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동경대전

최제우 (崔濟愚)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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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은 동학을 세운 최제우가 쓴 한문 글을 모은 책이다. 최제우는 1860년 경신년 사월에 한울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고, 그 뒤 몇 해 동안 이 글들을 썼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 최시형이 1880년에 책으로 펴냈다.

포덕문(布德文)

문 — 덕을 세상에 널리 펴는 글
최제우에게 묻기
아주 먼 옛날부터 봄과 가을이 번갈아 찾아왔다. 네 계절은 무성해졌다가 시들기를 되풀이했다. 그 차례는 옮겨지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았다. 이것 또한 의 자취다. 그 자취는 온 세상에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와 이슬이 주는 를 알지 못했다. 그저 , 곧 저절로 그렇게 된다고만 여겼다.
최제우에게 묻기
이후로 들이 태어났다. 성인들은 해와 달과 별, 하늘과 땅의 법칙을 글로 적었다. 그렇게 하늘의 도가 늘 변하지 않음을 정해 두었다.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추는 일을 하늘의 명령에 맡겼다. 한 번 잘되고 한 번 망하는 일도 하늘의 명령에 맡겼다. 이것은 하늘의 명령을 공경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가 되었다. 배움은 도와 을 이루었다. 도는 하늘의 도이고, 덕은 하늘의 덕이다. 그 도를 밝히고 그 덕을 닦아서 군자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성인에까지 이르렀다. 어찌 부러워하며 감탄하지 않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그런데 요즘 들어 온 세상 사람들이 하게 되었다. 하늘의 를 따르지 않았다. 하늘의 명령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늘 두려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최제우에게 묻기
이 되었을 때 이런 말을 전해 들었다. 서양 사람들은 그것이 의 뜻이라고 한다. 자기들은 돈과 높은 자리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상을 쳐서 빼앗는다. 그곳에 교회당을 세우고 자기들의 를 편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의심이 들었다. '정말 그럴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최제우에게 묻기
그런데 뜻밖에도 사월에 마음이 서늘해지고 몸이 떨렸다. 무슨 병인지 알아낼 수도 없었다. 말로 그 모습을 그려 내기도 어려웠다. 그때 어떤 신선의 말씀이 갑자기 귀에 들려왔다. 나는 놀라 일어나 누구인지 캐어물었다. 그러자 대답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 사람들은 나를 라고 부른다. 너는 상제를 모르느냐?」 나는 그 까닭을 물었다. 대답하셨다. 「나 또한 이룬 공이 없다. 그래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들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려 한다. 의심하지 마라, 의심하지 마라.」 내가 물었다. 「그러면 서양의 도로 사람들을 가르쳐야 합니까?」 대답하셨다. 「그렇지 않다. 나에게 가 있다. 그 이름은 이다. 그 모양은 태극이고, 또 이다. 내 영부를 받아 사람들을 병에서 건져라. 내 주문을 받아 사람들을 가르쳐, 나를 위하게 하여라. 그러면 너도 오래 살고, 덕을 온 세상에 펼 것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나도 그 말씀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영부를 받아 종이에 썼다. 그리고 물에 타서 마셔 보았다. 그러자 몸이 윤기 있게 좋아지고 병이 나았다. 그제야 그것이 선약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을 병에 써 보니 낫기도 하고 낫지 않기도 했다.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까닭을 살펴보았다. 을 들이고 또 들여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사람은 번번이 들어맞았다. 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과가 없었다. 이것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이 아니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나쁜 병이 세상에 가득하다. 백성들은 사계절 내내 편안할 때가 없다. 이것 또한 다치고 해를 입을 다. 서양은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는다. 그들이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다. 온 세상이 다 망하면 우리 또한 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의 꾀는 앞으로 어디서 나올 것인가.
최제우에게 묻기
안타깝구나! 지금 세상 사람들은 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 말을 들으면, 들어가서는 속으로 그르다고 여긴다. 나와서는 골목에 모여 수군거린다. 도덕을 따르지 않으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어진 사람들조차 이 말을 듣고 혹시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나는 그것이 몹시 스럽다. 하지만 세상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글로 적어 가르쳐 보인다. 이 글을 공경히 받아라. 그리고 조심스럽게 받들어 가르침의 말씀으로 삼아라.
최제우에게 묻기

논학문(論學文)

문 — 배움에 대해 따져 말한 글
최제우에게 묻기
하늘의 도는 모양이 없는 것 같지만 자취가 있다. 땅의 이치는 넓기만 한 것 같지만 방향이 있다. 그래서 하늘에는 아홉 별인 구성이 있다. 구성은 땅의 아홉 고장인 구주와 짝을 이룬다. 땅에는 여덟 방향인 팔방이 있다. 팔방은 와 짝을 이룬다. 차고 비고 번갈아 바뀌는 는 있다. 하지만 움직이고 멈추고 변하고 바뀌는 이치는 없다. 이 서로 고르게 어울린다. 그 속에서 수많은 만물이 생겨난다. 그러나 오직 사람이 가장 .
최제우에게 묻기
그래서 의 이치를 정하고 의 를 냈다. 오행이란 무엇인가? 하늘은 오행의 가 된다. 땅은 오행의 바탕이 된다. 사람은 오행의 기운이 된다. 하늘·땅·사람, 곧 삼재의 수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최제우에게 묻기
네 계절은 무성해졌다가 시든다. 바람과 이슬, 서리와 눈은 제때를 잃지 않는다. 그 차례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이슬처럼 덧없는 백성들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한울님의 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의 자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은혜라고 해도 눈으로 보지 못한 일이다. 조화의 자취라고 해도 그려 말하기 어려운 말이다. 왜 그런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 이치를 바르게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경신년 사월이었다. 세상은 어지럽고 사람들 마음은 메말라 있었다. 다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그때 괴상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말이 세상에 떠들썩하게 돌았다. 「서양 사람들은 도를 이루고 덕을 세웠다고 한다. 그 조화로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무기로 쳐들어가면 당해 낼 사람이 없다고 한다. 중국이 불타 망했으니, 어찌 의 걱정이 없겠는가?」 「다른 까닭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도를 라 하고, 학을 이라 한다. 가르침은 라고 한다. 이것이 하늘의 때를 알고 하늘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이런 일을 하나하나 다 들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두려워하며 늦게 태어난 것만 한탄했다. 그러던 중 몸이 몹시 떨렸다. 밖으로는 하는 기운이 있었다. 안으로는 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런데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더욱 이상했다. 그래서 하고 물었다.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최제우에게 묻기
대답하셨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사람이 어찌 이것을 알겠느냐? 사람들은 하늘과 땅은 알아도 은 모른다. 귀신이라는 것도 바로 나다. 너는 끝없고 또 끝없는 도에 이르렀다. 그러니 닦고 하여라. 그 글을 지어 사람들을 가르쳐라.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라. 그러면 너를 오래 살게 하겠다. 온 세상에 빛나게 하겠다.」
최제우에게 묻기
나도 거의 한 해 동안 닦으며 헤아려 보았다. 그러자 역시 저절로 그러한 이치가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의 법을 지었다. 또 한편으로는 잊지 않는 글을 지었다. 그 절차와 은 오직 이십일 자로 되어 있을 뿐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이 되었다. 여러 곳의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와서 물었다. 「지금 이 선생님께 내려왔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내가 대답했다.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는 이치를 받은 것이다.」 그들이 물었다. 「그러면 무슨 도라고 이름합니까?」 「다.」 「서양의 도와 다른 점이 없습니까?」 「서양의 학문은 우리 도와 같은 듯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비는 것 같지만 알맹이가 없다. 그러나 은 하나이고 도는 같다. 다만 이치는 같지 않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들이 물었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우리 도는 다.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한다. 한울님의 을 따르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가운데 저절로 이루어진다.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다. 글에 순서도 없다.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가 없다. 다만 제 몸만을 위해 빌 뿐이다. 몸에는 의 신령함이 없다. 학문에는 한울님의 가르침이 없다. 겉모양은 있지만 자취가 없다.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문이 없다. 그러니 도는 텅 빈 것에 가깝다. 학문은 한울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 다른 점이 없다고 하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그들이 물었다. 「도가 같다면 이라고 이름해야 합니까?」 내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동쪽에서 태어나 동쪽에서 도를 받았다. 도는 비록 천도이지만, 학은 이다. 더구나 땅이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있다. 서쪽을 어찌 동쪽이라 하고, 동쪽을 어찌 서쪽이라 하겠느냐? 옛 중국의 스승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나 추나라에 도를 폈다. 그래서 추나라와 노나라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전해 왔다. 우리 도는 이 땅에서 받아 이 땅에서 폈다. 그러니 어찌 서쪽 이름을 붙이겠느냐?」
최제우에게 묻기
그들이 물었다. 「의 뜻은 무엇입니까?」 내가 대답했다.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라서 주문이라고 한다. 지금 글에도 있고 옛 글에도 있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들이 물었다. 「은 어찌하여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지'는 더할 수 없이 지극하다는 뜻이다. '기'는 허령이 창창한 것이다. 이 기운은 모든 일에 끼어들고, 모든 일에 명령한다.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려 내기 어렵다. 들리는 것 같은데 보기는 어렵다. 이것 또한 한 하나의 기운이다. '금지'는 도에 들어와 처음으로 에 닿았음을 안다는 뜻이다. '원위'는 바라며 비는 뜻이다. '대강'은 기화를 바라는 것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시(侍)」는 안으로 이 있고 밖으로 가 있다는 것이다. 온 세상 사람이 저마다 이것을 알아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主)」는 높여 부르는 말이다. 부모님과 같이 섬긴다는 뜻이다. 「조화(造化)」는 하는 일 없이 저절로 되는 것, 곧 무위이화다. 「정(定)」은 그 덕에 맞추고 그 마음을 정한다는 뜻이다. 「영세(永世)」는 사람의 한평생이다. 「불망(不忘)」은 생각을 늘 품고 있다는 뜻이다. 「만사(萬事)」는 수가 많다는 뜻이다. 「지(知)」는 그 도를 알고 그 앎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덕을 밝히고 또 밝혀야 한다. 늘 생각하며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지극히 에 하나로 녹아들어, 가장 높은 성인에 이른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들이 물었다. 「한울님 마음이 곧 사람 마음이라면, 어찌하여 착함과 악함이 있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사람마다 귀하고 천한 다름이 명령으로 정해져 있다. 괴롭고 즐거운 이치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군자의 덕은 기운이 바르고 마음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하늘땅과 그 덕이 맞는다. 의 덕은 기운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이 이리저리 옮긴다. 그래서 하늘땅의 명령을 어긴다. 이것이 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그들이 물었다. 「온 세상 사람이 어찌하여 님을 공경하지 않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한울님을 부른다. 그것이 사람의 보통 마음이다. 목숨이 한울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한울이 모든 백성을 냈다는 말도 있다. 이것은 옛 성인이 하신 말씀이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들이 물었다. 「도를 헐뜯는 사람은 어째서 그렇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다.」 「어찌하여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 도는 지금도 옛날에도 듣지 못한 일이다. 지금도 옛날에도 견줄 데가 없는 법이다. 닦는 사람은 헛된 것 같지만 알맹이가 있다. 듣기만 하는 사람은 알맹이가 있는 것 같지만 헛되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들이 물었다. 「도를 하고 떠나는 사람은 어째서 그렇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그런 사람은 말할 거리도 못 된다.」 「어찌하여 말할 거리가 못 됩니까?」 「공경하되 멀리할 일이다.」 「도에 들어올 때는 무슨 마음이었습니까? 배반할 때는 무슨 마음입니까?」 「바람 앞의 풀과 같다.」 「그렇다면 어찌 이 됩니까?」 「한울님은 착함과 악함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해도 없고 도 없습니까?」 「 때에는 백성이 모두 요순처럼 되었다. 이 세상의 운수는 세상과 함께 돌아간다. 해가 되고 덕이 되는 것은 한울님께 달렸다.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해가 그 몸에 미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복을 누린다는 말은 남이 듣게 해서는 안 된다. 그대가 물을 일도 아니다. 내가 상관할 일도 아니다.」
최제우에게 묻기
아, 참으로 감탄할 일이다! 그대들이 도를 묻는 것이 어찌 이렇게 밝고 또 밝은가. 내 글은 서툴러서 정밀한 뜻과 바른 에 미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을 바르게 하는 데 어찌 두 갈래 길이 있겠는가. 몸을 닦고, 재주를 기르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하늘과 땅의 끝없는 수와 도의 끝없는 이치가 모두 이 글에 실려 있다. 그대들은 오직 이 글을 공경히 받아라. 거룩한 덕을 돕는 일을 나에게 견주어 보자. 그것은 마치 단맛이 다른 맛과 잘 어울리고, 흰 바탕이 고운 을 잘 받는 것과 같다. 나는 지금 도를 즐거워한다. 하고 감탄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따져서 말하고 타일러 보인다. 밝게 살펴서 를 잃지 말라.
최제우에게 묻기

수덕문(修德文)

문 — 덕을 닦는 일을 적은 글
최제우에게 묻기
원·형·이·정은 하늘의 도가 늘 변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직 한결같이 를 지키는 것은 사람의 일에서 살필 일이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은 공자님의 성인다운 바탕이다. 배워서 아는 것은 옛 선비들이 서로 전해 온 것이다. 애써서 겨우 얻은 얕은 지식이라도 모두 우리 스승님의 큰 덕으로 된 것이다. 그리고 의 옛 을 잃지 않은 것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나는 동쪽 나라에 태어나 하는 일 없이 헛되이 세월을 보냈다. 겨우 집안의 이름을 지켰을 뿐이다. 가난한 선비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선조의 충의는 그 절개가 에 넉넉히 남아 있다. 우리 임금의 큰 덕은 임진년과 병자년에 다시 돌아왔다. 이렇게 남은 조상의 덕이 물 흐르듯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님이 세상에 나오셨다. 그 이름이 한 를 덮을 만큼 알려졌다. 선비들 가운데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덕이 여섯 대를 이어 왔으니, 어찌 자손에게 남겨진 가 아니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아, 슬프다. 학사로 사신 한평생은 세월이 봄꿈처럼 흘러갔다. 나이 마흔에 이르러, 공부한 것을 울타리 가에 버린 물건처럼 여기셨다. 마음에는 벼슬할 뜻이 없으셨다. 한편으로는 「」를 지으셨다. 한편으로는 「」의 글귀를 읊으셨다.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은 모습은 마치 숨어 사는 선비 같았다. 산이 높고 물이 긴 것은 선생의 와 다름이 없었다. 구미산의 기이한 봉우리와 괴이한 바위는 월성 금오산의 북쪽에 있다. 용추의 맑은 못과 보배로운 시내는 옛 도읍 마룡의 서쪽에 있다. 동산의 복숭아꽃은 고기잡이배가 알아챌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집 앞의 푸른 물결은 의 낚시에 뜻이 있었다. 난간이 연못가에 닿은 것은 옛 중국 학자 주렴계의 뜻과 다르지 않다. 정자 이름을 용담이라 한 것은 제갈량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흘러가는 세월은 막을 길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신선이 되시는 슬픔을 맞았다. 외로운 나의 한 목숨은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무엇을 알았겠는가.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었다. 아버님이 평생 하신 일은 불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못난 자손으로서 남은 한을 안고 세상에서 했다. 어찌 슬프지 않으며,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마음으로는 집안일을 돌볼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어찌 씨 뿌리고 거두는 농사일을 알았겠는가. 글공부도 열심히 하지 못했다. 그래서 벼슬할 생각도 사라졌다. 살림은 점점 어려워졌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나이는 차차 많아졌다. 가 앞으로 더 궁해질까 걱정했다. 를 헤아려 보니 춥고 굶주릴 걱정이 있었다. 나이 마흔이 된 것을 생각하니, 이룬 일이 없어 어찌 하지 않겠는가. 몸 둘 곳을 정하지 못했으니, 누가 세상이 넓고 크다고 하겠는가. 하는 일마다 어긋났다. 한 몸 지키기도 어려운 내가 가엾었다. 이때부터 세상의 어지러운 일을 벗어 버렸다. 가슴속에 맺혔던 것도 풀어 버렸다.
최제우에게 묻기
용담의 옛집은 아버님이 가르치시던 곳이다. 의 새 고을은 오직 나의 고향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온 날은 시월이다. 운수를 타고 도를 받은 때는 경신년 사월이다. 이것 또한 꿈같은 일이다. 그려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 괘의 크게 정해진 수를 살펴보았다. 가 하늘을 공경한 이치도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러자 옛 선비들이 하늘의 명령을 따랐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뒤의 학자들이 그것을 잊어버린 것을 혼자 탄식했다. 닦고 단련해 보니 저절로 그러한 이치가 아닌 것이 없었다. 공자님의 도를 깨닫고 보면 하나의 이치로 정해진 것이다. 우리 도로 말하면 크게는 같고 조금 다르다. 의심을 버리면 일의 이치가 늘 그러하다. 옛날과 지금을 살피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나는 할 마음은 두지 않았다. 다만 지극한 정성을 드릴 일만 생각했다. 그렇게 미루다가 다시 을 맞았다. 때는 유월이었다. 계절은 여름이었다. 좋은 벗들이 자리에 가득 모였다. 먼저 도를 닦는 법을 정했다.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또 포덕을 하라고 권했다.
최제우에게 묻기
가슴에는 죽지 않는 약을 품었다. 그 모양은 이다. 입으로는 오래 사는 주문을 외운다. 그 글자는 스물한 자다. 문을 열고 손님을 맞으니 그 수가 그럴듯하다. 자리를 펴고 법을 베푸니 그 재미가 그럴듯하다. 어른들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모습은 마치 가 늘어선 것 같다. 아이들이 손 모아 절하는 모습은 가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이가 있으니, 이 또한 의 예와 같다.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니, 어찌 공자님의 춤과 다르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는 옛 성인이 가르친 것이다. 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다. 한 번 을 치르는 것은 한울님을 길이 모시겠다는 무거운 맹세다. 모든 의심을 깨뜨려 버리는 것은 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옷과 갓을 바르게 갖추는 것은 군자의 행실이다. 길에서 먹으며 뒷짐을 지는 것은 천한 사람의 버릇이다. 도를 닦는 집에서 먹지 않을 것은 네발짐승 가운데 한 가지 나쁜 고기다. 몸에 해로운 것은 찬물에 갑자기 앉는 것이다. 를 막는 것은 나라 법으로도 금하는 일이다. 누워서 큰 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것은 나의 정성된 도를 게을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펴 놓으니, 이것이 지킬 규칙이 된다.
최제우에게 묻기
아름답구나, 우리 도가 행해지는 모습이여! 붓을 들어 글씨를 쓰면 사람들이 의 글씨인가 의심한다. 입을 열어 시를 읊으면, 누가 나무꾼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겠는가. 잘못을 뉘우친 사람은 의 재물도 탐내지 않는다. 정성이 지극한 아이는 의 밝은 귀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얼굴 모습이 바뀐 것은 신선의 바람이 불어온 듯하다. 오랜 병이 저절로 나으니 의 훌륭한 이름도 잊을 만하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렇지만 은 정성에 있고 사람에게 달렸다. 어떤 사람은 떠도는 말을 듣고 도를 닦는다. 어떤 사람은 떠도는 주문을 듣고 외운다.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며, 어찌 한 일이 아니겠는가. 안타까운 내 마음은 하루도 간절하지 않은 날이 없다. 빛나는 거룩한 덕을 혹시 그르칠까 두렵다. 이것은 직접 만나지 못한 탓이다. 사람이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멀리 있어도 마음과 마음은 서로 비추어 통한다. 그래도 그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다. 가까이 만나 마음을 펴고 싶다. 하지만 받을 걱정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지어 펴 보인다. 어진 그대들은 내 말을 들어라.
최제우에게 묻기
이 도에서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이 된다. 믿을 자를 풀어 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은 말도 있고 그른 말도 있다. 그중 옳은 말은 받아들이고 그른 말은 버려라.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이렇게 닦아야 마침내 정성을 이룬다. 정성과 믿음이여, 그 법은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의 말로 이루어진 것이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을 들여라. 내가 지금 밝게 가르치니, 어찌 믿을 만한 말이 아니겠는가. 공경하고 정성을 들여라. 가르치는 말을 어기지 말라.
최제우에게 묻기

불연기연(不然其然)

— 그렇지 않음과 그러함
최제우에게 묻기
노래한다. 오랜 옛날부터 은 저마다 이루어지고, 저마다 모양을 지녔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따지면 그러하고, 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헤아려 보면 멀고도 아주 멀다. 이것 또한 아득한 일이다. 헤아리기 어려운 말이다. 내가 어떻게 내가 되었는지 생각하면 부모가 여기 계신다. 내 뒤에 올 사람을 생각하면 이 그곳에 있다. 오는 세상에 비추어 보면 이치가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나간 세상에서 찾아보면, 어쩌면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되었는지 가리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최제우에게 묻기
아, 이렇게 헤아려 보는구나! 그러한 것을 따라 보면, 은 기연이다. 그렇지 않은 것을 찾아 생각하면, 은 불연이다. 왜 그런가? 아주 옛날 는 어떻게 사람이 되었는가? 또 어떻게 임금이 되었는가? 이 사람은 뿌리가 없구나. 어찌 불연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부모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조상을 거슬러 살피면, 그렇고 그렇고 또 그러한 까닭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렇게 세상이 되자, 임금을 내고 스승을 냈다. 임금은 법을 만들었다. 스승은 를 가르쳤다. 그런데 맨 처음 임금에게는 자리를 물려준 임금이 없었다. 그러면 은 어디서 받았을까? 맨 처음 스승에게는 가르침을 준 스승이 없었다. 그러면 예의는 어디서 본받았을까? 알 수 없고,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알아서 그런 것인가? 저절로 되어서 그런 것인가? 태어나면서부터 알았다고 해도, 마음은 어둠 속에 있다. 저절로 되었다고 해도, 이치는 아득히 멀리 있다.
최제우에게 묻기
이와 같으니, 불연은 알지 못하므로 불연이라 말하지 못한다. 기연은 알 수 있으므로 기연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 끝을 헤아리고 그 을 캐어 보았다. 만물이 만물이 되고 이치가 이치가 된 큰일은 얼마나 먼 것인가! 하물며 이 세상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가 정해진 지 몇 해인가. 이 스스로 와서 다시 돌아온다. 옛날과 지금이 변하지 않는구나. 그런데 어찌 운이라 하고, 어찌 돌아온다 하는가. 만물의 불연이여, 세어서 밝히고 적어서 밝히리라. 네 계절에 차례가 있구나.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가,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가. 산 위에 물이 있구나. 그것이 그럴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는가. 갓난아기는 어리고 어리구나. 말은 못 해도 부모를 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앎이 없는가, 어찌하여 앎이 없는가. 이 세상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앎이 없는가. 성인이 태어나심이여, 는 천 년에 한 번 맑아진다고 한다. 운이 스스로 와서 돌아온 것인가? 물이 스스로 알고 변한 것인가? 밭 가는 소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구나. 마음이 있는 듯하고 앎이 있는 듯하다. 힘으로 넉넉히 해낼 수 있구나. 그런데 왜 고생을 하고, 왜 죽는가. 까마귀 새끼가 어미에게 도로 먹이를 먹이는구나. 저것도 효도와 공경을 안다. 제비는 주인을 알아보는구나. 가난해도 또 돌아오고, 가난해도 또 돌아온다.
최제우에게 묻기
그러므로 꼭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불연이다. 판단하기 쉬운 것은 기연이다. 먼 곳까지 캐어 견주어 보면,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고 또 그렇지 않은 일이다. 에게 맡겨 보면, 그렇고 그렇고 또 그러한 이치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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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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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태어나 살면서, 부끄럽게도 사람의 도리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덮어 주고 실어 주는 은혜를 느낍니다. 해와 달이 비추어 주는 덕도 입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참된 것으로 돌아가는 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에 잠겨, 마음에 잊고 잃은 것이 많았습니다. 이제 이 거룩한 세상에서 선생님께 도를 깨달았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합니다. 모든 착한 일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길이 모셔 잊지 않겠습니다. 도를 마음공부에 두어 수련에 거의 이르렀습니다. 이제 좋은 날에 도를 닦는 곳을 깨끗이 했습니다. 공손히 맑은 술과 여러 음식으로 받들어 청하오니,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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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주문

문 — 잘못을 뉘우치는 글
최제우에게 묻기
이름이 「」인 저는 「아무」 나라에 태어나 살면서, 부끄럽게도 사람의 도리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덮어 주고 실어 주는 은혜를 느낍니다. 해와 달이 비추어 주는 덕도 입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참된 것으로 돌아가는 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에 잠겨, 마음에 잊고 잃은 것이 많았습니다. 이제 이 거룩한 세상에서 선생님께 도를 깨달았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합니다. 모든 착한 일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길이 모셔 잊지 않겠습니다. 도를 마음공부에 두어 수련에 거의 이르렀습니다. 이제 좋은 날에 도를 닦는 곳을 깨끗이 했습니다.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바람으로 받들어 청하오니,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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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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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주문 — 선생이 외우는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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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은 이렇다. 더없이 큰 기운(지기)이 지금 이르러 왔으니, 사월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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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 주문은 「지기금지 사월래」다. 본 주문은 이렇다. 「하늘님을 모시니, 저를 오래오래 끝없이 살게 하시고, 끝없이 모든 일을 알게 하소서.」
최제우에게 묻기
제자 주문 — 제자들이 외우는 주문
최제우에게 묻기
주문은 이렇다. 「하늘님께서 나를 돌보시니, 내 마음 토록 잊지 않고 모든 일이 알맞게 되기를 바랍니다.」 강령 주문은 「지기금지 원위대강」이다. 본 주문은 이렇다. 「하늘님을 모시어 로 정하시니, 영세토록 잊지 않고 모든 일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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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주문해

시 — 봄이 시작되는 날에 지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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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운을 오래오래 지키니, 못된 것이 들어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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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여러 사람과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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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의

최제우에게 묻기
황하의 물이 맑아지고 새가 우는 것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최제우에게 묻기
운이 어디에서 오는지 나는 모른다.
최제우에게 묻기
운수가 어디에서 오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평생 을 받아, 천 년의 운을 지닌다.
최제우에게 묻기
거룩한 덕을 지닌 우리 집안은 백 대에 걸친 일을 이어 왔다.
최제우에게 묻기
용담의 물이 흘러, 네 바다의 이 된다.
최제우에게 묻기
에 봄이 돌아오니, 온 세상이 꽃이다.
최제우에게 묻기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