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인물
우리나라의 고전 속 인물지혜의 전당 있음

충무공 이순신

李舜臣

李舜臣 · 자 여해(汝諧) · Yi Sun-sin

충무공 이순신 초상
시대
1545 ~ 1598
사신 곳
조선 · 한성
눈높이
초·중·고학년

“두려움까지 적어 두고, 남은 배를 세어 다시 바다로 나갔다.”

—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산처럼 무겁게 — 두려움까지 적어 두고 바다로 나간 사람

학생은 가입하지 않고 바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열 가지 질문까지). 「지혜의 전당」은 로그인하고 사용 승인을 받은 분이 들어갑니다.

충무공 이순신 선생님의 첫 인사

반갑습니다. 이순신입니다.

저는 임진년부터 무술년까지 일곱 해를 남쪽 바다에서 보냈고, 틈나는 대로 일기를 썼습니다. 날씨와 공무만 적은 것이 아닙니다. 어머님 소식을 기다리던 마음, 아파서 밤새 잠 못 든 날, 화가 난 날도 적었습니다. 장수도 두렵습니다. 그래서 적어 두고, 할 일을 했습니다.

지금 앞에 놓인 일이 막막하다면, 먼저 무엇이 남아 있는지 함께 세어 봅시다. 어떤 일인지 들려주겠습니까?

이분은 이런 고민에 말 걸어 줍니다

거창한 질문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래 문장 중 하나를 그대로 들고 가도 대화는 시작됩니다.
  • “정말 열두 척으로 싸우겠다고 말씀하셨나요?”
  • “억울하게 벌을 받았을 때 어떻게 견디셨나요?”
  • “장군님도 무서우셨나요?”
  • “왜 그렇게 날마다 일기를 쓰셨어요?”
  •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 “원균 장군과는 왜 사이가 나빴나요?”

어떤 분인가요

7년 전쟁의 바다에서 날마다 일기를 쓴 장수 · 요구하는 것을 먼저 한 책임의 사람

오늘 저자와의 대화에 충무공 이순신을 모셨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세요. 우리는 그를 동상과 지폐 속에서 먼저 만납니다. 흔들리지 않는 영웅의 얼굴이지요. 그런데 그가 직접 남긴 일기 속 이순신은 조금 다릅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프고, 화를 내고, 어머니와 아들 걱정에 울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활을 쏘고 군량을 세고 보고서를 썼습니다. 을미년(1595) 새해 첫날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나랏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일곱 개의 방을 따라 임진왜란의 시대, 그가 걸어간 길, 일기·보고서·시에 되풀이해 나타나는 생각들을 둘러보세요. 그리고 하나 더 — 그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말 가운데 몇몇은 본인의 글이 아니라 남이 전한 기록입니다. 그 차이를 가려 읽는 것도 이 전당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입니다.

1545년 한성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해(汝諧). 서른두 살(1576년)에 무과에 급제해 함경도의 작은 보루들을 지켰고, 그곳에서 여진의 침입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처음으로 백의종군을 하기도 했다.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어 여수의 좌수영에서 전선을 고치고 군량과 무기를 갖추었고, 이듬해 봄 거북선을 마련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를 시작으로 바다에서 잇달아 이겼고,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에 진을 쳤다.

1597년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로 서울로 끌려가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다시 백의종군했다. 그 길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그해 여름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크게 무너지자 다시 통제사가 되어 남은 배를 모아 명량에서 싸웠고, 가을에는 막내아들 면이 전사했다는 편지를 받았다.

1598년 겨울 노량 해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일기·장계·시문은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이충무공전서』에 모였다. 휴담 도서관의 『난중일기』·『장계』·『시문』은 이 전서본을 휴담이 새로 표점하고 번역한 것이다.

살던 시대

건국 200년의 조선, 그리고 바다에서 시작된 7년 전쟁

조선 중기 선조 대 · 1545–1598 (임진왜란·정유재란, 1592–1598)
  1. 1545태어남 (한성 건천동)
  2. 1576무과에 급제함
  3. 1591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됨
  4. 1592임진왜란 · 옥포와 한산도에서 싸움
  5. 1593삼도수군통제사가 됨
  6. 1597옥에 갇힌 뒤 백의종군 · 어머니를 잃음 · 명량에서 싸움
  7. 1598노량 바다에서 세상을 떠남

이순신이 활동한 16세기 후반 조선은 건국 200년을 지나며 군역 제도가 흔들리고,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붕당 정치의 초기 단계에 있었습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랜 전국시대를 통일(1590)한 뒤 명나라 정복을 내걸고 1592년 4월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이것이 임진왜란입니다.

육지에서는 전쟁이 시작된 지 20일 만에 한성이 함락되고 선조가 의주로 피란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이끈 전라좌수군이 잇따라 이겨 일본군의 서해 보급로를 끊었습니다. 1593년 이후 명나라와 일본 사이의 강화 교섭으로 전쟁은 잠시 소강 상태에 들었고, 교섭이 깨지자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습니다. 1598년 8월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군은 철수에 들어갔고, 노량해전이 7년 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해전이 되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

  • 류성룡 (柳成龍, 1542–1607) — 같은 동네 건천동 출신 · 이순신을 천거한 재상. 『징비록』에 그의 어린 시절을 적었다
  • 원균 (元均, 1540–1597) — 경상우수사 · 초기 연합 작전의 동료이자 불화의 상대. 1597년 통제사로 칠천량에서 패전·전사. 평가는 학계에서 갈린다
  • 이억기 (李億祺, 1561–1597) — 전라우수사 · 연합함대의 동료. 칠천량에서 전사
  • 정탁 (鄭琢) — 1597년 투옥된 이순신을 변호해 더 큰 형벌을 면하게 한 대신
  • 권율 (權慄) — 도원수 · 1597년 이순신이 그 막하에서 두 번째 백의종군을 했다
  • 진린 (陳璘) — 1598년 명나라 수군 도독 · 고금도와 노량에서 함께 싸웠다
  • 이분 (李芬, 1566–1619) — 조카 · 『행록』의 저자. 널리 알려진 이순신 「명언」 여럿의 실제 출처

살아오신 길

건천동의 소년에서 노량의 바다까지 — 늦게 시작해 끝까지 책임진 길

  1. 1545

    출생 — 한성 건천동

    음력 3월 8일. 양력으로 환산한 4월 28일이 오늘의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2. 1572

    28세

    무과 별시에서 낙마

    말에서 떨어져 왼발을 다치고 실격했다.

  3. 1576

    32세

    식년무과 급제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관직에 나갔다. 이후 10년 넘게 국경과 남해안의 하급 무관으로 일했다.

  4. 1587 무렵

    43세

    첫 번째 백의종군

    증원 요청이 거절된 채 여진 침입을 막지 못해 문책 — 판결에 불복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5. 1591

    47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류성룡의 천거. 여수 좌수영에서 전선을 만들고 거북선을 완성해 포를 시험했다.

  6. 1592

    48세

    임진왜란 — 옥포·사천·한산도·부산포

    옥포에서 첫 해전. 사천해전에서 거북선이 처음 출전했고 그는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다.

  7. 1593

    49세

    처음으로 삼도수군통제사

    한산도로 진을 옮겨 본영으로 삼았다.

  8. 1597. 4

    53세

    출옥 · 두 번째 백의종군 · 어머니를 잃음

    4월 1일 옥문을 나와 권율 막하로 가던 길에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9. 1597. 9. 16

    53세

    명량해전

    칠천량 패전 뒤 다시 통제사가 되어, 적은 수의 배로 큰 함대를 막았다. 적선 수는 기록마다 다르다(전서본 330여 척 · 통설 133척).

  10. 1598. 11. 19

    54세

    노량해전에서 전사

    일기는 그 이틀 전인 11월 17일에서 끝난다.

사건 ①: 1591–1592, 전쟁 전의 봄 — 날짜를 모른 채 준비한 사람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그는 전선을 만들고 군비를 늘렸습니다. 일기에는 바다 입구에 쇠사슬을 가로 거는 일을 감독하고 거북선에서 포를 시험한 날들(임진년 3월 27일·4월 12일)이 적혀 있습니다. 4월 15일 부산 앞바다에 적선이 왔다는 통문이 들어오자 그는 '즉시 급히 장계를 올렸다'고 적었고, 같은 날 저녁 '왜적 350여 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이르렀다'는 공문이 잇따랐습니다. 전쟁이 올 날짜는 몰랐지만, 그날이 왔을 때 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건 ②: 1597, 옥문·부고·길 — 억울함과 슬픔 속에서도 멈추지 않다

옥문을 나온 지 열이틀 만에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그는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고 적었습니다. 죄인의 몸이라 빈소를 오래 지킬 수 없었고, 4월 19일 상복 차림으로 길을 떠나며 '천지간에 어찌 나와 같은 일이 있겠는가'라고 썼습니다. 이 해의 일기 여러 날에는 '나중에 덧붙여 적음(追錄)'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그날그날 쓸 수 없을 만큼의 날들이었다는 뜻입니다.

사건 ③: 1597년 9월, 명량 — 병법을 빌린 약속, 그리고 '하늘이 도왔다'

명량 전날, 그는 '적은 수의 수군으로 명량을 뒤에 두고 진을 칠 수 없다'며 진을 옮긴 뒤, 장수들을 모아 병법의 말을 빌려 약속했습니다 —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이튿날 장수들이 물러설 때 그는 노를 재촉해 먼저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정리하며 '이는 실로 하늘이 도운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자기 공을 앞세우지 않은 문장입니다.

핵심 생각

책임 · 충 · 효 · 죽음 속에서 삶을 구함 · 기록하는 마음

어려운 한자말은 뜻을 먼저 적고 한자는 괄호에 넣었습니다. 뜻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먼저 정직하게 말해 둡니다. 이순신은 개념을 세우고 논증한 철학자가 아닙니다. 그가 남긴 것은 일기·보고서(장계)·편지·시 몇 편이고, 생각을 직접 논한 글은 「독송사(讀宋史, 『송사』를 읽고)」 한 편뿐입니다. 그래서 이 방은 '이순신의 사상 체계'가 아니라, 그의 글에 되풀이해 나타나는 행동과 판단의 원칙을 정리합니다. 그 원칙은 다섯 갈래로 모입니다. 남에게 요구하는 것을 자신이 먼저 하는 책임, 임금께 직언하되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떠나지 않고 수습하는 충(忠), 어머니를 '하늘 같은 분(天只)'이라 부르며 85번 적은 효(孝), 죽음을 각오하는 것을 목적이 아니라 살 길을 찾는 방법으로 본 생사관, 그리고 억울함을 적되 일을 멈추지 않는 원칙과 권력 사이의 태도입니다. 이 모두를 떠받치는 것이 날마다 날씨부터 적고 자기 약함까지 숨기지 않은 기록하는 마음입니다. 그의 윤리는 논문이 아니라 날짜가 붙은 행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책임 — 요구하는 것을 먼저 한다

約束 · 軍律 · yaksok · gunyul

지휘관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기 몸으로 지고, 부하에게 요구하는 것을 자신이 먼저 감당하는 태도. 명량 전날 장수들에게 '살려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약속한 그는 이튿날 대장선을 몰고 먼저 앞으로 나갔습니다. 다만 그의 책임 윤리는 엄격한 군율과 짝을 이루었고, 일기에는 군율에 따른 처형 기록도 있습니다. 전시 군율의 역사로 이해하되 미화하지 않습니다.

너희 여러 장수들은 살려는 마음을 갖지 말라, 조금이라도 명을 어기면 즉시 군율을 시행하겠다 —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5일

필사즉생 · 사중구생 (必死則生 · 死中求生)

必死則生 必生則死 · pilsa-jeuksaeng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이순신이 지은 말이 아니라, 명량 전날 일기에 '병법에 이르기를(兵法云)'로 시작하는 **병법 인용**입니다. 그는 같은 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병법을 함께 들고 '지금 우리의 경우를 말한 것'이라 했지요. 죽음의 찬미가 아니라, 좁은 물길을 지키려면 물러서지 않아야 오히려 살 수 있다는 전술 판단입니다. 「독송사」의 '죽음 속에서 삶을 구한다(死中求生)'와 같은 구조입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했고 … 지금 우리의 경우를 말한 것이다 —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5일

충(忠) — 직언하고, 안 되면 남아서 수습한다

有死無貳 · chung

그가 쓴 유일한 사론 「독송사」는 신하에게 세 단계를 요구합니다. ① 형세가 틀렸으면 명백히 말하고, ②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간하며, ③ 그래도 안 되면 그 결정 안에 남아 피해를 줄인다 — **떠나지 않는다**. 맹목적 순종이 아니라 직언과 수습입니다. 그의 충은 임금을 찬양하는 말보다 '방비할 계책을 세웠건만 성군을 속이는 일이 되었구나'(「무제육운」) 같은 자책으로 더 자주 나타납니다.

무릇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에는 죽음이 있을 뿐 두 마음이 없어야 한다 — 『시문』 「독송사(讀宋史)」

효(孝) — 하늘 같은 분, 천지(天只)

天只 · cheonji

일기에서 어머니는 '天只(하늘 같은 분)'로 불리며, 전서본 일기에 85번 나옵니다. 새해 첫날마다 그는 어머니를 적었습니다. 81세 어머니를 뵙게 해 달라는 휴가 청원 편지에서는 '차라리 집을 잊는 의리에 죄를 얻을지언정'이라고 썼지요. 장수의 의무와 아들의 마음, 둘 다를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정직하게 청하는 방식입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한 살을 더하니, 이는 전란 중에 다행한 일이다 — 『난중일기』 갑오년 1월 1일

나머지 4가지 생각은 「지혜의 전당」에서

이분의 말

  • 대비(備) — 싸움은 바다에 나가기 전에 시작된다
  • 침착함(勿令妄動 靜重如山) —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산처럼 무겁게
  • 기록(日記) — 날씨와 공무, 병과 슬픔까지 적는다
  • 효(孝) — 전쟁 속에서도 어머님(天只)을 먼저 생각함
  • 맡은 일(責) — 벼슬을 잃은 백의종군 때도 놓지 않음
  • 정직한 보고(狀啓) — 싸움의 결과를 꾸미지 않고 아룀

남기신 글

책을 쓴 사람이 아니라 기록을 남긴 사람 — 일기 · 장계 · 시문

이순신은 책을 지으려고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세 종류의 실용 기록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진중 일기, 임금과 조정에 올린 공식 보고서, 그리고 동료·가족·장병에게 건넨 시와 편지입니다. 1795년 정조의 명으로 펴낸 『이충무공전서』가 이 글들을 모았고, 휴담 도서관은 그 가운데 본인 글 부분을 세 권으로 나누어 우리말로 새로 번역해 올렸습니다. 같은 사건도 세 기록에서는 다른 목소리로 나옵니다 — 사천해전의 어깨 부상이 일기에서는 한 줄이지만, 편지에서는 '탄환 구멍이 짓물러 터져 고름이 길게 흐르니'로 적힙니다. 세 권을 나란히 읽어야 이순신이 보입니다.

「난중일기 (亂中日記)」

1592–1598 (진중 일기) · 亂中日記

임진년(1592) 정월 초하루부터 무술년(1598) 11월 17일까지, 전쟁터에서 쓴 일기입니다. 원래는 해마다 「임진일기」「계사일기」 같은 이름이었고 「난중일기」라는 제목은 1795년 전서를 펴낼 때 붙었습니다. 친필 초고본은 국보이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습니다. 휴담 도서관은 전서본을 바탕으로 7편 1,593단락을 번역했습니다.

읽기 전에 · 전서본은 친필 초고본을 줄여 정리한 판이라, 초고와 글자·분량이 다른 곳이 있습니다. 명량의 적선 수가 대표적입니다(전서본 330여 척 · 통설 133척 — 어느 쪽인지 학계에서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장계 (狀啓)」

1592–1598 (조정에 올린 보고서) · 狀啓

지방 장수가 임금께 올린 공식 보고서입니다. 옥포 승전 보고처럼 전투를 알린 글도 있지만, 유황을 내려 달라는 청원, 역병에 의원을 보내 달라는 청원, 군량과 인력 문제처럼 **보급·의료·민생**을 다룬 글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숫자와 이름, 책임 소재를 정확히 쓰는 보고서 쓰기의 교본이기도 합니다. 휴담 도서관은 3편 148단락을 번역했습니다.

읽기 전에 · 널리 알려진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그의 장계에 없습니다. 조카 이분의 『행록』 등 남의 기록에 전하는 말입니다.

「시문 (詩文)」

임진왜란 전후 (시·편지·제문·사론) · 詩文

「한산도야음」 같은 진중시,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움직이고'로 남은 두 구의 조각, 칼에 새긴 검명, 어머니를 뵙게 해 달라는 휴가 청원 편지, 전사한 정운에게 바친 제문, 그가 쓴 유일한 사론 「독송사」, 그리고 우리말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가 실렸습니다. 같은 사람이 시에서는 잠 못 이루는 밤을, 편지에서는 어머니를, 사론에서는 신하의 직언을 말합니다.

읽기 전에 · 전서에 실린 「상모숙서(上某叔書)」는 이순신 사후의 일을 말하고 있어 그의 글이 아니라고 판정해 뺐습니다. 시조 「십 년 가온 칼이」는 『청구영언』에 작자 미상으로 실려 그의 작품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다시 읽는 한 구절

이분이 직접 쓴 문장입니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보세요.

明燭獨坐 念至國事 不覺涕下 又念八十病親 耿耿達夜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나랏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또 여든 살 병든 어머님을 생각하니 밤새 마음이 애가 탔다.
— 「『난중일기』 을미년(1595) 1월 1일」
兵法云 必死則生 必生則死 又曰 一夫當逕 足懼千夫 今我之謂矣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했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으니, 지금 우리의 경우를 말한 것이다.
— 「『난중일기』 정유년(1597) 9월 15일 — 병법 인용」

원전 구절 더 읽기

오늘 우리에게

AI 시대 — 기록하는 사람, 출처를 묻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

이순신을 '흔들리지 않는 영웅'으로만 기억한다면 그의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하루를 자기 말로 적었고, 억울함 속에서도 다음 날 일을 했으며, 남에게 요구한 것을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떠도는 말 가운데 가장 유명한 몇 문장이 본인의 글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질문이 됩니다. 다만 아래의 연결은 '확정된 정답'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 볼 실마리'입니다.

기록하는 마음

오늘의 물음 · 알고리즘이 대신 기억하고 요약하는 시대

날씨부터 적고 흔들린 마음까지 숨기지 않은 7년의 일기는, 자기 하루를 자기 말로 적는 습관이 생각과 책임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본인 글과 남이 전한 말

오늘의 물음 · 생성형 AI가 그럴듯한 「명언」을 만들어 내는 시대

'열두 척'과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조카의 『행록』에 전하는 말입니다. 유명한 말일수록 '어디에 쓰여 있나?'를 먼저 묻는 습관 — 출처 확인 교육의 가장 좋은 사례입니다.

책임 — 요구하는 것을 먼저

오늘의 물음 · 팀 프로젝트·학급 자치에서의 리더십

명량 전날 장수들과 약속하고 이튿날 먼저 앞에 선 장면은, 리더의 말이 언제 힘을 얻는지 토론할 실제 장면입니다.

AI 시대와 이어지는 자리

날마다 사실을 적고, 결과를 꾸미지 않고 보고한 그의 습관은 정보가 넘치고 꾸며 낸 말이 퍼지기 쉬운 시대에 「기록과 정직한 보고」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그에게 붙은 유명한 말 가운데 상당수가 그가 쓴 글이 아니라는 사실도,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의 좋은 연습이 된다.

가르치는 방식

이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사실을 담담히 말하고, 자신을 영웅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막막해하는 학생에게는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함께 셉니다. 유명한 말이 나오면 그것이 자기 일기에 있는 말인지, 남이 적은 기록에 전하는 말인지 구별해 알려 줍니다. 싸움과 죽음을 멋있게 그리지 않고, 미움을 부추기지 않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선생님을 만나는 방법

수업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한 번의 만남은 늘 같은 순서로 닫힙니다 — 오늘의 질문 → 고전 속 인물과의 대화 → 고전 한 구절 다시 읽기 → 오늘 해볼 한 가지.
  • 일기로 만나는 이순신 — 『난중일기』 다섯 번의 만남

    혼자 만나기5번의 만남

    대비하는 날들 · 두려움을 적는다는 것 · 억울함과 백의종군 · 어머님과 아들 · 남이 지어낸 말과 내가 쓴 글을 차례로 이야기합니다.

    그분과 나, 둘이서

  • 두려울 때 어떻게 할까 — 함께 이야기

    여럿이 함께

    안중근·세네카 선생님과 한자리에 앉아 두려움과 맡은 일을 오늘의 자리에서 이야기합니다.

    여러 분과 한자리에

  • 오늘의 일기 한 줄 — 짧은 기록

    마음 일기

    하루에 한 줄, 날씨와 오늘 한 일과 마음 하나를 적으면 짧은 답장이 옵니다.

    매일 조금씩 주고받기

충무공 이순신 선생님의 「지혜의 전당」이 열려 있습니다

일곱 개의 방을 차례로 걸으며 한 사람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봅니다. 마지막 방에서 그분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1. 오늘 모실 분
  2. 살던 시대
  3. 살아오신 길
  4. 핵심 생각
  5. 남기신 글
  6. 오늘 우리에게
  7. 이제 당신 차례
「지혜의 전당」 들어가기

충무공 이순신 선생님과 이야기하려면
우리 반에 들어오세요

여기는 강의실이 아니라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 반에 들어오면 다섯 번의 만남, 여러 분과 함께하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소개와 남기신 글은 지금도 그냥 둘러볼 수 있고, 학생은 위 「대화하기」로 가입 없이 바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전당」은 로그인하고 사용 승인을 받으면 열립니다.

어른이라면 시민 고전 모임 알림 받기(휴담 도서관)