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국가
플라톤 · 소크라테스 (대화자)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이 초등판은 『꼭 읽어야 할 고전 선집』에서 읽는 대목만 담았습니다 — 제7권 — 동굴의 비유(514a~521b)
이 글을 읽기 전에
이 글은 아주 옛날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 플라톤이 쓴 『국가』의 한 부분입니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젊은 글라우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어떻게 배우고 깨닫는지를 동굴 이야기에 빗대어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이제 우리 사람들이 얼마나 깨달았는지, 아니면 못 깨달았는지 그림처럼 보여 주겠네. 자, 보게나! 땅속 동굴에 사람들이 살고 있네. 동굴 입구는 빛 쪽으로 길게 열려 있지. 그들은 어릴 때부터 거기에 갇혀 있었네. 다리와 목이 쇠사슬에 묶여 꼼짝도 못 하지. 고개를 돌릴 수 없으니 앞만 볼 수 있네. 그들의 뒤쪽 위에서는 멀리 불이 활활 타고 있네. 불과 갇힌 사람들 사이에는 높게 돋운 길이 있지. 잘 보면 그 길을 따라 낮은 담이 쌓여 있네. 을 하는 사람들이 앞에 세우는 과 같은 담이지. 그 위로 인형을 보여 주는 것처럼 말일세.”
네, 무슨 모습인지 알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 담을 따라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는가? 그들은 온갖 물건을 들고 가네. 그릇도 있고, 나무와 돌로 만든 사람 모양, 동물 모양도 있지. 그 물건들이 담 위로 솟아 보이네.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말을 하고, 누구는 아무 말이 없네.”
글라우콘이 말했다. “정말 이상한 모습을 보여 주시는군요. 갇힌 사람들도 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다. “그들은 바로 우리와 같네. 불빛이 동굴 벽에 그림자를 비추지. 그들은 그 벽에 비친 자기 그림자나 서로의 그림자만 보겠지?”
글라우콘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고개를 한 번도 못 돌린다면, 그림자 말고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담 위로 지나가는 물건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들은 물건의 그림자만 보겠지?”
그가 말했다. “네, 그림자만 볼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해 보세. 그러면 그들은 그림자에 이름을 붙이면서, 진짜 물건에 이름을 붙인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정말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하나 더 생각해 보세. 그 감옥 맞은편 벽에서 가 울린다고 하세. 지나가는 사람 하나가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갇힌 사람들은 그 목소리가 지나가는 그림자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지 않겠나?”
글라우콘이 대답했다. “틀림없이 그렇게 믿을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은 오직 물건 모양의 그림자뿐일 걸세.”
그건 틀림없는 일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이제 다시 보게나. 갇힌 사람들이 풀려나서 잘못 알던 것에서 벗어난다고 하세.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군가 풀려나서 갑자기 일어서야 한다고 해 보세. 목을 돌리고, 걷고, 빛 쪽을 보아야 하지. 그는 몹시 아플 걸세. 눈부신 빛에 괴로울 걸세. 예전에 그림자로만 보던 진짜 물건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겠지. 그때 누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해 보게. ‘네가 전에 본 것은 이었다. 이제 너는 참으로 있는 것에 더 가까워졌다. 네 눈은 더 진짜인 것을 보고 있으니, 더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또 가르치는 사람이 지나가는 물건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름을 대 보라고 한다고 해 보게. 그는 어쩔 줄 모르지 않겠나? 그는 전에 본 그림자가 지금 보는 물건보다 더 참되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림자가 훨씬 더 참되다고 생각할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에게 빛을 똑바로 보라고 억지로 시키면 어떨까? 그는 눈이 아파서 고개를 돌리겠지. 그리고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들 쪽으로 도망치려 하지 않겠나? 그는 그것들이 지금 보여 주는 것보다 정말로 더 또렷하다고 여기지 않겠나?”
그가 말했다. “네, 그럴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세. 누가 그를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로 억지로 끌고 올라간다고 하세. 해를 마주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고 하세. 그는 괴롭고 화가 나지 않겠나? 빛에 다가가면 눈이 부셔서, 지금 우리가 ‘진짜’라고 부르는 것들을 하나도 볼 수 없을 걸세.”
글라우콘이 말했다. “네, 단번에 다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는 위쪽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네. 처음에는 그림자를 가장 잘 볼 걸세. 다음에는 물에 비친 사람과 물건의 모습을 보겠지. 그다음에야 물건 그 자체를 볼 걸세. 그러고 나서 달빛과 별빛,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볼 걸세. 그러니 낮의 해나 햇빛보다 밤하늘과 별을 더 잘 보겠지?”
네, 당연히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해를 볼 수 있게 될 걸세. 물에 비친 해가 아니라, 제자리에 떠 있는 해 그 자체를 볼 걸세. 그리고 해를 있는 그대로 살펴볼 걸세.”
네, 당연히 그렇게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해 내지 않겠나? 계절과 해마다의 을 주는 것이 바로 해라고 말일세. 해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 준다고 말일세. 그리고 그와 친구들이 동굴에서 보던 모든 것도, 어떤 면에서는 해 때문이라고 말일세.”
글라우콘이 말했다. “분명합니다. 그는 먼저 해를 보고, 그다음에 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가 예전에 살던 동굴을 떠올린다고 하세. 동굴에서 라고 여기던 것과 함께 갇혀 있던 친구들도 떠올리겠지. 그러면 그는 자기가 달라진 것을 기뻐하고, 친구들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겠나?”
글라우콘이 말했다.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동굴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을 주는 버릇이 있었다고 하세. 지나가는 그림자를 가장 빨리 알아보는 사람에게 말일세. 어떤 그림자가 먼저 가고, 어떤 그림자가 뒤따르고, 어떤 것들이 함께 오는지 잘 알아채는 사람이지. 그래서 다음에 무엇이 올지 가장 잘 맞히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하세. 자네는 그가 그런 상이나 칭찬을 바랄 것 같은가? 그런 상을 받은 사람을 부러워할 것 같은가? 그는 옛 시인 처럼 이렇게 말하지 않겠나?”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가난한 주인 밑에서 가난한 하인으로 사는 게 더 낫다.’ 하고 말일세.”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그들처럼 사느니, 차라리 어떤 괴로움이든 참겠다고 말일세.”
글라우콘이 말했다. “네, 그럴 겁니다. 그는 그런 틀린 생각을 품고 비참하게 사느니, 어떤 괴로움이든 견디려 할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그런 사람이 햇빛 아래에 있다가 갑자기 동굴로 돌아와 옛자리에 앉는다고 하세. 그의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겠나?”
글라우콘이 말했다. “물론 캄캄해질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런데 시합이 열렸다고 하세. 그는 아직 눈이 약하고, 어둠에 하지 못했네. (이렇게 새로 보는 버릇을 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걸세.) 그런 그가 동굴을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는 사람들과 그림자를 가려내는 시합을 해야 한다면? 그는 가 되지 않겠나? 사람들은 그가 위로 올라갔다가 눈을 잃고 내려왔다고 말할 걸세. 위로 올라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 할 걸세. 그리고 누가 다른 사람을 풀어 빛 쪽으로 데려가려 하면, 그 사람을 붙잡아 죽일 걸세.”
글라우콘이 말했다.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글라우콘, 이 이야기 전체를 우리가 앞에서 나눈 이야기에 붙여 보게. 동굴 감옥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네. 동굴 안의 불빛은 해라네.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길은 이 생각으로 아는 세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네. 자네가 이렇게 풀어도 내 뜻을 잘못 안 것이 아닐세. 이건 자네가 듣고 싶어 해서 말한, 나의 보잘것없는 믿음이네. 이것이 맞는지 틀린지는 신만이 아시겠지. 어쨌든 내 생각은 이렇다네. 앎의 세상에서 가장 마지막에 보이는 것이 ‘의 ’라네. 그것은 애를 써야만 겨우 보이네. 그런데 일단 보이면 이렇게 깨닫게 되지. 아름답고 옳은 모든 것이 바로 거기서 나온다고 말일세.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는 빛과 빛의 주인인 해를 낳는다고 말일세. 생각으로 아는 세상에서는 바른 생각과 참된 것이 곧바로 거기서 나온다고 말일세. 그러니 나랏일에서든 자기 일에서든 슬기롭게 행동하려는 사람은 이것을 늘 바라보아야 하네.”
글라우콘이 말했다. “제가 알아들은 만큼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또 하나 있네. 이 복된 모습을 본 사람들은 사람 사는 일로 다시 내려오기 싫어하네. 자네는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 되네. 그들의 영혼은 늘 위쪽 세상으로 서둘러 가려 하지. 그곳에 머물고 싶기 때문이야. 우리 이야기가 맞다면, 그렇게 바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네.”
네,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신과 같은 것을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나쁜 세상으로 내려온 사람이 있다고 하세. 그가 우스꽝스럽게 군다고 놀랄 일인가? 그는 아직 눈을 깜빡이고 있네. 둘레의 어둠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지. 그런데 이나 다른 곳에서 억지로 다투어야 한다면 어떻겠나? 를 흉내 낸 모양이나 그 그림자를 두고 다투는 거지. 그리고 참된 정의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생각에 맞추려 애써야 하지.”
글라우콘이 대답했다.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생각이 바른 사람이라면 이것을 기억할 걸세. 눈이 흐려지는 데는 두 가지가 있고, 까닭도 두 가지라는 것을 말일세. 하나는 밝은 데서 어두운 데로 나올 때고, 하나는 어두운 데서 밝은 데로 들어갈 때지. 이것은 몸의 눈에도, 마음의 눈에도 똑같이 들어맞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눈이 흐리고 어리둥절한 사람을 보아도 함부로 비웃지 않을 걸세. 먼저 이렇게 물어볼 걸세. 저 사람의 영혼은 더 밝은 삶에서 나와서 어둠이 낯설어 못 보는 걸까? 아니면 어둠에서 밝은 낮으로 돌아서서 너무 센 빛에 눈이 부신 걸까? 그리고 앞의 사람은 행복하다고 여기고, 뒤의 사람은 불쌍히 여길 걸세. 아래에서 빛으로 올라온 영혼을 비웃고 싶다면 그래도 되네. 위의 빛에서 동굴로 내려온 사람을 비웃는 것보다는 그게 더 말이 되니까.”
글라우콘이 말했다. “아주 올바르게 나누셨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 말이 맞다면,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어떤 사람들은 틀린 것이네. 그들은 영혼 속에 없던 앎을 넣어 줄 수 있다고 말하지. 마치 앞을 못 보는 눈에 보는 힘을 넣어 주듯이 말일세.”
글라우콘이 대답했다. “그들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요.”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런데 우리 이야기는 다르게 말하네. 배우는 힘은 이미 안에 있다는 거지. 눈은 온몸을 함께 돌리지 않으면 어둠에서 빛 쪽으로 돌아설 수 없네. 앎을 얻는 그 힘도 마찬가지일세. 영혼 전체가 돌아서야만, 늘 바뀌는 세상에서 늘 그대로인 세상 쪽으로 돌아설 수 있네. 그리고 조금씩 참으로 있는 것을 보는 데 익숙해지지. 마침내 그 가운데 가장 밝고 가장 좋은 것, 곧 ‘좋음’을 볼 수 있게 되네.”
정말 그 말씀이 맞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영혼을 가장 쉽고 빠르게 돌려세우는 어떤 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보는 힘을 새로 심어 주는 기술이 아닐세. 보는 힘은 이미 있으니까. 다만 그 힘이 엉뚱한 쪽을 향해 참된 것을 등지고 있지. 그것을 바로 돌려 주는 기술 말일세.”
글라우콘이 말했다. “네, 그런 기술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영혼이 지닌 다른 들은 몸의 좋은 점과 비슷해 보이네. 처음부터 타고나지 않았어도, 나중에 습관과 연습으로 길러 줄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지혜라는 덕은 무엇보다도 신과 같은 것을 품고 있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늘 남아 있지. 이 힘이 어느 쪽으로 돌아서느냐에 따라 쓸모 있고 이로운 것이 되기도 하고, 거꾸로 해롭고 쓸모없는 것이 되기도 하네. 자네는 머리 좋은 나쁜 사람의 날카로운 눈빛을 본 적 없는가? 그 눈에서는 좁은 가 번뜩이지. 그는 무척 열심이고, 그 하찮은 영혼은 자기 목표로 가는 길을 아주 잘 보네. 그는 앞을 못 보는 사람과 정반대일세. 하지만 그 날카로운 눈은 나쁜 일에 쓰이고 있네. 그래서 그는 똑똑한 만큼 더 큰 해를 끼치지 않는가?”
그가 말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릴 때 나쁜 것을 잘라 냈다면 어땠을까? 먹고 마시는 즐거움 같은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처럼 그들에게 매달려 있네. 그것들이 그들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영혼의 눈을 낮은 것들 쪽으로 돌려놓지. 만약 그들이 이런 에서 풀려나 반대쪽으로 돌아섰다면 어땠을까? 그들 안의 바로 그 힘이 참된 것을 똑같이 날카롭게 보았을 걸세. 지금 그들의 눈이 향한 것을 날카롭게 보는 것처럼 말일세.”
아마 그랬을 겁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렇네. 앞에서 한 이야기에서 꼭 따라 나오는 것이 또 하나 있네. 두 무리의 사람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걸세. 하나는 배우지 못해서 참된 것을 모르는 사람이네. 또 하나는 배우기만 하고 끝을 맺지 않는 사람이지. 앞의 사람들은 나랏일에서든 자기 일에서든 모든 행동을 이끌 하나의 목표가 없네. 뒤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벌써 에 따로 살고 있다고 여기지. 그래서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걸세.”
글라우콘이 대답했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라를 세우는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이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그 앎에 이르도록 시켜야 하네. 우리가 이미 모든 앎 가운데 가장 크다고 밝힌 그 앎 말일세. 그들은 ‘좋음’에 이를 때까지 계속 올라가야 하네. 하지만 다 올라가서 충분히 보았다면, 그들이 지금처럼 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들이 위쪽 세상에 그냥 머물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일세. 그들을 동굴 속 갇힌 사람들에게 다시 내려가게 해야 하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고생도 하고 도 나누게 해야 하지. 그것이 받을 만한 것이든 아니든 말일세.”
글라우콘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옳지 않은 일 아닙니까? 그들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데, 우리가 더 나쁜 삶을 주어야 합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친구여, 자네는 법을 만드는 사람의 뜻을 또 잊었군. 그는 나라 안의 어느 한 무리만 남보다 더 행복하게 하려던 것이 아닐세. 나라 전체가 행복해야 했지. 그래서 그는 들을 달래기도 하고 시키기도 하면서 하나로 묶었네. 그는 시민들이 나라에 도움을 주게 했고, 그래서 서로에게도 도움을 주게 했네. 그가 시민들을 그렇게 길러 낸 까닭이 있네. 제멋대로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하나로 묶는 데 쓰려는 것이었네.”
글라우콘이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글라우콘, 잘 생각해 보게. 우리의 들에게 남을 돌보고 보살피라고 시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 아닐세.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줄 걸세. ‘다른 나라에서는 너희 같은 사람들이 힘든 나랏일을 함께 맡지 않아도 된다. 그건 그럴 만하다. 그들은 제 뜻대로 컸고, 나라도 그들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혼자 배웠으니, 받은 적 없는 가르침에 고마워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너희를 로 키웠다. 너희 자신과 다른 시민들의 왕이 되게 했다. 그들보다 훨씬 훌륭하고 빈틈없이 가르쳤다. 그러니 너희는 두 가지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차례가 오면 저마다 모두가 사는 땅속 집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보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그 버릇이 들면 너희는 동굴에 사는 사람들보다 만 배는 더 잘 볼 것이다. 여러 그림자가 무엇이고 무엇을 본뜬 것인지 알 것이다. 너희는 아름다운 것, 옳은 것, 좋은 것의 참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나라, 곧 너희 나라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와는 다른 마음으로 다스려질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그림자를 두고 서로 싸운다. 그리고 을 차지하려고 다투느라 정신이 없다. 그들 눈에는 그 권력이 큰 좋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은 이렇다네. 다스리는 사람들이 다스리기를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언제나 가장 좋고 조용하게 다스려지네. 다스리기를 가장 바라는 나라는 가장 나쁘게 다스려지지.”
글라우콘이 대답했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들이 이 말을 듣고도 나랏일을 맡을 차례를 거절하겠나?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하늘의 빛 속에서 서로 함께 보낼 수 있는데도 말일세.”
글라우콘이 대답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들은 옳은 사람들이고, 우리가 맡기는 일도 옳은 일이니까요. 그들은 모두 꼭 해야 하는 일이라 여기고 나랏일을 맡을 겁니다. 그건 의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렇네, 친구여. 바로 그게 중요한 점일세. 자네는 앞으로 다스릴 사람들에게 다스리는 일보다 더 좋은 삶을 마련해 주어야 하네. 그래야 있는 나라를 가질 수 있지. 그런 삶이 있는 나라에서만 정말 부자인 사람이 다스리기 때문일세. 은과 금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 덕과 지혜가 많은 부자 말일세. 그것이 삶의 참된 복이니까. 그런데 가난하고 제 에 굶주린 사람들이 나랏일을 맡으러 나선다면 어떻겠나? 그 자리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낚아챌 수 있다고 여긴다면? 거기에는 결코 질서가 있을 수 없네. 그들은 자리를 두고 싸울 걸세. 그렇게 나라 안과 집안에서 다툼이 일어나지. 그 다툼이 다스리는 사람들 자신도, 나라 전체도 망하게 할 걸세.”
글라우콘이 대답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나랏일에서 높아지려는 의 삶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삶은 딱 하나뿐이네. 참된 의 삶이지. 자네는 다른 삶을 아는가?”
글라우콘이 말했다. “아니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다스리는 사람은 다스리는 일을 탐내는 사람이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그러면 그 일을 서로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생겨 서로 싸울 테니 말일세.”
그건 따질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억지로라도 나라를 지키는 사람으로 세울 이들은 누구인가? 분명 나랏일을 가장 지혜롭게 알고, 나라를 가장 잘 다스릴 사람들이겠지? 그러면서도 나랏일 말고 다른 명예와 더 좋은 삶을 가진 사람들이겠지?
그가 대답했다.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저라도 그들을 고르겠습니다.”
이제 그런 들을 어떻게 길러 낼지 생각해 볼까? 그들을 어떻게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낼지도 말일세. 옛이야기에서 어떤 이들이 땅 밑 세상에서 신들에게로 올라갔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가 대답했다. “네, 꼭 그렇게 하시지요.”
내가 말했다. 그 일은 굴 껍데기를 휙 뒤집는 것과 다르네. 영혼이 돌아서는 일이지. 밤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낮에서, 참으로 있는 것의 진짜 낮으로 영혼이 돌아서는 것이네. 다시 말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네. 우리는 그것을 참된 철학이라고 말하지 않나?
네, 바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앎이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나?
네, 당연히 찾아보아야 합니다.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