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다산시문집

정약용 (丁若鏞)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이 초등판은 『꼭 읽어야 할 고전 선집』에서 읽는 대목만 담았습니다 — 서간 —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1801~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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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1762~1836)이 귀양살이를 하며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입니다. 1801년 귀양 가는 길에 쓴 편지부터 전라도 강진에서 쓴 편지까지 모았습니다. 집안이 큰 벌을 받아 벼슬길이 막힌 아들들에게 책 읽기와 공부, 집안일을 일러 줍니다.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신유년(1801) 3월 2일, (荷潭)에 닿아서 썼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헤어지는 슬픔은 굳이 말하지 않으마. 너희는 언제쯤 어머니를 모시고 동쪽 집으로 돌아가겠느냐? 꼭 곧장 돌아가서 문을 닫아걸고 엎드려 빌 뿐이다. 나는 길을 가는 동안 몸이 날마다 나아지고 있다. 에는 죽산에서 잤다. 초하루에는 가흥에서 잤다. 지금 막 부모님 산소에서 한바탕 목 놓아 울고 떠나려 한다. 어디를 간들 임금님의 은혜가 닿지 않는 곳이 있겠느냐.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너희 어머니 얼굴빛이 몹시 위태롭다. 보약을 먹여 잘 돌보아라. 다 쓰지 못한다. 초아흐렛날에는 에 닿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몹시 기다리던 참에 편지가 왔구나. 마음이 참 놓인다. 는 아직 병의 뒤끝이 남아 있구나. 어린 딸은 점점 약해져 가니 걱정스럽다. 나는 약을 먹은 뒤로 대체로 조금 나아졌다.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은 씻은 듯이 나았다. 몸을 곧게 못 세우던 것도 다 나았다. 다만 왼팔은 아직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차츰 나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번 달을 맞으니 나라 일로나 집안 일로나 몹시 슬프다. 밤낮으로 그리워하니, 이게 어디 사람 꼴이겠느냐. 더 쓰지 못한다. 6월 17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날짜를 세어 보니 82일 만에 네 편지를 받았구나. 그사이 내 턱밑에는 가시 같은 수염이 일고여덟 가닥 자랐다. 너희 어머니 병이 다시 도진 것은 미리 짐작했던 일이다. 큰며느리는 을 앓고 나서 몸이 무척 여위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 견디기 힘들구나. 그런데 신주()의 일은 말하려니 가슴이 막힌다. 반년이나 소식이 끊겼으니, 같은 세상에 살아 있다고 할 수나 있겠느냐? 나는 평평한 땅에 앉아 있어도 이렇게 괴롭다. 그러니 신주에 있는 사람은 오죽하겠느냐. 형수님 사정도 딱하구나. 너는 형수님을 어머니처럼 모셔라. 여섯째 형은 친형제처럼 여겨라. 온 마음을 다해 돌보아 드려라. 내가 밤낮으로 비는 것은 오직 하나다. 문아(文兒)가 책을 읽는 것이다. 문아가 선비다운 마음을 품게 된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읽어서 이 아픈 마음에 보답하거라. 팔이 아파 다 쓰지 못한다. 9월 3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너는 이제 도가 다 이루어지고 덕이 굳게 섰느냐? 그래서 다시는 책을 안 읽어도 된단 말이냐? 이번 겨울에는 아직 못 읽은 와 를 꼭 다시 읽는 게 좋겠다. 와 도 손에 익도록 읽어야 한다. 역사를 평하는 글은 그동안 몇 편이나 지었느냐? 뿌리와 바탕을 두텁게 길러라. 자잘하게 번쩍이는 재주는 드러내지 말고 감추어라. 정말 간절히 바란다. 내가 책 쓰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눈앞의 걱정을 잊으려는 것만이 아니다. 아버지와 형이 되어 집안에 이렇게까지 짐을 지운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것으로 잘못을 갚으려는 것이다. 그 뜻이 어찌 깊지 않겠느냐? 예법에 관한 학설도 꼭 마음에 두어야 한다. 《독례통고》 네 상자를 학손(鶴孫) 편에 보내거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두 아들에게 답하는 편지. 여기서부터는 에서 살이하며 쓴 편지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편지를 받아 보니 마음이 놓인다. 둘째의 글씨가 조금 나아졌구나. 글의 짜임새도 좋아졌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냐? 아니면 틈틈이 익히고 연습해서 그런 것이냐? 절대로 스스로 포기하지 마라. 마음과 힘을 다해 책을 읽어라. 책을 베껴 쓰고, 책을 지어라.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이 된 데다 글도 모르고 예의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보통 사람보다 백 배는 더 애써야 한다. 그래야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다. 나는 괴로운 일이 아주 많다. 그래도 너희가 책을 읽고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이 없다. 큰아이는 4월 하순이 지나면 말을 사서 타고 오너라. 그런데 헤어질 때의 슬픔이 벌써부터 마음을 막는구나. 임술년(1802) 2월 7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종 돌이가 2월 7일에 떠났다. 셈해 보면 오늘쯤 집에 닿았겠구나. 나는 이번 달을 맞아 마음을 더욱 가누기 어렵다. 너희가 하는 양을 보니, 글공부를 아주 그만두려는 것 같구나. 정말 농사꾼이나 종 같은 천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냐? 이름난 집안은 글을 몰라도 혼인을 할 수 있다. 군대에 끌려가는 일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폐족이 글마저 모르면 어떻게 되겠느냐? 글 짓는 재주는 오히려 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배우지 않아 예의가 없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폐족에서 뛰어난 인재가 자주 나온다. 다른 까닭이 아니다. 시험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를 볼 수 없다고 해서 절대로 기죽지 마라. 공부에 마음을 다해라. 책 읽는 씨앗이 끊어지지 않게 해라. 간절히, 간절히 부탁한다. 내가 입은 옷은 지난해 10월 1일에 입은 그 옷이다. 어찌 견디겠느냐? 2월 17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나는 귀양살이의 부끄러움과 괴로움 속에서도 예법 책 연구를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그 이치는 아주 섬세해서 마치 파 껍질을 벗기는 것 같다. 네가 왔을 때 들려준 것은 대개 겉껍질이었다. 뿌리는 거의 버려둔 셈이었지. 올해가 가기 전에는 거의 실마리를 잡을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진나라와 한나라 이후로 수천 년이 지났다. 그런데 동쪽 수천 리 밖에서 의 옛 예법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다 쓰는 대로 보내서 네가 한 부를 더 베끼게 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뜻대로 안 되는구나. 좋은 말과 깊은 이치를 털어놓을 곳이 없어 한탄스럽다. 그래도 어찌하겠느냐? 마융과 정현은 유학자라고는 하지만 권세가 세상을 누를 만큼 컸다. 바깥채에서는 제자들과 학문을 이야기했다. 안채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여인들을 두고 즐겼다. 그만큼 화려하고 넉넉하게 살았다. 그러니 경전 연구가 꼼꼼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뒤에 나온 공영달과 가공언도 모두 이름난 학자였다. 하지만 마음이 꼼꼼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글에는 흐릿한 곳이 많다. 이제야 알겠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책을 쓸 수 있구나. 아주 총명한 선비가 아주 어려운 처지를 만나야 한다. 하루 종일 홀로 지내야 한다. 사람 소리나 수레 소리에 시달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경전과 예법의 깊은 뜻을 얻을 수 있다. 세상에 이렇게 묘한 일이 또 있겠느냐? 옛 경전을 살펴서 정현과 가공언의 학설과 견주어 보았다. 거의 하나하나 잘못 알고 있더구나. 책 읽기가 이렇게 어렵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책을 베껴 쓰는 법을 말해 주마. 먼저 내 학문에 중심이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속에 저울이 생긴다. 그러면 무엇을 고르고 버릴지 어렵지 않다. 학문의 요점은 전에 이미 말했다. 너는 틀림없이 잊어버렸구나. 그렇지 않다면 어찌 베껴 쓰는 일을 두고 이런 질문을 하겠느냐? 책 한 권을 얻으면, 내 학문에 보탬이 되는 것만 골라 뽑아라.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마라. 그러면 백 권짜리 책도 열흘이면 끝난다. 고려 역사 정리는 아직도 손을 대지 못했느냐? 어린 네가 멀리 내다보는 눈이 없으니 안타깝구나. 너는 편지에서 모르는 것을 물어볼 곳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정말 마음이 그렇게 간절하냐? 궁금해서 못 견디고, 생각하다 못 참겠느냐? 그렇다면 왜 하나하나 적어서 오가는 사람 편에 보내지 않느냐? 아버지가 아들의 스승이 되는 것도 즐겁지 않겠느냐?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학문의 큰 줄기를 말하마. 효도와 를 뿌리로 삼는다. 예절과 음악으로 아름답게 꾸민다. 다스림과 법으로 돕는다. 군사와 농사로 날개를 단다. 세금과 나랏일, 재물에 관한 것도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책을 베껴 쓸 때의 요점은 이렇다. 어떤 책을 보다가 에 없는 좋은 말과 착한 행동을 만나면 뽑아라. 《소학》 뒤에 이어 붙일 만한 것들이다. 경전을 풀이한 글 가운데 새롭고 근거가 있는 것도 뽑아라. 예법에 관한 경전도 마찬가지다. 글자나 소리를 연구한 글은 열에 하나만 뽑아라. 《설령》에 실린 〈기정〉 같은 글도 있다. 이런 글은 군사 공부를 위해 뽑아야 한다. 농사와 의학에 관한 학설은 먼저 집에 있는 책들을 살펴보아라. 그것이 새로운 학설인지 안 뒤에 베껴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임술년(1802) 12월 22일, 강진의 귀양지에서 썼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세상 만물 가운데 처음부터 저절로 온전하고 좋은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망가지고 다치고 깨진 것이 있다. 그것을 어루만지고 다듬고 바꾸어서 온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공을 칭찬할 만하다. 그래서 죽을 병을 고치는 사람을 훌륭한 의사라고 부른다. 무너지려는 성을 살려 낸 사람을 이름난 장수라고 부른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이 있다. 그 자식들이 벼슬과 큰 집안을 물려받는 것은 평범하고 어리석은 자식이라도 할 수 있다. 너희는 지금 이 되었다. 이 처지를 잘 다루어서 처음보다 더 온전하고 훌륭하게 만든다면 어떻겠느냐? 그것이야말로 놀랍고도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폐족이 된 처지를 잘 다룬다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오직 책 읽기 한 가지뿐이다. 책 읽기는 세상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일이다. 그래서 비단옷 입은 부잣집 자식들에게는 참맛을 알려 주지 않는다. 초가집에 사는 시골 선비들에게도 깊은 곳을 보여 주지 않는다. 벼슬하는 집안에서 자라 어려서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에 너희처럼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다. 저들이 글을 못 읽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읽기만 할 뿐, 참된 책 읽기라고 부를 수 없다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의원 집안이 3대를 잇지 않았으면 그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글도 그렇다. 여러 대를 이어야 잘할 수 있다. 돌아보면 내 재주와 기운은 너희보다 조금 나았다. 그러나 어릴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열다섯 살에 처음 서울에 와서 지냈다. 하지만 놀기만 하고 얻은 것이 없었다. 스무 살 무렵에야 과거 공부에 마음을 쏟았다. 나라의 큰 학교인 태학에 들어가서는 꾸밈 많은 글짓기에 빠졌다. 시험에 매여서는 글을 꾸미고 다듬는 자잘한 일에 머리를 묻었다. 그렇게 거의 10년이 흘렀다. 그 뒤에는 책을 바로잡는 일로 바빴다. 에 가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힘을 쏟았다. 돌아와서는 신공과 민공 두 분에게 을 당했다. 이듬해에는 임금님이 돌아가시는 큰 슬픔을 겪었다. 서울과 시골을 바삐 오가다가 지난봄의 화를 입었다. 하루도 마음 놓고 책만 읽은 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은 시와 글은 은하수 물 백 섬으로 씻어도 과거 시험장 냄새가 난다. 그중 좋은 글도 관청 글 티를 벗지 못했다. 이제 내 수염과 머리는 희끗희끗해졌다. 기운도 이미 약해졌다. 어찌 운명이 아니겠느냐? 큰아들 너는 재주와 기억력이 나보다 조금 못하다. 그러나 네가 열 살 때 지은 글은 내가 스무 살 때도 못 짓던 글이었다. 몇 해 전에 지은 글은 지금의 나도 못 따라갈 때가 있다. 공부의 길을 빙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고 들은 것이 거칠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곡산에서 돌아온 뒤, 나는 너에게 과거 공부를 시켰다. 그러자 너를 아끼던 그때의 글 잘하는 선비들이 모두 나를 욕심이 많다고 나무랐다. 나도 스스로 부끄러웠다. 이제 너는 과거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과거 공부 걱정은 없어졌다. 내 생각에 너는 이미 진사가 되고 이미 급제한 것과 같다. 글을 알면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것과 진사가 되어 급제하는 것, 무엇을 고르겠느냐? 너는 정말로 책 읽을 때를 만난 것이다. 내가 말한 '폐족이 된 처지를 잘 다룬다'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니겠느냐? 작은아들 너는 재주와 힘이 형보다 한 단계 아래인 것 같다. 그러나 성품이 따뜻하고 꼼꼼하며 깊이 생각할 줄 안다. 정말로 이 일에 마음을 쏟는다면 오히려 형보다 나아질지 어찌 알겠느냐? 요즘 그의 글씨와 글이 조금 나아진 것을 보고 이것을 알았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책을 읽으려면 먼저 뿌리를 세워야 한다. 뿌리란 무엇이겠느냐? 배우려는 뜻이 없으면 책을 읽을 수 없다. 배우려는 뜻을 세우려면 먼저 뿌리를 세워야 한다. 그 뿌리란 무엇이겠느냐? 오직 효도와 이다. 먼저 효도와 우애를 힘써 실천해 뿌리를 세우거라. 그러면 학문은 저절로 몸에 스며든다. 학문이 스며들면 책 읽기는 따로 순서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나는 세상에 홀로 서 있다. 오직 글 쓰는 일에 목숨처럼 기대고 있다. 한 구절이나 한 장이 마음에 쏙 들 때가 있다. 그러면 혼자 읊고 혼자 즐긴다. 그러다 생각해 보면, 이것을 보여 줄 사람은 세상에 너희뿐이다. 그런데 너희 마음은 이미 남처럼 멀어졌다. 글을 낡은 헌신짝처럼 여긴 채 몇 해가 훌쩍 흘렀다. 나이 들어 몸이 커지고 수염이 덥수룩해졌는데, 마주 보기도 싫은 꼴이 된다면 어떻겠느냐? 그래서야 어찌 아버지의 책을 읽겠느냐? 나는 도 아버지의 책을 읽을 줄 알았으니 어진 자식이었다고 본다. 너희가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면, 내가 책을 쓴 것은 쓸모없는 일이 된다. 그러면 나는 할 일이 없어진다. 마음을 닫고 흙 인형처럼 앉아 있게 되겠지. 그러면 열흘도 못 되어 병이 날 것이다. 그 병은 어떤 약으로도 못 고칠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책을 읽는 것이 바로 내 목숨을 살리는 길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거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전에도 여러 번 말했다. 이름난 집안은 책을 읽지 않아도 저절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폐족이 배움마저 거칠다면 더욱 미움을 받지 않겠느냐? 남이 깔보고 세상이 업신여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슬픈 일이다. 그런데 너희마저 스스로를 깔보고 업신여긴다면, 슬픈 일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너희가 끝내 배우지 않고 스스로 포기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내가 써서 정리한 글들을 누가 거두어 차례대로 엮겠느냐? 누가 고치고 다듬어서 남길 것과 뺄 것을 가리겠느냐? 그렇게 못 하면 내 책은 끝내 전해지지 못한다. 내 책이 전해지지 않으면 뒷사람들은 나를 벌하라고 올린 글과 재판 기록만 보고 나를 평가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너희는 여기까지 생각해서 힘을 내어 공부해야 한다. 나의 작은 글 줄기가 너희에게 와서 더 크고 더 넉넉해지게 하거라. 그러면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내는 것도 이 맑고 귀한 일과 바꿀 수 없다. 어찌 이것을 버려두고 애쓰지 않으려 하느냐?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요즘 몇몇 젊은이가 원나라와 명나라 때 가볍고 경솔한 사람들의 시를 가져다 쓴다. 쓸쓸하고 쩨쩨하며 뾰족하고 자잘한 시들이다. 그것을 본떠 짧은 시를 지어 놓고는, 세상에 없는 훌륭한 글을 지었다고 남몰래 뽐낸다. 그리고 남을 깔보며 옛날과 지금의 글을 다 쓸어버리려 한다. 나는 늘 이것이 안타까웠다. 먼저 공부로 바탕을 튼튼히 세워야 한다. 그다음 지난 역사를 두루 읽어야 한다. 나라가 잘되고 못된 까닭과,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진 뿌리를 알아야 한다. 또 실제로 쓸모 있는 학문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돕는 옛사람의 글을 즐겨 읽어야 한다. 마음에 늘 온 백성을 넉넉하게 하고 만물을 기르려는 뜻을 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책 읽는 가 된다. 그렇게 한 뒤에 안개 낀 아침이나 달 뜬 밤을 만날 수 있다. 구름 짙고 가랑비 내리는 때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럴 때 문득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 훌쩍 떠오른다. 그러면 저절로 읊어지고 저절로 시가 된다. 하늘의 소리가 맑게 울리는 것이다. 이것이 시인이 살아 있는 시를 짓는 자리이다. 나를 고리타분하다고 하지 마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수십 년 전부터 이상한 주장이 하나 생겼다. 우리나라 문학을 크게 깎아내리는 주장이다. 옛 어른들의 은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큰 병이다. 선비 집안의 자식이 우리 의 옛일을 모르면 어떻겠느냐? 선배들의 생각을 읽지 않으면 어떻겠느냐? 학문이 옛날과 지금을 꿰뚫는다 해도 거칠고 엉성할 뿐이다. 다만 시집은 서둘러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임금께 올린 글, 무덤에 새긴 글, 편지 같은 것은 두루 보아 눈을 넓혀야 한다. 《아주잡록》, 《반지만록》, 《청야만집》 같은 책도 널리 찾아 두루 읽어야 한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부모를 모실 때는 부모의 뜻을 받드는 것이 가장 크다. 그런데 부인들의 뜻은 옷과 음식과 사는 곳에 있다. 그러니 어머니를 모시는 사람은 작고 자잘한 데부터 마음을 써야 한다. 그래야 효도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예기》 편에는 음식에 관한 자잘한 예절이 많다. 성인은 가르침을 세울 때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았던 것이다. 멀고 어려운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요즘 선비 집안 여자들은 부엌에 들어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한번 생각해 보거라. 부엌에 들어간다고 무엇을 잃겠느냐? 잠깐 연기를 쐴 뿐이다. 그러고도 시부모님이 기뻐하시니 효성스러운 며느리가 된다. 자신과 집안도 법도 있는 집안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효성스럽고도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느냐? 또 아침저녁으로 잠자리를 살필 때가 있다. 이불 밑이 차다고 느껴지면, 너희 형제는 종을 부르지 마라. 손수 땔나무를 가져와 불을 때서 따뜻하게 해 드리거라. 그 수고도 잠깐 연기를 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머니는 술에 취한 듯 기뻐하실 것이다. 너희가 어찌 이 일을 즐거워하지 않겠느냐? 종들이 어머니와 아들 사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갈라놓는 일이 있다. 대개 자식과 며느리가 효도를 다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섭섭해하고 한숨지을 때, 종들은 그 틈을 엿본다. 한 그릇, 단 과일 하나로 작은 정성을 바친다. 그러면서 가족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다. 잘못은 자식과 며느리에게 있다. 종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꼭 마음에 새기거라. 온갖 방법을 다해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거라. 두 아들은 효자가 되고 두 며느리는 효부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는 에서 늙어 가도 아쉬움이 없겠다. 부디 힘쓰거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역사 연표 책 《기년아람》은 나도 처음에는 좋은 책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세히 보니 들은 것만 못합니다. 이 책은 아는 것이 많다고 뽐내고 많이 안다고 다투는 데 뜻을 두었습니다. 실제로 쓸모 있는 이치 위에 알맞은 기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용은 번거로운데 요점은 적습니다. 짧은 곳에도 군더더기가 많습니다. 이제 한두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천황과 지황의 이름은 세상을 다스리려는 선비가 굳이 말할 거리가 아니다. 바른 경전은 부터 시작한다. 바른 역사책은 부터 시작한다. 황제보다 앞의 일은 햇수만 간단히 적어야 한다. 해마다 차례로 엮어서는 안 된다. 또 이 책은 요임금 이후를 적으면서, 아랫단에 네 글자씩 끊어 우리나라 연대를 적었다. 옛날과 지금의 어느 책에도 이런 방식은 없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파계'라는 두 글자는 말이 되지 않는다. '파'는 갈라져 흐르는 물줄기이다. 그래서 한 집안에서 갈라져 나온 갈래를 '족파'라고 부를 수는 있다. 그런데 부모를 적어 놓고 제목을 '파계'라고 붙였으니 옳겠느냐? 책을 쓸 때는 제목을 나누는 일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이 책에서 ''이라는 것은 이름 사이에 나뉘어 실려 있다. ''라는 것은 여러 제목 아래 섞여 있다. 책을 쓸 때는 짜임새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뒤섞이고 어지러워서는 안 된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천황씨의 이름은 두 가지로 전해진 적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 칸에 넣었단 말이냐?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화한합운》은 신축년을 첫해로 삼았다. 《죽서기년》은 갑오년을 첫해로 삼았다. 이런 것은 '화한합운 신축'처럼 적어야 한다. 그런데 '이위(~로 삼다)'라는 두 글자를 썼다. 우리나라의 거친 말버릇을 벗지 못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글자마다 흠이 있고 구절마다 티가 있다. 다 꼽을 수도 없다. 요점만 잘 추려 엮으면 한두 권이면 된다. 그러면 찾아보기도 쉬울 것이다. 내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거라. 열흘쯤 힘을 들여 고쳐 보겠다. 다만 《외국기년》 한 권은 값싼 종이에 대강 먼저 베껴 두거라. 당장 찾아볼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너도 남의 소문만 듣고 덩달아 좋은 책이라고 여겼다. 젊은이의 눈이 우습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너는 왜 《낙부》를 그렇게 칭찬하느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칭찬하는 법이 없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너는 왜 홍씨 집에서 낸 한 질을 사 오지 않느냐? 집에 있는 우리 책과 하나하나 맞대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책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너는 매번 전해 들은 말로 흐릿하게 알려 오는구나. 정말 우리 책을 그대로 썼다면, 틀림없이 홍 에게서 얻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은 학문과 주장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 책은 높고 바른말을 하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참으로 바른말은 아니다. 사람들이 바른말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이름을 지켜 주려는 것일 뿐이다. 가엾게 여기고 간절해하는 참된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시대를 걱정하고 세상을 한탄한 대목도 그렇다. 어수선하고 깨끗하지 못한 속뜻이 말 밖으로 드러난다. 나처럼 성격이 곧은 사람이나 가끔 눈여겨볼 뿐이다. 또 역사책 속의 말을 베껴서 자기 주장과 섞어 책을 만들었다. 몹시 번잡하다. 나는 전에 이 뒷세상에 전할 바른 책이 되기는 모자란다고 말했다. 옛사람이 완성한 글과 자기 주장을 섞어 책을 만들어서 짜임새가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지록》도 바로 그렇다. 게다가 예법에 관한 주장은 틀리고 어긋난 곳이 아주 많다.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웃고 즐기며 마음대로 지내는 것을 어찌 나무라겠느냐? 하늘에 닿을 만큼 효성이 깊은 사람도 있다. 아버지가 귀양 가 있는 것을 생각하며 근심에 여윈 얼굴을 한다면 참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너는 보통 사람이다. 가끔 웃고 즐기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이 한 가지 일 때문에 너를 생각하면 슬프고 마음 아픈 것을 멈출 수 없구나. 집안에서 너를 꾸짖고 헐뜯는 사람들은 네가 을 당한 사람처럼 지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벌써 머리를 풀고 얼굴에 검은 칠을 해야 하겠느냐? 어찌 이를 드러내고 웃지도 말아야 하겠느냐?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너희가 억울한 것은 내가 이미 말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너를 꾸짖을 수 있겠느냐? 남의 집 자식들도 하는 작은 예절과 평범한 행동이 있다. 바로 아침에 드리고 저녁에 잠자리를 살피는 것이다. 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큰아버지는 나이가 많이 드셨다. 그러니 너는 아침에 한 번 가서 문안드리고, 저녁에 한 번 가서 뵈어야 한다. 겨우 사람 꼴만 갖춘 사람이라도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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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럽지 못하다'는 말은 네가 변명할 수 없다. 너는 내가 시킨 일을 하면서도 정성 없이 한 적이 많다.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도 없을 만큼이다. 그러니 다른 일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부터는 착한 마음을 일으켜라. 《대학》의 장과 《중용》의 성신장을 벽에 붙여 두어라. 큰 용기를 내고 두 발로 굳게 서라. 거센 물살을 거슬러 배를 끌어 올리듯이, 성의 공부에 힘써 나아가라. 정말 그래야 한다. 성의 공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부터 힘써야 한다. 거짓말 한 마디를 세상에서 가장 나쁜 큰 죄로 여겨라. 이것이 성의 공부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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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에게 보내는 답장. 병자년(1816) 5월 3일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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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편지는 잘 읽었다. 세상에는 큰 저울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옳고 그름을 다는 저울이다.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을 다는 저울이다. 이 두 저울에서 네 등급이 생긴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것이 가장 높다. 그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다. 그다음은 그른 것을 따라서 이익을 얻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그른 것을 따르다가 해까지 입는 것이다. 지금 너는 나더러 필천(홍석주)에게 편지를 보내 잘 봐 달라고 빌라고 한다. 강씨와 이씨에게도 꼬리를 흔들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빌라고 한다. 이것은 셋째 등급을 얻으려다 결국 넷째 등급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내가 어찌 그렇게 하겠느냐? 사헌부에서 있었던 일은 나에게 불운이었다. 갑술년 봄, 장령 조장한이 사헌부에 나갔다. 그는 이기경이 나를 벌하자고 올리던 글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같은 날, 이기경이 권유를 몰래 감싼 죄를 따지는 글을 올렸다. 하루 사이에 나에 대한 일은 멈추고 저쪽을 공격한 셈이다. 그들의 노여움을 어찌 피하겠느냐?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빈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강씨가 지난해 올린 글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강씨는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 나를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빈다고 해서 그가 뉘우치겠느냐? 남들에게 나를 덜 벌하자고 말하겠느냐? 강씨가 그러니 이씨도 한패다. 강씨를 등지고 나를 너그럽게 봐줄 리가 없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빈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강씨와 이씨가 다시 힘을 얻어 높은 자리에 오르면, 반드시 나를 죽이고야 말 것이다. 죽인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오직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말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보내는 일을 막는 작은 일 때문에 를 버리겠느냐? 그렇다고 내가 절개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셋째 등급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넷째 등급만은 피하려는 것뿐이다. 내가 한 번 빌면 세 사람이 모여 몰래 비웃을 것이다. '저 사람은 정말 간사하구나. 불쌍한 말로 우리를 속이려 하는구나.' 그리고 내가 조정에 올라가면 처럼 반드시 은혜를 원수로 갚을 것이라 여길 것이다. 아,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빈말로 풀린 척할 것이다. 그러다가 남몰래 말뚝을 박고, 급할 때 돌을 던질 것이다. 사나운 새처럼 덤빌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넷째 등급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그런데 너는 왜 손 가는 대로 나를 춤추게 하려 하느냐? 필천과 나는 본래 털끝만큼도 원망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갑인년부터 까닭 없이 나에게 허물을 돌렸다. 을묘년 봄에 원태(채제공)가 그것이 잘못된 의심임을 알고 분명히 밝혀 주었다. 그러니 그 전의 말다툼은 모두 흘러간 물이고 사라진 구름이다. 신유년 뒤로 편지 한 장이라도 오갈 수 있었다면, 누가 먼저 써야 하겠느냐? 그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그는 나에게 한 글자도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편지를 안 보냈다고 탓한다. 그의 기세와 위세가 나를 지렁이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누가 먼저 써야 마땅한지 한마디도 밝히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예, 예' 하며 돌아왔다. 너도 높은 자리와 부귀에 눈이 어두워 아버지를 낮추어 본 것이다.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그는 나를 폐족이라 함부로 더럽혀도 되는 물건으로 여긴다. 그래서 먼저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고개를 쳐들고 낯을 두껍게 하여 먼저 빌어 달라는 편지를 보낸다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고향에 돌아가느냐 못 가느냐는 정말 큰일이다. 하지만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작은 일이다. 사람은 때로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고르기도 한다. 그런데 돌아가느냐 마느냐 하는 작은 일로 남에게 꼬리를 흔들며 빌겠느냐? 만약 남쪽이나 북쪽에 난리가 난다고 하자. 임금과 아버지를 저버리고 오랑캐에게 항복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내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도 운명이다.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할 일은 하지 않고 하늘의 뜻만 기다리는 것도 옳지 않다. 너는 사람이 할 일을 다 하여라. 사람이 할 일을 다 했는데도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운명일 뿐이다. 강씨의 아들이 어찌 나를 못 돌아가게 하겠느냐? 마음을 편히 하고 걱정을 쉬어라. 조금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마땅한 도리다. 다시는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라.
다산 정약용에게 묻기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