에서는 하나일 뿐입니다. 어릴 때 소학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흩어진 마음을 거두고 을 길러 대학의 바탕으로 삼을 길이 없습니다. 자라서 대학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옳은 이치를 살피고 일을 처리해 소학의 열매를 거둘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린 학생은 먼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일을 합니다. 묻는 말에 대답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을 익힙니다. 예절, 음악, 활쏘기, 말 타기, 글쓰기, 셈하기도 힘써 익힙니다. 다 자란 뒤에는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가장 착한 데에 머무르게 합니다. 이것이 마땅한 차례인데, 어찌 안 되겠습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나이는 이미 자랐는데 소학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대답했습니다. "지나간 세월은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부의 차례와 조목을 어찌 다시 채울 수 없겠습니까? 나는 ''이라는 한 글자가 성인의 배움을 시작하고 끝맺는 방법이라고 들었습니다. 소학을 배우는 사람이 경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의 뿌리를 기를 수 없습니다. 물 뿌리고 비질하는 예절과 여섯 가지 재주를 조심스럽게 익힐 수도 없습니다. 대학을 배우는 사람도 경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슬기를 넓히고 덕을 쌓고 일을 닦을 수 없습니다.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열매도 거둘 수 없습니다. 불행히 때를 놓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참으로 경에 힘쓰면서 큰 공부로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면서 작은 공부도 함께 채워 가면 됩니다. 그러면 뿌리가 없어 닿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오른쪽 소학에는 옛날에 그림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 책의 차례를 바탕으로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그림과 짝을 이루게 했습니다. 또 주자의 『』에서 소학과 대학을 함께 다룬 글을 가져왔습니다. 두 공부의 큰 줄기를 보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소학과 대학은 서로 기대어 완성됩니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그래서 『혹문』에서 함께 다룰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그림에도 함께 실어 서로 채워 주게 했습니다.
大學圖
넷째 그림은 대학도이다. '밝은 을 밝힘'은 바탕이다. '백성을 새롭게 함'은 그 바탕을 밖으로 쓰는 것이다. '가장 착한 데 머무름'은 나를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의 이다. '사물을 깊이 살핌'과 '앎을 끝까지 함'은 아는 일이다. '뜻을 참되게 함', '마음을 바르게 함', '몸을 닦음'은 행하는 일이다. 밝은 덕을 밝히려면 가장 착한 곳이 어디인지 알고 찾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머무는 일을 찾아 얻는 것이다. '집안을 바로 함', '나라를 다스림', '세상을 평안하게 함'은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을 넓혀 가는 것이다. 이것도 가장 착한 데 머무는 일을 찾아 얻는 것이다. 공부로 보면 이렇다. 사물이 깊이 살펴지고, 앎이 끝까지 간다. 뜻이 참되고, 마음이 바르고, 몸이 닦인다. 이것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서 가장 착한 곳을 알고, 거기에 머무는 차례를 얻은 것이다. 집안이 바로 서고, 나라가 다스려지고, 세상이 평안해진다. 이것은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서 가장 착한 곳에 머무는 차례를 얻은 것이다. 그 열매로 보면 이렇다. '머무를 곳을 앎'은 가장 착한 곳을 아는 열매의 시작이다. '정해짐, 고요함, 편안함, 깊이 생각함' 네 가지가 있다. 머무를 곳을 알고부터 얻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모두 열매를 두고 말한 것이다. '얻음'은 마침내 밝은 덕과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이 모두 가장 착한 데 머무는 것이다.
대학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다.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 가장 착한 데 머무르는 데 있다. 머무를 곳을 알아야 마음이 정해진다. 마음이 정해져야 고요해진다. 고요해야 편안해진다. 편안해야 깊이 생각할 수 있다. 깊이 생각해야 얻을 수 있다. 모든 것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다. 모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다.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알면 에 가깝다. 옛날에 온 세상에 밝은 덕을 밝히려던 사람은 먼저 자기 나라를 다스렸다. 나라를 다스리려던 사람은 먼저 집안을 바로 세웠다. 집안을 바로 세우려던 사람은 먼저 자기 몸을 닦았다. 몸을 닦으려던 사람은 먼저 마음을 바르게 했다. 마음을 바르게 하려던 사람은 먼저 뜻을 참되게 했다. 뜻을 참되게 하려던 사람은 먼저 앎을 끝까지 넓혔다. 앎을 넓히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살피는 데 있다. 사물의 이치를 살핀 뒤에야 앎이 끝까지 간다. 앎이 끝까지 간 뒤에야 뜻이 참되어진다. 뜻이 참된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된다. 마음이 바른 뒤에야 몸이 닦인다. 몸이 닦인 뒤에야 집안이 바로 선다. 집안이 바로 선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진다.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온 세상이 평안해진다. 임금부터 보통 사람까지 모두 몸 닦기를 뿌리로 삼는다. 뿌리가 어지러운데 가지가 바로 되는 일은 없다. 두텁게 할 것을 얇게 하고, 얇게 할 것을 두텁게 하는 일도 없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은 어떻게 힘써야 합니까?" 주자가 대답했습니다. "정자는 '하나에 마음을 모아 다른 데로 가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몸가짐을 가지런하고 하게 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제자 사씨는 '늘 깨어 있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윤씨는 '마음을 거두어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은 한 마음의 주인이요, 모든 일의 뿌리입니다. 경에 힘쓰는 방법을 알면, 소학이 경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학이 경으로 시작함을 알면, 대학도 경으로 끝맺는다는 것을 의심 없이 꿰뚫게 됩니다. 이 마음이 바로 서면, 그것으로 사물을 살피고 앎을 넓혀 이치를 다 알게 됩니다. 이것이 '덕성을 높이고 배움의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으로 뜻을 참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몸을 닦게 됩니다. 이것이 '먼저 큰 것을 세우면 작은 것이 빼앗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으로 집안을 바로 하고 나라를 다스려 온 세상에 미치게 됩니다. 이것이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두텁고 공손하니 세상이 평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잠시도 경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경이라는 한 글자가 어찌 성인 배움의 처음과 끝을 꿰뚫는 요점이 아니겠습니까?"
○ 오른쪽은 공자 집안이 남긴 책 『대학』의 첫 장입니다. 조선 초에 신하 이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그 아래 실은 『혹문』의 글은 소학과 대학의 뜻을 함께 다룬 것입니다. 그 글은 소학도 아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글만 함께 볼 것이 아닙니다. 앞뒤의 여덟 그림도 모두 이 두 그림을 통해 보아야 합니다. 앞의 두 그림(태극도, 서명도)은 실마리를 찾아 넓혀 가는 그림입니다. 하늘을 본받고 도리를 다하는 가장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소학과 대학의 기준이자 뿌리가 됩니다. 뒤의 여섯 그림은 착함을 밝히고 몸을 참되게 하는 그림입니다. 덕을 높이고 일을 넓히는 데 힘쓰는 곳입니다. 그래서 소학과 대학의 터전이자 열매가 됩니다. 경은 위아래를 꿰뚫습니다. 공부를 하고 열매를 거둘 때 늘 힘쓰고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자의 말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 열 그림은 모두 경을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태극도설』에서는 고요함을 말하고 경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자가 풀이에서 경을 말해 이를 채웠습니다.
白鹿洞規圖
다섯째 그림은 규도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옳음이 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다.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다. 넓게 배우고, 자세히 묻고, 조심히 생각하고, 또렷하게 가린다. 이것은 이치를 깊이 아는 요점이다. 성실히 행하되, 말은 정성스럽고 믿음직하게 한다. 행동은 성실하고 공손하게 한다. 화를 누르고 욕심을 막는다. 착한 쪽으로 옮겨 가고 잘못을 고친다. 이것은 몸을 닦는 요점이다. 옳은 것을 바르게 하고 이익을 꾀하지 않는다. 도를 밝히고 공을 따지지 않는다. 이것은 일을 처리하는 요점이다.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 하지 않는다. 해 보고 안 되면 돌아서 나에게서 까닭을 찾는다. 이것은 남을 대하는 요점이다. 오른쪽 다섯 가지 가르침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펴게 한 것입니다. 을 백성 가르치는 벼슬에 앉혀 공손히 펴게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이것을 배울 뿐입니다. 배우는 차례도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 구별은 왼쪽과 같습니다(지금은 '아래'라고 써야 합니다).
저 주희가 옛 들이 사람을 가르친 뜻을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옳은 이치를 밝혀 자기 몸을 닦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그것을 넓혀 남에게까지 미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외우기만 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멋진 글을 지어 이름을 날리고 벼슬과 돈을 얻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합니다. 그래도 성현이 가르친 방법은 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뜻이 있는 라면 그것을 잘 읽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묻고 따져야 합니다. 이치가 마땅히 그렇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꼭 그렇게 하라고 요구한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지킬 규칙과 하지 말라는 규칙을 남이 만들어 주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요즘에는 배움에 규칙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배우는 사람을 얕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 규칙도 옛사람의 뜻과 꼭 맞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서당에서는 그런 규칙을 쓰지 않습니다. 성현들이 사람을 가르친 큰 줄기만 뽑아 오른쪽처럼 하나하나 나누어 적었습니다. 그리고 문 위에 걸어 둡니다. 여러분이 함께 밝히고 지키며 스스로에게 요구하십시오. 그러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 규칙보다 더 엄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벗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규칙이라는 것을 꼭 가져와 쓸 것입니다.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 오른쪽 규칙은 주자가 지어 백록동 학생들에게 내건 것입니다. 이 서원은 남강군 북쪽, 광려산 남쪽에 있습니다. 당나라 때 이발이 이곳에 숨어 살며 흰 사슴을 길렀습니다. 늘 사슴을 데리고 다녀서 이 골짜기를 '흰 사슴 골짜기(백록동)'라 불렀습니다. 남당 때 서원을 세워 '국상'이라 불렀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늘 수백 명이었습니다. 송나라 태종은 책을 내려 주었습니다. 서원을 이끄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어 아끼고 북돋웠습니다. 그 뒤 한동안 서원이 버려져 거칠어졌습니다. 주자가 남강군의 이 되자 에 청해 다시 지었습니다. 학생을 모으고 규칙을 세워 바른 학문을 밝히니, 서원 교육이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제가 이제 이 규칙의 본문과 조목에 따라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보시고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가르침은 에 있었습니다. 하·은·주 세 나라의 배움도 모두 사람 사이의 도리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규칙에서 이치를 아는 것과 힘써 행하는 것은 모두 다섯 가지 도리에 뿌리를 둡니다. 임금의 공부는 그 규칙과 금지 조항이 보통 사람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도리에 뿌리를 두는 점은 같습니다. 이치를 알고 힘써 행해, 마음공부의 가장 중요한 곳을 얻으려는 점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도 함께 바칩니다. 아침저녁으로 곁에 두고 스스로를 일깨우는 글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 앞의 다섯 그림은 하늘의 이치에 뿌리를 둡니다. 그 열매는 사람의 도리를 밝히고, 덕과 일을 힘써 이루는 데 있습니다.
心統性情圖
여섯째 그림은 심통도입니다. 위 그림 아래쪽에 스물한 글자가 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정자는 믿음에는 실마리가 없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믿음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정자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제37권, 이평숙에게 답한 편지에 나옵니다. 가운데 그림에서 '인·의·예·지, 텅 비고 신령함, 깨달아 앎'의 자리를 고쳐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 텅 비고 신령함, 깨달아 앎, 맑음·흐림·순수함·섞임'의 자리를 고쳐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둘 다 제30권, 김이정에게 보낸 쪽지에 나옵니다. 위 그림: 마음이 성과 정을 거느립니다.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성입니다. 바깥 일을 느껴 통하는 것이 정입니다. 나무·불·쇠·물·흙의 빼어난 기운을 받았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성은 마음의 바탕입니다. 사랑의 이치를 가진 것을 인(어짊)이라 합니다. 공경의 이치를 가진 것을 예(예의)라 합니다. 마땅함의 이치를 가진 것을 의(옳음)라 합니다. 가려 아는 이치를 가진 것을 지(슬기)라 합니다. 참됨의 이치를 가진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 참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이미 드러난 정으로, 마음의 쓰임입니다. 각각 인의 실마리, 예의 실마리, 의의 실마리, 지의 실마리, 믿음의 실마리입니다. 가운데 그림: 를 합해 성과 정을 거느립니다. 몸의 주인이며, 온갖 변화를 다 아우릅니다. 마음은 텅 비고 신령하며 깨달아 압니다. 성은 인·의·예·지입니다. 정은 타고난 기운 속에서 본래 성품만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불쌍히 여김·양보·부끄러움·옳고 그름 가리기의 네 마음(사단)이 있습니다. 기쁨·성남·슬픔·두려움·사랑·미움·바람의 일곱 감정(칠정)도 있습니다. 착함과 나쁨이 갈리는 곳에서 착한 쪽만 말한 것입니다. 아래 그림: 이와 기를 합해 성과 정을 거느립니다. 몸의 주인이며, 온갖 변화를 다 아우릅니다. 마음에는 인·예·신·의·지가 있습니다. 텅 비고 신령하며 깨달아 압니다. 맑음·흐림·순수함·섞임도 있습니다. 성에는 본래의 성과 기질의 성이 있습니다. 드러나 성이 되는 것은 본래 하나입니다. 하지만 기 속에 있기 때문에 두 이름이 생깁니다. 네 마음은 이가 드러나고 기가 따르는 것입니다. 일곱 감정은 기가 드러나고 이가 그 위에 타는 것입니다.
임은 정씨가 말했습니다. "'마음이 성과 정을 거느린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사람은 의 빼어난 기운을 받아 태어납니다. 그 빼어난 기운에 다섯 가지 성품이 갖추어집니다. 그것이 움직이면 일곱 가지 감정이 나옵니다. 그 성과 정을 모두 모아 거느리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성이니, 마음의 바탕입니다. 느껴서 통하는 것이 정이니, 마음이 쓰이는 모습입니다. 는 '마음이 성과 정을 거느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다. 마음이 성을 거느립니다. 그래서 인·의·예·지는 성인데도 '인의의 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정을 거느립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김·부끄러움·양보·옳고 그름 가리기는 정인데도 '~하는 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고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마음이 성을 거느리지 못하면 드러나기 전의 알맞음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이 쉽게 상합니다. 마음이 정을 거느리지 못하면 드러나서 알맞게 맞는 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이 쉽게 넘칩니다. 배우는 사람이 이것을 안다면,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품을 기르고 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배움의 길을 얻을 것입니다." 제가 삼가 정자의 「호학론」을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서는 정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성품을 기르는 것보다 앞에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오히려 뒤에 두었습니다. 마음이 성과 정을 거느린다는 쪽에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치를 따져 말하면 정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맞습니다. ○ 그림에 매끄럽지 않은 곳이 있어 조금 고쳤습니다.
○ 오른쪽 세 그림 가운데 위 그림은 임은 정씨가 만든 것입니다. 그 풀이도 정씨가 직접 썼습니다. 가운데와 아래 두 그림은 제가 만든 것입니다. 성현들이 말씀을 세우고 가르침을 내린 뜻을 감히 더듬어 찾아 만들었습니다. 가운데 그림은 본래의 성만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타고난 기운 속에 있으면서도 그 기운에 섞이지 않은 성입니다. 가 말한 '하늘이 내린 성'이 이것입니다. 맹자가 말한 '착한 성', 정자가 말한 '바로 이치인 성', 장자가 말한 '하늘땅의 성'도 이것입니다. 성을 이렇게 말했으니, 그것이 드러난 정도 모두 착한 것만 가리켜 말했습니다. 자사가 말한 '알맞게 맞는 정', 맹자가 말한 '네 가지 착한 마음의 정'이 이것입니다. 정자가 말한 '어찌 나쁘다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정'도 이것입니다. 주자가 말한 '성품에서 흘러나와 본래 나쁨이 없는 정'도 이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이와 기가 합쳐진 쪽에서 말한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서로 비슷한 성'이 이것입니다. 정자가 말한 '성이 곧 기이고 기가 곧 성인 성'도 이것입니다. 장자가 말한 '의 성'도 이것입니다. 주자가 말한 성도 이것입니다. 주자는 '기 속에 있어도 기는 기이고 성은 성이라,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을 이렇게 말했으니, 그것이 드러난 정도 이와 기가 서로 돕거나 해치는 쪽에서 말했습니다. 네 가지 착한 마음은 이가 드러나고 기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하게 착하고 나쁨이 없습니다. 다만 이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기에 가려지면, 그때 나쁜 쪽으로 흐릅니다. 일곱 감정은 기가 드러나고 이가 그 위에 타는 것입니다. 이것도 본래 나쁨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가 드러날 때 알맞지 않아 이를 없애 버리면, 넘쳐서 나쁨이 됩니다. 그래서 정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을 말하면서 기를 말하지 않으면 모자라다. 기를 말하면서 성을 말하지 않으면 밝지 않다. 둘로 쪼개면 옳지 않다.' 그렇다면 맹자와 자사가 이만 가리켜 말한 것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기를 함께 말하면 성이 본래 착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운데 그림의 뜻입니다. 줄여 말하면, 이와 기를 함께 지니고 성과 정을 거느리는 것은 마음입니다. 성이 드러나 정이 되는 그때는 한 마음이 막 움직이기 시작하는 작은 순간입니다. 온갖 변화가 돌아가는 축입니다. 착함과 나쁨이 갈라지는 갈림길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참으로 한결같이 을 지켜야 합니다.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욕심을 헷갈리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이 갈림길에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드러나기 전에 마음을 지키고 기르는 공부가 깊어집니다. 드러난 뒤에 스스로를 살피는 버릇도 익숙해집니다. 참되게 쌓고 힘써 오래 그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성인의 배움을 밖에서 찾을 필요 없이 여기서 얻을 수 있습니다. '꼼꼼하고 한결같이 하여 알맞음을 붙잡는 배움'입니다. 또 '바탕을 지키고 쓰임에 맞게 대하는 마음공부'입니다.
仁說圖
일곱째 그림은 설도입니다. 인(어짊)은 하늘땅이 만물을 낳는 마음입니다. 은 하늘땅의 마음이자 만물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받아 자기 마음으로 삼습니다. 마음이 드러나기 전에는 네 가지 덕이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인만이 네 가지를 다 품습니다. 그래서 모두를 감싸 기르며 거느립니다. 마음이 드러날 때는 네 가지 착한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중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이 넷을 다 꿰뚫습니다. 그래서 두루 흘러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살리는 성품', '사랑의 이치'라는 것은 인의 바탕입니다. '성품이 드러난 정', '사랑이 나타난 것'은 인이 쓰이는 모습입니다. 통틀어 말하면, 드러나기 전은 바탕이고 드러난 뒤는 쓰임입니다. 나누어 말하면, 인은 바탕이고 불쌍히 여김은 쓰임입니다. 공평함은 인을 몸에 익히는 방법입니다. '나를 이기고 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공평하면 어질게 되고, 어질면 사랑하게 됩니다. 효도와 는 그 쓰임입니다. 남을 내 마음처럼 헤아리는 것은 그 베풂입니다. 깨달아 아는 것은 슬기(지)의 일입니다.
주자가 말했습니다. "인은 하늘땅이 만물을 낳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얻어 자기 마음으로 삼습니다. 마음이 드러나기 전에는 네 덕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중 인만이 넷을 모두 품습니다. 그래서 감싸 기르며 거느리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살리는 성품', '사랑의 이치'가 바로 인의 바탕입니다. 마음이 드러날 때는 네 가지 착한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중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이 넷을 모두 꿰뚫습니다. 그래서 두루 흘러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성품이 드러난 정', '사랑이 나타난 것'이 바로 인의 쓰임입니다. 통틀어 말하면 드러나기 전은 바탕, 드러난 뒤는 쓰임입니다. 나누어 말하면 인은 바탕, 불쌍히 여김은 쓰임입니다. 함은 인을 몸에 익히는 방법입니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공평하면 어질고, 어질면 사랑합니다. 효도와 우애는 그 쓰임이고, 남을 헤아리는 마음은 그 베풂입니다. 깨달아 아는 것은 슬기의 일입니다."
또 말했습니다. "하늘땅의 마음에는 네 가지 덕이 있습니다. 입니다. 원은 모두를 거느리며, 그것이 돌면 봄·여름·가을·겨울이 차례로 옵니다. 봄의 살리는 기운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도 네 가지 덕이 있습니다. 입니다. 그 가운데 인은 모두를 품습니다. 인이 드러나 쓰이면 사랑, 공경, 마땅함, 가림의 마음이 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꿰뚫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인이라는 길은 바로 하늘땅이 만물을 낳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 속에 들어 있습니다. 마음이 드러나기 전에도 이 바탕은 이미 갖추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드러나면 그 쓰임은 끝이 없습니다. 이것을 참으로 몸에 익혀 지키면, 모든 착함의 샘과 온갖 행동의 뿌리가 다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서둘러 인을 찾게 했습니다. 공자는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라고 했습니다. 내 욕심을 이기고 하늘의 이치를 되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마음의 바탕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 마음의 쓰임이 닿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또 '지낼 때는 공손하고, 일할 때는 조심스럽고, 사람을 대할 때는 정성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이 마음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또 '부모를 섬길 때는 효도하고, 형을 섬길 때는 공손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이 마음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이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하늘땅에서는 넓고 크게 만물을 낳는 마음입니다. 사람에게서는 따뜻하게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입니다. 네 가지 덕을 품고 네 가지 착한 마음을 꿰뚫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정자의 말은 틀린 것입니까? 정자는 「사랑은 정이고 인은 성이니, 사랑으로 인을 부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자는 드러난 사랑으로 인을 부르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나는 사랑의 이치로 인을 부른 것입니다. 정과 성은 맡은 자리가 다릅니다. 하지만 그 줄기는 저마다 이어져 있습니다. 어찌 서로 떨어져 아무 상관이 없겠습니까? 나는 배우는 사람들이 정자의 말을 외우기만 하고 뜻을 찾지 않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침내 사랑을 아주 떼어 놓고 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것을 말해 정자가 남긴 뜻을 밝힌 것입니다. 그대가 내 말이 정자와 다르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또 물었습니다. '정자의 제자들 가운데 「만물과 내가 하나」인 것을 인의 바탕으로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깨달아 아는 것」으로 인을 풀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틀린 것입니까?' 나는 대답했습니다. '「만물과 내가 하나」라는 말로는 인이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이 바탕이 되는 참된 까닭은 아닙니다. 「마음이 깨달아 안다」는 말로는 인이 슬기를 품는다는 것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참모습은 아닙니다.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한다」는 의 물음에 공자가 답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정자가 「깨달아 아는 것으로 인을 풀이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대가 어찌 이것으로 인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오른쪽 「」은 주자가 지은 글입니다. 주자가 그림도 직접 만들어 인의 길을 밝혔으니, 더 보탤 뜻이 없습니다. 『대학』을 풀이한 글에 '임금이 되어서는 인에 머문다'고 했습니다. 이제 옛 임금들이 마음을 전하고 인을 몸에 익힌 깊은 곳을 찾고 싶으시다면, 어찌 여기에 뜻을 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心學圖
여덟째 그림은 도입니다. 마음, 텅 비고 신령함. 깨달아 앎, 맑고 밝은 정신, 온몸의 주인. 갓난아이의 마음, 착한 마음. 사람의 마음(인심), 큰 사람의 마음. 본래 마음, 도를 따르는 마음(도심). 꼼꼼히 가림, 착한 것을 고름. 한결같이 지킴, 굳게 붙잡아 지킴. 공경, 한 마음의 주인. 마음이 제자리에 있음(심재), 잃은 마음을 찾음(구방심).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감, 마음을 바르게 함. 혼자 있을 때 조심함(), 마흔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마음으로 생각함, 마음을 기름, 붙잡아 지킴. 마음을 다함, 조심하고 두려워함. 일흔에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어긋나지 않음.
임은 정복심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갓난아이의 마음은 욕심에 물들지 않은 착한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인심)은 욕망 쪽에서 깨닫는 마음입니다. 큰 사람의 마음은 옳은 이치가 다 갖추어진 본래 마음입니다. 도를 따르는 마음(도심)은 옳은 이치 쪽에서 깨닫는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두 가지인 것은 아닙니다. 몸과 기운에서 생긴 쪽으로 보면, 누구나 인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 준 성품에 뿌리를 둔 쪽으로 보면, 그것이 도심이 됩니다. '꼼꼼히 가림', '한결같이 지킴', '착한 것을 고름', '굳게 붙잡아 지킴'부터 그 아래는 모두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지키는 공부입니다. '혼자 있을 때 조심함'부터 그 아래는 욕심을 막는 쪽의 공부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까지 가면 어떻게 될까요? 부자가 되고 귀해져도 마음이 들뜨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천해도 뜻을 바꾸지 않습니다. 힘센 위협에도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도가 밝아지고 덕이 섰음을 볼 수 있습니다. '조심하고 두려워함'부터 그 아래는 하늘의 이치를 지키는 쪽의 공부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함'까지 가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이 곧 바탕이 되고, 바람이 곧 쓰임이 됩니다. 바탕이 곧 도가 되고, 쓰임이 곧 옳음이 됩니다. 소리를 내면 그대로 가락이 됩니다. 몸을 움직이면 그대로 가 됩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얻고, 애쓰지 않아도 법도에 맞음을 볼 수 있습니다. 줄여 말하면, 공부의 요점은 모두 한결같은 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은 온몸의 주인이고, 경은 또 마음의 주인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세 가지 말을 깊이 익혀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에 모아 다른 데로 가지 않게 한다'는 말입니다. '몸가짐을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거두어 늘 깨어 있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공부가 끝까지 이릅니다. 성인의 자리에 저절로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 위 그림은 임은 정씨가 만든 것입니다. 성현들이 마음공부에 대해 남긴 좋은 말을 모아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갈래를 나누고 짝을 지어 놓았습니다. 내용이 많아도 어지럽지 않습니다. 성인 배움의 마음공부가 한 가지 실마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모두 힘을 들여야 한다는 것도 보여 줍니다. 위에서 아래로 늘어놓은 것은 대강의 차례일 뿐입니다. 깊고 얕음, 익숙하고 서툶을 대략 따랐을 뿐입니다. 앎을 넓히고, 뜻을 참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는 일에는 앞뒤가 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렇게 꼭 앞뒤가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의심합니다. 대략의 차례라 해도, 잃은 마음을 찾는 '구방심'은 공부의 맨 처음 일이다. 그러니 '마음이 제리에 있음(심재)' 뒤에 두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구방심을 얕게 말하면, 처음 손을 대고 발을 내딛는 곳이 맞습니다. 하지만 깊고 높은 곳에서 말하면 다릅니다. 눈 깜짝할 사이라도 한 생각이 조금 어긋나면, 그것도 마음을 잃은 것입니다. 같은 사람도 석 달이 지나면 인을 어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곧 마음을 잃는 것과 관계됩니다. 다만 안자는 조금이라도 어긋나 마음을 잃으면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알아차리면 다시는 그런 생각이 싹트지 않게 했습니다. 이것도 구방심에 속합니다. 그래서 정씨 그림의 차례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정씨의 자는 자견이고, 신안 사람입니다. 숨어 살며 벼슬을 하지 않았습니다. 행동과 옳음이 아주 잘 갖추어졌습니다. 늙도록 경전을 연구해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서장도』 세 권을 지었습니다. 원나라 인종 때 추천을 받아 불려 갔고, 나라에서 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견이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향 고을의 로 삼았더니, 벼슬을 내놓고 돌아갔습니다. 그 사람됨이 이러했으니, 어찌 깨달은 것 없이 함부로 책을 썼겠습니까?
敬齋箴圖
아홉째 그림은 경재도이다. 옷과 갓을 바르게 하고, 눈빛을 점잖게 하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를 마주한 듯 지내라. [고요할 때] 걸음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하라. 땅을 골라 밟고, 개미 둑 둘레를 돌 때도 조심하라. [움직일 때] [어긋나지 않음] 문을 나서면 손님을 만나듯 하라. 일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하라. 늘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하고, 감히 소홀히 하지 마라. [겉] 입은 병마개 막듯 지키고, 나쁜 뜻은 성을 지키듯 막아라. 참되고 정성스럽게 하여, 감히 가볍게 여기지 마라. [속] [서로 바르게 함] 이 일에 힘쓰는 것을 '경을 지킨다'고 한다. 동쪽으로 가려다 서쪽으로 가지 마라. 남쪽으로 가려다 북쪽으로 가지 마라. 일을 할 때 마음을 지켜 다른 데로 가지 않게 하라. [다른 데로 가지 않음] 마음을 두 갈래로 나누지 말고, 세 갈래로 나누지도 마라. 오직 마음을 하나로 모아 온갖 변화를 살펴라. [하나에 모음] 아아, 젊은이들아! 생각하고 공경하여라. 먹을 맡은 관리가 경계를 적어 감히 마음에 아뢴다. 잠깐이라도 틈이 생기면 욕심이 만 갈래로 일어난다. 불이 없어도 뜨거워지고, 얼음이 없어도 차가워진다. [틈이 생김] 털끝만큼만 어긋나도 하늘과 땅처럼 멀어진다. 이 무너지고, 도 깨진다. [어긋남]
옷과 갓을 바르게 하고 눈빛을 점잖게 하라. 마음을 가라앉혀 를 마주한 듯 지내라. 걸음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하라. 땅을 골라 밟고, 개미 둑 둘레를 돌 때도 조심하라. 문을 나서면 귀한 손님을 만나듯 하라. 일을 할 때는 엄숙한 제사를 지내듯 하라. 늘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하고 감히 소홀히 하지 마라. 입은 병마개 막듯 지키고, 나쁜 뜻은 성을 지키듯 막아라. 참되고 정성스럽게 하여 감히 가볍게 여기지 마라. 동쪽으로 가려다 서쪽으로 가지 마라. 남쪽으로 가려다 북쪽으로 가지 마라. 일을 할 때 마음을 지켜 다른 데로 가지 않게 하라.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지 마라. 오직 마음을 하나로 모아 온갖 변화를 살펴라. 이렇게 힘쓰는 것을 '경을 지킨다(지경)'고 한다. 움직일 때도 고요할 때도 어긋나지 않게 하라. 겉과 속이 서로를 바르게 하게 하라. 잠깐이라도 틈이 생기면 욕심이 만 갈래로 일어난다. 불이 없어도 뜨거워지고, 얼음이 없어도 차가워진다. 털끝만큼만 어긋나도 하늘과 땅처럼 멀어진다. 이 무너지고 도 깨진다. 아아, 젊은이들아! 생각하고 공경하여라. 먹을 맡은 관리가 경계를 적어 감히 마음에 아뢴다.
주자가 말했습니다. "'주선중규'는 둥글게 돌 때 그림쇠(둥근 것을 그리는 자)에 맞게 둥글게 돌라는 말입니다. '절선중구'는 꺾어 돌 때 곱자(ㄱ자 모양 자)에 맞게 반듯하게 꺾으라는 말입니다. '의봉'은 개미 둑입니다. 옛말에 '말을 타고 개미 둑 사이를 꺾어 돈다'고 했습니다. 개미 둑 사이는 길이 구불구불하고 좁습니다. 그런데도 말을 타고 그 사이를 꺾어 돌면서, 달리고 멈추는 를 잃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렵다고 한 것입니다. '입 지키기를 병마개 막듯 한다'는 것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뜻 막기를 성 지키듯 한다'는 것은 나쁜 마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또 말했습니다. "경은 반드시 하나에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처음에 한 가지 일이 있는데 하나를 더 보태면 두 갈래가 됩니다. 그것이 '둘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가 있는데 둘을 더 보태면 세 갈래가 됩니다. 그것이 '셋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깐의 틈'은 시간을 두고 한 말입니다. '털끝만큼의 어긋남'은 일을 두고 한 말입니다. ○ 임천 오씨가 말했습니다. "이 잠은 모두 10장이고, 장마다 네 구절입니다. 1장은 고요할 때 어긋나지 않음을 말했습니다. 2장은 움직일 때 어긋나지 않음을 말했습니다. 3장은 겉이 바름을 말했습니다. 4장은 속이 바름을 말했습니다. 5장은 마음이 발라서 일에까지 닿음을 말했습니다. 6장은 일에서 하나에 모으는 것이 마음에 뿌리를 둠을 말했습니다. 7장은 앞의 여섯 장을 묶었습니다. 8장은 마음이 다른 데로 가는 병을 말했습니다. 9장은 일에서 하나에 모으지 못하는 병을 말했습니다. 10장은 한 편 전체를 마무리했습니다." ○ 서산 진씨가 말했습니다. "경의 뜻은 여기서 더 보탤 것이 없습니다. 성인의 배움에 뜻을 둔 사람은 이것을 익숙해지도록 되풀이해야 합니다."
○ 위 잠의 제목 아래에 주자가 직접 이렇게 적었습니다. "장경부의 「주일잠」을 읽고, 거기서 남은 뜻을 모아 「경재잠」을 지었다. 그리고 서재 벽에 써 붙여 스스로를 깨우친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경의 이다. 풀이에 이처럼 실천할 자리가 많다." 제 생각에, 실천할 자리라는 풀이는 공부해 나가는 데 좋은 근거가 됩니다. 금화의 왕노재가 그 자리들을 늘어놓아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가지런하며, 모두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날마다 생활하는 곳에서, 마음과 눈이 닿는 곳에서 늘 몸으로 익히고 맛보십시오. 그리고 경계하고 돌아보아 얻는 것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경이 성인 배움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것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夙興夜寐箴圖
열째 그림은 잠도이다. 닭이 울어 잠에서 깨면 생각이 조금씩 달려 나간다. 그 사이에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가다듬지 않겠는가? 지난 잘못을 돌아보기도 하라. 새로 깨달은 것을 실마리 삼아 풀어 보기도 하라. 차례와 줄기를 또렷하게 마음속에 새겨 두어라. [아침에 깨어남] 뿌리가 섰으니, 날이 밝아 올 때 일어나라.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과 갓을 갖추어라. 바르게 앉아 몸가짐을 가다듬어라. 이 마음을 끌어올려 떠오르는 해처럼 밝게 하라. 하고 가지런하게, 마음을 비우고 밝게 하여, 고요히 하나에 모아라. [아침에 일어남] 그리고 책을 펴서 을 마주한 듯 하라. 공자가 앉아 계시고, 안자와 증자가 앞뒤에 있는 듯 하라. 거룩한 스승의 말씀을 가까이서 공손히 들어라. 제자들이 묻고 따진 것을 되풀이하여 견주고 바로잡아라. [책 읽기] 일이 생기면 그에 맞게 응하고, 행동으로 보여라. 하늘의 밝은 명령이 환히 빛나니, 늘 눈앞에 있는 듯 하라. 일이 끝나면 나는 전과 같이 돌아가라. 마음속을 맑게 하고, 정신을 모으고, 걱정을 쉬어라. [일에 응함] 움직임과 고요함이 돌고 도니, 오직 마음으로 살펴라. 고요할 때는 지키고 움직일 때는 살펴라.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지 마라. 책을 읽다 쉴 때는 가끔 한가로이 노닐어라. 정신을 펴고 마음을 쉬게 하라. [낮에 힘씀] [아침저녁을 아우름] 해가 지고 몸이 지치면 흐린 기운이 끼어들기 쉽다. 엄숙하고 가지런하게 하여 맑고 밝은 정신을 일으켜라.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면,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아라. 딴생각을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이 돌아가 쉬게 하라. [저녁에 조심함] 밤 기운으로 기르고 고요히 지켜,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게 하라. 이것을 생각하고 늘 마음에 두어, 밤낮으로 힘쓰고 또 힘써라.
닭이 울어 깨면 생각이 조금씩 달려 나간다. 그 사이에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가다듬지 않겠는가? 지난 잘못을 돌아보기도 하라. 새로 깨달은 것을 실마리 삼아 풀어 보기도 하라. 차례와 줄기를 또렷하게 마음에 새겨 두어라. 뿌리가 섰으니 날이 밝아 올 때 일어나라.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과 갓을 갖추어라. 바르게 앉아 몸가짐을 가다듬어라. 이 마음을 끌어올려 떠오르는 해처럼 밝게 하라. 엄숙하고 가지런하게, 마음을 비우고 밝게 하여, 고요히 하나에 모아라. 그리고 책을 펴서 을 마주한 듯 하라. 공자가 앉아 계시고, 가 앞뒤에 있는 듯 하라. 거룩한 스승의 말씀을 가까이서 공손히 들어라. 제자들이 묻고 따진 것을 되풀이하여 견주고 바로잡아라. 일이 생기면 그에 맞게 응하고, 행동으로 보여라. 하늘의 밝은 명령이 환히 빛나니, 늘 눈앞에 있는 듯 하라. 일이 끝나면 나는 전처럼 돌아가라. 마음속을 맑게 하고, 정신을 모으고, 걱정을 쉬어라. 움직임과 고요함이 돌고 도니, 오직 마음으로 살펴라. 고요할 때는 지키고, 움직일 때는 살펴라.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지 마라. 책을 읽다 쉴 때는 가끔 한가로이 노닐어라. 정신을 펴고 마음을 쉬게 하라. 해가 지고 몸이 지치면 흐린 기운이 끼어들기 쉽다. 엄숙하고 가지런하게 하여 맑고 밝은 정신을 일으켜라.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면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아라. 딴생각을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이 돌아가 쉬게 하라. 밤 기운으로 기르고 고요히 지켜,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게 하라. 이것을 생각하고 늘 마음에 두어, 밤낮으로 힘쓰고 또 힘써라.
○ 위 잠은 남당 진무경(진백)이 스스로를 깨우치려고 지은 것입니다. 금화의 왕노재는 태주 상채서원에서 가르칠 때 오직 이 잠으로 가르쳤습니다. 배우는 사람 모두가 외우고 익혀 몸소 행하게 했습니다. 제가 이제 노재의 「경재잠도」를 본떠 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그림과 짝이 되게 했습니다. 「경재잠」에는 공부할 자리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따라 그림으로 늘어놓았습니다. 이 잠에는 공부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 따라 그림으로 늘어놓았습니다. 도는 날마다의 생활 속에 흘러 다녀서, 가는 곳마다 없는 데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치가 없는 땅은 한 자리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서 공부를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또 도는 잠깐도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치가 없는 때는 한 숨 쉴 동안도 없습니다. 어느 때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조심하고,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숨긴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작은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이 없다. 그래서 군자는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한다." 이것은 고요할 때와 움직일 때의 방법입니다. 그 자리와 그 때에 따라 마음을 지키고 기르며 스스로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공부할 자리를 빠뜨리지 않아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공부할 때를 놓치지 않아 잠깐의 틈도 없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해 나간다면, 성인이 되는 요점이 참으로 여기 있을 것입니다.
○ 앞의 다섯 그림은 마음과 성품에 뿌리를 둡니다. 요점은 날마다의 생활에서 힘써 공경하고 조심하는 데 있습니다.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