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백범일지
김구 (金九)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이 초등판은 『꼭 읽어야 할 고전 선집』에서 읽는 대목만 담았습니다 — 「나의 소원」
이 글을 읽기 전에
이 글은 김구가 1947년에 쓴 「나의 소원」입니다. 김구는 일흔 평생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았습니다. 일본이 물러간 뒤, 김구는 동포들에게 자기가 바라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이 글로 들려줍니다.
민족 국가
나의 소원 · 민족의 나라
하느님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신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내 소원은 이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면, 나는 또 대답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세 번째로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고 물으셔도, 나는 더 큰 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이오.”
우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뿐이다. 나는 지난 일흔 해를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다. 지금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다. 앞으로도 이 소원을 이루려고 살 것이다.
나는 독립하지 못한 나라의 으로 일흔 해를 살았다. 그동안 서럽고 부끄럽고 애가 탔다. 그런 내게 가장 좋은 일은 완전히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다 죽는 것이다. 나는 전에 우리 독립 의 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독립만 한다면 그 나라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독립한 내 나라에서 가난하고 낮게 사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남의 밑에서 돈 많고 높게 사는 것보다 더 기쁘고 자랑스럽고 희망이 많다.
옛날 신라 사람 박제상은 일본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의 가 되어 잘살지는 않겠다.” 나는 이것이 그의 참마음이었음을 안다. 왜왕은 제상에게 높은 과 많은 재물을 주겠다고 했다. 제상은 그것을 뿌리치고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였다. “차라리 내 나라의 귀신이 되겠다.”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동포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어느 큰 이웃 나라의 에 넣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나는 차마 그 말을 믿고 싶지 않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가르침을 배웠다. 그들을 으로 우러러 모신다. 그런데 그 세 분이 함께 천당이나 극락을 세웠다고 하자. 그래도 그것이 우리 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면, 나는 우리 민족을 그리로 데려가지 않겠다. 왜 그럴까? 피와 역사를 함께하는 민족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이 남의 몸이 될 수 없다. 그처럼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형제끼리도 한집에서 함께 살기 어려운 것과 같다. 둘 이상이 합쳐 하나가 되려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진다. 하나는 위에서 명령하고, 하나는 아래에서 따르게 된다. 이것이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다.
그런데 이른바 좌익이라는 무리 가운데 일부는 생각이 다르다. 그들은 핏줄로 이어진 조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의 조국’을 말한다. 핏줄로 이어진 동포를 무시하고, ‘사상의 동무’를 내세운다. ‘의 국제적 계급’도 내세운다. 그리고 는 벌써 진리에서 벗어난 생각인 것처럼 말한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바뀌고, 정치와 경제에 대한 학자들의 이론도 한때뿐이다. 그러나 민족의 핏줄은 영원하다. 어느 민족이든 두세 편으로 갈라져 피 흘리며 싸운 적이 있다. 종교나 학자들의 이론 때문에, 또는 경제와 정치의 이익이 부딪쳐서였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것은 바람처럼 지나가는 한때의 일이다. 바람이 잔 뒤 풀과 나무는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숲을 이룬다. 민족도 끝내 그렇게 함께 산다. 오늘날 이른바 좌익과 우익도 영원한 핏줄의 바다에 잠깐 이는 물결일 뿐이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모든 사상은 지나가고, 믿음도 바뀐다. 그러나 핏줄로 이어진 민족만은 이 땅 위에 영원히 남는다. 함께 일어나고 함께 쓰러지는 운명으로 묶인 한 몸으로 남는 것이다. 온 세계 사람이 너와 나 없이 한 집처럼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의 가장 높고 마지막인 희망이요, 꿈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먼 앞날의 일이고, 지금의 일은 아니다. 라는 크고 아름다운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향해 인류가 나아가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마땅히 할 일이다. 그러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된다. 현실의 진리는 이렇다. 민족마다 가장 좋은 나라를 세우고, 가장 좋은 를 낳아 기른다. 그리고 다른 민족과 서로 주고받고 서로 돕는다. 이것이 내가 믿는 다. 지금 인류에게는 이것이 가장 확실한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 있다. 첫째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남의 도 받지 않고, 남에게 기대지도 않는 나라다. 이런 나라가 없으면 우리 민족의 살림을 지킬 수 없다. 또 우리 민족의 정신의 힘을 마음껏 펼쳐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도 없다.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 일이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참된 평화와 복을 누릴 수 있는 을 낳는 일이다.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 내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인류의 문화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에 고르지 못하고 옳지 못한 일이 있다. 밖으로는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서로 시샘하고 부딪친다.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고, 쳐들어온 나라에 앙갚음을 한다. 그래서 크고 작은 전쟁이 그칠 날이 없다. 많은 목숨과 재물을 잃어도 좋은 일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은 갈수록 무너진다. 이대로면 전쟁은 끝나지 않고, 인류는 끝내 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새롭게 살아가는 가 필요해졌다. 그것을 찾아내고 실천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맡긴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우리 민족의 독립은 결코 땅, 겨레만의 일이 아니다. 참으로 온 세계의 운명이 걸린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형편은 초라하다. 그것을 보고 스스로 움츠러들어 의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세울 나라가 그렇게 큰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깔보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난 역사가 빛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이었다. 우리가 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나서는 것은 오늘부터다. 삼천만 우리 민족이 옛날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 하겠는가?
내가 바라는 우리 민족의 일은 세계를 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경제의 힘으로 남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자는 것이다. 그리고 온 인류가 사이좋고 즐겁게 살게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그런 일을 해낸 적이 없으니 헛된 꿈이라고 하지 마라. 아무도 해낸 적이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해 남겨 두신 일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할 일을 알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모두 지난날의 작고 좁은 생각을 버리기를 바란다. 우리 민족의 큰 에 눈뜨기를 바란다. 그래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이 모두 이 정신으로 이 길에 힘쓴다고 하자. 그러면 30년이 안 되어 우리 민족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는다.
정치 이념
나의 소원 · 내가 바라는 정치
내가 바라는 정치를 한마디로 말하면 ‘’다. 우리가 세울 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
자유란 무엇일까? 저마다 제멋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면, 그런 자유는 나라가 생기기 전에나 있던 일이다. 아니면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말처럼 나라가 없어진 뒤에나 있을 일이다. 나라를 이루고 사는 사람에게 이런 조건 없는 자유는 없다. 왜 그럴까? 나라란 일종의 규칙으로 사람을 묶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 안에 사는 우리를 묶는 것은 법이다. 사람이 나라의 법에 묶이는 것은 자유가 있는 나라나 없는 나라나 똑같다. 자유가 있고 없고는 그 법이 어디서 오느냐에 달렸다. 자유가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뜻에서 나온다. 자유가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나 한 에서 나온다. 한 사람에게서 오는 것을 또는 라고 한다. 한 계급에게서 오는 것은 계급 독재라고 하고, 흔히 라고 부른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을 쥔 한 계급 말고는 다른 국민이 모두 노예가 되고 만다. 독재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어떤 , 곧 을 바탕으로 한 계급 독재다. 임금이나 독재자 한 사람의 독재는 그 사람만 없애면 끝난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인 한 계급이 독재를 하면 없애기가 아주 어렵다. 그보다 더 큰 조직의 힘이나 다른 나라들의 이 아니면 깨뜨리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정치도 일종의 계급 독재였다. 그것도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독재 무리 파시스트와 독일의 독재 무리 나치스가 한 일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모든 계급 독재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 계급 독재다. 조선에서 수백 년 이어진 계급 독재는 유교, 그중에서도 의 철학을 바탕으로 했다. 그래서 정치만 독재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과 학문, 사회생활과 집안 생활, 한 사람의 생활까지 정해 놓는 독재였다. 이 독재 아래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사라지고 기운은 닳아 없어졌다. 주자학 말고 다른 학문은 자라지 못했다. 그 영향은 예술과 경제와 산업에까지 미쳤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백성의 힘이 약해진 가장 큰 까닭이 바로 여기 있었다. 왜 그럴까? 국민의 머릿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과 계획이 생겨도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권력을 쥔 계급이 아니면 안 되었다. 또 ‘’으로 몰리면 안 되었다. 그래서 싹이 트려다 눌려 죽은 새 생각이 얼마나 많았을까? 싹도 트지 못하고 밟혀 버린 계획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발전이 있다.
지금 이 내세우는 식 민주주의는 이런 독재 가운데서도 가장 철저하다. 독재의 모든 특징을 끝까지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독일 학자 마르크스의 학설을 마지막 진리로 믿는다. 그 학설의 바탕은 두 가지다. 독일 철학자 헤겔에게서 받은 , 그리고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이다. 거기에 영국 학자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을 더했다. 그들은 공산당과 소련의 법과 군대와 경찰의 힘을 한데 모은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학설에 한 점 한 획이라도 반대하지 못하게 한다. 따져 보는 것조차 막는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죽여서 없앤다. 이것은 옛날 조선에서 사문난적을 다룬 것보다 더하다. 이런 정치가 세계에 퍼지면 온 인류의 생각이 마르크스주의 하나로 묶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묶여도 그 이론이 불행히 틀렸다면, 인류에게 그보다 큰 불행은 없다. 그런데 마르크스 학설의 바탕인 헤겔의 변증법은 어떠한가? 여러 학자가 따져 본 끝에, 모든 것에 맞는 진리가 아님이 이미 알려지지 않았는가? 자연이 변하는 것은 변증법을 따르지 않는다.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의 학설을 보면 분명하다.
그러므로 어느 한 을 기준으로 국민의 생각을 묶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한 종교를 나라의 종교로 정해 국민에게 억지로 믿게 하는 것과 같다. 산에는 한 가지 나무만 자라지 않는다. 들에는 한 가지 꽃만 피지 않는다. 여러 나무가 어울려 큰 숲의 아름다움을 이룬다. 온갖 꽃이 섞여 피어 봄 들판의 넉넉한 경치를 이룬다. 우리가 세울 나라에서는 유교도 하고, 불교와 도 자유롭게 자랄 것이다. 철학도 인류의 위대한 생각이 다 들어와 꽃 피고 열매 맺게 할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높은 문화가 생겨날 것이다.
나는 옛 중국 사상가 노자의 ‘’를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치에서 사람이 너무 억지로 손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무엇이든 다 알고 다 할 수는 없다. 학설도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한 사람의 생각이나 한 학설로 국민을 다스리면 어떻게 될까? 잠깐은 빨리 나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끝내 탈이 나서, 그야말로 변증법에서 말하는 폭력 을 부르게 된다. 모든 생물에게는 둘레에 맞추어 저를 지키는 이 있다. 그러니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것이다. 작은 꾀로 자꾸 건드리면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많다. 사람들의 생활에 너무 자잘하게 끼어드는 것은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니다. 국민은 군대의 병사도 아니고, 감옥의 죄수도 아니다.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의 명령으로 국민을 끌고 가는 것은 아주 부자연스럽고 위험하다. 파시스트의 이탈리아와 나치스의 독일이 불행하게도 그것을 가장 잘 보여 주지 않는가?
미국은 이런 독재 나라에 비하면 하나로 뭉치는 힘이 약한 것 같다. 일도 느리게 나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가장 큰 힘을 내고 있다. 이것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 덕분이다. 무슨 일을 의논할 때, 처음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제 의견을 말한다. 시끌벅적해서 하나로 모일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서로 이렇다 저렇다 따지며 토론하는 동안 의견이 차츰 정리된다. 마침내 두어 개의 큰 편으로 모인다. 다시 로 하나의 결론을 낸다. 에서 정하고,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허락하면 법이 된다. 그러면 국민의 뜻이 정해져 흔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알아보는 하나의 절차, 곧 방법이다. 그 내용은 아니다. 말할 자유, 투표할 자유, 다수결에 따르는 것. 이 세 가지가 곧 민주주의다. 나라의 의견, 곧 국민이 원하는 것의 내용은 그때그때 국민이 말로 겨루어 정한다.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의 철학 이론에 휘둘리지 않는다. 이것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말하고 투표하고 다수결에 따르는 절차만 밟으면 된다. 그러면 어떤 철학에 바탕을 둔 법이나 정책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막는 것은 오직 의 조항뿐이다. 그런데 헌법도 독재 나라의 헌법처럼 절대 건드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절차로 고칠 수 있다. 그래서 민주, 곧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나라의 의견을 움직이려면 어떤 사람이나 당파를 움직여서는 소용없다. 그 나라 국민의 의견을 움직여야 한다.
사람들의 작은 의견은 서로의 이익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큰 의견은 그 국민의 과 믿음과 으로 정해진다. 그래서 문화와 교육이 중요하다. 국민의 성품을 지키는 것도, 고치고 높이는 것도 문화와 교육의 힘이다. 이 나아갈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크게 정해진다. 교육은 결코 먹고사는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바탕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떤 철학 위에서 어떤 생활 기술을 가르치느냐, 그것이 곧 국민 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튼튼한 철학 위에 서지 않은 지식과 기술의 교육은 해가 된다. 그 사람에게도, 그가 속한 나라에도 해가 된다. 인류 전체를 보아도 그렇다.
지금까지 한 말로 내가 바라는 정치가 대강 어떤 것인지 알 것이다. 나는 어떤 뜻으로든 독재 정치를 물리친다. 나는 우리 동포에게 외친다. 절대로 독재 정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리고 이런 나라를 세우자고.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언론의 자유를 넉넉히 누리는 나라. 국민 모두의 뜻대로 정치를 하는 나라. 어떤 당파나 한 계급의 철학으로 다른 많은 사람을 억누르지 않는 나라. 지금 우리의 이론으로 자손의 생각과 믿음의 자유를 묶지 않는 나라. 하늘과 땅처럼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랑의 과 법의 가 자연의 법칙처럼 지켜지는 나라. 그렇다고 미국의 민주주의 를 그대로 베끼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련의 독재적 민주주의와 미국의 언론 자유적 민주주의를 견주어, 어느 쪽이 나은지 따져 보았을 뿐이다.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생각과 말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쪽을 고르겠다는 말이다.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 제도가 꼭 마지막이고 완성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다른 모든 부분처럼, 정치의 모습도 끝없이 새롭게 발전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안 여러 가지 나라의 모습을 겪어 왔다. 그러니 모자란 점도 많겠지만, 솜씨 있게 발달한 정치 제도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조선 시대만 보아도 그렇다.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는 국민 가운데 어진 사람의 뜻을 나랏일에 담는 멋진 제도였다. 제도와 도 연구해 볼 만한 제도다. 옛 제도를 살펴보면 쓸 만한 것이 많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남의 나라의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내 나라의 좋은 것을 고른다. 그렇게 우리나라만의 좋은 제도를 만든다. 이것도 세계 문화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나의 소원 · 내가 바라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부유하고 힘센 나라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남에게 을 당해 가슴이 아팠다. 그러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재산은 우리 살림을 넉넉하게 할 만큼이면 된다.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큼이면 된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모자란 것은 무력도 아니고 경제력도 아니다. 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다. 그러나 인류 전체로 보면, 지금의 자연과학만으로도 편안히 살기에 넉넉하다.
지금 인류가 불행한 근본 까닭은 와 와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 마음만 자라나면 지금 가진 물질의 힘으로도 20억 인류가 다 편안히 살 수 있다. 인류의 이런 마음을 길러 주는 것은 오직 문화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흉내 내는 나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높고 새로운 문화의 샘이 되고, 목표가 되고, 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참된 세계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를 통해 온 세계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라를 처음 세운 조상 단군의 꿈인 ‘’이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또 나는 이렇게 믿는다.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지난날 겪은 은 이 을 이루기에 넉넉하다. 우리 땅의 위치와 그 밖의 지리 조건도 그렇다. 제1차, 제2차 을 치른 인류가 바라는 것도 그렇다. 이런 때에 나라를 새로 세우는 우리가 서 있는 때도 그렇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 무대에 나설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가?
이 일을 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생각의 자유를 지키는 정치의 틀을 세우는 것, 그리고 국민 교육을 빈틈없이 갖추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자유와 나라와 교육을 힘주어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가장 높은 문화를 세우는 을 이룰 민족이 할 일은 한마디로 이것이다. 모두를 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한 사람이라면 어디를 가나 믿음을 얻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적이 우리를 억누를 때, 우리는 미워하고 분해하며 싸우는 마음을 길렀다. 그러나 적은 이미 물러갔다. 이제는 미워하며 싸우기를 버리고, 서로 어울려 나라를 세울 때다. 집안이 다투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라져 싸우면 망한다. 동포끼리 미워하고 싸우는 것은 망할 다. 우리 얼굴에는 따뜻한 기운이 빛나야 한다. 우리 땅에는 언제나 봄바람이 넘실거려야 한다. 이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한번 마음을 고쳐먹으면 된다. 그런 정신의 교육으로 오래 이어질 것이다. 우리 민족은 가장 높은 문화로 인류의 가 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 그런 민족의 한 사람 한 사람은 저만 아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의 자유를 끝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짐승처럼 저마다 제 배만 채우는 자유가 아니다. 제 가족과 이웃과 국민을 잘 살게 하는 데 쓰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보려는 사람이 아니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로 하면 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해서다. 힘든 일은 내가 앞장서서 한다. 사랑하는 동포를 아끼기 때문이다.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좋아하던 ‘’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의 산에는 숲이 우거지고, 들에는 온갖 곡식과 과일이 넘칠 것이다. 마을과 도시는 깨끗하고 넉넉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동포, 곧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 늘 따뜻한 기운이 돌 것이다. 몸에서는 의 향기가 날 것이다. 이런 나라는 불행해지려 해도 불행해질 수 없다. 망하려 해도 망할 수 없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에서 오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도 에서 오지 않는다. 계급 투쟁은 끝없이 또 다른 계급 투쟁을 낳는다. 그래서 나라 땅에 피가 마를 날이 없다.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치면, 온 세상이 이기심으로 나를 해칠 것이다.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길이다. 일본이 이번에 당한 이 가장 좋은 예다. 나라와 민족 사이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옛 시대의 생각이에요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모습을 조금 그려 본 것이다. 동포 여러분! 이런 나라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을 이런 나라에 남기고 간다면 얼마나 흐뭇하겠는가? 옛날 중국 땅의 는 우리나라를 그리워하여 찾아왔다. 공자도 우리 민족이 사는 곳에 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을 ‘을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했다. 옛날에도 그러했다. 앞으로도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그리워하게 하지 않겠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모두 이 마음을 가진다면, 어찌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나도 예전에 에서 교육하는 일을 했다. 그때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일흔이 넘은 나는 직접 국민 교육을 할 시간이 넉넉지 않다. 그러니 나는 온 세상의 와 남녀 학생들에게 빌지 않을 수 없다.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어 달라고.
1947년에
서울 밖에서 쓰다.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