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판 · 쉽게 풀어 쓴 글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 휴담 국역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다시 썼습니다 · 도서관에서 원문 보기 ↗
이 초등판은 『꼭 읽어야 할 고전 선집』에서 읽는 대목만 담았습니다 — 제2권 1~4장 — 습관이 만드는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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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주 옛날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한 부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사람의 좋은 성품이 어떻게 생기는지 차근차근 따져 봅니다.

사람의 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생각하는 힘에 관한 덕이고, 하나는 에 관한 덕이다. 생각에 관한 덕은 대부분 가르침으로 생기고, 가르침으로 자란다. 그래서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성품에 관한 덕은 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덕을 뜻하는 그리스 말은 ‘습관’을 뜻하는 말을 조금 바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그러니 성품에 관한 덕은 어느 것도 저절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성질은 습관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을 예로 들어 보자. 돌은 타고나기를 아래로 떨어진다. 돌을 만 번 위로 던져 버릇을 들이려 해도 돌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불도 아래로 내려가게 할 수 없다. 타고나기를 한쪽으로 정해진 것은 무엇이든 습관으로 다르게 바꿀 수 없다. 그러니 덕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타고난 것을 거슬러 생기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덕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타고난다. 그리고 습관으로 그 덕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또 생각해 보자. 타고나는 것들은 먼저 그 힘을 갖고, 그다음에 그 힘을 쓴다. 우리 몸의 이 그렇다. 우리는 자주 보고 들어서 눈과 귀의 감각을 얻은 것이 아니다. 거꾸로다.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쓴 것이다. 써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덕은 먼저 하나하나 해 봐야 얻는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배운 다음에 만들어야 하는 것은, 만들어 보면서 만드는 법을 배운다. 사람은 집을 지어 보면서 집 짓는 사람이 된다. 를 켜 보면서 하프 연주자가 된다. 이와 똑같이, 로운 일을 하면서 정의로운 사람이 된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 용감한 일을 하면서 용감한 사람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이것을 보여 준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습관을 들이게 해서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 모든 법을 만드는 사람이 이것을 바란다. 이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좋은 나라 와 나쁜 나라 제도가 다른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또 모든 덕은 같은 일을 통해 생기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한다. 도 그렇다. 하프를 켜면서 좋은 하프 연주자도 생기고, 나쁜 하프 연주자도 생긴다. 집 짓는 사람과 다른 모든 기술도 그렇다. 집을 잘 지으면 좋은 집 짓는 사람이 되고, 잘못 지으면 나쁜 집 짓는 사람이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가르치는 사람은 필요 없을 것이다.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처음부터 좋거나 나쁜 솜씨를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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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도 그렇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여러 가지로 어울리며 행동한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로운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된다. 또 위험한 일에서 행동하면서 무서워하거나 담대해지는 버릇이 든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겁쟁이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무언가를 몹시 갖고 싶을 때와 화가 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잘 다스리고 순한 사람이 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전혀 다스리지 못하고 쉽게 들끓는 사람이 된다. 그런 때에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한마디로, 성품은 그와 닮은 행동에서 생긴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하나의 행동을 어떤 모습으로 할지 잘 정해야 한다. 행동이 다르면 생기는 성품도 다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그래서 어릴 때부터 어떤 버릇을 들이느냐는 작은 일이 아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아니, 모든 것이 거기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이 글은 다른 어떤 글들처럼 그저 생각만 해 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덕이 무엇인지 알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덕 있는 사람이 되려고 따져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공부는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하나의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야 한다. 방금 말했듯이 어떤 성품이 생길지가 그 행동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바른 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하는 말이다. 지금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넘어가자. 바른 이치가 무엇인지, 그것이 다른 덕들과 어떤 사이인지는 나중에 말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하지만 먼저 이것을 확실히 해 두자. 착하고 바른 행동에 대한 말은 모두 의 줄기만 말할 수 있다. 꼭 들어맞게 말할 수는 없다. 처음에 말했듯이, 다루는 것의 성질이 허락하는 만큼만 정확하게 따지기를 바라야 한다.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이로운지는 건강처럼 딱 정해져 있지 않다. 큰 줄기의 가르침부터 그렇다. 그러니 하나하나의 일에 맞추어 쓸 때는 더욱 정확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은 어떤 기술이나 규칙에 딱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가 병을 고치거나 뱃사람이 배를 몰 때처럼, 그때그때 무엇이 필요한지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살펴야 한다. 이 공부가 이런 것이라는 걸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애써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먼저 이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모자라도 망가지고 넘쳐도 망가진다. 건강과 힘을 보면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려면 눈에 보이는 것을 예로 들어야 한다.) 운동을 너무 많이 하면 힘이 약해진다. 너무 적게 해도 그렇다. 먹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건강을 해친다. 알맞게 먹고 마시면 건강이 생기고, 좋아지고, 지켜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스스로를 다스리는 덕과 용기, 그리고 다른 덕들도 이와 같다. 무엇이든 피하고 무서워하며 아무것에도 맞서지 않는 사람은 겁쟁이가 된다.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무엇에든 덤비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 된다. 또 모든 즐거움을 다 맛보고 하나도 참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다스리는 힘을 다 잃는다. 반대로 둔하고 촌스러운 사람들처럼 모든 즐거움을 피하는 사람은 느끼는 힘을 잃은 사람처럼 된다. 곧, 스스로를 다스리는 성품과 용기는 넘치거나 모자라면 망가진다. 알맞은 가운데, 곧 을 지키면 그대로 지켜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더 있다. 성품이 생기고, 자라고, 망가지는 것은 모두 같은 일에서 비롯된다. 그뿐 아니라 성품이 생긴 뒤에도 그 성품은 바로 그 일에서 쓰인다. 눈에 더 잘 보이는 힘을 예로 들어 보자. 힘은 많이 먹고 많이 움직여서 생긴다. 그리고 힘이 센 사람이 이런 일을 가장 잘한다. 덕도 그렇다. 우리는 즐거움을 참으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면 즐거움을 가장 잘 참을 수 있다. 용기도 그렇다. 무서운 것을 우습게 여기고 맞서는 버릇을 들이면서 우리는 용감해진다. 그리고 용감해지면 무서운 것에 가장 잘 맞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성품이 생겼는지 알아보려면, 행동 뒤에 즐거움이 따르는지 괴로움이 따르는지 보아야 한다. 몸의 즐거움을 참을 뿐 아니라, 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참기는 하지만 참는 것을 괴로워하는 사람은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니다. 또 위험에 맞서면서 기꺼이 즐거워하거나, 적어도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다. 괴로워하면서 맞서는 사람은 아직 용감한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성품에 관한 덕은 즐거움과 괴로움을 다룬다. 우리는 즐거움 때문에 나쁜 짓을 하고, 괴로움 때문에 옳은 일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했듯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알맞은 것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도록 길러져야 한다. 그것이 바른 교육이다.) 또 덕은 행동과 마음의 느낌을 다룬다. 그런데 모든 느낌과 모든 행동에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따른다. 이것도 덕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다룬다는 증거다. 벌을 줄 때 즐거움과 괴로움을 쓴다는 것도 이를 보여 준다. 벌은 약과 같다. 약은 본래 고치려는 병과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다. 앞에서 말한 것을 다시 들어 보자. 의 모든 성품은 그것을 나쁘게도 좋게도 만드는 바로 그것들과 관계를 맺고, 그것들 위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이런 성품은 즐거움과 괴로움 때문에 나빠진다. 사람들이 좇지 말아야 할 즐거움을 좇고 피하지 말아야 할 괴로움을 피하기 때문이다. 또는 때가 틀리거나 방법이 틀리게 그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덕을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아주 고요한 상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마땅히 그래야 할 때’, ‘그러지 말아야 할 때’ 같은 조건을 붙이지 않고 무조건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덕은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 성품이다. 은 그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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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도 이것을 또렷하게 보여 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고르게 하는 것은 주로 세 가지다. 훌륭한 것, 이로운 것, 즐거운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피하게 하는 것도 세 가지다. 그 반대인 부끄러운 것, 해로운 것, 괴로운 것이다. 좋은 사람은 이 모든 것에서 바르게 가고, 나쁜 사람은 잘못 가기 쉽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즐거움에서 그렇다. 즐거움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이 함께 느끼는 것이다. 또 우리가 고르는 모든 것에 즐거움이 따라온다. 훌륭한 것이나 이로운 것도 즐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또 즐거움은 우리가 아기였을 때부터 함께 자라 왔다. 그래서 우리 삶에 깊이 박힌 이 느낌을 떨쳐 내기는 무척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또 우리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행동의 로 삼는다(누구는 더 많이, 누구는 덜). 그래서 우리가 하는 공부는 모두 즐거움과 괴로움을 다루어야 한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바르게 느끼느냐 잘못 느끼느냐가 행동에 아주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있다. 가 말했듯이, 즐거움과 싸우는 것은 화와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런데 기술도 덕도 보통보다 더 어려운 일을 다룰 때 생긴다. 어려운 일일수록 잘 해냈을 때 더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까닭에서도 덕과 은 온통 즐거움과 괴로움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것을 잘 다루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잘못 다루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그러니 이렇게 정리해 두자. 덕은 즐거움과 괴로움을 다룬다. 덕은 처음 생겨난 바로 그 일들 때문에 자라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한다(그 일들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덕은 자기가 생겨난 바로 그 일들 속에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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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로운 사람이 되려면 정의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버릇을 들이려면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이미 그 덕을 가진 것 아닌가? 글을 바르게 쓰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이미 나 음악가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기술의 경우에도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어쩌다가, 또는 남이 알려 줘서 문법에 맞는 글을 쓸 수 있다. 그가 진짜 문법가가 되려면 문법에 맞게 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가진 문법 지식으로, 문법가답게 써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또 기술과 덕은 똑같지 않다. 기술로 만든 물건은 훌륭함이 그 물건 안에 있다. 그래서 다 만든 물건이 알맞은 모습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덕에 따른 행동은 다르다. 말하면 그것은 로운 행동이나 스스로를 다스리는 행동 같은 것이다. 그런 행동은 행동 자체가 알맞은 모습인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그 행동을 하는 사람도 알맞은 상태여야 한다. 첫째,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둘째, 스스로 골라서 해야 한다. 그것도 그 행동 자체가 좋아서 골라야 한다. 셋째,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마음에서 해야 한다. 기술을 가졌는지 따질 때는 아는 것 하나만 본다. 나머지 조건은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덕을 가졌는지 따질 때는 아는 것이 거의, 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머지 조건이 조금이 아니라 전부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이 조건들은 정의로운 일과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을 여러 번 되풀이해야 실제로 갖추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물론 로운 사람이나 스스로를 다스리는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을 정의로운 행동, 스스로를 다스리는 행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기만 했다고 덕을 가진 것은 아니다. 정의로운 사람과 스스로를 다스리는 사람이 하는 그 방식대로 해야 덕을 가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그러니 덕은 사람이 그 행동을 해야 생긴다는 우리 말이 옳다.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되는 길에 들어서지조차 못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말 뒤로 숨어서, 자기가 을 하고 있고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한다. 그들은 꼭 이런 환자들 같다. 의사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만 하고, 의사가 시킨 것은 하나도 하지 않는 환자 말이다. 그런 환자들이 그렇게 치료해서는 몸이 나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런 식의 철학으로는 마음이 건강해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기

초등판은 휴담 국역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혼자 읽을 수 있게 다시 쓴 글이며, 쓴 사람과 다른 검토자가 원문과 대조해 확인했습니다. 원전 그대로의 글은 「원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